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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전설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 캐롤 킹의 삶과 노래, <뷰티풀 : 더 캐롤 킹 뮤지컬> [No.126]

글 |이오진 (극작가) 사진 |Joan Marcus 2014-03-31 4,241

“노래 좋네. 누구 노래야?”
친구가 물었다. 뮤지컬을 보러 가기 전날, 내 노트북에서는 하루종일 캐롤 킹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공연을 보기 전 예습이나 할까 싶어 틀어 놓았는데, 막상 듣다보니 노래들이 좋아 나도 모르게 계속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가사는 쉽고, 멜로디는 귀에 감겼으며, 목소리는 포근했다. 폭설이 지나가고 거리에 눈이 쌓인 뉴욕의 겨울날, 그녀의 목소리를 닮은 <뷰티풀: 더 캐롤 킹 뮤지컬>(이하 <뷰티풀>)을 보고 왔다.

 

 


캐롤 킹의 삶을 바탕으로                                                

사실 공연을 보기 전까지 캐롤 킹에 대해 그다지 아는 것이 없었다. 공연 티켓을 사놓고 집에 돌아와 그녀의 이름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오 마이 갓. 그녀는 전설이었다. 1942년생인 그녀는, 4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고 노래하기 시작해 17살에 이미 대형 레코드사와 작곡가로 계약을 한 일종의 ‘천재형’ 뮤지션이다. 미국에 싱어송라이터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1960년대, 그녀는 여성으로서는 독보적으로 그 흐름의 중심에 있었다. 전남편이었던 게리 고핀이 작사를 하고 캐롤이 곡을 쓰는 작곡 듀오는, ‘Will You Love Me Tomorrow’의 히트를 시작으로 몽키스의 ‘Pleasant Valley Sunday’, 비틀스가 부른 ‘Chains’ 등을 만들어내며 승승장구했다. 캐롤 킹의 인기는 1971년 그녀의 솔로 앨범 「Tapestry」에서 정점을 찍었는데, 미국 내에서만 1,4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그간 그녀가 작곡한 400곡이 넘는 노래들을, 1,000명도 넘는 가수들이 불렀으며, 여전히 그녀의 이름은 미국 대중음악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미국에서 전설적인 뮤지션인 것에 비해 아시아권에서는 그리 유명세를 타지 않은 듯하다. 80년대생인 필자에게 그녀의 노래가 유행했던 시기가 너무나 예전에 지나가 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저지 보이스>나 <맘마미아>가 포 시즌스(Four Seasons)나 아바(ABBA)의 곡들을 들으면서 자라온 관객들에게 더욱 어필하듯이, 캐롤 킹의 뮤지컬도 마찬가지일 거라 짐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노래에는 시대를 넘어서는 보편적인 아름다움이 있었다.
올해 브로드웨이 위크에는 유독 많은 뮤지컬들이 할인 선상에 올랐다. (필자 주: 크리스마스부터 새해 성수기가 지난 2월의 브로드웨이는 미식축구 경기인 슈퍼볼까지 겹쳐 찬바람이 부는데, 덕분에 한 장 값에 두 장을 판매하는 이벤트인 브로드웨이 위크를 연다.) 쟁쟁한 뮤지컬들 사이에서 브로드웨이 위크 사이트에 당당하게 ‘매진’ 딱지가 붙은 뮤지컬이 있었으니, <위키드>, <라이온 킹>, <킨키부츠> 그리고 <뷰티풀>이었다. 프리뷰 이후 본 공연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뮤지컬이 매진되었다는 건, 이 뮤지컬의 인기가 얼마큼인지 실감하게 한다. 말할 것도 없이, 이 뮤지컬의 인기는 캐롤 킹의 인기와도 직결된다.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의 대부분은 장년층 이상이었다. 캐롤 킹의 노래를 들으며 젊은 시절을 보낸 그들에게, 이 뮤지컬은 추억을 상기시키는 묘약이었을 것이다.
작품은 카네기 홀 피아노 앞에 앉은 캐롤 킹(제시 뮬러)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 브루클린 출신이에요.” 카네기 홀이 위치한 맨해튼은 브루클린 옆 동네이다. 친숙하게 인사를 건네는 그녀에게, 관객들은 마치 자신들이 카네기 홀로 캐롤 킹의 공연을 보러 온 양 웃으며 박수를 보냈다. 인사를 마친 그녀가 피아노를 치면서 ‘So Far Away’를 부르기 시작하자 무대는 17살 캐롤 클레인의 브루클린 집으로 변신한다. 피아노 앞에는 “작곡가가 되고 싶다고? 웃기고 있네. 그런 건 남자들이나 하는 거야. 넌 얼른 대학 졸업하고 선생이나 해라”라고 말하는 캐롤의 엄마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부모님들이 자식들에게 기대하는 직업군이 얼마나 한정적인지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런 엄마에게 소녀 캐롤은, “아니에요 엄마! 나는 작곡가가 될 거라고요”라고 외치며 피아노 앞에 앉아 자신이 만든 곡을 연주한다. 엄마의 구박에 개의치 않는 캔디 같은 소녀는, 자작곡을 들고 용감하게 타임스퀘어에 있는 대형 레코드사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날로 작곡가 계약을 한다.
노래도 잘 만들고 얼굴도 예쁜 그녀는 심지어 공부도 잘해서, 두 학년을 건너뛰고 어린 나이에 대학에 입학한다. 그리고 머지않아 극작가를 꿈꾸던 귀여운 남학생과 사랑에 빠진다. “내가 쓴 곡에, 네가 가사를 입혀 줄래?” 그렇게 연인이 된 두 사람. 얼마 지나지 않아 캐롤은 임신을 하고, 그 길로 결혼을 한다. 그렇게 작사 게리 고핀, 작곡 캐롤 킹 커플의 전설적인 파트너십이 시작된다. 한 손으로는 우는 아이를 안고 달래며, 다른 한 손에는 펜을 들고 곡을 쓰는 그녀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게리는 협조적인 남편이 아니었다. 학교 때부터 인기 많고 여자를 울리는 타입이었던 게리는, 결혼하고도 버릇을 못 고치고 계속 밖으로 나돈다. 여담이지만, 실제로 캐롤 킹이 게리의 정부들 중 한 명에게 집을 사준 적도 있단다. 그럼에도 이들은 60년대 내내 훌륭한 곡들을 양산해낸다.

 

 

관객들이 원하는 것은 캐롤 킹의 노래         

뮤지컬에서 다시 듣는 캐롤 킹의 노래들은 하나같이 주옥같았다. 배우들 또한 무시무시한 노래 실력을 자랑하며 극장을 들었다 놨다 한다. 그럼에도, 1막이 끝날 때까지 너무 안이하게 가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캐롤 커플이 노래를 구상한다 → 가수들이 나와 그 노래를 부른다 → 캐롤 커플이 다음 노래를 구상한다 →  가수들이 나와 그 노래를 부른다,  식의 단순한 구성은 1막 내내 이어진다. 틈틈이 그녀를 몹시도 질투하는 베리와 신시아 커플이 등장하여 관객들을 웃게 만든다. 캐롤 킹을 소재로 한 뮤지컬을 만드는 여러 가지 방법들 중, 이 프로덕션은 익숙한 이야기 구조를 따라가는 방법을 택한다. 관객들이 이 뮤지컬에서 보고자 하는 것은 엄청난 드라마나 스펙터클이 아니라, 캐롤 킹의 노래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의 중반까지 캐롤은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상을 보여준다. 그녀는 아이를 키우고 돈을 벌며 남편의 외도를 묵묵히 감내해낸다. 언제까지 저렇게 질 안 좋은 남편 뒷바라지하며 계속 살려나, 싶어질 때쯤, 그녀는 맨해튼까지 원정 나와 바람을 피우는 남편을 목도하고 이렇게 말한다. “너 그거 아니? 여자들은 이것보다 나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어. 나도 마찬가지고.” 이때 관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박수는, 그녀가 새롭게 시작하는 인생을 뜨겁게 응원하고 있었다. 심지어 커튼콜 때도 게리 역을 맡은 제이크 엡스타인은 별로 박수를 못 받는다. 1막에서 차곡차곡 쌓인 드라마 위에 노래가 붙자, 2막은 더욱 풍성해진다.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캐롤의 이야기와 노래가 견고하게 맞물리고, 넘버 한 곡 한 곡이 갖는 힘은 더욱 견고해진다. 캐롤 킹은 이혼을 하기 전까지, 무대 위에 나와 직접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그녀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여전히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지 못했다. ‘좋은 아내’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나서야, 그녀는 비로소 솔로 앨범을 내고 ‘캐롤 킹’의 이름으로 반짝반짝 빛을 내게 된다. 2집 「Tapestry」의 성공이 수많은 미국 여성들의 마음을 울렸던 이유는 그녀 인생의 드라마가 노래에 깊이를 더해주었기 때문이리라.
제목인 ‘Beautiful’은 「Tapestry」 앨범에 실린 그녀의 히트곡 중 한 곡의 제목이기도 하다. 잠시 ‘Beautiful’의 가사를 감상해 보자. “아침에 일어나 얼굴에 웃음을 지어봐, 그리고 사람들에게 네 마음속 사랑을 전해봐. 그럼 사람들은 너를 다르게 대할 거고, 그럼 너는 알게 되겠지. 네가 정말로 아름답다는 걸” 한국말로 번역을 해놓으니 좀 느끼하고 교훈적인 가사로 들리지만, 사실 그녀의 목소리로 부르는 원곡은 퍽 희망적이고 아름답다. 10년 넘게 함께 해온 남편이자 작업적 파트너와의 결별이라는 아픈 상황 속에서 만들어낸 이 노래는 캐롤 킹 스스로를 위로했고, 사람들 또한 그녀의 노래에 위로받았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모두에게 “네 안의 사랑을 모두에게 건네봐”라고 제안하는 그녀의 노래에는 희망이 담겨 있다.
캐롤 킹 역의 여배우 제시 뮬러는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노래 실력과 안정된 연기를 보여준다. 그녀는 캐롤 킹을 그대로 따라 하는 대신에, 그녀만의 캐롤 킹을 새로이 구현해낸다. 공연 첫날 극장에 와서 공연을 보고 캐롤 킹이 울면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들리는 걸 보면, 제시 뮬러 버전의 캐롤 킹은 실존 인물의 마음을 움직일 만큼의 힘이 있었던 듯하다.
캐롤 킹은 2014년, 지금 현재에도 여전히 영향력 있는 뮤지션이자, 소셜테이너다. 그녀는 1980~90대에 적극적으로 환경운동에 참여했으며, 2004년과 2008년에는 힐러리 클린턴의 민주당 선거운동에도 힘을 실어주는 행보를 보였다. 최근에는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공연을 했다. 그녀가 미국 팝계의 전설로 불리게 되는 이유는, 여성으로서 남성 위주의 음악계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녀가 이어온 사회적 활동들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 연말 그래미 어워즈에서는 그녀에게 평생 공로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만약 한국에 <뷰티풀 : 더 캐롤 킹 뮤지컬>이 들어온다면 어떨까? 한국 관객들은 캐롤 킹이 누구인지 모르고, 사실 크게 관심도 없다. 캐롤 킹의 명성에 기댈 수 있는 확률이 확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 뮤지컬은 여전히 관객들의 시선을 끌 수 있을까?

 


사실 뮤지컬은 작품성만 놓고 보자면 구멍이 많다. 드라마는 단순하고, 인물 간의 갈등도 거의 없어 긴장감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으며, 주인공인 캐롤 킹의 캐릭터는 밋밋하다. 희생적이고 열정적이지만, 그녀의 정서에 공감할 만한 결정적인 한 방을 찾기 어렵다. 오히려 그녀 엄마나 그녀 친구들의 캐릭터가 더 입체적이다. 뉴욕 타임스의 대표적인 비평가인 벤 브랜틀리는 이 작품의 제목을 ‘뷰티풀: 더 캐롤 킹 뮤지컬’이 아니라  ‘브루클린 걸’로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브루클린 출신 소녀의 성공 스토리’ 같은 카피와 함께 말이다.
캐롤 킹의 실제 삶을 미화한 부분도 속속 눈에 들어온다. 뮤지컬에서는 캐롤 킹의 망한 앨범들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두 번째 남편과의 결혼과 이혼, 마약중독으로 사망한 세 번째 남편 이야기 등은 ‘뷰티풀한 캐롤 킹의 이야기’를 만드는 데 그다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이야기를 그대로 드라마에 포함시켜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첫 장면부터 레코드사의 눈에 띄고, 마지막 장면에서 카네기 홀 공연을 하기까지 그녀의 음악적 행보에서 어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다만 후진 남편이 그녀의 마음을 틈틈이 아프게 할 뿐이다. 하지만 이 또한 극 전체를 끌고 가기에는 약하다. 그러나 이 밋밋한 드라마에 캐롤 킹의 노래가 더해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머릿속으로 드라마의 밋밋함을 지적하려 할라치면, 캐롤 킹의 아름다운 노래들이 놀라운 배우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온다. 끊임없이 변하는 다채로운 무대 전환과 그 시절을 상기시키는 화려한 의상이 시선을 붙잡기도 한다. 뮤지컬이 연극과 다른 점은  드라마와 노래가 함께 진행된다는 것이다. 음악의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면, 밋밋한 드라마도 풍성해진다. 캐롤 킹이 만든 노래의 마법에 취해, 커튼콜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아마도 이것이 캐롤 킹이 데뷔 후 5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가 아닐까. 아쉬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캐롤 킹의 노래를 다시 들었다. 전날과는 다르게, 한 곡 한 곡이 가슴 깊이 파고든다. 그녀의 삶을 보았기 때문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6호 2014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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