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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영국 흑인 뮤지컬 <파이브 가이즈 네임드 모우> Five Guys Named Moe [No.85]

글 |정명주(런던통신원) 사진 |Steve Ullathorne 2010-11-01 5,710

리듬 앤 블루스의 흥겨움이 가득한 주크박스 뮤지컬, <파이브 가이즈 네임드 모우> Five Guys Named Moe 가 20주년을 맞아 런던의 스트라포드 이스트 로열 극장에서 재오픈했다. 1940년대 미국 R&B의 대부라 할 수 있는 루이스 조던Louis Jordan 의 명곡들 이용한 콘서트 형식의 <파이브 가이즈…>는 1990년 런던 동쪽의 작은 지역 극장에서 선보인 후 큰 인기를 얻으며 웨스트엔드로 진출했던 성공작이다. 카메론 매킨토시 제작으로 리릭극장에서 4년간 장기공연을 했으며, 1991년에 로렌스 올리비에상에서 베스트 엔터테인먼트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음 해인 1992년에 브로드웨이로 진출하여 토니상 후보에 올랐으며, 총 445회의 뉴욕 공연을 통해 루이스 조던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번 20주년 기념 프로덕션은 이 작품의 대본작가이자 TV 연기자로 유명한 클라크 피터스 Clarke Peters 가 직접 출연하여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8월 에딘버러에서 프린지페스티벌 프로그램으로 개막을 한 후, 20년 전 초연되었던 극장인 스트라포드 이스트 로열 극장으로 옮겨 10월 2일까지 공연한다.

 

 

 

모우가 조언하는 연애술
트레버 넌 연출의 <포기와 베스>(2006 London Savoy Theatre)에서 포기 역을 열연했던 뮤지컬 배우이자, 미국 드라마 <더 와이어> The Wire (2002-2008)의 노련한 형사, 레스터 프리먼 역으로 유명한 TV 배우, 클라크 피터스는 영국 셰필드의 크루서블 극장에서 연극 배우로 활동하던 당시 <파이브 가이즈…>를 구상했다. 주말마다 기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루이스 조던의 40년대 히트곡을 즐겨 듣던 그는 이 다채로운 명곡들을 하나의 뮤지컬로 엮어 낼 아이디어를 찾아냈다. 록큰롤의 초석을 마련한 음악인으로 미국 최고의 리듬 앤 블루스 뮤지션이자 작곡가였던 루이스 조던과 그의 밴드, 팀파니 파이브의 노래들은 연애에 대한 농담을 가사로 한 곡들이 유난히 많으며 내러티브가 강한 것이 특징이다. 신나는 리듬과 멜로디에 코믹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 루이스 조던 음악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클라크 피터스는 여자친구에게 차인 남자가 술이 취해 라디오 음악을 듣다가 그 음악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설정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곳에서 꿈인 듯 생시인 듯 만난 다섯 명의 남성밴드 멤버들에게 노래를 통해 각종 연애 정보와 조언을 듣는다는 내용으로 작품을 구성했다.

 

 

 

 


공연이 시작하면 허름한 모텔 안, 한 남자가 만취해서 여자친구와 전화로 다투고 있다. 모텔의 네온사인이 낡아서 ‘MOE’ 세 글자만 불이 켜져 있다. 루이스 조던의 우울한 블루스, ‘아침 일찍’ Early in the Morning 을 흥얼거리며 남자는 라디오의 볼륨을 최대로 켜는데, 순간 남자의 몸이 턴테이블 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이내 무대는 암전이 되고, 이 남자가 다시 나타난 곳은 어딘지 알 수 없는 화려한 밴드 스테이지이다. 불현듯 나타난 다섯 명의 싱어들은 자기들을 ‘모우’  MOE 라는 이름의 ‘파이브 가이즈’라고 소개한다(뮤지컬 넘버 ‘Five Guys Named Moe’). 덩치가 큰 빅 모우, 안경 쓴 ‘네 눈박이(Four-eyed) 모우’,  끊임없이 뭘 먹어대는 먹보 모우, 키작은 리틀 모우 그리고 똘똘이 모우(Know Moe) 이렇게 다섯 명의 모우는 어리둥절한 남자를 ‘맥스’라고 부르면서 그의 정신적, 신체적 변신을 위해 그들이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남자가 자기 이름은 ‘맥스’가 아니라고 우기는 통에, 그는 ‘노맥스’로 불리게 된다. 노맥스는 이 다섯 명의 ‘모우’들이 자기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을 수상히 여기며 혹시 이것이 몰래 카메라 TV 프로그램이 아닌지 의심하지만, 모든 것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빠른 속도로 펼쳐진다. 정신을 차릴 사이 없이 ‘모우’라는 이름의 다섯 남자는 연애에 대한 일장 연설을 노래로 시작한다.

 

 

 


첫 번째 곡은 BB킹이 불러서 유명했던 빠른 블루스곡, ‘Beware, Brother, Beware’로 여자를 조심하라는 내용이다. ‘다이아몬드로 치장하고 밍크코트를 입은 여자, 남편감을 찾는 게 분명하니 조심해라, 키스를 하는 데 저항을 안 한다, 이건 위험한 징조니 바로 튀어라, 얘기를 잘 들어주는 여자, 요리를 해주는 여자, 잡히기 전에 날라라’. 친근한 대화 투로 이어지는 노래는 재치 넘치는 여자에 대한 편견들을 두루 모아놓은 명언집에 가깝다. 현대의 페미니스트들이 들으면 단번에 화를 낼만한 내용이지만, 결혼을 두려워하는 남자들의 입장에서는 다 맞는 말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결혼을 미룰 대로 미루어 온 주인공 맥스에게는 반가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를 아끼지 않는 맥스 앞에, 모우들의 여자분석론은 계속된다. 리틀 모우는 날씬한 여자보다 통통한 여자가 좋다는 이야기를 가벼운 록큰롤 풍의 곡, ‘I Like `em Fat Like That’으로 풀어낸다. 경쾌한 트럼펫 사운드가 기분 좋은 넘버다. 그러면 또 다른 모우는 베시라는 여자친구가 있는데 보수적인 하이 클래스인 자기와는 달리, 베시는 위스키만 마시면 시끄러워진다는 내용의 한탄을 ‘Messy Bessy’라는 빠른 재즈 풍의 곡으로 전한다. 이어지는 빅 모우의 노래는 민망할 정도로 사이좋은 잉꼬 커플에 대한 예를 선보이는 곡 ‘Pettin` and Pokin’이다. 서로 끊임없이 ‘만지고 쑤시고 찌르고 장난치는(pettin` and pokin` and jabbin` and jokin) 커플에 대한 코믹한 묘사는 반복적인 리듬감을 살린 가사로 절묘하게 표현된다.

 

이렇게 이어지던 연애론은 갑자기 빠른 컨트리 풍의 노래 ‘Safe, Sane and Single’로 이어지면서, 사실은 혼자 사는 게 제일 맘 편하다는 내용으로 돌변한다. 다섯 명의 모우가 차례대로 독신찬양론을 이어가자, 맥스 역시 신이 나서 이에 합세하지만, 왠지 그에게 돌아오는 반응은 너무나 싸늘한 시선뿐이다. 왜냐하면, 맥스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자기 인생에서 여자친구의 중요성을 재발견하고, 여자친구를 되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다섯 명의 모우들은 맥스와 함께 노래를 하나 같이 부르기로 한다. 가사가 몹시도 어려운 아프리카 민요풍의 노래, ‘Push Ka Pi Shi Pie’를 함께 부르기 위해 가사가 적힌 쪽지가 무대와 객석에 뿌려지고, 관객과 배우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노래하는 것으로 1막이 끝난다.    
이렇게 루이스 조던의 명곡들을 여자에 대한 조언 형식으로 엮어가던 1막이 끝나면, 2막은 스토리텔링을 잠시 보류한 채 맘 편하게 리듬 앤 블루스의 대표적인 노래들을 듣는 시간이다. 다섯 명의 모우가 콘서트 안의 콘서트를 벌인다. 맥스는 손님으로 무대 한 켠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고, 다섯 명의 가수들이 ‘Dad Gum Your Hide Boy’, ‘Let the Good Times Roll’ 등을 흥겹게 노래하기 시작한다. 신나는 리듬 앤 블루스와, 재즈, 록큰롤 리듬이 다채롭게 엮인 메들리 곡들로 관객들과 율동을 함께 하는 넘버(‘Caldonia’)도 있고, 여자 관객들을 초청해 앉혀 놓고 이야기를 하듯이 들려주는 곡(‘Look Out Sister’)도 있다.

 

 

 

루이스 조던에게 바치는 오마주
영국의 대표적인 흑인 여류 연출가인 폴렛 랜덜의 재치 있는 무대 연출과 폴 J 메드포드의 장난기 넘치는 안무로 재탄생한 이번 <파이브 가이즈…> 프로덕션의 매력은 역시 루이스 조든과 그의 ‘팀파니 파이브 밴드’의 음악 덕이 크다. 작곡가로 색소폰 연주자로 40년대를 풍미했던 루이스 조던은 5인조 밴드, 팀파니 파이브와 함께 활동하며 아메리칸 재즈와 블루스 및 리듬 앤 블루스의 일인자로 자리를 굳혔다. 듀크 엘링턴과 함께 미국 최고의 성공적인 흑인 밴드 리더로 손꼽히는 그는 빙 크로스비, 엘라 핏제럴드, 루이스 암스트롱과 듀엣 활동을 하여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척 베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루이스 조던과 그의 밴드의 노래들은 지금까지 미국 R&B 차트에서 1위를 한 것이 총 113주에 달한다. 
음악적인 스타일 면에서도 30년대의 빅 밴드 스윙 재즈에서부터 블루스(jump blues), 클래식 R&B, 그리고 업템포의 댄스를 유발하는 재즈와 부기우기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특히 사회적인 코멘트를 담은 코믹한 가사의 노래들은 피아노와 베이스, 드럼 등 리듬 섹션이 강조된 음악과 더불어 속도감을 더한 신나는 곡들을 제공했고, 일렉트릭 기타와 오르간의 사용으로 현대적인 사운드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루이스 조던의 신나는 리듬 앤 블루스에서는, 이후 50년대부터 시작될 록큰롤의 기미를 볼 수 있으며, 빠른 속도의 반복적인 내러티브 형식의 가사가 많은 그의 노래들은 심지어 70년대 말에야 나타나기 시작한 랩 음악의 씨앗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루이스 조던의 전설적인 명곡들을 재현한 이번 공연에서는 대본작가이자 런던 초연 시 출연진의 하나였던 클락크 피터스를 비롯하여 영국에서 활동하는 재능 있는 흑인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먹보 모우 역의 폴 헤이즐(Paul Hazel)은 20년 전 웨스트엔드 오리지널 <파이브 가이즈… >에 출연했던 중견 배우로 뮤지컬 <댄싱 인더 스트릿(Dancing in the Streets)>, <애타게 수잔을 찾아서>, <애비뉴 Q>, <그랜드 호텔>, <코러스 라인> <랫 팩> 등에 출연한 바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감초 같은 먹보 역할과 더불어 훌륭한 화음을 제공하는 탄탄한 조연으로 활약했다. 똘똘이 모우 역에 호레이스 올리버(Horace Oliver) 역시 20년 전 오리지널 프로덕션에 출연했던 뮤지컬 배우로, 뮤지컬 <카르멘 존스>, 트레버 넌 연출의 <포기와 베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에 출연했던 중견 연기자이다. 이번 공연에서 오랜 연기자 생활의 연륜을 아낌없이 드러내며 화려한 가창력과 춤 솜씨를 발휘했다. 빅 모우 역의 크리스토퍼 콜크혼(Christopher  Colquhoun)은 왕립연극아카데미(RADA) 출신의 셰익스피어 연극 배우로, TV 드라마에서도 활동하게 활발한 연기자이다. 이번 무대에서 리더 역할을 하는 대장 모우를 훌륭하게 소화하면서 관객과의 소통에 능수능란함을 자랑했다. 네눈박이 모우 역을 맡아 능청맞은 익살 연기를 자랑한 칼튼 코넬(Carlton Connell)은 19살부터 뮤지컬 <페임>에서 힙합 댄서, 타이론 잭슨으로 출연하여 인기를 모은 신예 배우이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온몸을 불사른 코믹 연기와 관객과의 대화를 이끌어가는 순발력으로 큰 박수를 받았다. 리틀 모우 역에 애쉴리 캠벨(Ashley Campbell)은 뮤지컬 <페임>, 그리고 웨스트엔드 프로덕션에서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역을 맡아 호평을 받은 신예로 이번 공연에서는 막내 모우로서 앙상블을 보조했다.

 

 

 

 

맘껏 즐기는 주크박스 뮤지컬
대부분의 주크박스 뮤지컬이 그러하듯 <파이브 가이즈…>는 신나는 음악을 원없이 제공했고, 관객을 무대로 초대하여 흥겨움을 공유하는 순간들을 선사했다. 노맥스라는 사나이가 여자친구와 다투고 술에 취해 음악의 세계로 들어왔다가 정신을 차리고 개과천선하여 현실로, 즉 여자친구에게 돌아간다는 설정은 루이스 조던과 팀파니 파이브 밴드의 다채로운 R&B의 세계를 소개하는 설정으로는 제격인 듯 했다. 전원 남자 출연진들이 후회 없이 털어놓는 여자들에 대한 수다가 진솔했고, 여자 관객들을 상대로 던지는 농담이 즐거웠다. 그러나 동시에, 주크박스 뮤지컬이 흔히 범하는 스토리의 빈약함은 내러티브에 대한 허기를 느끼게 했다. 콘서트가 아니라 뮤지컬을 보러가는 관객으로서 불가피하게 가지게 되는 기본적인 스토리에 대한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의 실망감이 남았다. 또한 드라마의 구조가 있을 때만 가능한 긴장과 이완이 결여된 무대는, 완전하지 않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이브 가이즈…>가 즐거운 관람이 되는 이유는 역시 루이스 조던의 천재적인 음악성에 있다. 온몸을 들썩이게 하는 신나는 리듬과 흥겨운 멜로디,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한 농담조의 가사들, 무례할 정도로 노골적인 성적인 농담들, 그 모든 것들이 힘든 현실을 잊고 기분 좋게 리듬 앤 블루스의 세계에 몸을 던질 수 있는 멋진 두 시간을 경험하게 했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5호 2010년 10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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