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3일 브로드웨이의 유진 오닐 극장에서 새롭게 막을 올린 <펠라>는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유명한 팝 가수이자 반체제 운동가였던 ‘펠라 쿠티` Fela Anikulapo-Kuti 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펠라>가 개척한 아프로비트 Afrobeat (팝 음악과 아프리카 전통 음악의 결합)의 신명나는 음악과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안무로 유명한 빌 T. 존스의 활력 넘치는 춤은 개막과 동시에 브로드웨이를 찾는 관객은 물론이고 뉴욕 평론가의 관심까지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주로 리바이벌 작품이 대세를 이루는 이번 브로드웨이 시즌에서 <펠라>는 아프리카 출신 팝스타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참신한 소재와 에너지로 가득 찬 아프리칸 비트의 음악, 그리고 역동적인 춤을 통해 다소 침체된 브로드웨이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브로드웨이 핫 뮤지컬 <펠라>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안무가인 빌 T. 존스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프리칸 음악가인 펠라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구상한 이 작품은 2008년 9월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의 ‘37 아츠 시어터` 37 Arts Theater 에서 한 달간 공연되어, 그해 루시 로텔상에서 베스트 뮤지컬, 안무, 그리고 의상 부문을 수상했던 작품이다.
브로드웨이 공연은 보다 짜임새 있는 이야기의 구성을 위해 오프 브로드웨이 버전을 15분에서 20분 정도 들어내어 압축하고 브로드웨이 극장의 규모에 맞게 무대미술을 강화하였다. 그리고 토니상 수상 배우인 릴리아스 화이트 Lillias White 를 어머니 역으로 보강했다.
안무가 빌 T. 존스가 안무뿐 아니라 연출을 담당했고, 토니상과 드라마데스크상 후보에 올랐던 <크로니클 오브 어 데스 포어톨드> Chronicle of a Death Foretold 를 집필했던 짐 루이스 Jim Lewis 가 대본과 가사를 담당했다.
또한 뉴욕을 근거지로 700여 회에 이르는 콘서트를 통해 아프로비트의 음악을 전세계에 알리고 있는 밴드 안티발라스 Antibalas 의 리더인 애런 존슨 Aaron Johnson 이 <펠라>의 오리지널 음악을 바탕으로 음악을 선곡하고 직접 연주하였다. 또한 우리에게 영화배우로 널리 알려진 윌 스미스 Will Smith 부부가 프로듀서로 참여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무대 위에 구현된 <펠라>의 이야기
브로드웨이 49가에 위치한 오닐 극장에 들어서면 관객들은 먼저 70년대 나이지리아의 나이트클럽 분위기로 꾸며진 무대와 관객석을 접하게 된다. 무대 후면에 골함석으로 만든 커다란 벽이 세워져 있고 그 위에 그래피티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극장 천정에는 커다란 디스코 미러볼이 빛을 뿜고 있고 극장 벽은 아프리카의 그림과 조각상, 그리고 정치적인 슬로건이 쓰여진 포스터로 장식되어 있다. 무대 후면 슬레이트 모양의 벽 앞으로 단이 세워져 색소폰, 트럼펫, 그리고 젬베를 비롯한 각종 타악기로 구성된 밴드가 이미 흥겨운 음악으로 관객을 맞이하고 있고 무대 위, 발코니 그리고 객석 앞으로 돌출된 브리지 모양의 플랫폼에서 육감적인 몸을 드러낸 남녀 댄서들이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극장은 나이트클럽의 분위기와 저항적인 문구가 쓰여진 포스터가 묘한 대조를 이루며 이색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공연이 시작되면 펠라 역을 맡은 배우(사 나구야 Sarh Nagujah와 케빈 맘보 Kevin Mambo 더블 캐스팅)가 마이크를 들고 무대 한가운데로 걸어 나와 그의 작별 콘서트를 시작한다.
이야기는 1978년 나이지리아의 수도 라고스에 있는 펠라의 나이트클럽에서 시작된다. 펠라는 관객에게 최근 그에게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한다. 1978년 나이지리아의 군부독재의 탄압으로 그의 작업장이자 생활 공동체였던 ‘칼라쿠타 공화국` Kalakuta Pepublic 에 군인들이 들이닥쳐 그의 모든 작품들을 불태우고, 그와 함께 일했던 음악가, 댄서들을 폭행하고 강간했다. 또한 그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했던 어머니마저 군인들에 의해 2층 창문으로 던져져 목숨을 잃는다. 그는 이제 클럽 문을 닫고 정든 나라를 떠나려고 한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페미니스트 운동가로 유명한 어머니가 나타나 그에게 이곳에 계속 남아 투쟁할 것을 촉구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게 비극적인 톤이지만 그의 이야기에는 항상 유머가 끊이지 않는다. 그는 관객과 함께 어떻게 엉덩이춤으로 시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 관객에게 보여준다. 모든 관객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와 함께 엉덩이를 흔들어대며 시각을 가리킨다.
그리고 펠라는 자신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는 1938년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크리스천 학교의 교장이자 목사였고 어머니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페미니스트 운동가였다. 펠라는 엘리트 교육을 받고 자랐는데, 동창생들 대다수가 나중에 그가 투쟁했던 군부독재의 핵심적인 지도자가 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그는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영국으로 유학했지만 곧 마일즈 데이비스, 프랭크 시나트라의 영향을 받아 팝 음악의 매력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1961년, ‘쿨라 로비토스` Koola Lobitos 라는 밴드를 결성해 클럽에서 활동한다.
다시 나이지리아로 돌아온 그는 팝에 아프리카의 음악적인 요소를 결합해 아프로비트 장르를 만들어 낸다. 1969년 그의 밴드는 미국에서 순회공연을 하게 되고 그 기간에 그는 샌드라 이시도어 Sandra Isidore 를 만나 말콤 엑스로 대표되는 흑인 인권 운동 사상에 젖어 들게 된다. 그는 그의 밴드의 이름을 ‘나이지리아 70` Nigeria 70 으로 개명하고 다시 라고스로 돌아와 나이트클럽 ‘신전` Shrine 과 작업 공동체이자 생활 공동체인 ‘칼라쿠타 공화국` Kalakuta Repubulic 을 만든다.
이러한 그의 인생 이야기가 그의 저항적인 가사, 그리고 원초적인 아프리칸 리듬과 비트로 에너지 넘치는 음악과 춤을 통해 전개된다. 그리고 공연의 절정에서 `Sorrow, Tears and Blood’가 불려지면서 군인들에 의해 그의 작업 공동체인 ‘칼라쿠타 공화국’이 불태워지고 동료들이 강간당하고 폭행당하는 장면이 전개된다.
이러한 위기의 상황에서 항상 그를 이끌어주는 정신적인 지주였던 어머니는 그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어머니는 그의 나이트클럽 ‘신전’의 여신으로 비유된다. 브로드웨이의 대표적인 흑인 여배우 리아스 화이트는 그의 뛰어난 가창력으로 자상하면서도 강건한 어머니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였다. 결국 그녀의 정신은 펠라로 하여금 그가 죽을 때까지 200번이 넘게 감옥을 드나들면서도 나이지리아를 끝까지 버리지 않고 투쟁하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군인들에 의해 그의 공동체가 무너진 1년 뒤 펠라가 27명의 여성과 결혼했다는 것이다. 펠라와 결혼한 여성의 대다수는 그가 만든 공동체에서 함께 일했던 음악가들이거나 댄서들이었는데, 그들 중 상당수는 그 사건의 와중에서 부상을 당하거나 강간을 당한 이들이었다. 그는 아프리카의 전통을 버리고 서양음악을 일방적으로 추종하는 아프리칸 음악인들을 비난하는 동시에, 일부다처제 역시 아프리카의 전통으로 존중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부다처제에 대한 그의 옹호는 페미니스트 운동가였던 어머니의 사상과 대립된다는 측면에서 주목된다.
이 공연의 마지막에서 펠라는 어머니의 관을 들고 거리로 나가 직접 작곡한 노래를 부르며 그에게 일어났던 탄압에 대해 고발한다. 배우들이 끊임없이 나르는 작은 관으로 무대는 점차 채워지고 결국 무대 뒤로 감춰져 있던 관들이 드러나면서 공연은 막을 내린다.
무대 위에 구현된 앙상블
음악가로서 펠라가 거두어들인 성공을 입증하듯 이번 뮤지컬에서 쓰인 그의 음악은 이국적이면서 역동적인 비트로 관객의 몸을 들썩이게 만든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곡 중의 하나는 ‘좀비` Zombie 라는 노래이다. 실제로 1977년 펠라는 `좀비` 라는 앨범을 발표해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 노래에서 그는 군인들을 독재정권에 의해 꼭두각시마냥 조종되는 좀비로 묘사하고 풍자했다. 관객들은 좀비와 대조되는 개념으로서의 생명력을 펠라의 음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음악이 지니는 에너지는 관객으로 하여금 직감적으로 자발성과 자유, 그리고 저항의 정신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연출과 함께 안무를 맡은 빌 T. 존스는 이러한 <펠라>의 음악에 맞추어 배우가 무대에서 끊임없이 춤추도록 만들었다. 공연의 첫 곡인 ‘Original, No Artificiality’ 에서부터 관객들은 그가 만들어낸 창의적인 안무를 느낄 수 있는데, 그의 안무는 기존의 브로드웨이의 전형적인 틀을 벗어나 원초적인 아프리카의 생명력을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사실 그의 격렬한 춤이 이 공연을 호의적인 평가로 이끄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한 배우들의 고생을 대변하듯, 공연을 시작한 지 2주가 안 된 시점에서 댄스 캡틴을 비롯한 3명의 앙상블이 부상으로 인해 물러나면서 한때 공연이 취소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무대와 의상은 오프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으로 의상 부문에서 루시 토텔상을 수상한 디자이너 마리나 드레기치 Marina Draghici 가 담당하였다.
그녀는 아프리칸 전통의상과 조각에 미국 포스트모던 아트인 그래피티를 결합해 ‘아프로비트` (팝 음악과 아프리카의 전통 음악의 결합) 라는 음악 장르가 가지는 특성을 무대 미술에서도 잘 구현해냈다.
이는 공연의 주제와 분위기와도 적절하게 융화되었다. 또한 슬레이트 느낌의 골함석을 무대 후면에 크게 배치하고 여기에 다양한 색감의 조명과 영상 프로젝션을 투사함으로써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공존하고 있음을 무대를 통해 느끼도록 만들었다.
또한 영상의 사용 역시 절묘하게 무대디자인과 어우러져 이야기의 전달에 큰 역할을 담당 하였다. 프로젝션 디자이너인 피터 니그리니 Peter Nigrini 는 다큐멘터리 필름 같은 실제적인 느낌의 영상, 그리고 독재정권을 묘사한 듯 군인 제복 차림에 단지 미세한 손가락의 움직임만 있는 상징적인 영상, 그리고 배우가 관을 나르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무대에 프로젝션 하는 방법 등을 통해 다양한 스타일로 시각적인 볼거리를 제공하였다.
관객과 평단의 지지
사실 호의적인 평가가 대부분인 이 작품에서도 몇 가지 약점은 지적된다. 먼저 공연을 시작하는 음악과 춤은 강렬하고 새롭지만 비슷한 분위기의 음악과 춤이 반복되면서 그 신선함과 파워가 무뎌진다는 것이다. 또한 서사적인 구성 역시 이야기의 전달에 있어 드라마틱한 구성을 담보하지 못하면서, <펠라>의 삶에 강한 공감을 느끼지 못하는 관객들에게는 다소 지루함을 가져다주었다. 모노드라마적 스토리텔링 기법은 주인공과 관객을 직접적으로 소통하게 하고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드라마적 구성이 가지는 클라이막스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힘을 가지진 못하였다. 또한 실제로 펠라는 1997년에 에이즈로 죽었고 그와 그의 두 의사 형들 역시 에이즈 운동가였지만 이 측면이 관객에게 잘 전달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와 같이 지적되고 있는 몇 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펠라>가 거두어 들이고 있는 관객들의 평가는 대단하다. 혹자는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상연되고 있는 어떤 뮤지컬과도 비할 바 없이 훌륭하다고 평을 하기도 하고, 다음 토니상 후보로 조심스레 <펠라>를 점쳐보기도 한다. 사실 이전에도 브로드웨이에서 <펠라>와 비슷한 성향의 정치적인 팝 뮤지션의 얘기를 다룬 뮤지컬을 선보인 적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조니 캐쉬 Johnny Cash 를 다룬 뮤지컬 <링 오브 파이어> Ring of Fire 그리고 존 레논을 다룬 <레논> Lennon 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 <펠라>는 이 두 뮤지컬의 실패를 경험 삼아 전통적인 뮤지컬의 구성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기법들을 통해 펠라의 일대기를 구현하였고, 이는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뮤지컬 <펠라>가 시도한 새로운 접근은 이 작품이 이전의 히트 뮤지컬 <패싱 스트레인지>나 <스프링 어웨이크닝>과 함께 참신한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게 한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76호 2010년 1월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