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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한 시대를 풍미한 목사의 파란만장 일대기 <스캔달러스> SCANDALOUS [No.110]

글|정예경(뉴욕 통신원) |사진제공|The Publicity Office 2012-11-22 4,094

11월이면 연말 분위기를 타고 신작들이 서너 개씩 쏟아져 나오지만, 현재 브로드웨이의 신작은 <스캔달러스> 한 편뿐이다. 올해의 기대작이었던 블록버스터 신작 <레베카>가 투자 사기로 인해 펀딩에 실패해 프리뷰를 며칠 남겨둔 상태에서 공연이 취소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브로드웨이의 베테랑 프로듀서들조차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경악을 금치 못하는 분위기였는데, 어쨌든 이 덕분에(?) <스캔달러스>는 유일한 새 얼굴로 주목받고 있다.

 

 

 

에이미 셈플 맥퍼슨의 파란만장한 인생
<스캔달러스>는 원작 없이 순수하게 뮤지컬로 시작한, 요즘에 보기 드물게 기특한 작품으로 미국의 인기 절정 토크쇼 ‘투데이 쇼’의 진행자 캐시 리 지포드가 대본을 쓰고, 작곡에 일부 참여했다. <스캔달러스>의 주인공은 1920~30년대에 할리우드에서 목사로 활동했던 실존 인물 에이미 셈플 맥퍼슨이다. 일명 ‘시스터 에이미’로 알려진 그녀는 엄청난 카리스마로 당시 할리우드 배우보다 더 높은 인기를 구가하며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흥미로운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의 개인사는 참으로 파란만장하며, 구설수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구세군에서 일했던 어머니를 통해 종교를 접하고 심취했다. 배우가 되고 싶었고 재능도 있었지만, 어린 나이에 전도사와 결혼해 중국으로 선교 활동을 가게 된다. 하지만 남편은 말라리아로 곧 사망하고, 아이와 미국으로 돌아온다. 얼마 되지 않아 재혼도 하고 둘째를 낳지만, 곧 무병에 시달린다. 이때부터 평범한 가정주부의 인생 대신, ‘시스터 에이미’로서의 인생을 시작하고 전국을 돌며 전도 여행을 다닌다. 어머니는 그녀의 매니저 역할을 하는데, 헌금을 지폐로만 받았던 어머니의 모금 덕에 그녀는 고급 옷을 입고 최고급 객실을 이용하며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

에이미는 앤젤러스 템플에서 주마다 공연 형태를 갖춘 설교를 했는데, 당시 사회 분위기상 여 목사가 교회에서 무대, 의상, 조명, 오케스트라를 갖추고 노래 부르고 춤추며 공연을 한다는 것은 불경하게 여겨졌다. 이런 보수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그녀의 박진감 넘치는 설교, 교회 가스펠에 끌려 신도는 엄청나게 불어났다. 찰리 채플린이 무대 연출에 조언을 해주는 등 할리우드 스타들을 비롯한 수많은 신도들이 예배에 참석하고, 그녀 역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스타가 된다. 또한 에이미는 매년 직접 방송국을 세워 라디오 매체를 적극 활용해 전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함께 예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획하기도 했다. 요즘 대형 교회들이 모방하는 교회의 기업형 운영 방식은 그녀가 창시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신도가 증가하고 교회가 성장할수록 그녀는 많은 협박과 유혹을 동시에 받게 된다. 이런 와중 그녀가 행했던 일 중에서 그 과정이 미심쩍은 부분들이 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인종차별주의 KKK단에서 보낸 돈을 이용해 교세를 확장하기도 하고, 이를 반대하는 어머니와 등지게 된다. 또 자신의 라디오 방송국 엔지니어와 설교할 때 등장하던 남자 배우에게 동시에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설교 후 수영을 하던 그녀가 돌연 종적을 감춘 미스터리한 사건이 일어난다. 그녀를 찾으러 바다에 들어갔던 신도가 시체로 떠오르는 등 사건은 점점 더 복잡해지며 한 달이 흐른다. 사라진 그녀가 갑자기 애리조나에서 발견되는데, 그녀는 납치를 당했다고 주장한다. 멕시코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다가 겨우 빠져나와 열세 시간 동안 사막을 걸어 탈출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당시 코르셋까지 갖춰 입은 차림으로 하이힐을 신고 나타났는데, 하이힐로 사막을 횡단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되거니와, 신발에서도 사막을 걸어온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기적이라 말한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두고, 그녀가 임신중절수술을 하러 갔다고 하기도 하고, 같은 날 사라진 라디오 방송국 엔지니어와 사랑의 도피를 했다고도 하며, 성형수술을 받았을 거라고도 했지만, 어쨌든 이것은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왜냐하면 그녀를 위증죄로 기소했던 검사조차 뇌물을 받고(이것마저도 사실 여부를 단정할 순 없지만) 기소를 취하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 이후 그녀의 평판은 안 좋아졌지만, 어쨌든 실종 사건 덕에 할리우드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그녀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헌금을 모으게 되었고 교세는 엄청나게 확장되어 현재는 전 세계에 지부를 두고 있다. 그녀는 결국 약물 과다 섭취로 젊은 나이에 사망했는데, 혹시 모를 부활에 대비해 실제로 라디오 방송을 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무덤 안에 설비를 구축했다고 한다. 그녀를 희대의 사기꾼으로 볼지, 아니면 진정한 하나님의 메신저로 볼지는 우리들에게 달린 일이다. 현재까지도 그녀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오가며 엇갈리고 있다.

 

 

 

<스캔달러스>는 어떤 공연인가
필자가 공연을 본 날은 프리뷰의 첫날이었다. 어떤 공연이든 프리뷰, 그것도 첫날에 그 공연의 성패를 예측하는 건 너무나 가혹한 일이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개막 스피치를 맡은 연사 역시, ‘관객들의 반응에 따라 공연은 상당 부분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스캔달러스>의 프리뷰 기간은 무려 한 달이나 되기 때문에 만약 안 좋은 부분이 발견되면 고치지 못할 이유도 없다(이런 것도 브로드웨이가 부러운 점이라면 부러운 점일 것이다. 공연 개막 최소 6주 전 모든 크루들이 셋업하고 당일에 실수가 없도록 하는 것 역시도. 물론 이게 다 시간과 돈과 직결된 문제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일을 차근차근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게 브로드웨이의 역사에서 나오는 힘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프리뷰를 보고 공연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지만, 기사를 써야 하는 입장으로 몇 가지 필수적으로 언급해야 하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일단 이 작품은 더 흥미로워질 수도 있었다. 에이미의 인생은 꽤 괜찮은 소재이다. 특히 납치 사건은 좀 더 비중 있게 다루어야 했다고 본다. 에이미가 갑자기 사라진 뒤, 그녀를 찾으려던 사람들이 죽었다는 부분은 좀 더 충격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배가해 극적으로 연출해야 했다. 그랬다면 그녀의 루머가 양산되는 타당성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돌연 나타나는 장면 역시 너무 평이했다. 퇴장했다가 다시 등장, 이게 끝이다. 이런 장면은 브로드웨이답게 연출에 좀 더 돈을 썼어야 했지 않았을까. 시간 낭비를 하는 장면들도 과감히 줄여야 했다. 그녀에 맞서는 보수 교파들이 그녀를 비난하는 장면은 없어도 될 것 같았다. 그녀가 보수파들로 어려움을 겪는 것은 1막부터 계속 인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녀를 비난하는 팀과 어려움에 처한 그녀를 후원하기 위해 25만 달러를 모금하는 추종자들, 그녀를 기소한 검사의 입장을 대비해, 한 노래 안에서 엇갈리게 불렀다면 극의 속도가 다르게 느껴졌을 것이다. 단지 솔로를 주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반대 교파 목사의 김빠지는 긴 솔로를 넣은 것이라면 당장 삭제했으면 좋겠다. 그 장면부터 관객들의 몸이 들썩거렸다(필자 앞에 있던 여자 세 명은 나가버렸다). 사람들이 어쩌면 그렇게 냉정한지, 똑같이 지루함을 느끼던 필자조차도 안타까울 정도였다. 창작 팀은 현실을 직시하고 시정해야 한다.
역시나 같은 맥락에서, 전 캐스트가 등장한 법정 장면은 어쩔 줄 모르며 대본을 써내려간 티가 났다. 뮤지컬에 더 경험이 많은 연출가나 작곡가가 좀 더 강하게 나서서 도와줬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법정 안에서 말싸움이 오가는 장면은 음악으로 잘 처리해서 뮤지컬이란 장르가 가진 특성을 십분 살려줬어야 하는데, 갑자기 연극을 보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뒤에 깔리는 배경음악은 완성도 면에서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작곡이 안 된 부분이 너무 심심하게 들려서 궁여지책으로 뮤직 디렉터가 채워 넣은 건가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이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 장면이라 생각한다.
1막은 에이미가 어떻게 진정한 리더가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을 보여주는데, 홍등가에 가서 여자들을 설득하는 등의 여러 가지 재미있는 장면이 있었다. 하지만 2막에서 그녀가 부흥회에서 어떻게 예배를 했는지 일일이 보여주는 장면부터는 진행이 급격히 느슨해졌다. 제목 그대로 스캔들을 파헤치거나, 그녀의 행적을 역추적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더라면 서스펜스를 살려 더 흥미롭게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에이미가 인간적인 유혹을 받는 장면을 더 강하게 보여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면서 하얗고 두꺼운 성직자복을 끝까지 입고 나오는 건 별로 브로드웨이 답지 않았다. 그녀가 맞서야 했던 유혹을 좀 더 적나라하게 보여줬더라면, 인간으로, 여자로서 좀 더 공감하고, 그녀가 진 성직의 무게가 얼마나 큰 것인지 느껴졌을 것이다.
이 공연의 투자자는 다름 아닌 포스퀘어 교단이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 교단이 투자 외에 작품 자체에 대해 그 어떤 권력 행사도 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했지만, 사전에 많이 신경을 썼다는 게 작품에서 느껴졌다. 왜냐하면 에이미의 인생은 분명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나 미심쩍은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인데, 그런 점들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은근슬쩍 처리된 부분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에이미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작업을 시작했겠지만, 대중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좀 더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것에 집중할 순 없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일등 공신 캐시 리 지포드
보통 작가, 작곡가는 배우보다 주목을 덜 받는 것이 사실인데, 이 작품의 경우는 작가가 워낙 유명한 방송인이다 보니 그녀에게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다. 실제로 프리뷰 첫날 캐시 리 지포드의 팬들이 줄을 서서 극장에 입장하고 있었고, 그녀는 극장 문 앞에 서서 한 사람 한 사람 일일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며 친근하게 사진까지 찍어주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작가가 에이미란 소재에 강하게 이끌렸던 이유는 아마도 그녀 안에서 자기의 모습을 본 것이 아닌가 싶다. 유명인들은 평화롭게 살기가 힘들어서일까? 작가 캐시 리, 그녀도 에이미처럼 큰 스캔들에 휘말린 적이 있다. 월마트에서 만드는 옷에 자기 이름을 빌려주어 브랜드를 만드는 대가로 약 500만 달러를 받았는데, 알고 보니 그 옷은 오지 어린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만든 옷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이 사건 뒤 그녀가 보인 행동이 정말 기가 막히게 영악했다. 그녀는 현장 고발 영상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기업들을 비난했고 똑바로 행동하라고 말하는 운동가가 되었다. 그리고 착취당하던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는 등 기지 있는 쇼맨십으로 상황을 타개해 나갔다. 그녀는 스캔들에 휘말렸지만, 오히려 이를 잘 이용해 추락을 면하고 승승장구하고 있는 케이스이다. 물론 아이들에 대한 동정은 진심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에이미와 캐시 리처럼 성공하는 여성들의 공통점은 정치를 이용할 줄 알고, 스스로 이미지를 만들 줄도 안다는 것이다. 그것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대중이 오랜 시간을 두고 판단할 일이다.

 

여자의, 여자에 의한, 여자를 위한

브로드웨이에도 종교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꽤 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나 <시스터 액트>, <북 오브 몰몬> 등 말이다. 하지만 이들 중 <시스터 액트>를 제외하면 (이것마저도 히트 영화에 기반을 둔 작품이지만) 종교 인물을 주제로 한, 연륜 있는 여배우가 주연인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극은 지금껏 없었다.
그리고 ‘시스터 에이미’의 삶 자체는 의도를 했든 안 했든, 굉장히 페미니스트적이다. 젊은 나이에 출산을 한 뒤 전국에 전도여행을 다니다가 이혼을 한다든가, 그 당시 세 번 결혼을 한다든가, 방송국을 소유하고, 교회를 세운다든가, 이런 건 당시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아니다.
1920년대에 파격적인 여성상을 제시하고, 떠오르는 방송 매체였던 라디오를 이용해 스스로 스타가 되었던 시스터 에이미, TV라는 막강한 매체와 파워를 등에 업고 에이미를 복원해낸 여성 캐시 리, 그리고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에이미와 캐시 리의 페르소나로서 엄청난 연기를 보여준 캐롤린까지. 시공을 초월한 세 명의 파워 있는 여성들이 모여 이런 시너지 효과를 냈다는 사실은 상당히 신선하다. 단지 ‘파워 있는 여성’의 이야기에 대해 요즘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
결과는 아직 모르지만 어쨌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에 근 10년에 달하는 열정을 쏟아 뮤지컬이란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 캐시 리의 용기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날로그 매체를 찾는 관객들이 보통 어떤 이야기를 좋아할지 그녀가 미리 잘 알았더라면, ‘종교’와 ‘여자’에 대한,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캐시 리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녀는 에이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12년간 그녀의 이야기에 강하게 이끌렸다고 한다. 열정을 좇아 일한다는 것은 이런 걸 의미하는 게 아닌가 싶다. 한 달간의 프리뷰 기간에 많은 발전 과정을 거쳐 11월 정식 개막 이후에는 좋은 결과가 나오길 기대해본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10호 2012년 1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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