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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LUMN] 여성 작가들이 쓰는 사극, 뭔가 다르다 [No.100]

글 |이영미(대중문화 평론가) 2012-01-25 4,483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를 ‘닥본사(닥치고 본방 사수)’ 한다고 수·목요일 밤에는 약속도 잡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시청률이 20퍼센트를 넘는 대중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이 작품은 결코 대중적이고 쉬운 작품이 아니다. 추리 기법으로 꼬아가는 바람에 웬만큼 집중하지 않으면 내용의 맥락을 잃기 십상인 데다가, 한글 창제의 목적과 성리학의 이상, 세종과 정기준이 보여주는 정치에 대한 상이한 관점 등이 얽혀있어, 결코 즐겁고 만만하게 볼 작품이 아닌 것이다. ‘꽃세종’ 송중기의 예쁜 얼굴이나 <추노>에서 보여주었던 장혁의 화려한 액션만 기대하면 결코 재미있게 볼 수 없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인기는, 그야말로 한국 드라마 시청자가 어느 정도의 사회의식을 지니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척도이다.

 

 

사극 드라마에 여성 작가들의 등장
흔히 사극에서 잘 망하는 소재가 두 개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이순신이고 다른 하나는 세종이다. 너무나도 위대하다고 추앙받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원래 극이란, 완벽한 성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실수도 하고 좌절도 하는 흠결 많은 사람들이 치고받고 지지고 볶는 이야기가 바로 극이다. 예컨대 연산군, 광해군, 장희빈, 또는 이방원과 수양대군, 사도세자처럼 인생의 굴곡이 심한 인물들을 극으로 만들어놓으면 재미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이순신과 세종은 광화문 광장에서 그저 우러러 보기에도 너무 높아 목이 아플 지경이니, 감히 누가 그런 위대한 인물을 놓고 지지고 볶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최근 5~6년 사이에 이런 징크스가 확실히 깨졌다. 2004, 2005년 <불멸의 이순신>이 김명민이라는 배우를 재발견하게 하면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2008년 <대왕 세종>이 높은 완성도와 괜찮은 시청률로 성공을 했다. 그리고 다시 세종을 다룬 <뿌리 깊은 나무>는 2011년 하반기 최고의 화제작이자 인기작이 되었다. 게다가 최근 드라마에서는 그간 다루기 힘들었던 최고의 성군들이 모두 등장하여 다 인기를 얻고 있다. 조선 후기 최고의 성군으로 꼽히는 정조는 2007년 <이산>을 비롯하여 최근 사극에 단골로 등장하는 임금이며, 신라의 태평성대 시대의 성군이라 좀처럼 드라마로 다루어지지 않던 선덕여왕도 2009년 드라마로 만들어져 거의 40퍼센트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 대목에서 고개를 약간 틀어 흥미로운 한 지점에 착목해 보자. 이들 사극의 공통점이 뭘까? 바로 여성 작가의 작품들이라는 점이다. 사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사극은 오랫동안 남성 작가의 영역이었다. 1970년 즈음까지만 해도 라디오든 텔레비전이든 드라마는 남성 작가가 쓰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소설조차도 여자가 뭔가를 쓴다는 것이 쉽지 않았던 시절이니, 여성 소설가는 특별히 ‘여류작가’라는 희한한 명칭으로 불리던 시대였다. 그런데 1970년대에 들어서서 MBC에서 김수현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197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남지연, 김수현, 나연숙이라는 여성 작가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다. 1980년대 이후 드라마계에서 여성 작가 우세는 돌이킬 수 없는 현상이 되었다. 그러나 유독 1990년대까지 사극만은 남성의 영역이었다. 1980년대 ‘조선왕조 500년’ 시리즈를 집필한 신봉승, 1996년 <왕의 눈물>로 침체된 사극을 부활시킨 후 <태조 왕건>으로 이어갔던 이환경, 이 뒤를 이은 2000년 <허준>의 최완규, 2002년 <여인천하>의 유동윤, 2003년 <다모>의 정형수에 이르기까지 모두 남성 작가들이었다. 말하자면, 여성 작가들이 연애와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맴돌았던 것에 비해, 남성들은 정치와 전쟁, 역사 등 사회적인 이야기를 하는 식으로 일종의 분업이 이루어진 양상이었다.

 

권력 투쟁 중심의 남성 사극
그렇게 보자면 최근 여성 작가들이 사극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그 변화는 이른바 퓨전 사극과 함께 나타났다. 사극만큼이나 여성 작가가 손대기 힘든 근현대사 소재로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신드롬을 만든 주인공 송지나가 2002년 <대망>으로 퓨전 사극을 시도했고, 이를 2003년 <대장금>이 이어가면서 대박을 터뜨렸다. <대장금>의 작가가 바로 올겨울 <뿌리 깊은 나무> 붐을 일으킨 바로 그 작가, 김영현이다. 김영현은 이후 <서동요>, <선덕여왕>을 거쳐 <뿌리 깊은 나무>로 이어갔다. 한편 2005년 <불멸의 이순신>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유선주는, 이후 <황진이>로 작가적 역량을 보여주었고 이후 대담하게도 <대왕 세종>을 성공시켰다. 여기에 역시 현대사 소재의 <서울 1945>의 둘째 작가로 시작한 정성희가, <자명고>를 거쳐 2011년 <근초고왕>으로 사극 여성 작가의 계보를 잇고 있다. 여기에 <바람의 화원>, <성균관 스캔들>, <공주의 남자> 같은 멜로 성향이 강한 사극까지 방향을 틀면 여성 작가는 훨씬 더 많아진다. 
그런데 수적 우세보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주요한 여성 작가들이 보여주는 성향이다. 가장 쉽게 눈에 띄는 것은, 김영현, 윤선주로 대표되는 여성 사극 작가들의 작품의 인물 형상화이다. 여성 작가의 사극은, 남성 작가들 것에 비해 인물 성격이 입체적으로 탄탄하게 구축되어 있고 매우 섬세하다. 특히 여성 인물까지 살아있어 정치적 사건과 연애·가족 이야기가 뒤엉키는 사건 진행이 다면적이고 치밀하다. 2000년대 이후 남성 사극 작가들이 멋진 액션에 집착하고 남자 주인공의 어깨에 과도하게 힘을 주느라, 종종 캐릭터의 입체성과 구성의 균형감을 놓치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이순신이나 세종, 선덕여왕 같은 흠결 없는 성군들을 재미있게 다루어내는 데에 성공하는 이유라는 점에서 더욱 더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사극에 ‘정치란 무엇인가’, ‘올바른 정치 지도자로서의 성공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뿌리 깊은 나무>의 재미의 원천이 바로 이 지점이었다. 
남성 작가들의 사극이 보여주는 정치의 모습은, 다분히 단순한 권력 투쟁인 측면이 강하다. 주인공은 나름 야심이 없지 않지만 똑똑하고 순수함도 지니고 있던 인물로 설정되고, 이 멋진 인물이 정치판에서 권력을 잡으면서 타락하다가 몰락하는 이야기를 다루는 경우가 많다. 정치는 권력 싸움이고 인물은 ‘순수’에서 ‘타락’으로 가게 된다. 가끔 이 권력 싸움에서 승리하여 영웅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권력을 잡으면서 악덕과 타락을 저지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한다. <용의 눈물>의 이방원, <여인천하>의 정난정, <신돈>의 신돈, 그리고 지금 방송하고 있는 <인수대비>의 세조와 인수대비가 이러한 인물이다. <주몽>, <대조영>, <광개토태왕> 같은 영웅의 드라마에서조차, 그저 그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는 것일 뿐, 따지고 보자면 그 영웅들도 ‘적’들과 별다를 바 없이 권모술수를 구사하고 상대편을 무참히 죽이다가 가끔 은혜를 베푸는 인물이다. 그러니 시청자들은 이런 드라마를 보면서는 그저 권력 싸움만을 즐기게 된다. 우리가 현실 정치에서는 권력 투쟁을 그토록 혐오하고 있건만, 사극에서는 바로 그 단순한 권력 투쟁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여성 사극 작가의 힘
그에 비해 김영현이나 유선주의 작품은 다소 다르다. 물론 정치 이야기에서 권력 투쟁 이야기가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 작가는 그 이상의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대장금>과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들은 복잡한 권력 투쟁 한복판에서 희생되거나 겨우 살아 나가는 전문직과 무인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수라간 궁인으로 출발하여 의녀가 되는 장금이 이야기는, 권력 싸움 한복판에서 전문적 영역이 어떻게 왜곡되고 이용되는가를 생생히 보여준다. 정치 권력자에게 줄을 선 최상궁 편의 사람들은 자신의 전문적 지식을 이용하여 한쪽을 도와주고 그 대가로 가문의 부와 권세를 유지한다. 이순신은 오로지 전쟁에서 이기는 것만 생각하나, 정치인들은 그 과정에서의 이해득실을 따지고 심지어 왕은 공을 세우는 신하를 질투하기까지 한다. 결국 이 작품에서 이순신은, 스스로 죽음을 택함으로써 전쟁에서는 이기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패배하는 선택을 한다. 전문가란 자신의 능력을 최고로 다듬어 이 땅의 사람들 모두를 이롭게 하는 것이어야 마땅하나, 현실에서 이들은 권력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권력 없는 존재들이다. 장금이와 이순신은 권력 투쟁 속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고통 받는 직장인들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 작가들은 여기에서 머물지 않고 한 걸음 나아갔다. 김영현은 <서동요>를 통해, 기술자에서 왕으로 나아가는 인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정치 지도자가 권력 싸움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면서 자신의 원칙을 어떻게 지켜 나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참여정부 시대 직후에 나온 <대왕 세종>에서 인물들은, 최고 지도자와 그 주변 인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픈 일인지를 토로한다. 백성과 신하들의 날카로운 눈,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정적들과 늘 맞서야 하는 곳이 정치판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세자 자리를 내어놓는 양녕과 효녕은 물론, 형제, 처가, 사돈 집안(세종의 처가) 모두를 죽이면서 왕권 강화를 꾀했던 태종조차도 참으로 연민을 느끼게 만드는 인물이다. 이런 피바람 속에서 어렵사리 집권한 세종의 길은, 가장 밑바닥 백성과 하나 되는 길이었다. 이를 위해 역사 속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왕자 시절의 함경도 체험 이야기를 삽입하여 변방의 밑바닥 민중 체험을 한 인물로 만들었다.
한편 <선덕여왕>에서 선덕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버림받은 공주로서 밑바닥 체험을 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권력 투쟁의 최고 고수 미실과 대립하면서 그에게 권력 싸움의 방법을 배우고 그의 나쁜 정치를 비판하며 균형 있게 성장하는 것이다. <선덕여왕>에서의 최고 지도자는 아무도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인물이며, 그 길은 ‘여자가 왕이 되는 것’, 그리고 ‘삼한일통’의 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덕여왕은, 백성과 개혁 세력, 기득권 세력들의  각축 속에서 슬기로운 처신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보여준다. 백성을 위한다? 옳은 길을 향해 간다? 말로는 참 쉬운 일이다. 하지만 미실이 말한 대로 백성은 진실을 알려주면 부담스러워 한다. 이미 권력을 쥐고 있는 신하들을 모조리 죽여버릴 수도 없는 일이다. 정치에서 권력 투쟁이란 없을 수 없다. 이것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이 속에서 어떻게 현명한 왕이 되는가가 이들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말 어느 대통령이 한 말을 빌리자면, ‘임금 해먹기 정말 힘들다.’
결국 여성 작가들은, ‘우리의 주인공’이 왕이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과연 ‘어떤 왕이 되어야 하는가’를 질문하고 답하려 노력했다. 그것은 어떤 정치가 좋은 정치인가, 백성이나 신하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인가, 어떤 정책을 펴야 할 것인가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정말 사극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홍미란·홍정은 자매조차 <쾌도 홍길동>에서 이렇게 질문한다. “그래, 네가 왕위를 이어야 하는 적통의 대군이라고? 그렇다고 네가 왜 임금이 되어야 하는데?”라고. 그러고는 홍길동은 이렇게 결론 내린다. “지금 왕보다는 네가 좀 낫다. 내가 너를 왕 만들어줄게.” 왕은 왕가의 자손이기 때문에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에 대한 비전과 정책이 있어야 하며,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국민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올겨울 <뿌리 깊은 나무>의 위상이 보인다. 이 드라마에서 작가는, 지금의 화두를 국민들과의 소통으로 두고 있다. 백성은 그저 정치인의 처분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스스로 읽고 생각하고 욕망하고 실현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열어줄 것인가, 아니면 백성의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그들을 지도받는 존재로 여기며 현명한 통치를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훈민정음 창제야말로 국민을 스스로 권력을 만들어 나가는 정치의 주체로 만드는 선택이라고, 이 드라마는 감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올바른 정치란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드라마가 여성 작가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점은 참으로 생각할 만하다. 오랫동안 권력과 정치에서 소외되어 있던 여성들이 1970~90년대를 통해 성장했고, 그저 정치란 권력 싸움이라고 치부해버리는 통념을 깨고 ‘국민과 소통하며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정치’이며 ‘이를 통해 정치 지도자는 부단한 노력을 통해 국민과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너무도 당연한 인식을 당당하게 말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역시 올바른 정치란, 억눌림과 소외를 겪어보아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모양이다.
올해는 총선과 대선을 연달아 치르는 해이다. 몇 년간 인기 사극을 통해 확인한 민심이, 어떤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낼지, 자못 궁금하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0호 2012년 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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