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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인터뷰 | [먼슬리픽] 3월의 추천작 [No.102]

글 |편집팀 2012-03-07 3,932

2012년 3월, 더뮤지컬이 추천하는 볼거리, 읽을 거리

 

그건 만화가 아니야 - 제레미 린과 <슬램덩크>

요즘은 배구보다도 농구 중계 시청률이 낮다고 하지만, 90년대 말 농구대잔치 시절 이 세련된 스포츠의 인기는 지금의 야구 못지않았다. 실업 강호 기아, 삼성과 명문 연세대, 고려대, 중앙대 등이 각축을 벌였는데 종목 특성상 키 크고 훤칠한 오빠들이 맹활약을 하다 보니 소녀팬들의 반응까지 절대적이라 하이틴 잡지마다 아이돌 스타 사이에 이상민, 우지원 같은 귀공자 타입의 농구 스타들의 인터뷰가 꼭 끼어있었다.
당시 국내 농구 붐에 지대한 공헌을 한 외부 요인은 두 가지가 있었는데 첫째, 마이클 조단이 지대하던 NBA였고, 둘째로는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전설적인 히트작 <슬램덩크>였다. 실제로 농구선수로 뛴 경험이 있었던 작가는 농구가 철저한 비인기 종목인 일본에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담당기자의 반대를 무릅쓰고 첫 장편 데뷔작을 자신의 꿈을 담은 <슬램덩크>로 밀어붙였고, 결과는 알려져 있는 바대로다. 국내에서도 하나미치 사쿠라기, 루카와 카에데, 센도 아키라 같은 이름은 낯설어도 강백호, 서태웅, 윤대협의 활약상은 중고등학생은 물론 성인 독자까지 사로잡았고, 스포츠 소년 만화로는 드물게 여학생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었다.
심각한 문제아인 주인공 강백호가 사랑스런 동급생 채소연에게서 ‘농구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은 날부터, ‘정말로 농구 좋아합니다, 이번에는 진짜에요’라고 제대로 대답하게 되는 전국체전 운명의 날까지 6년간 31권으로 완결되었다. 일본의 고교생들이 NBA의 레전드 급 스타 수준의 플레이를 하는 것은 우주 전쟁 못지않은 비현실이지만, 작가의 치밀하고 대범한 연출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런 현실적인 문제들을 잊게 했다. <슬램덩크>에 열광하는 독자들에게 와 닿는 것은 땀방울이 종이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생생한 묘사와 전술서를 보는 것 같은 경기 전개, 모든 캐릭터에 애정을 느끼게 만드는 깊이 있는 심리 묘사와 세심한 표현들이었다. 완결 당시 ‘1부 끝’이라고만 명시해서 팬들에게 연재 재개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못하게 만들어놓은 작가는 ‘그리고 싶어질 때 그리겠다, 전보다 재미없는 경기는 그리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얼마 전 잠깐 대만을 다녀온 사이에 ‘제레미 린’이라는 대만계 미국인 청년이 미대륙을 뒤흔드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대만 전체가 그의 성공에 열광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했지만 까막눈인 여행객으로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그의 플레이를 영상으로 확인한 후에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미국으로 가겠습니다’라는 대사를 하던 또 한 사람의 주인공 서태웅(루카와 카에데)이었다. <슬램덩크>를 아무리 좋아해도 아시아인이 NBA에서 성공을 거둔 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그건 별개의 현실이라고 당연히 생각해왔던 사람들에게 제레미 린은 기분 좋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우리가 ‘그건 만화잖아’라고 말해왔던 많은 일들 중에 사실 만화책 밖에서도 가능한 것들이 더 많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88년생 아시아계 이민 2세대 풋내기가 노비츠키를 앞에 두고 3점슛을 성공시키는 장면은 오랜만에 다시 <슬램덩크>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  김영주

 

 

우리 존재 파이팅 <청춘 그루브>

‘국내 최초로 언더그라운드 힙합 신을 그려낸 기대작’ 영화 <청춘 그루브>를 소개하는 기사 대부분은 이런 식이다. 이 영화를 기대하는 이유가 고작 이거라니, 안타깝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걸까. 물론 <청춘 그루브>의 소재가 힙합인 건 맞다. 하지만 힙합 비트의 특징이 뭔가. 단순하고 반복적인 멜로디 아닐까. 마치 실수와 후회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청춘의 모습처럼 말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 같은 우스갯소리가 또 있나 싶지만, 청춘의 아픔은 하나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꿈을 좇을 것인가, 현실과 타협할 것인가 하는 문제. <청춘 그루브> 속 주인공들 역시 같은 고민에 직면해 있다. 청춘의 끝자락에 있는 두 청년 창대와 민수는 메이저 래퍼를 꿈꾸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 내야 한다. 이들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영화의 엔딩은 이렇다. 현실과 타협해 회사원이 된 창대는 회식 자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고, 그 뒤로 켜져 있는 텔레비전 속에는 맹목적으로 꿈을 좇아 스타가 된 민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런데 두 사람 중 누구의 삶이 더 행복하다고, 또 불행하다고 할 수 있을까? 주어진 현실을 내 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타협이라는 단어가 언제부터 이토록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게 된 건지, 마음이 슬프고 화가 난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에 지친 청춘에게, <청춘 그루브>는 위로를 보낸다. 우린 행복을 위해 지금을 살아가는 것이고, 그러니 괜찮다고. 그러니까 <청춘 그루브>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관통하고 있는 청춘에게 보내는 세련된 위로인 것이다. 3월 15일 개봉   |  배경희

 

 

독자의 여행법 『소설가의 여행법』

대학생이면 다들 한 번쯤 가는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였다. 우연히 고향집 책장에 꽂힌 최윤의 단편 소설 『하나코는 없다』를 뒤늦게 읽게 되었다. 그 소설의 메시지와는 상관없이 꽂힌 부분이 있었는데, 주인공 그가 출장으로 방문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공중전화로 하나코에게 전화를 하는 장면이었다. 산 마르코 성당 옆 도로에는 공중전화가 띄엄띄엄 거리를 둔 채 세워져 있고, 그 옆으로 안개에 싸인 잠잠한 물 위로 곤돌라가 줄지어 서 있었을 것이다. 그 글을 읽기 얼마 전 베네치아를 여행한 나도 그곳의 공중전화를 이용해 한국에 안부를 전했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소설 속 그 장면은 낭만적이지도 않고 그저 빛바래고 어스름한 분위기였는데, 난 내가 실제로 방문했던 베네치아보다 소설 속의 베네치아에 더 빠져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후 한동안은 베네치아를 가장 좋았던 여행지라고 말하고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비둘기가 많아서 다시 가지는 못할 것 같다.) 그것이 소설을 읽으며 어딘가를 여행한,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경험이다.
소설을 읽고,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것. 교양 있고 돈 있는 여자들이 누리는 사치처럼 들려 괜히 나와는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사실 나도 무척 좋아하고 원하는 일이다. 문학 기행이나 유명인의 도서 추천 컨셉의 기획 도서들이 썩 내키지는 않지만 - 독서량 자랑처럼 보이거나, 개인적인 취향의 추천 이유가 공감되지 않아서 - 『소설가의 여행법』이란 제목을 듣고선 명품 백을 바라보는 된장녀처럼 ‘나 가끔 이런 거 하나쯤은 걸쳐야 쓰겄다’고 생각했다. 책은 예상대로 문학 속 배경이 되는 공간에 대한 사유와 함께, 그곳에서 살았던 작가와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게 안내한다. 문학 속 주인공 중 나의 이상형인 조르바가 되는 대로 날뛰던 에게 해의 크레타 섬과, 한때 오르한 파묵의 작품을 읽으며 꼭 여행할 곳으로 찜해둔 - 이렇게 찜해둔 곳은 꽤 많다 - 터키의 이스탄불, 폴 오스터 그 자체인 뉴욕이 이 책에 수록된 문학 여행지의 일부다. 게다가 언젠가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리는 블룸스 데이에 참여해서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 씨의 1일’ 같은 걸 해보자고 친구랑 약속하기도 했다. 그게 언제일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독서와 여행을 향한 허영 내지는 갈증을 해결해줄 괜찮은 기획 도서인 듯하다. (사실은 갈증 해소가 아니라 욕구 자극이 될 것 같다.) 작가 겸 교수 함정임이 썼다.   |  이민선

 

 

꽉 짜여진 코믹 연극 <게이 결혼식>

‘게이 결혼식’ 제목만 들어도 관심이 생긴다. 게이들의 인권을 소재로 한 다큐거나, 혹은 코미디일 확률이 높은데, 예상대로 2011년 프랑스에서 크게 흥행했다는 코미디 연극이었다. <라카지오폴> 같은 게이 코믹극을 예상했으나, 실제 게이를 소재로 한 작품은 아니다.
이성애자가 동성과 동거를 넘어 결혼식을 올린다. 게이 결혼식을 올리는 앙리는 게다가 타고난 바람둥이다. 열 여자 마다하지 않은 그가 연애 사업에 지장을 초래할 게이 결혼식을 왜 올리는 것일까. 대부분의 신파 코미디는 사랑과 돈으로 설명되듯 이 작품 역시 그렇다. 앙리가 친구 도도와 거짓부부 행세를 하는 것은 돈 때문이었다. 고모의 유언에 따라 결혼 후 1년이 지나면 100만 유로를 상속받게 되는데, 그 유산이 탐이 나 모태 바람둥이 앙리가 무수한 연애 상대인 여자들 대신 남자를 아내(?) 또는 남편(?)으로 선택한 것이다. 앙리와 도도는 언제 올지 모르는 결혼 감시관을 기다리며 거짓 결혼 생활을 한다. 그런데 정작 나타난 것은 앙리의 아버지다. 동시에 앙시의 여자 친구가 찾아오는데, 거짓을 모면하기 위한 새로운 거짓, 그리고 그 거짓을 해명하기 위해 거짓들의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게이 결혼식>은 유산에 욕심낸 앙리의 거짓 결혼으로 인한 해프닝으로 공연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게 한다.
거짓말이 치밀하게 맞물려 들어가 재미를 주었던 <라이어>와, 일본 연극 <너와 함께라면>이 떠오르는 작품이다. 실제 두 작품에 출연했던 타고난 코믹 감각의 유전자를 가진 배우, 노진원과 서현철이 이 작품에도 출연한다. 다양한 캐릭터를 자유자재로 소화하는 최덕문과, 코믹한 연기를 능청맞게 해냈던 <노래방에 가서 얘기 좀 할까>의 우지순 등 코미디에 일가견이 있는 배우들이 총출동 했다. 이 작품의 한국 연출이 민준호라는 것도 작품을 기대하게 한다. 민준호는 2인극 <극적인 하룻밤>과 <그 자식 사랑했네>에서 멜로 코믹 드라마를 매우 훌륭하게 소화해낸 배우 출신의 연출가이다. 코미디를 잡아내는 동물적인 배우의 감각과 연출력이 결합되어 작품을 유쾌하게 풀어갈 것이다. 3월 1일~7월 1일 / 학전블루 소극장 / 02)766-3440 |  박병성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2호 2012년 3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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