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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두 배우의 재능으로 가득한 추리 소동극 <머더 포 투> [No.125]

글 |정예경 (뉴욕 통신원) 사진 |Joan Marcus 2014-02-11 3,897

2011년 5월 12일, 시카고 셰익스피어 시어터에서 초연된 <머더 포 투>는 개발 과정을 거쳐 지난해 세컨드 스테이지 시어터에서 뉴욕 프리미어를 성공리에 마쳤다. 이후 월드 스테이지 시어터로 옮겨와 현재 대성공을 거두고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머더 포 투>는 여러모로 상당히 특이하다. 뮤지컬이라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장르를 규정할 수 없는, 어쨌든 ‘굉장히 웃기다’라는 것만 분명한 작품이다. 그러나 단순히 웃긴 작품이라고 하기엔 구석구석 훌륭한 점이 많다. 더 세밀한 설명을 위해 한 번 더 봤는데도 처음의 독특한 느낌을 잃지 않는 신기한 작품이다. 단지 두 명의 배우가 출연해 피아노 연주와 노래, 연기까지 소화한다는 점에서 <머더 포 투>는 ‘액터-뮤지션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정의도 뭔가 개운치 않다. 연주를 잘하긴 하지만 ‘뮤지션’이란 표현을 하기엔 두 배우의 ‘액터’로서의 비중이 월등하고, 작품 전체를 봐도 음악보다는 극이 더 훌륭해서 ‘음악이 곁들여진 코미디 연극’처럼 보인다.

 

 

 

 

소설가 살해범을 찾아라                                                  

이 극은 수사관 마커스가 한 방에 모인 용의자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어가며, ‘누가 소설가 아서 휘트니를 죽였는가?’를 추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용의자들은 각기 다른 사연과 알리바이를 가진 사람들로, 살인이 벌어진 방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펼치며 대립 구도를 형성한다. 이런 과정에서 각자가 감춰왔던 비밀이나 사연이 수면 위로 드러나며 복잡 미묘한 상황이 연출된다.
배우는 둘뿐이지만 캐릭터는 굉장히 많다. 진짜 수사관이 도착할 때까지 사건을 해결하여 수사관으로 임명되고 싶어하는 가짜 수사관 마커스, 바닥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다는 ‘설정’으로 존재하는 피해자 아서 휘트니, 피해자의 수다스럽고 수상한 부인 달리아, 피해자의 친척으로 범죄학을 전공하고 마커스의 수사를 돕고 싶어 안달이 난 스테파니, 피해자와 모종의 관계에 있었음이 추정되는 미녀 발레리나 루이스, 이 방 안의 모든 사람들의 심리 상담을 담당했던 닥터 그리프, 세 명의 동네 꼬마들, 마커스의 과거 여인이자 트라우마인 미녀 범죄자 바네사, 소방관, 마커스의 상사 등이다. 배우들은 중간에 이 모든 캐릭터를 벗고 무대에서 잠깐 ‘연기자’로서 코멘트를 하기도 한다. 무대 한가운데 놓인 그랜드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반주하는 연주자도 이 두 배우가 맡는다.
연기자, 극작가, 작곡가라는 타이틀에서 모두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진 브렛 라이벡은 여기서 형사 마커스를 쭉 연기한다. 연기도 잘하는데 피아노 실력도 수준급이다. 제프 블루멘크란츠는 나머지 용의자들을 몽땅 연기한다. <인투 더 우즈>, <서푼짜리 오페라>, <법과 질서(Law&Order)> 등 무대와 TV를 오가며 다진 탄탄한 메소드 연기를 선보인다. 연기만 하는 사람치고는 피아노 실력이 수준급인데, 브렛 라이벡보다 약간 부족한 피아노와 노래 실력을 놀라운 연기력으로 보완한다.

 

 

 

 

재능 덩어리 신예 창작자 콤비                                          

사실 <머더 포 투>는 표면적으로 ‘용의자가 누구냐’를 찾는 내용인데, 재밌는 건 사실 용의자가 누구인지, 어떻게 해서 살인에 성공했는지 추리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결국 이 중 한 사람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체포되는 장면에서 마커스가 묻는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총을 쏘고 아무도 모르게…’ 그러고선 상대방의 설명을 듣는 시늉을 한다. 5초 뒤 정적을 깨고 ‘아! 그랬군! 이제 말이 되네. 그게 모든 상황을 설명해주는군요!’라고 쉽게 넘어가 버린다. 이것도 극작 테크닉이라면 테크닉이다. 처음부터 누가 어떻게 살인을 했느냐를 찾아내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인물들 간의 대립 구도, 화학작용을 맛깔나는 대사로 보여주는 게 목적이었던 것이다.
뮤지컬은 한편 프로듀서의 예술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성공이 보장된 몇 가지 공식과 틀이 있다. 기승전결, 해결할 문제, 일관된 목적, 주인공의 좌절 뒤 성공, 러브 라인, 좋은 넘버, 편곡이 잘된 음악 등 다소 전형적인 성공 공식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뮤지컬은 단 두 명이 나와 천연덕스럽게 그 모든 공식을 비웃는다. 목소리 톤과 캐릭터가 확실하고 각 인물 간의 성격이나 말투, 버릇도 확실히 달라서 실제 여러 인물이 대화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게다가 전환도 빠르고 무려 열세 사람을 번갈아 연기하는데도 큰 혼란이 없다. 
또 두 창작자와 연출가, 두 배우가 곳곳에 심어놓은 많은 ‘깨알 재미’가 있다. 사실 모든 인물들은 한 사람이 표현하는 것이고 관객들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소개하는 방법도 참 쉽다. 네 사람이 일관성 있게 대화를 하다가 “아까부터 저기 구석에 있는 세 꼬마는 아직 얘기도 안 해봤잖아요?”라는 식으로 ‘세 꼬마’라는 허구의 인물들을 끌어들인다. 그러면 한 배우가 바로 ‘세 꼬마’로 변신한다. 그런데 이 세 꼬마를 연기하는 방법도 참 기가 막히다. 작은 키를 표현하기 위해 바로 무릎을 꿇고 재빠르게 모자를 쓴다. 첫 번째 꼬마는 말이 많고 사투리를 쓰며 모자를 똑바로 썼다. 두 번째 꼬마는 모자를 뒤로 쓰고, 세 번째 꼬마는 모자를 앞으로 눌러써 눈을 가렸다. 이렇게 순식간에 성격이 다른 세 꼬마를 연출한다. 
중간에는 난데없이 ‘소방관’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는 피아노에 턱을 괴고 마커스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미묘한 웃음을 짓고 있다. 마커스뿐 아니라 관객들 역시 그를 궁금하게 하는 상황이다. 잠깐의 정적 뒤, 마커스가 “누구예요 당신?” 하고 묻는다. “소방관? 당신은 대체 여태까지 어디 있었던 거죠?”라는 질문에, 상대 배우는 “화장실”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이토록 모든 인물의 소개는 간단하고 단순하며, 관객의 상상력을 요구한다.

 

 

 

 

절묘한 전환의 묘미                                                        

이 극은 전환이 쉽게 이루어지지만 동시에 상당히 어렵기도 하다. 관객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새로운 인물을 초대하는 전환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쉴 새 없이 다른 인물의 연기를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사건 전개에서 한 번쯤 분위기 반전이 필요한 시점에서는 배우들의 가면을 벗겨버린다. 배우 본연의 모습을 이용해 전환 기법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장면이 왠지 진지해질 것 같으면 중요한 시점에서 전화가 울린다. 사실 이것은 마커스에게 오는 전화로 설정되어 있다. 그런데 용의자 역의 배우는 그 설정을 모르고 관객의 전화라고 생각하고, ‘연기자 제프’가 된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매너 좀 지켜요”라고 말하는데, 이런 식의 전환이 네 번 정도 쓰인다. 두 번째 울릴 땐 “나 열심히 연기하는데 김새게 이러기야?”라는 투로 화를 내기도 한다. 세 번째에는 마커스가 ‘저기, 사실 내 전화인데’라고 이야기를 하자 상대 배우는 화를 내려다가 상황을 납득하며 용의자 역으로 돌아간다.
마커스의 상사는 실루엣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가만 보면 이 실루엣은 누구나 다 아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옆모습이다. 말 한마디 없이도 존재감을 보여주는 능력이 발군이다. 용의자들 중 ‘루이스’는 마커스가 오래전부터 팬을 자처했던 발레리나다. 그녀는 우아하고 예민한 캐릭터로 그려지는데, 남자 배우가 발레를 하며 도도한 모습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반면 마커스를 쫓아다니는 금발머리 수다쟁이 여학생 캐릭터 ‘스테파니’는 마커스가 루이스에게 말을 거는 것을 질투한다. 여기서 루이스와 스테파니를 한 배우가 동시에 연기하는 설정이 재미를 유발한다. 마커스는 루이스와 얘기를 해야겠다고 하며 상대에게 캐릭터 전환을 요구하지만, 스테파니 역할의 배우는 루이스로 변하지 않고 자신과 더 얘기하자고 버틴다. 마커스가 짜증을 내고 스테파니가 루이스로 변하길 기다리자, 급기야 “싫어요. 아직 스테파니 하고 싶단 말이에요”라고 투정을 부린다. 이런 건 아마도 일인 다역이라는 설정에서만 볼 수 있는 재미일 것이다.

 

 

 

 

재능과 아이디어로 한계를 극복하는 작품                           

<머더 포 투>는 일인 다역의 연기 컨셉에서 끌어낼 수 있는 온갖 극작의 메소드를 한곳에 모아놓은 듯한 극이다. 직접 연기를 해보지 않으면 끌어내기 힘든 테크닉인데, 이런 탄탄한 극본을 쓴 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머더 포 투>처럼, 형식과 내용 모두 기발하고도 기존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 벗어나 오프에서 최소한의 비용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이끌어내 살아남을 수 있는 작품은 ‘창작자들의 타고난 재능’에 많이 기인한다. 작곡과 극본을 쓴 조 키노시안과 켈런 블레어 콤비는 지난해 미국 저작권협회 ASCAP에서 ‘메리 로저스/로렌즈 하트 어워드’를 받기도 했다. 시상식장에서 <위키드>의 작곡가이자 ASCAP 임원진의 한 사람인 스테판 슈월츠가 이 콤비에게 많은 칭찬을 했다. 흥미롭게도 그 스테판 슈월츠의 아들인 스캇 슈월츠가 <머더 포 투>의 연출을 맡고 있다.
두 사람의 재능 못지않게 멘토들의 도움과 개발 시스템도 이 훌륭한 작품이 탄생하는 데 한몫했다. 우리나라에서 한국 뮤지컬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꼬집으면서도 달리 소득이 없는 걸 생각하면, <머더 투 포>는 젊은 창작자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만들어주는 작품이다. 창의성 하나로 모든 예산 문제를 극복하고 나아가 뮤지컬의 새로운 모델과 젊은 창작자들이 나아갈 방향에 또 하나의 새로운 화두를 제시해주고 있다.
만약 이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라이선스된다면 분명 적당한 배우를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피아노를 녹음해서 진행한다면 실망스러울 것 같다. 이 작품은 말 그대로 배우의 재능과 땀과 노력, 에너지가 주는 감동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극의 마지막에 관객들이 박수를 보낼 때, 두 배우는 이 모든 게 라이브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무대 한쪽에 놓여있던 큰 거울을 피아노 뒤에 놓고 함께 연주한다. 눈을 감고, 포지션을 바꾸고, 서로의 왼손과 오른손을 교차하기도 하며, 피아노 연주 자체를 안무의 일부분으로 보여준다. 극장 안의 모든 사람들이 두 사람의 손가락을 볼 수 있도록 큼지막한 거울을 가져다 놓는 아이디어가 멋지다. 이들의 열정과 땀과 노력과 재능은 ‘진짜’였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5호 2014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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