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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스파이스 걸스의 주크박스 뮤지컬<비바 포에버> VIVA FOREVER [No.112]

글 |정명주 사진 |Brinkhoff/Moegenburg 2013-01-25 4,849

빅토리아 베컴의 걸 그룹 스파이스 걸스의 노래로 만든 신작 주크박스 뮤지컬 <비바 포에버>가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해 12월 15일 런던 피카딜리 극장에서 오픈했다. <맘마미아>의 제작자인 주디 크레이머가 시도하는 주크박스 뮤지컬 2탄으로, 영국 TV에서 맹활약해 온 여성 코미디언이자 시트콤 작가 제니퍼 손더스가 자진해서 대본을 쓰면서 화제를 모았다. 개막 전부터 스파이스 걸스의 오리지널 멤버 다섯 명이 제작 발표회 참여를 비롯해 적극적인 홍보에 나서면서 대대적인 관심을 받아왔지만 동시에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1990년대 걸 그룹의 신화라고 할 수 있는 스파이스 걸스는 다섯 멤버들의 개성과 매력이 성공 요인이었고 음악성은 높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노래를 이용한 뮤지컬이 성공할 리 없다는 예상이었다. 팬들의 기대와 연극계의 우려가 엇갈리는 가운데 첫선을 보인 뮤지컬 <비바 포에버>는 역시나 평단의 혹평이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20~30대 여성 팬들로부터 기립 박수를 받으며 4백만 파운드(약 7억 원)에 달하는 예매 매출을 자랑하고 있다.

 

 

 


걸 파워를 내세운 걸 그룹의 성공 신화, 스파이스 걸스

1994년 결성된 스파이스 걸스는 음반 제작자들이 공개 오디션에서 발굴한 신예들을 모아 만든 걸 그룹으로, 음악성보다는 마케팅으로 승부한 전형적인 제작자 주도형 그룹이다. 축구 선수 베컴의 아내로 더 유명한 빅토리아 베컴을 비롯해, 솔로 가수 및 패션 디자이너로 유명해진 게리 할리웰, 멜라니 B, 멜라니 C, 엠마 번튼, 다섯 명으로 구성되었다. 스파이스 걸스는 결성 후에 원래 제작사와 헤어지고, 영국의 ‘팝 아이돌’과 미국의 ‘아메리칸 아이돌’ 등을 만든 텔레비전 제작자 사이먼 풀러를 만나면서 본격적인 스타덤에 올랐다. 현재까지도 베컴 부부의 에이전트로 활동하고 있는 사이먼 풀러는 다섯 명의 독특한 개성을 살린 마케팅으로 스파이스 걸스를 세계적인 스타로 키워냈다. 세련된 부잣집 딸 이미지의 포쉬 스파이스(빅토리아), 지방 사투리를 쓰는 거친 매너의 흑인 멤버 스케어리 스파이스(멜라니 B), 트레이닝복 차림의 스포티한 스파이스(멜라니 C), 빨간 머리에 자기주장이 강한 진저 스파이스(게리), 그리고 금발의 귀여운 막내 베이비 스파이스(엠마), 이렇게 다섯 명의 멤버는 각자 다양한 층의 팬을 확보하며 걸 그룹의 성공 신화를 만들었다. 데뷔 앨범 「Spice」는 전 세계적으로 2,800만 장이 판매되면서, 세계 음악사상 여성 그룹 최고 판매고를 기록했다. 1996년 발매된 싱글 앨범 「Wannabe」 역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영국 음반 차트 1위에 군림했다. ‘걸 파워’를 내세운 이미지 메이킹으로 초중등학교 여학생들을 주요 팬으로 둔 독보적인 아이돌 스타가 되었고, 강한 여성상으로 동성애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또한 진저 스파이스가 입었던 영국 국기인 유니언 잭으로 만든 드레스는 새로운 영국의 이미지를 대표하며 ‘쿨 브리테니아’의 상징이 되었다. 스파이스 걸스는 2000년 말에 해체했다가 2007년 재결성하여 2년여간 활동했고 2008년 초에 다시 해체했다. 지금까지 총 8,000만 장의 음반 판매를 기록하며 비틀스 다음으로 성공한 영국의 팝 그룹으로 기록되고 있다.


제2의 <맘마미아>를 꿈꾸며

<비바 포에버>는 스파이스 걸스의 음악을 엮은 뮤지컬이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는 않다. <맘마미아>가 아바의 노래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이지만 그 스토리는 가상의 모녀 이야기인 것과 마찬가지다. <맘마미아>로 백만장자가 된 제작자 주디 크레이머는 전작의 성공 비법을 그대로 지키며, <비바 포에버>를 <맘마미아>의 주인공들과 닮은 모녀의 이야기로 구성했다. 그래서 <비바 포에버>는 스파이스 걸스와 닮은 걸 그룹의 이야기라기보다는 팝 스타가 되고 싶어 하는 소녀 비바와 그녀의 엄마 로렌의 이야기에 가깝다. 로렌은 <맘마미아>의 도나처럼 한번도 결혼한 적 없는 쿨한 싱글 맘이다. 도나가 사는 그리스 외딴섬이 아닌 영국에 살고 있지만, 로렌은 집이나 아파트가 아니라 강가에 닻을 내린 보트 하우스에서 산다. 로렌은 중년이지만 여전히 가죽 잠바를 즐겨 입으며, 레드 와인을 너무 많이 마시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다. 도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로렌은 비바의 친엄마가 아니라 어린 비바를 입양한 양엄마라는 사실이다. 로렌은 속된 미디어가 활개 치는 세상을 혐오하며 텔레비전을 보지 않기에, 보트 하우스에는 텔레비전이 아예 없다. 그런데 사랑하는 딸 비바가 팝 스타를 꿈꾸며 친구들과 함께 4인조 걸 그룹 ‘이터너티’를 결성해 텔레비전에 출연하게 되자, 자신의 이상과는 어긋나지만 딸의 행복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게 된다. 비바의 걸 그룹 ‘이터너티’가 TV 경연 대회에 출연하자마자, 비바는 솔로로 활동하겠냐는 제안을 받게 된다. 결국 비바가 다른 세 명의 멤버를 버리고 혼자서 멘토인 시몬의 지휘 아래 솔로 가수로 훈련을 받게 되자, 이런 상황을 걱정하는 엄마의 사랑은 더욱 각별해진다. 엄마의 사랑을 잘 아는 양딸 비바는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보도하여 친엄마 찾기를 마케팅 전략으로 이용하려는 시몬의 계획에 반대하면서 엄마는 로렌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스토리는 두 모녀의 각별한 정에 집중한다. 더불어 엄마의 베스트 프렌드인 수지와 밋치, 그리고 ‘The X Factor’를 닮은 TV 경연 대회의 심사위원이자 제작자들, 특히 사이먼 코웰을 닮은 쟈니와 샤론 오스본을 닮은 시몬 등 중년의 인물들에게 많은 시간이 할애된다. 정작 스파이스 걸스의 멤버들을 연상시키는 다른 세 명의 등장인물들은 홍보된 내용과는 달리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하다.

  

 

 

뮤지컬 속에 삽입된 스파이스 걸스의 노래들

<비바 포에버>는 무대에 가득한 스크린을 통해 TV 예비 스타 경연 대회 참가자들의 짧은 인터뷰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이먼 코웰의 ‘The X Factor’를 연상케 하는 가상의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네 명의 소녀가 무대에 나타난다. 흥분해 들뜬 이 소녀들 앞에 와인 잔을 손에 든 로렌이 나타나, 취한 목소리로 심사위원들 말 따위는 듣지 말라고 충고한다. 네 명의 소녀 중 유난히 빅토리아 베컴을 닮은 외모의 한나 존-카먼이 연기하는 비바가 있다. 그리고 비바가 입양된 딸이라는 사실이 아무렇지 않게 등장인물들의 입에 오른다. 그리고 로렌이 ‘이제 그녀(딸)의 인생이 시작된다.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하고 첫 곡 ‘Let Love Lead the Way’를 부른다. 로렌을 연기하는 중년 여배우 샐리 앤 트리플레트의 노래 실력은 대단하지 않으나 딸의 앞날을 걱정하는 감정을 담아 연극적으로 무난하게 부른다. 이내 그녀의 친구인 수지와 밋치가 노래에 합세하면서 중년 어른들의 삼중창으로 발전한다. 다음 곡은 네 명의 소녀들이 TV 출연을 앞두고 영원한 우정을 맹세하며 문신을 새기러 가는 길에, 거리에서 부르는 ‘Right Back at Ya’이다. 비바의 선창으로 시작하는 신나는 댄스곡으로, 그들은 ‘진짜 우정은 끝나지 않는다’며 희망에 차 있다. 세 번째 곡은 TV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심사위원들이 소개될 때 쟈니와 시몬이 부르는 ‘Denying’이다. 쟈니와 시몬 사이의 경쟁 관계를 드러내면서 ‘네가 잘난 것 같지만 한번 나랑 붙어보자’라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마지막 부분은 코러스들이 합세해 화려하게 마무리된다. 엄마 로렌과 친구인 수지가 한참 수다를 떨다가 부르는 코믹송은 ‘Too Much’이고, 심사위원 시몬과 쟈니가 분장을 하면서 ‘나는 드라마퀸’이라면서 ‘가짜 돈과 진짜 플라스틱’에 대해서 노래할 때 ‘Look at Me’가 불린다. 이렇게 대부분의 노래는 엄마 로렌과 심사위원 시몬이 부른다. 작품의 주인공들로 기대되었던 네 명의 걸 그룹 ‘이터너티’가 부르는 노래는 공연 초반에 거리에서 불렀던 ‘Right Back at Ya’, 그리고 공연이 한 시간 정도 흐른 후 그들이 TV에 출연해 부르는 ‘Stop’, 비바가 친구들을 버리고 솔로가 되기로 결심한 시점에 부르는 ‘Say You`ll Be There’, 그리고 마지막에 솔로로 활동하던 비바가 친구들을 무대로 불러 모아 부르는 ‘Wanna Be’가 전부이다. 그리고 비바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이 비바의 배신을 비난하며 부르는 ‘Tell Me Why’를 꼽을 수 있다. 스파이스 걸스의 대표곡들은 대부분 비바와 어른들이 부른다. ‘Who Do You Think You Are?’는 시몬이 비바의 솔로 전향을 강제할 때 같이 부르고, ‘Goodbye’와 ‘Mama’는 비바와 로렌, 시몬의 삼중창으로 꽤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특히 ‘2 Becomes 1’은 중년의 로렌과 밋치가 스페인의 한 호텔에서 어색한 첫날밤을 맞이하면서 부르는 로맨틱 코믹송으로 변신해, 가장 큰 박수를 받는 뮤지컬 넘버이다. 뮤지컬에 삽입된 스파이스 걸스 노래의 대부분은 드라마와 무난하게 어우러진다. 노래 가사에 맞춰 극적 상황을 만들어낸 듯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극에 개연성과 긴장감이 부족하고, 정작 주인공이 되어야 할 소녀들의 이야기가 대폭 누락되어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두 시간 반여의 공연에서 가장 신나는 순간은 공연이 다 끝나고 커튼콜에서 다 같이 ‘Spice Up Your Life’를 부를 때이다. 화려한 조명 속에 흥겹게 불리는 이 댄스곡은 드디어 객석의 모든 관객들이 일어나 흥겨운 시간을 갖게 만든다.

 

 

 

 

 

무난한 공연에서 감초 노릇을 하는 중견 배우들

놀라울 정도로 빅토리아 베컴을 빼닮은 얼굴의 신예 한나 존-카먼이 연기하는 비바는 무난하다. 알앤비가 어울릴 것 같은 음색이 매력적이다. 로렌 역의 샐리 앤 프리플레트와 함께 ‘내가 길을 잃으면 네가(엄마가) 집으로 데려다 주겠지’라고 열창하는 ‘Headlines’에서는 안정된 가창력과 잔잔한 감동을 전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녀의 웨스트엔드 데뷔는 스타 탄생을 논할 정도는 아니다. 다른 걸 그룹 멤버들을 연기하는 시본 애스월, 루시 펠프스, 도미니크 프로보스트-초크리는 비중이 너무 작기도 하지만, 함께 모여 있는 순간의 귀여움을 빼면 존재감도 매력도 너무 부족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전체적으로 공연을 끌고 가는 이는 중년 배우들이다. 샐리 앤 플리플레트가 대부분의 잔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며, 친구 수지 역의 루시 몽고메리와 함께 여러 차례 웃음을 선사한다. <맘마미아>를 비롯해 <캣츠>, <카바레>, <그리스> 등 대표적인 웨스트엔드 뮤지컬에 출연해 온 탄탄한 경력을 자랑하는 샐리 앤 플리플레트는 밋치 역의 사이먼 슬레이터와 함께 뒤늦은 중년의 첫사랑을 연기하는 순간에 제일 큰 박수를 받는다. 심사위원 시몬 역의 샐리 덱스터 역시 크게 선전한다. <올리버!>의 낸시 역할을 비롯해 <빌리 엘리어트>와 <시스터 액트> 등에서 열연해 온 그녀는 극본상으로 개연성이 부족한 악녀 시몬을 온몸을 던진 연기로 보완하고 있다.

5%로 부족한 창작 팀의 결점

한국에서 <댄싱 섀도우>에 참여했던 폴 개링턴의 연출은 전체적으로 안정된 무대와 잔재미를 제공한다. 특히, 피터 매킨토시가 디자인한 회전 무대를 적극 활용하여 빠른 장면 전환을 가능케 하면서 속도감 있는 무대를 선보였다. 다만, 불필요한 장면을 제거하여 간결하고 경제적인 스토리 라인을 구축하는 것이 연출가의 몫이라면, 폴 개링턴은 그 점에서 역량이 다소 부족했다. 로렌과 수지의 수다 장면이나 지나가는 젊은 남자를 데려와 운동을 하는 장면, 또한 TV 프로그램의 심사위원들이 지나치게 자기 자랑을 늘어놓으며 경쟁하는 모습은 모두 사족으로 보였다. 인물들에게 진정성이 부족했고, 스토리 전개와 무관하게 쉬어가는 코미디 장면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큰 웃음을 자아내지 못했다. 지나치게 희화된 등장인물들은 공감하기 어려웠고, 개연성이 부족한 설정과 전개가 곳곳에 보였다. 이러한 결점들은 뮤지컬 대본을 생전 처음 썼다는 제니퍼 손더스의 경험 부족 탓인지, 웨스트엔드 연출이 처음인 폴 개링턴의 역량 부족 탓인지, 아니면 연기자들의 과장된 연기 탓인지 판단하기 힘들다.

 

 


<비바 포에버>는 딱 예상한 만큼의 성공을 이룰 듯하다. 스파이스 걸스의 노래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이 ‘명작’이 되기를 기대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히트곡도 그리 많지 않을뿐더러, 내러티브가 부족한 걸 그룹의 댄스곡을 가지고 완성도 높은 뮤지컬을 만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패션과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스타로 활동하고 있는 다섯 멤버들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축하하는 무대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비바 포에버>는 1990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소녀들의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전혀 예상치 못한 극적 맥락에서 그녀의 노래들을 듣게 만들어 당혹감과 실망을 안겨 주었다. 극 중 엄마와 심사위원이 스파이스 걸스의 대표곡들을 노래해 생경한 느낌을 주었다. 소녀들이 불렀던 노래를 중년의 목소리로 듣는 그런 생소함이 때로는 극적 상황에서 유쾌한 놀라움으로 웃음을 유발하기는 한다. 그러나 스파이스 걸스의 팬들이 원하는 것은 그런 어이없는 웃음이 아닌, 진정한 활력과 매력이 가득한 걸 그룹을 무대 위에서 다시 보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비바 포에버>에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공연장을 가득 메운 열성 팬들의 모습을 보며, 이제는 그들 스스로 엄마의 나이가 되어 자신과 닮은 등장인물들(로렌, 수지, 시몬)을 무대에서 보는 기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이 끝나기도 전에 행복한 얼굴로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하는 관객들의 모습을 보면서, 더불어 10여 분이나 이어지는 커튼콜 콘서트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 덕분에, 비평가들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이 공연이 한동안은 흥행세를 타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2호 2013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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