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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오프-브로드웨이 뮤지컬 <틴 팬 앨리 랙> The Tin Pan Alley Rag [No.73]

글 |이곤(뉴욕통신원) 2009-11-02 6,717

뮤지컬 <틴 팬 앨리 랙>은 방송, 영화에서부터 공연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활약하는 작가 마크 살츠만 Mark Saltzman이 미국 대중 음악계의 대표적인 작곡가 스콧 조플린 Scott Joplin과 어빙 벌린 Irving Berlin의 일생을 엮어낸 작품이다. 작가는 미국 대중 음악계의 두 거장을 그의 허구적 세계 안에서 만나게 함으로써 그의 이야기에 관객들의

흥미를 끌어 들였다.

이 뮤지컬은 1997년에 로스앤젤리스의 파사데나 플레이하우스에서 초연되었고 이후 미국의 여러 지역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뒤 라운드어바웃 시어터 컴퍼니에 의해 뉴욕의 로라 펠스 시어터에서 지난 6월 12일 막을 올리게 되었다.

 


올 봄에 뮤지컬 <팰 조이>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등의 브로드웨이 공연을 제작했던 라운드어바웃 시어터 컴퍼니는 다가오는 뉴 시즌 작품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 <바이 바이 버디> Bye Bye Birdie, 브로드웨이 연극 <애프터 미스 줄리> After Miss Julie 와 <위시풀 드링킹> Wishful Drinking, 오프 브로드웨이 연극 <언더스터디> The Understudy, 오프-오프 브로드웨이 뮤지컬 <오디너리 데이즈> Ordinary Days를 동시에 올릴 예정이다. 라운드어바웃 시어터 컴퍼니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로 뉴욕에서 가장 왕성하게 작품을 만들어내는 극단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뮤지컬을 이해하기 위한 가이드
바야흐로 극단의 2008-2009 시즌 마지막을 알리는 이 작품을 보는 동안 미국 대중음악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필자의 머리 속은 궁금증으로 가득 채워졌다. 먼저 작품의 제목인 <틴 팬 앨리 랙>은 무슨 뜻일까? 과연 이 두 거장이 실제로 만난 적이 있을까? 만나지 않았다면 왜 작가는 이 작품에서 그 둘을 만나게 했을까? 작품 속에서 스콧 조플린이 그렇게 무대화하기를 염원했던 그의 오페라 <트리모니샤> Treemonisha의 정체는 무엇일까? 물론 작품 속에 그에 대한 설명이 나오긴 하지만 좀 더 알고 싶은 궁금증은 나를 바로 컴퓨터 앞으로 향하게 했다.


먼저 이 공연의 제목부터 설명하자면, 두 고유명사 ‘틴 팬 앨리’와 ‘랙’의 합성어이다. <틴 팬 앨리>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유망한 연예 비즈니스 중의 하나였던 대중음악의 악보를 출판, 인쇄하는 회사들이 모인 거리를 말한다. 이 거리는 뉴욕 맨해튼의 웨스트 28가와 5번가, 그리고 6번가 만나는 구간으로서 현재는 플랫 아이언 디스트릭트라고 불리는 상업구역이 되었다. 지금 그 흔적은 모두 사라지고 없지만 당시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28가와 브로드웨이, 그리고 5번가가 만나는 도보에 설치되어 있는 동판을 통해 이 거리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을 곳이다. (사진 참조) 그 당시는 레코드가 아직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전이었으므로 악보의 인쇄와 출판이 음악 시장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절 대표적인 대중음악 장르 중 하나가 바로 랙타임Ragtime이었다. 랙타임은 1897년에서 1918년 사이에 인기를 구가했던 음악으로 예상치 않은 곳에서 강약의 리듬을 바꾸는 싱커페이션(당김음) 기법이 그 주된 특징이었다. 그리고 이 뮤지컬의 주인공인 스콧 조플린이 바로 이 랙타임을 만들어낸 장본인으로서 당대에 ‘랙타임의 왕’이라고까지 불려졌다.

 

이야기 속의 두 음악가
이야기는 틴 팬 앨리에서 작곡가이자 악보 출판회사의 동업자로서 유명세를 떨치던 젊은 어빙 벌린의 사무실에 말년의 스콧 조플린이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스콧 조플린은 그의 마지막 오페라 작품 <트리모니샤>를 출판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지만 누구도 이 난해한 오페라를 출판, 제작하려고 하지 않았다. 물론 이 만남은 작가의 허구로서 실제로 그들이 만났다는 기록은 없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된 그들의 만남을 통해 관객들은 어빙 벌린과 스콧 조플린의 진지하고도 열정에 넘치는 음악 인생 안으로 초대된다.


극의 초반부 플롯은 그들이 자신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식으로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실제 인물이었던 등장인물들의 전기가 펼쳐진다. 먼저 어빙 벌린이 스콧 조플린에게 그의 유명한 음악 ‘메이플 리프 랙` Mafle Leaf Rag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묻는다. 스콧 조플린은 플랜테이션 노동자였던 부모의 아들로 태어나서 어렵게 자라난다. 그는 어머니가 남의 집에서 파출부 일을 하는 동안 주인집의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었다. 그의 음악적 재능은 곧 이웃의 유태인 음악 선생의 눈에 띄었고 그는 무료로 조플린에게 음악 레슨을 해 줄 것을 제안한다. 결국 조플린은 그의 도움으로 대학에 진학하게 되어 정식으로 음악 교육을 받게 된다. 하지만 가난했던 그는 생계를 위해 흑인 상류층 사람들이 모이는 사교 클럽 <메이플 리프> Maple Leaf에서 피아노를 연주해야만 했었다. 그리고 우연히 그 클럽에 들른 악보 출판업자가 그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고 음악을 출판할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해서 처음 그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게 한 음악, ‘메이플 리프 랙’이 탄생한다.


이 곡은 당대의 틴 팬 앨리의 작곡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수많은 히트 팝송들을 만들어 내었다. 대표적인 곡으로 어빙 벌린이 1911년에 작곡해 당시 음악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한 ‘알렉산더의 랙타임 밴드` Alexander`s ragtime band를 들 수 있겠다. 비록 그 당시 그는 랙타임이 뭔지 모른 채 감각적으로 흡수해서 음악을 만들어 내었지만 이 공연 안에서 그는 조플린으로부터 랙타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싱커페이션에 대해 설명을 듣게 된다.

 

 

어빙 벌린의 삶
어빙 벌린의 삶도 조플린 못지않게 힘들었다. 그는 러시아에서 미국 뉴욕으로 이민 온 유태인의 아들로서 역시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물론 음악적 교육이란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여덟 살 때 아버지가 갑자기 죽고 나자, 그는 학교를 그만 두고 거리에서 신문을 팔면서 가족을 부양해야만 했다. 그는 생계를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했는데 그 중에서 그가 가장 재미를 붙였던 일은 살롱에서 노래하는 웨이터로 일하는 것이었다. 물론 손님에게서 받는 팁이 그의 수입의 전부였지만 이 직업은 그에게 많은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정식 음악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심지어 악보도 읽을 수 없었지만) 술집이 문을 닫은 뒤 피아노를 혼자서 두드려 보면서 음악에 대한 감각을 키워나갔다.

그의 음악적 재능은 곧 악보 출판사인 테드 스나이더 컴퍼니의 눈에 띄었고 곧 작곡 스태프로 고용되었다. 이후 그가 만들어 내는 곡마다 커다란 성공을 거두면서 결국은 스나이더 컴퍼니의 직원이 아닌 동업자가 되기까지 이른다. 그는 서른이 되기 전에 수백 개의 곡을 썼고 대다수가 히트를 기록하면서 이미 젊은 나이에 틴 팬 앨리의 가장 유명한 음악가가 된다.

 

 

성공에 따르는 시련
하지만 그들 앞에 영광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 둘에게는 힘들게 시작한 음악 인생 이외에도 비슷한 점이 있었으니 이는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고 바로 그 여인을 죽음으로 잃었다는 것이다. 어빙은 그의 곡을 받기 위해 찾아온 아마추어 가수 도로시를 만나게 되고 곧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신혼여행으로 쿠바로 떠났으나 그 곳에서 그의 아내는 장티푸스에 감염되어 곧 사망하고 만다. 어빙은 아내의 상실에 대한 슬픔을 곡에 담아내어 `When I Lost You` 라는 그의 첫 발라드 곡을 만들어 낸다.

조플린은 프레디 알렉산더라는 여인을 도서관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똑똑하고 지적일 뿐만 아니라 교육으로 흑인을 계몽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강하게 지닌 운동가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녀 역시 결혼한 지 10주만에 감기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한다. 조플린 역시 아내에 대한 슬픔을 곡으로 담아내 <베데나> Bethena라는 곡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죽은 아내와 같은 인물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오페라를 만들기 위해 남은 그의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바로 이 오페라로 인해 그의 비극적 인생이 시작된다.

 

 

대중성과 예술성
이 공연에서 조플린과  벌린의 차이점으로 부각되는 것이 바로 음악에 대한 그들의 입장이다. 벌린은 미국의 모든 대중들이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음악을 지향한 반면 조플린은 음악의 예술성을 더 강조하였다. 그는 그의 경력 초기 랙타임 음악의 엄청난 인기에도 불구하고 랙타임의 작곡에만 연연하지 않았다. 그의 꿈은 세계의 유명한 클래식 작곡가들처럼 미국적인 오페라를 만드는 게 꿈이었다. 당연히 오페라, 특히 흑인이 주인공인 오페라는 상업성과 거리가 멀었고 누구도 제작자로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트리모니샤>는 미국의 흑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오페라로서 흑인 대중들의 미신적이고 문명이 미치지 않는 삶으로부터 교육을 통해 그들을 자각시키고 더 나은 삶으로 이끌어 내려고 투쟁하는 한 젊은 여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는 악보만을 통해 투자자를 찾아내지 못하자 결국 자신의 모든 돈을 투자해 오직 피아노와 가수로만 구성된 오페라를 만들어 제작자들 앞에서 시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무지와 무관심 속에서 이 오페라는 잊혀졌고 결국 그는 오페라의 실패의 좌절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1916년 맨해튼 주립 병원에 정신질환으로 입원하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 매독의 합병증과 정신쇠약으로 인해 죽고 만다.

 

 

스콧 조플린의 재평가
하지만 공연 내에서도 실제로도 조플린의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조플린의 말처럼 그는 시대를 앞서 살아간 불운한 천재에 속했다. 1970년대 랙타임 음악이 다시 부흥하게 되었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폴 뉴먼 주연의 영화 <스팅>(1974년)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영화에 주제곡으로 삽입된 스콧 조플린의 ‘엔터테이너` The entertainer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무려 50년 만에 랙타임이 부활해 대대적인 열풍을 일으킨 것이다.
그의 오페라 작품 <트리모니샤>도 1970년대 랙타임의 부흥과 함께 그 가치를 인정받기에 이른다. 1972년에 <트리모니샤>의 피아노 악보가 발견된 뒤 애틀랜타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의해 처음으로 무대에 올려졌다. 그 뒤 그의 오페라는 미국 전역에서 공연되었고 결국 브로드웨이에까지 이르게 되어 비평과 흥행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1976년 <트리모니샤> 공연으로 사후 퓰리처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뮤지컬을 보고 나서
이 뮤지컬의 마지막은 노년의 벌린이 <트리모니샤>의 브로드웨이 공연을 보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하지만 이러한 결말은 이야기를 너무 쉽게 매듭지었다는 인상을 준다. 극의 시작은 예술성을 강조하는 조플린과 대중성을 우위에 두는 벌린의 긴장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이러한 대립은 후세대인 벌린의 음악 인생 안에서 어떠한 영향으로 나타났는지가 언급되지 않고 단지 조플린의 사후 공연을 벌린이 보러가는 것으로 마감된다. 결국 두 인물을 작가의 허구 안에서 만나게 하는 시도는 좋았으나 이러한 만남이 구체적인 어떠한 결과로 이어지기에는 작가의 상상력이 더 진전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결국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너무 에피소드적이었고 역사적인 재료를 작가의 상상력으로 충분히 꽃피우지 못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이 공연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을 들라면 당연히 음악을 꼽을 것이다. 두 거장의 음악은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관객의 오감을 자극시켰다. 그들의 주옥같은 명곡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들의 인생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더불어 무대 밖에 있는 두 명의 피아노 연주자인 음악 감독 마이클 패트릭 워커 Michael Patrick Walker와 브라이언 시멧 Brian Cimmet는 두 거장의 음악적 재능과 대결을 훌륭하게 재현해 냄으로써 멋진 인상을 남겼다.


이제 무더위도 한풀 꺾이고 바야흐로 사계절 중 가장 아름답다는 뉴욕의 가을이 시작되려고 한다. 이와 함께 뮤지컬 <바이 바이 버디> Bye Bye Birdie, <멤피스> Memphis, 그리고 연극 <스테디 레인> A Steady Rain, <애프터 미스 줄리> After Miss Julie, <슈피리어 도넛> Superior Donut, <올리아나> Oleanna 등 새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들이 대거 프리뷰 공연에 들어갔다. 뉴욕 공연 관객의 한 사람으로써 새로운 시즌, 새로운 공연에 대한 벅찬 기대가 가슴을 부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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