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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런던행이 약속된 명작 뮤지컬 리바이벌 <키스 미 케이트> KISS ME KATE [No.108]

글 |정명주(런던 통신원) 사진 |Catherine Ashmore 2012-09-24 4,373

치체스터 지역 극장의 연이은 선전

세상 모든 뮤지컬 제작자의 꿈인 런던 웨스트엔드 진출을 2년 만에 네 번이나 이룬 영국의 지역 극장이 있다. 2년 전, 추억의 영화를 각색하여 화제를 모았던 뮤지컬 <러브 스토리>에 이어, 현재 상연 중인 <싱잉 인 더 레인>과 <스위니 토드> 그리고 오는 11월에 개막을 앞둔 <키스 미 케이트>까지, 올해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 런던행을 기록한 지방의 제작 극장, 바로 치체스터 페스티벌 시어터(Chichester Festival Theatre)이다. 런던에서 기차로 한 시간 반 정도 가야하는 거리에 있는 영국 남단의 도시 치체스터에 위치한 이 극장은 지역민을 상대로 고전 뮤지컬의 리바이벌을 꾸준히 선보여 왔다. 2006년에 현 예술감독인 조나단 처치가 역임한 이후로는 특히 작품의 완성도에 심혈을 기울여왔고, 올해 극장 설립 50주년을 앞두고 영국 공연계의 기라성 같은 배우들을 캐스팅한 프로덕션으로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작년에 제작된 <싱잉 인 더 레인>은 무용계의 독보적인 스타 아담 쿠퍼를 남자 주인공으로 하여 잊지 못할 빗속의 탭 댄스를 선보였다.

 

 

그 뒤를 이은 <스위니 토드>에는 25년 전 <레 미제라블>의 마리우스로 기억되고 있는 스타 마이클 볼, 그리고 영국을 대표하는 연기파 여배우 이멜다 스톤튼을 기용하여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손드하임 리바이벌’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두 작품 모두 치체스터에서 공연을 마치고 바로 런던 웨스트엔드로 이전해 장기 공연에 돌입했다. 그리고 올해 6월, 50주년 특집으로 치체스터에서 오픈한 <키스 미 케이트>는 거장 연출가 트레버 넌을 필두로 하여, 영국 뮤지컬계의 스타 여배우 한나 와딩험 등 인기 배우들을 대거 기용했다. 제작 단계부터 런던의 올드빅 극장과 손을 잡고 런던행을 계획한 무대이다. 작품을 만들기도 전에 완성도와 흥행성을 미리 인정받은 보기 드문 경우이다. 이렇게 히트 뮤지컬 제조기로 인정받으며 화려하게 50주년을 맞이한 치체스터 페스티벌 시어터는 어떤 곳인지 실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11월 런던 올드빅 극장에서의 오픈을 앞두고, 현재 공연 중인 <키스 미 케이트>를 보기 위해 치체스터행 기차에 올랐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콜 포터의 재즈 음악                                                          
햇볕이 따사로운 휴양도시 치체스터는 은퇴 후 정착한 노년층의 인구가 많고 고급 실버타운도 상당히 많은 곳이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 명소인 치체스터 페스티벌 시어터는 1962년에 지어진 건물이라 그런지, 영국의 낡은 극장들 같은 고풍스러운 면모는 없었다. 콘크리트와 유리로 지어진 현대적인 대극장 건물은 별다른 특징 없는 지방 극장의 모습이었다. 목요일 낮 공연을 앞둔 극장 안은 천 명이 넘는 관객들로 붐볐다. 대부분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있거나 보행 보조 기구를 이용하는 여든 살 이상의 관객도 심심찮게 보였다.

 


평일 낮 1,200석의 대극장을 가득 메운 백발 관객들을 보면서, 왜 치체스터 페스티벌 시어터가 명작 뮤지컬 리바이벌을, 그것도 1930~40년대의 미국 뮤지컬을 주로 제작하는지 알 것 같았다. 1930년대에서 1940년대에 태어났을 이 노인 관객들은 어빙 벌린과 콜 포터 같은 전설적인 미국 작곡가들이 활동했던 시대를, 재즈의 거장 마일즈 데이비스와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다. 콜 포터가 1948년에 <키스 미 케이트>를 작곡했을 때, 치체스터의 노인들은 한창 음악을 즐겨 들었던 10대 후반 또는 20대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구식 뮤지컬일 수도 있는 <키스 미 케이트>가 이들에게는 젊은 시절에 애인과 함께 보러 갔던 공연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6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그 익숙한 선율을 다시 라이브로 듣는 일이 얼마나 감동 어린 향수를 불러 올지 짐작이 갔다. 노년 관객이 많은 웨스트엔드에서 옛날 미국 음악이나 할리우드 영화를 소재로 한 뮤지컬을 많이 제작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되었다. 더구나 요즈음처럼 수십 년 만의 경제난을 맞아 유럽 전체가 괴로운 현실을 겪고 있는 시기에, 화려한 젊은 날의 추억을 불러오는 옛날 미국 뮤지컬은 현실 도피적 판타지와 향수라는 중요한 셀링 포인트를 제공한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 치체스터에서 제작된 리바이벌 뮤지컬들이 속속 웨스트엔드로 이전되는 이유가 분명해졌다.


<키스 미 케이트>는 세계적인 재즈 작곡가 콜 포터가 경력의 정점인 50대 후반에 쓴 작품이다. 30대 후반이었던 1920년 말에 이미 ‘Let’s Do It’, ‘What is This Thing Called Love?’ 같은 불후의 명곡을 발표했던 그는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를 넘나들며 성공한 작곡가의 인생을 살았고, 60세를 바라보며 그동안 쌓은 실력을 아낌없이 발휘하여 <키스 미 케이트>를 썼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재즈의 거장 콜 포터의 음악적 향연이다. 볼티모어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공연하는 배우들의 이야기로, 두 남녀 주인공의 애증과 사랑이 극중극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공연하는 무대 위와 무대 뒤를 오가며 펼쳐진다. 그래서 재즈가 성행하는 현재의 볼티모어와 셰익스피어 시대의 베니스를 넘나들며, 다양한 선율의 음악을 만날 수 있다. 여주인공 릴리가 부르는 애잔한 재즈 선율의 발라드 ‘So In Love’를 비롯하여, 흑인 가수들의 멋진 솔로 파트가 즉흥적으로 삽입되는 컴퍼니 넘버인 ‘Another Op’nin Another Show’, 그리고 ‘It`s Darn Hot’은 실로 재즈 음악의 정수를 보여주는 노래들이다. 반면, 극중극에서 웅장한 이탈리아 오페라 스타일과 감미로운 세레나데를 넘나드는 곡 ‘Where Is The Life That I Led?’와, 포크 음악과 군악대 행진 음악의 절묘한 조합이 흥미로운 ‘I’ve Come to Wive It Wealthily in Padua’ 등은 작곡가로서 콜 포터의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곡이다. 2막에 걸쳐 총 20곡에 달하는 뮤지컬 넘버는 다양한 스타일을 넘나들며 매번 화려한 엔딩을 장식했고, 예외 없이 큰 박수가 그 뒤를 따랐다.
         

 


실력 있는 연출가와 배우들의 만남                                                                            
치체스터의 <키스 미 케이트>는 출연진이 화려했다. 런던 <미녀와 야수>의 가스통 역과 <그리스>의 대니 주코 역을 맡았던 훤칠한 키의 알렉스 본이 남성미를 과시하며 프레드(페트루키오) 역할을 멋지게 소화했다. 상대역 릴리(카트린느)로는 최근 손드하임의 <작은 소야곡>의 헤로인으로, <숲 속으로>에서 마녀 역으로 연기력과 가창력을 모두 인정받은 한나 와딩험이 다시 한번 온몸을 던진 연기를 선보였다. 솔로 곡 ‘So In Love’에서는 한국의 패티 김을 연상시키는 호소력 있는 보이스를 자랑했고, ‘I Hate Man’에서는 헤어진 남편에 대한 울분을 시원한 가창력과 코믹 연기로 거침없이 쏟아냈다. 키가 훤칠한 두 주인공은 극중극인 셰익스피어 연극의 등장인물인 페트루키오와 카트린느를 연기하다 말고, 이혼한 커플인 프레드와 릴리의 감정 싸움을 계속하며 그레코로만형 레슬링에 가까운 몸싸움을 선보여 폭소를 자아냈다. 영국을 대표하는 흑인 배우인 웬디메이 브라운과 제이슨 페니쿡이 남녀 주인공의 드레서 역을 맡아, 흑인 재즈 음악이 무엇인지 제대로 들려주기도 했다. 제이슨 페니쿡의 아련한 휘파람으로 시작하는 2막의 첫 곡 ‘It`s Darn Hot’은 애절한 색소폰의 절규를 따라 ‘와우라바바바’ 하는 멋진 즉흥 솔로 부분이 심금을 울렸고, 무심하게 가만히 앉아 있던 웬디메이 브라운이 마지막에 폭발적인 가창력을 발휘하며 엔딩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외에도 주인공 프레드에게 빚을 받으러 온 마피아 일당 역으로 최근 <크레이지 포 유>에서 탁월한 코미디 연기를 선보인 데이비드 버트가, 흑인 뮤지컬 <심플리 헤븐리>의 스타이자 흑인 배우로서는 드물게 올리비에 연극상을 받은 클라이브 로웨가 단역에 가까운 조연으로 출연해 놀라움을 더했다.


이렇게 탄탄한 실력의 출연진들은 일흔이 넘은 노장 연출가 트레버 넌을 만나면서 디테일이 살아있는 연기와 박진감 넘치는 코미디를 완성했다. 로열셰익스피어 극단의 예술감독을 역임할 당시 <레 미제라블>을 연출했던 트레버 넌은 셰익스피어의 대가이자 뮤지컬 연출의 모범이다. 그래서 그 두 세계를 한 무대에 담아낸 <키스 미 케이트>를 트레버 넌보다 더 잘 연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유머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있는 대사에서는 매번 틀림없이 객석에 웃음보를 터뜨렸다. 다만 상황이 그렇게 재미있는 것인지, 노인 관객들이 지나치게 우호적인 것인지는 살짝 의심이 갔다. 예를 들어, 코러스들이 노래를 하는 중에 가만히 앉아만 있던 드레서 역의 흑인 여배우가 옆에 다가온 배우에게 ‘저리 좀 떨어지지’ 하고 툭 던지는 대사마저 폭소를 자아냈다. 한편, 주인공인 프레드와 릴리는 분장실과 공연 중인 무대로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아직은 감정이 남아있는 이혼한 커플의 복잡한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는데, 어디까지가 무대 뒤 프레드와 릴리로서의 연기이고 어디서부터가 극중극의 인물인 페트루키오와 카트린느의 연기인지 모호할 정도로 그 경계를 자연스럽게 넘나들어 웃음을 유발했다. 트레버 넌은 의도적으로 그 경계를 허물면서 폭소를 자아내는 고단수의 연출력을 자랑했다.

 


공간이 좁고 삼면이 객석으로 둘러싸인 돌출형 무대의 특징을 살려, 천을 활용한 최소한의 무대 장치를 배경으로 어느 각도에서나 관객들이 배우들을 볼 수 있도록 친절하게 동선을 정리한 것이 눈에 띄었다. 극중극 장면마다 큰 천을 이용해 순식간에 다양한 모양의 텐트를 만들어내며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세계로 변화시키는 로버트 존즈의 디자인 감각이 돋보였다. 석 달 후, 올드빅 극장의 무대에서는 이러한 동선과 무대 장치가 또 어떻게 바뀔지 궁금해진다. 안무를 맡은 스티븐 미어는 <메리 포핀스>와 <인어공주>에서 발휘했던 발군의 실력을 다시 증명했다. 신나는 재즈 선율을 따라 밥 포시 스타일의 활발한 팔놀림이 돋보이는 코러스 댄스를 보여주었다. 특히 안무가이자 배우인 제이슨 페니쿡이 리드하는 재즈풍의 댄스 장면에서는 흑인 배우만이 보여줄 수 있는 천부적인 재능을 자랑했다.


사실 <키스 미 케이트>는 60여 년 전에 쓰였기에, 결말이 예측되는 스토리 라인과 댄스 시퀀스가 길게 삽입된 고전적인 뮤지컬 구조, 그리고 반세기 전의 유머로 다소 진부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치체스터 페스티벌 시어터의 리바이벌은 고전 원작의 한계를 속도감 있는 전개와 연기력으로 극복했고, 실력 있는 중견 연기자들이 빛나는 무대로 거듭났다. 물론 대사 하나하나, 노래 한 곡 한 곡에 뜨거운 박수를 아끼지 않는 관객들의 몫도 컸다. 콜 포터의 20세기 재즈 명곡들을 다시 만나는 무대, <키스 미 케이트>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해 오는 11월 20일부터 내년 3월 2일까지 런던 올드빅극장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8호 2012년 9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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