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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웨버의 리바이벌 뮤지컬 <사랑의 단면들> Aspects of Love [No.84]

글 |정명주 (런던 통신원) 사진 |Catherine Ashmore 2010-09-29 5,407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사랑의 단면들> Aspects of Love 이 1989년 웨스트엔드 초연 이후 처음으로 런던에서 리바이벌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1989년 런던에서 초연되었던 이 작품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대표작 중 하나로 <레 미제라블> 연출로 유명한 트레버 넌이 연출을 맡았었고, <레 미제라블>에 출연했었던 두 배우, 마이클 볼 Michael Ball과 앤 크럼 Ann Crumb 을 남녀 주인공으로 내세워 인기를 얻으며 1,325회 공연을 기록했다. 다음해 브로드웨이에서 오픈한 미국 프로덕션은 377회를 기록하며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영국에서는 2007년 전국 투어 공연을 가졌고, 이번 메니어 초콜릿 팩토리에서의 리바이벌이 런던에서 정식으로 21년 만에 공연되는 것이다. 또한, 이번 프로덕션은 오리지널 런던 프로덕션의 연출가 트레버 넌이 다시 한 번 연출을 맡아 소형 쳄버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개작하였다.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사랑
메니어 초콜릿 팩토리는 2000년대 초부터 <일요일 공원에서 조지와 함께>, <소야곡> 등 손드하임의 대표 작품들을 리바이벌하고, <새장 속의 광인>, <스위트 채러티> 등 미국 뮤지컬을 소극장용으로 리바이벌 제작하여 크게 성공을 거두어왔다. 특히 앞서 말한 네 작품 모두 웨스트엔드에 머물지 않고 브로드웨이로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이루어왔다. 이번에 메니어 초콜릿 팩토리에서 제작한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사랑의 단면들> Aspects of Love 은 원래 39회의 장면 전환과 17인조 오케스트라 버전이던 대형작품을 단일 세트에 7인조 소형 오케스트라로 대폭 축소한 소극장 버전이다. 데이빗 팔리 David Farley 의 옅은 흙색의 무대장치는 창문틀 몇 개와 빈 액자 모양이 새겨진 벽면, 그리고 간단한 프로젝션과 소품만을 가지고 프랑스 몽페리에에서 파리, 피레네 산맥 근처의 시골 포 Pau, 베니스 등 수많은 장소를 옮겨가며 17년간에 걸쳐 일어나는 사랑의 대장정을 경제적으로 훌륭하게 표현하였다.


<오페라의 유령> 이후 3년 만에 발표한 <사랑의 단면들>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전형적인 로맨틱 멜로디가 아름다운 작품이다. 실제로 ‘팬텀’의 극적인 톤이나 크리스틴의 청아한 목소리를 연상시키는 노래도 몇 곡 있다.

17살의 영국 청년, 알렉스가 몽페리에로 여행을 왔다가, 프랑스 여배우 로즈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마치 라울이 크리스틴을 회상하면서 <오페라의 유령>이 시작하듯 나이 든 알렉스가 ‘사랑은 모든 걸 변하게 해 Love Changes Everything ’를 노래하면서 로즈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작품 내내 변주되면서 다시 소개되는 이 첫 번째 뮤지컬 넘버는, 알렉스와 로즈의 사랑의 듀엣 ‘보는 것이 믿는 것 Seeing Is Believing ’, 그리고 알렉스의 삼촌 조지가 자기의 딸 제니를 향해 부르는 ‘네가 기억하는 첫 번째 남자 The First Man You Remember ’ 등과 함께 이 작품의 대표곡으로 꼽힌다.

 


웨버의 때론 감미롭고, 때로 극적으로 솟아오르는 멜로디들은 돈 블랙과 찰스 하트의 가사와 함께 훌륭한 음악적 경험을 제공한다. 하지만 데이빗 가르넷의 원작 소설은 두 시간 반에 담아내기에 다소 복잡한 플롯을 가지고 있어, 뮤지컬 <사랑의 단면들>은 감상이 쉽지 않은 작품이다. 특히, 아름다운 프랑스 여배우 로즈를 중심으로 3대에 걸쳐 얽히고설키는 사랑이야기는 때로 이해가 어렵기도 하고, 정서적으로 공감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스물다섯, 한창 아름다운 나이의 떠오르는 여배우, 로즈가 출연한 공연을 보고 열일곱 살의 영국 청년 알렉스는 첫사랑에 빠져 버린다. 망설이는 로즈를 졸라, 알렉스는 삼촌 조지의 시골 별장으로 그녀를 초대한다. 둘의 감미로운 사랑이 익어가는데 기대치 않게 삼촌 조지가 별장을 방문하면서 이내 세 사람은 사랑의 삼각관계에 빠져든다. 로즈는 젊고 사랑스러운 알렉스와 돈 많고 우아한 중년의 조지 사이에서 갈등을 하다가 결국 삼촌 조지를 택한다. 알렉스는 마음의 상처를 깊게 받고 둘을 떠나 군에 입대한다. 한편 조지와 연인관계에 있던 이탈리아의 여화가 줄리에타 역시 로즈를 만나자 그녀를 향한 연정을 품으면서 두 여자의 동성애와 중년남 조지의 삼각관계로 발전한다. 로즈는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나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아름다운 여자이다. 그리고 12년 후 군에서 돌아 온 알렉스는 이제 대배우로 성장하여 명성을 누리고 있는 로즈를 다시 만난다. 그녀의 공연을 보러갔던 알렉스는 분장실로 찾아가 로즈와의 재회를 하고 로즈는 너무나 반가워하며 함께 집으로 가자고 조른다. 꼭 보여줄 사람이 있다고. 로즈가 조지와 함께 사는 집에는,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사랑스러운 딸, 제니가 있다. 열두 살의 제니는 사촌 오빠인 알렉스를 만나 매우 좋아하며 친오빠처럼 따른다. 그렇게 사춘기의 제니에게 알렉스는 첫사랑이 되어 버린다. 삼십에 가까운 알렉스를 향해 제니는 당돌한 첫사랑을 키워가고, 알렉스는 어린 사촌의 철없는 사랑을 거절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알렉스는 대신 이탈리아 화가 줄리에타와 연인관계가 된다. 줄리에타는 한때 조지의 연인이었다가 로즈와도 동성애를 나누었던 자유연애주의자이다. 한편 조지는 자신의 딸 제니가 알렉스를 향해 사랑을 키워가는 것이 마땅치 않다. 걱정과 질투로 고민하던 그는 열다섯 살이 된 제니의 생일날 밤, 그녀가 알렉스와 한 방에 있는 것을 알고 흥분하다가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는다.  


이렇게 주요 등장인물이 모두 한 번씩 연인관계가 되는 복잡한 애정행각은, 줄리에타와 로즈의 동성애를 포함하여 두 여자 모두가 청년 알렉스와 그의 삼촌 조지와 관계를 한 번씩 맺는 자유연애적인, 참으로 다양한 사랑의 여러 ‘단면들’을 그리고 있다. 심지어 마지막에 조지가 죽고 나자 로즈와 딸 제니가 동시에 알렉스를 향해 애정을 표현하는 상황은 불륜에 가까운 다소 충격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1955년 발표되었던 영국 작가 데이빗 가르넷의 원작 소설은 아마 당시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을 만한 자유연애와 불륜의 사랑을 그린 듯 하다. 이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사랑의 단면들>은 애절한 장면과 그에 걸맞는 극적인 음악이 있지만, 내용상에서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어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심경을 다 제대로 표현하기에는 두 시간 반이 너무 짧다.

 

 

 

아쉬운 주역, 뛰어난 조역
남자 주인공, 청년 알렉스를 연기한 마이클 아든 Michael Arden 은 줄리어드 음대 출신으로 <빅 리버>, <피핀> 등 브로드웨이와 오프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활약해 온 가창력이 뛰어난 배우이다. 주제곡인 솔로, ‘사랑은 모든 걸 변하게 해’를 비롯하여 로즈와의 듀엣 ‘보는 것이 믿는 것’, ‘침실 밖에서’ Outside the Bedroom, 로즈와 줄리에타와 함께 부르는 삼중창 ‘외로움만 빼고 무엇이든’ Anything But Lonely 등 전형적인 로이드 웨버의 세미 클래식한 선율들을 무난하게 소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모적인 매력이나 연기력에 있어 모자란 점이 많아서 21년 전 마이클 볼이 오리지널 프로덕션에서 보여주었던 것만큼 청년 알렉스의 열정과 좌절을 열연으로 끌어내지 못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모든 등장인물의 마음을 사로잡는 ‘팜므 파탈’, 로즈 비베르를 연기했던 영국 여배우 캐서린 킹슬리는 가녀린 몸매와 아름다운 외모에 가창력을 가진 배우이다. 그러나, 역시 연기력이 다소 부족했고 여배우로서의 매력 또한 부족했다. 돈마 웨어하우스 프로덕션의 <피아프>에서 마를린 디트리치 역을 맡아 열창을 보여준 바 있듯이 노래 실력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배우이지만, 왠지 불편하고 편안하지 못한 연기를 보여 모든 등장인물에게 사랑을 받는 ‘로즈’를 표현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조연에 가까운 삼촌 조지 역의 데이브 윌렛츠와 줄리에타 역의 로잘리 크레이그의 연기가 크게 돋보였다. 중후한 중년 남자의 멋을 풍성한 가창력과 편안한 연기로 펼쳐보인 데이브 윌렛츠는 전체 공연에 무게감을 주면서 극의 중심이 되었고, 편안하면서도 섹시한 태도로 양성애자 아티스트를 연기한 로잘리 크레이그는 안정된 연기와 노래로 작품에 맞는 톤을 완성해냈다. 또한 로즈와 조지의 딸 열다섯 살 제니를 열연한 어린 배우 레베카 브로어는 통통하고 귀여운 외모에 음색이 고운 가수로 `인어 노래` Mermaid Song 를 아름답게 소화했고, 나이 많은 사촌, 알렉스를 향한 그녀의 천진난만한 사랑을 표현하는 데 적역인 배우였다. 


이번 메니어 초콜릿 팩토리의 축소 버전은 주연 배우 두 사람의 연기력과 매력이 조금 부족한 점을 빼고는 전체적으로 매우 완성도 높은 공연이다. 연출가 트레버 넌은 8명의 앙상블을 몽펠리에 공연장의 배우들로, 프랑스 시골 장터 사람들로, 줄리에타 미술 전시장의 하객들로, 포도원의 일꾼들로 다양하게 활용하였고, 간단한 가구와 소품만으로 신속한 장면 전환을 이루어냈다. 특히 무대 중앙에 걸린 액자형 프로젝션을 통해 낡은 그림엽서 같은 영상을 차례로 보여주면서 쉴 새 없이 바뀌는 배경 및 장소에 대한 정보를 경제적으로 잘 전달했다. 개럿 오웬의 음향은 실수 한 번 없이 깨끗한 음색을 전달했고, 폴 파언트의 조명은 차분한 앰버 톤으로 프랑스 시골의 50년대 풍경을 따뜻하게 잘 표현해냈다.

 

 

 

 

아름다운 노래로 커버할 수 없는 복잡한 구성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원작 스토리의 복잡한 구성과 내용이었다. 한 여자를 놓고 조카와 삼촌, 심지어 삼촌의 여자친구까지 합세하여 사랑의 사각관계를 이루게되는 이야기, 그리고 그 중심에 놓인 아름다운 로즈가 어느 한 사람에게 마음을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해서 양다리를 걸치면서 복잡한 애정관계를 지속하는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로즈가 자신의 친딸인 제니가 알렉스를 사랑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 떠나지 말라고 애걸을 하는 장면은 참으로 복잡한 사랑의 양상을 그려낸다. 


한 편의 뮤지컬이 되기에는 너무 복잡한 내용과 심정을 그렸고, ‘낭만적’이기에는 지나치게 ‘현실적’인 면들, 우유부단과 엇갈리는 사랑의 단면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로이드 웨버의 아름다운 선율과 트레버 넌의 경제적이고 치밀한 연출은 복잡하게 얼킨 사랑의 단면들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아마 <사랑의 단면들>이 다른 로이드 웨버의 작품들에 비해 리바이벌이 되는 기회가 적은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감정이입을 할 대상을 찾지 못하게 되는 사랑이야기, 관객으로서 마음 편하게 응원할 대상이 없는 공연, 복잡하게 전개되는 사랑의 단면들이 어떻게 결말이 날지 공연 내내 의아하게 만드는 상황들…. 그래서 로이드 웨버의 음악이 아무리 감미롭고 극적이더라도 그 선율이 담아낸 이야기는 공감하기 쉽지 않다.
이번 메니어 초콜릿 팩토리의 리바이벌 공연 <사랑의 단면들>이, 현재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로 진출되어 성공을 거두고 있는 손드하임의 <소야곡>이나 밥 포시의 원작 안무로 유명한 <스위트 채러티>처럼 또 한 번의 성공 신화를 거두게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4호 2010년 9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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