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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록 오페라로 다시 태어난 프랑스 뮤지컬 <모차르트> [No.75]

글 |이동섭(파리 통신원) 사진 |Greg Soussan, Merwan Rim 2009-12-21 5,428

뮤지컬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2010년 한국 초연을 앞둔 미하엘 쿤체와 그래미상 수상에 빛나는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의 <모차르트>를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소개하는 작품은 그와는 다른, 프랑스 뮤지컬 <십계> 제작팀이 만든 록 오페라 스타일의 뮤지컬 <모차르트>다.

왜 또 <모차르트>일까? 2004년은 그의 서거 400주년이 되던 해였고 쿤체와 르베이의 <모차르트>를 어딘가에서 재밌게 봤는지, 역사적인 인물들에 매혹된 제작자들의 구미에 맞아서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난 9월 22일 파리 팔레 데 스포르 공연장에서 초연된 <모차르트>는 지금까지 순조롭게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프랑스 뮤지컬의 성공 법칙 
<모차르트>의 흥행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대부분의 제작자들이 그들 나름의 성공 법칙에 따라서 작품을 제작하듯 <모차르트>의 제작자들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거의 유일한, 그래서 가장 유명한 뮤지컬 제작자 커플인 도브 아티아 Dove Attia (제작, 극작, 음악감독)와 알베르 코엔 Albert Cohen  (제작)이 믿고 따르는 성공의 법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뮤지컬 무대에 적합한 소재를 찾아라. 단, 역사 속의 실존 인물이나 그만큼 대중들에게 익숙한 허구의 인물을 찾아야한다. 그들의 첫 작품인 <십계>의 모세나 <태양왕>의 루이 14세는 실존 인물이었고, <글라디아퇴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도로시와 오즈의 마법사>는 역사 속 인물만큼이나 유명한 가상의 인물이었다.

이런 인물들을 소재로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용 작품이 아닌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 뮤지컬로 만들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실존 인물을 다룬 작품들의 흥행 스코어에 비해 가상 인물을 다룬 작품들의 흥행은 그저 그랬다는 것이다.

 

이들이 실존 인물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인 것은 그 때문이다. 소재가 정해진 작품의 주인공을 빅 스타로 채우지 않는다는 점은 두 번째 성공 법칙이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제작한 5~6편의 뮤지컬 주인공들은 모두 무명이었거나 텔레비전에서 막 이름이 알려진 정도의 배우들이었다. 이는 여느 프랑스 뮤지컬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어권의 가장 대표적인 어린이 뮤지컬 <에밀리 졸리>를 제외하고, 유명 가수나 배우가 뮤지컬에 타이틀 롤로 무대에 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신 연출을 비롯한 주요 스태프(영화감독, 안무가, 의상디자이너 등)들의 경우에는 외부 인물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한다.

엘리 수라키 감독과 의상 디자이너 소니아 리키엘을 <십계>에 참여시킨 것처럼, <모차르트>에도 뮤직 비디오 연출과 영화 <라비앙 로즈> 등으로 유명한 올리비에 다안이 연출가로 참여했다. 수준 높은 인력을 뮤지컬 제작에 참여시키려는 목적도 있지만 스태프들이 때론 빅 스타로 성장하기도 한다. <십계>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안무가로 시작해 <태양왕>의 연출을 맡은 카멜 우알리가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성공 법칙은 바로 공연 개막 시기를 언제로 정할 것인가와 관련된다. 도브 아티아와 알베르 코엔은 신학기가 시작되는 9~10월에 작품을 개막하고, 최소 6개월 전부터 타이틀곡이 수록된 싱글 앨범을 발매하고 티켓 오픈을 한다. 이는 9월부터 시작해 다음 해 2월까지 이어지는 공연계의 대목을 적극 활용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뮤지컬 넘버를 대중가요처럼 만들고 홍보한 덕분에 <모차르트> 공연장은 <태양왕>과 마찬가지로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지는 록 밴드 콘서트장 같았다.


이러한 성공 법칙들 중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바로 소재 설정이다.

대중들은 역사 속 인물에 대해 들어 봤고 익히 알고 있지만,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누구나 모차르트와 그의 작품을 알고 있지만 실상 그에 대해 제대로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는 점이 대중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달콤한 선율, 강렬한 비트의 노래 한두 곡을 널리, 지속적으로 홍보함으로써 대중들의 관심을 끌고 그들이 현장에서 직접 듣기 위해 공연장으로 향하도록 하는 것이다. 학교는 개강을 했고, 모두가 공연을 보러 다니는 연말 시즌이니, 어차피 볼 것이라면 아는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작품을 보러가지 않겠나. 알고 보면 아주 쉬운 성공의 법칙이지만, 그대로 따른다고 해서 모든 작품이 흥행되지 않는 것이 공연 비즈니스의 묘미라면 묘미일 것이다. 하늘의 운이 아주 조금 필요하다. <모차르트>에 따른 하늘의 운이 무엇인지는 다시 얘기하자.

 

 

모차르트, 랑데부 홈런을 칠 수 있을까? 
내가 아는 ‘모차르트’는 밀로스 포만 감독의 영화 <모차르트>에서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던 어린 천재, 살리에리가 몸을 떨며 질투하던 그 모차르트이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그대로 나열해 실패를 경험해 본 제작자들은 전작 <태양왕>에서 역사 속 인물의 특정 면을 부각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모차르트를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큰 틀에서 그들의 선택은 현명했다.

 

<모차르트>는 1막에서는 사랑과 방황, 2막에서는 성공과 죽음을 그리고 있다. 잘츠부르크에 대주교 콜로레도가 새로 부임하면서 잘나가던 신동 모차르트를 음악감독에서 해임한다. 당시 스무 살이던 모차르트는 미련 없이 독일어로 된 오페라를 쓰겠다는 야심을 품고 엄마와 함께 유럽 도시들을 떠돌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떤 유럽의 영주나 국왕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고, 그 와중에 모차르트는 자신을 이용하려는 야심에 찬 여가수 알로시아 베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모차르트의 엄마는 결국 파리에서 병으로 죽게 되고, 그는 알로시아를 남겨두고 혼자 잘츠부르크로 돌아간다.

 

2막에서 모차르트는 콜로레도의 신임을 다시 얻고 오스트리아 여제에 이어 즉위한 요셉 2세를 축하하기 위해 그와 함께 비엔나에 간다. 거기에서 그는 대단한 성공을 이루고, 다시 전성기를 누린다. 살리에리의 등장과 대결 및 알로시아의 여동생과의 새로운 사랑, 그리고 유작이 된 미완성작 레퀴엠까지 숨가쁜 그의 마지막 생애가 그려진다.
<모차르트>는 모차르트의 사랑에 포커스를 맞추고 깊이 있게 들어갈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극이 진행될수록 그를 둘러싼 방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다루어 결과적으로 밋밋한 스토리 전개가 이어졌다. 음악가를 다룬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음악에 관한 인상적인 이야기는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는 점도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기대를 모았던 살리에리와의 갈등 구조도 극에서 중요한 축을 형성하지 못하고 파편적인 에피소드로만 소비되어서 그들의 서로 다른 음악관, 세계관이 부각될 기회를 잃어버렸다.
 


결국, 음악이 성패를 결정한다?
스토리와 극 전개의 아쉬운 점은 그나마 잘 만들어진 음악들이 채우고 있다. 모차르트의 히트곡들과 록, 오페라, 왈츠, 테크노, 일렉트로니카 등 요즘 스타일의 뮤지컬 넘버들이 적절히 작품 속에 배분되어 있다. 특히 <모차르트>를 위해 만들어진 몇몇 곡들은 아주 잘 만들어진 후크 송처럼 귀에 잘 감기어 공연장에서 한 번 들어도 잘 기억되었다.

 

하지만 작품을 대표하는 넘버를 모차르트가 아닌 살리에리나 주변 인물들이 부른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극의 완성도를 어느 정도 포기하고 음악과 스펙터클에 집중함으로써 보다 많은 대중들을 공연장으로 불러들이는 것도 도브 아티아와 알베르 코엔 작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올리비에 다안 감독을 연출자로 영입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작품은 그에게 첫 번째 뮤지컬 도전작 정도로만 의미를 두어야할 것 같다. 프랑스 뮤지컬이 아무리 내러티브의 문제점을 자주 노출한다고 해도 <모차르트>처럼 노래와 극의 연결, 전개가 심하게 어색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연출만의 문제가 아니라 음악의 구성과도 밀접하게 연결된 점이다.

 

<모차르트>에는 작곡가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뮤지컬의 중심이 음악이고, 그 음악을 만드는 이가 작곡가일 텐데, 어디에도 작곡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왜? 답은 제작자 도브 아티아가 쥐고 있다. 그는 작곡을 할 줄 아는 제작자인 동시에 작곡도 하고 싶어 하는 제작자이다. 작곡을 할 줄 아는 제작자와 제작을 할 줄 아는 작곡가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도브 아티아는 자신 밑에 여러 명의 작곡가들을 두고 그들이 쓴 곡들 중에 골라서 작품에 배치했다. 보통의 뮤지컬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멜로디가 있고 거기에서 변주되는 곡들이 있어서 전체적인 구조를 잡아주는 것과 달리, 레뷔처럼 한 곡에 맞는 한 장면들이 이어지는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각각의 넘버들은 완성도가 있지만, 음악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뮤지컬의 특성상 노래 시작 전후로 극의 전개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면 난감한 일이 아닌가. <모차르트>는 스토리 전개와는 상관없이 인물들의 내면 고백에 주로 음악이 사용된다. 배우들은 ‘아, 이러저러 해서 나는 괴로워’라고 독백한 다음 그 내면을 토로하는 직접적인 내용의 노래를 부른다. 같은 주제로 여러 명이 쓴 단편소설을 엮는다고 해서 장편소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왜 알지 못했을까.

 

제작자와 연출가 스스로가 영화 OST 작업 방식을 따랐다고 설명하는 <모차르트>는 음악감독과 곡을 쓰는 사람들은 있지만 작품의 작곡가는 없는 기묘한 뮤지컬이 되어 버렸다. 이런 문제점은 이 방식으로 처음 작업한 <태양왕>에서도 이미 노출된 바 있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성공하는 데 이런 요소가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아서인지 제작자들은 그 방식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모차르트>는 특정 곡을 좋아하는 팬이 아닌 이상 보통의 뮤지컬 관객에게는 그저 그런 작품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음악과 연출이 유기적으로 잘 연결될 수 있는 누군가의 결정적인 도움도 <태양왕> 때보다는 부족해 보인다. 이 작품의 성공 요소는 분명 음악이지만, 그 음악을 듣는 데에만 만족해야 한다는 점은 치명적인 결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부분들이 수정·보완된다면 <모차르트>는 한국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작품이다.

 

 

[모차르트]
공연장소: 파리 팔레 데 스포르 PALAIS DES SPORTS
공연일시: 9월 22일 ~ 12월 27일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75호 2009년 12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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