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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뮤지컬&컬처 | [프리뷰] PLAY [No.104]

글 |이민선 2012-05-26 4,042

복고가 최신을 넘어선다 <천변 카바레>

 

공연을 많이 보다보면 조금 다른 방식으로 관람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내 좌석의 왼쪽과 오른쪽, 앞과 뒤, 대각선 모두에 두툼한 등받이와 팔걸이가 장착된 의자들이 엄격하게 열지어 있고, 나의 머리통과 몸의 움직임은 매우 조심스러워지는 공연을 주로 보다보면, 천천히 뭘 좀 먹어가면서 운신도 자유로운 상태에서 공연을 즐기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고 싶으면, 집에 가서 TV나 보라고? 음, 예를 들면, 입장료에 원 프리 드링크가 포함된 밴드 공연을 볼 수 있는 클럽들도 있고,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면서 웬 ‘노래 불러주는 남자’의 이야기를 엿들을 수도 있잖은가. 국내에서 중년층을 대상으로 송년 기념 또는 어버이날 기념으로 기획되는 디너쇼는 식사에도 격을 갖추고 상당히 성대하게 열리고 있지만, 지금 그런 무대에 서는 왕년의 가수들 중 상당수는 과거에 훨씬 규모가 작은 동네 카바레에서 쇼맨십을 뽐내곤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카바레에선 쇼를 이끄는 가수보다 손님들이 주인공이 되어 스테이지를 밟는 경우가 많았을 것으로 생각되나, 유럽의 카바레는 식음과 공연 관람을 함께하는 공간이었다. 1960~70년대에 국내 대중가요의 라이브 유통망으로서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카바레라는 공간에 걸맞은 가수 배호의 노래가 핵심이 되는 공연이 2010년 초연 이후 세 번째로 재공연된다. <천변 카바레>는 과거 한국의 카바레가 배경인, 유럽식 카바레에서 보았음직한 유쾌하고도 애상적인 음악극이다. 아쉽게도 <천변 카바레>에서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다면, 웨이터가 서빙해주는 술과 음식이다.

 

가수 배호를 아는가. 30대 이하의 젊은이들에게는 익숙지 않은 이름이지만, 50대 이상이라면 짧은 음악 인생 동안 300여 곡을 남기고 29살에 요절한 스타 배호를 잊지 못할 것이다. 1971년에 세상을 떠난 배호이건만 1990년대까지도 그의 음반이 불티나게 팔렸으며, 그중 상당수는 진짜 배호가 부른 것이 아닌 가짜 배호가 모창한 것들이라,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 ‘배호가 직접 부른 음반을 알려 달라’는 질문이 올라올 정도다.<천변 카바레>는 배호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시절, 촌놈 춘식이가 ‘천변 카바레’를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배호의 노래를 한번 듣고 싶어서 카바레에 왔다가, 촬스라는 이름의 웨이터가 된 춘식. 그는 무대 옆에서 배호의 노래를 들으며 따라 부르곤 하다가, 배호가 죽은 다음에는 배호와 닮은 외모와 목소리로 그 대신 무대에 서기도 한다. 극 중에서 배호와 춘식은 한 사람이 연기한다. 뮤지컬에서 활약하고 있는 최민철은 중저음의 느끼한 목소리로 배호의 노래를 그럴듯하게 소화해내며, 촌스럽고 비열한 데가 있지만 미워할 수 없는 춘식을 연기한다.

 

 

<천변 카바레>는 ‘두메산골’과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충단 공원’ 같은 배호의 히트곡과, 당시 유행했던 ‘커피 한 잔’과 ‘거짓말이야’, ‘노란 샤쓰의 사나이’ 등을 골고루 들려주는 가운데, 배호를 동경하며 폼 나게 살고 싶어 했던 춘식의 꿈과 좌절, 성장담이 펼쳐진다. 주크박스 뮤지컬처럼 드라마와 노래가 적절히 엮여 있으나, 좀 더 노래 쇼 중심이라 40여 년 전의 한 카바레를 방문한 듯 눈과 귀가 즐겁다. ‘님과 함께’부터 ‘기억의 습작’까지 시대를 달리하며 가요의 ‘다시 듣기’가 트렌드인 때다. ‘그때 그 음악’이 최신 가요보다 신선한 시대에, 시대를 거스른 카바레형 공연을 경험해보는 것도 새로울 듯. 또 알겠는가, 곧 카바레 공연이 신상으로 떠오를지.

|   5월 15일 ~ 5월 26일 /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 02) 440-0500

 

 

그녀가 원한 것은 무엇인가 <헤다 가블러>

전 세계에서 입센의 희곡이 셰익스피어의 작품 다음으로 많이 공연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 놀랐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야 국내에서도 거의 일 년 내내 공연 포스터를 볼 수 있을 정도라 공연장 점령 기네스에 올랐다고 해도 놀랍지 않지만, 입센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희곡은 『인형의 집』이나 『페르귄트』 정도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친숙하지는 않다. 그에 비하면 『헤다 가블러』는 더욱 낯설다. 120년 전에 초연된 작품이지만, 국내에서는 소규모 아마추어 공연이나 투어 공연을 제외하곤 제대로 무대화된 적이 없다. 헤다 가블러는 당시 노르웨이에서 최상류층에 속했던 장군의 딸이다. 유능한 학자 테스만과 결혼했지만 안정적인 결혼 생활에 따분함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부부를 찾아온 테아와 뢰브보르그. 테아는 헤다의 동창이며, 뢰브보르그는 헤다의 옛 애인이며 테스만의 라이벌격인 친구이다. 뢰브보르그는 곧 굉장한 작품을 출간할 예정이다. 그가 쓴 원고를 둘러싸고 테스만의 위기의식과 브라크 판사의 권력욕, 그리고 무엇보다도 헤다의 파괴욕이 화학 반응을 일으켜, 뢰브보르그의 죽음에 이어 헤다의 자살로 끝이 난다. 미국의 평론가 헤롤드 블룸은 헤다를 클레오파트라와 이아고를 잘 융화시킨 인물이라고 했다.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에게는 ‘나일강의 뱀’이듯 헤다 역시 타인의 삶을 뒤바꿔 놓는 뱀과 같은 속성을 지닌 동시에, 이아고처럼 음모를 꾸며 상대를 파멸에 빠뜨리고 망쳐놓는다. 대체 무슨 이런 여자가 다 있나 싶은가. 그래서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라고 뭉뚱그리지 않는가. 인물의 심리 묘사와 드라마를 따라가다 보면, 그녀를 이해하고 또 관객인 자신도 돌아보게 될는지도. 해외에서는 잉그리드 버그만과 케이트 블란쳇 등 유명한 여배우에게 헤다 역이 주어졌으며, 누가 헤다를 연기하느냐에 따라 작품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정평이 나 있다. 독보적인 연기색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이혜영이 한국의 헤다로 오랜만에 무대에 선다.

|   5월 2일 ~ 5월 28일 / 명동예술극장 / 1644-2003

 

 

 

소극장에 대형 웃음 폭탄 투척 <키사라기 미키짱>

코믹 추리극 <키사라기 미키짱>에는 다섯 명의 남자가 필요하다. 먼저, 1년 전 죽은 아이돌 스타 미키 짱의 추모식을 위해 팬들을 불러 모은 이에모토. 이 남자가 갖춰야 할 조건은 번듯한 직장과 번듯한 외모, 냉철하고 깔끔한 성격에 수집 및 정리벽 정도는 애교다. 잘난 놈들은 저 잘난 줄 안다고, 그도 스스로 완벽하다고 믿었다. 다른 팬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덤벙거리며 추모장에 처음으로 등장한 야스오. 그는 시골에서 갓 올라와 도시남에게 뒤지지 않으려 잔뜩 차려입고 와선 자신의 ‘투 머치’ 패션을 자학하며 추모식 내내 민폐를 끼친다. 하지만 내내 무시당하는 그가 그리 천진할 수 있었던 것은 ‘알고 보니 가진 자의 여유’ 덕이었달까. 미키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타살이었다는 주장으로, 추모식을 추리식으로 만드는 차갑고 날카로운 인상의 키무라 타쿠야. 그가 밝혀야 할 것은 미키 사망의 진위뿐만 아니라 자신의 과거 굴욕까지 세트였으니, 차도남의 정색에는 이유가 있다. 말로만 들어선 가장 혐오감 느껴지는, 나이는 아빠뻘에다 변태적 취향의 딸기소녀 님은 ‘사생팬’다운 면모까지 갖추고 계시다. 도를 넘어선 사생팬의 사연은, 하,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다. 그저 거칠고 경박한 스네이크가 어깨에 잔뜩 힘을 넣을 수 있었던 건, 그가 직업을 바꿔서라도 경험해보고 싶은 ‘연예인 집 근처 마트 배달원’이라는 사실 때문. 그의 외모는 양아치지만 마음은 순정파다. 이렇게 다섯 명이 모이면, 게임 끝이다. 그들이 각자의 성격과 경험에 따라 한마디씩 내뱉을 때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놀라운 사실이 밝혀지고, 객석에선 웃음이 빵빵 터진다. 캐릭터와 드라마가 한 몸처럼 굴러가니 무대를 향한 집중력이 끊어지지 않는다. 다섯의 기억이 하나로 모여 대체 미키는 어떤 소녀였는지, 어떻게 세상과 등졌는지 퍼즐 조각이 맞춰진다. 장님들 각자가 알고 있는 코끼리의 모습을 이어보니, 전혀 예상치 못한 다른 동물이 탄생하는 격이다. 하지만 그들이 미키에게 품고 있었던 순수한 애정만은 변함없다. 독수리 오형제가 합체하자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듯, 삼촌 팬 다섯이 모여서 비로소 완벽해지는 팬심이, 실로 사랑스럽다.

|   4월 28일 ~ 오픈런 / 대학로 예술마당 2관 / 1588-0688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4호 2012년 5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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