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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진솔한 열정의 힘, 뮤지컬 <에브리데이 랩쳐> Everyday Rapture [No.83]

글 |이곤(뉴욕 통신원 사진 |Carol Rosegg 2010-09-29 5,371

올 시즌 브로드웨이 무대에 뒤늦게 나타나 작품성은 물론, 흥행 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뮤지컬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제목은 <에브리데이 랩쳐> Everyday Rapture.

자신을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잘 알려진 세미 세미 세미 스타라고 부르는 셰리 르네 스캇 Sherie Rene Scott 이 뮤지컬 <속속들이 모던한 밀리> Thoroughly Modern Millie 의 대본작가인 딕 스캔랜 Dick Scanlan 과 같이 대본을 쓴 이 작품은 역시 <속속들이 모던한 밀리>에서 함께 작업했던 마이클 메이어(뮤지컬 <아메리칸 이디엇>의 연출자)에 의해 무대에 올려졌다.

 


뉴욕의 대표적인 비영리 극단인 ‘라운드어바웃 시어터 컴퍼니’에 의해 4월 19일부터 7월 11일까지 ‘아메리칸 에어라인 시어터’에서 공연되었다. <에브리데이 랩쳐>는 스캇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미국의 엄격한 기독교 마을에서 자라나 뉴욕의 브로드웨이 쇼 비즈니스(물론 비종교적인 성향으로 가득한)에 진출하게 된 한 여배우의 인생 역정을 다루고 있다.
두 명의 여자 백그라운드 가수 그리고 짧게 등장하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 젊은 배우, 이몬 폴리 Eamon Foley 등 네 명이 출연하는 작은 규모의 뮤지컬로 스캇 자신의 솔로 쇼라고 해도 무리 없을 정도로 스캇의 비중이 압도적이었다.

 

 

브로드웨이 공연을 올리기까지
대본 창작과 주연은 물론 기획, 제작에까지 적극적으로 관여해온 셰리 르네 스캇은 이 작품을 브로드웨이에 올리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그녀는 작년 4월에서 6월에 걸쳐 세컨드 스테이지 시어터에서 올려졌던 오프브로드웨이 공연의 성공에 고무되어 올해 브로드웨이 입성을 염두에 두고 여러 극장들과 가능성을 타진해왔지만 스타가 출연하지 않는 약점 때문에 연거푸 고배를 마셔야 했다.
하지만 라운드어바웃 시어터 컴퍼니에서 올 시즌 마지막 공연으로 기획했던 리바이벌 연극 <립스 투게더 티스 어파트> Lips Together Teeth Apart 의 주인공인 드라마 <윌 앤 그레이스>의 스타, 메간 멀러리 Megan Mullally 가 상대역에 대한 불만을 품고, 연출자였던 뮤지컬 <위키드>의 조 만텔로와 잦은 불화를 일으키면서 결국 연습 중간에 취소되었다. 이 과정에서 <에브리데이 랩쳐>는 운 좋게 그 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사실 작년 겨울에 스캇은 라운드어바웃 시어터가 소유하고 있는 또 다른 브로드웨이 극장인 ‘헨리 밀러 시어터’의 대관을 신청했지만 스타가 등장하지 않는 이 뮤지컬의 흥행 잠재력에 의문을 품었던 극장 측은 이 작품 대신 스타급 배우가 등장하는 다른 뮤지컬 <올 어바웃 미> All About Me 를 선택했다. 
올 초 브로드웨이 공연에 대한 가능성이 다시 제기되고 극장 측과의 협의가 급물살을 타게 되자 그녀는 기대감에 따른 과중한 긴장감을 견디지 못하고 모든 일정을 중단한 채 플로리다로 여행을 떠나야 했다. 4월 1일, 극장 측으로부터 올 시즌의 마지막 작품으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그녀는 잠시 이것이 만우절 장난이 아닌지 의심했다고 한다.
이런 일화를 통해 보여지는 그녀의 작품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브로드웨이 관계자들이 한결같이 지적해 왔던 ‘스타급 배우의 부재, 소규모 캐스트’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성공적인 브로드웨이 데뷔를 이루어냈던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

 

 

 

양극단에서 균형 잡기
창작팀은 스토리의 많은 부분을 스캇 자신의 자전적인 경험에서 빌어 왔지만, 이를 바탕으로 새롭게 픽션을 가미해 더욱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만들었다. 주인공의 이름도 셰리 르네 스캇으로 정했고 역시 브로드웨이 쇼 비즈니스계에서 화려한 경력을 지닌 세미 스타로 상정했다. 그녀의 삶은 엄격한 종교와 화려한 쇼 비즈니스 세계라는 양극단에서의 끊임없는 줄타기로 이루어져왔다. 그녀는 우스개 소리로 주민보다 교회가 더 많다는 캔자스의 주도 토피카 Topeka 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엄격한 종교단체인 메노나이트의 가르침에 따라 그녀를 가르쳤고 오직 예수의 사랑만이 그녀의 삶에 있어서 절대적인 가치가 되었다. 하지만 동성애자로 결국 에이즈로 사망하게 되는 사촌 오빠를 통해 처음 주디 갈랜드 Judy Garland 의 노래를 접하게 된 이후, 그녀는 예수와 주디 갈랜드, 두 명의 스타 사이에서 정신적인 혼란을 겪게 된다. 메노나이트의 종교적 가르침은 모든 엔터테인먼트를 죄악시 여겼고, 이에 그녀는 주디 갈랜드를 동경하는 자신을 용납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정신적 구루가 된 미국의 유명한 텔레비전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 진행자, 교육가이자 가수, 미스터 로저스는 엄격한 청교도주의적인 장벽을 넘어 뮤지컬 가수로서의 자신의 꿈을 키우고 재능을 계발할 수 있도록 그녀에게 용기를 주었다.

 


이렇게 엄격한 기독교와 쇼 비즈니스라는 양극단적인 세계는 그녀가 늘 지니고 다니는 두 장의 종이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그녀가 어린 시절 우연히 만난 나이든 유태인으로부터 받은 종이 한 쪽엔 ‘나는 세상의 작은 먼지에 불과하다’라고 써 있고, 다른 쪽엔 ‘세상은 나를 위해 창조되었다’라고 쓰여 있다.
메노나이트교에서는 성인이 되어 공동체에 정착하기 전에 1년간 마을을 떠나 여행하는 관습이 있다. 그녀도 이 관습에 따라 늘 꿈꾸어왔던 뉴욕으로 오게 되고 곧 이 도시가 가지는 매력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뉴욕에서의 삶은 그녀가 꿈꾸어왔던 낭만으로 가득 찬 곳은 아니었다.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서 만나 그녀의 순결을 가져갔던 거리의 마술사의 아이를 갖게 되지만 결국 낙태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통해 뉴욕의 쇼 비즈니스계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게 되고 그녀에게 주어진 1년의 여행은 27년으로 늘어나게 된다.


관객을 즐겁게 만들었던 또 하나의 에피소드로 그녀가 인터넷 유튜브를 통해 만났던 십대 팬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뮤지컬 <아이다>의 암네리스 공주 역을 맡았던 스캇의 곡, ‘Strongest Suit’에 자신의 현란한 몸놀림을 찍어 편집해 올린 팬과 얽힌 이야기인데 그녀는 그 광적인 팬과 채팅을 통해 연락을 취했다가 큰 곤혹을 치르게 된다. 이 장면에 출연했던 게스트 스타 이몬 폴리는 그의 에너지 넘치는 몸짓과 재기 넘치는 연기로 관객에게 많은 웃음을 주었다.

이렇듯 사소하지만 울림을 주는 이야기 그리고 재치 있는 위트로 가득한 이 공연은 관객의 적극적인 호응과 평단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었고, 스캇은 개인적으로 토니상 여우주연 후보로 노미네이트되는 영광을 안았다.
또한 이 공연은 주로 스타들에 의존해 공연이 올라갔던 브로드웨이 공연계에 신선한 자극을 가져다주었다. 뉴욕의 많은 평론가들은 스타 중심의 마케팅으로 작품성보다는 어떻게 유명한 스타를 끌어들이는가에 열을 올리는 현 브로드웨이의 제작행태에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은 쇼킹하거나 감각적이지는 않지만 올 시즌 브로드웨이를 찾았던 관객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었던 공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세미 스타`  Semi Star
톱스타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조연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 있는 작가 혹은 배우를 일컫는 말.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3호 2010년 8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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