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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칼럼] 48인의 소녀와 키사라기 미키 짱 [No.106]

글 |김영주 2012-08-01 4,199

처음 AKB48이라는 희한한 걸그룹이 일본에서 인기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설마 멤버가 48명은 아니겠거니 했다. 짐작대로 48명은 아니었는데, 반전은 48명보다 더 많다는 사실이었다. 싱글을 발매했다 하면 첫 주에 100만 장을 넘겨버리는 괴물 같은 파괴력을 자랑하며 일본 음반 시장의 선두에 서 있는 이 아이돌 그룹은 최근 ‘총선거’라는 거창한 행사를 치르면서 국내에서도 꽤나 화제가 되었다.

 

 

일본 오타쿠들의 성지로 유명한 아키하바라 지역에 있는 상설 극장을 본거지로 두고 ‘만날 수 있는 아이돌’이라는 컨셉으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소녀들이 A팀, K팀, B팀으로 돌아가면서 매일 공연을 한다. 예닐곱 시간씩 서서 팬들과 계속 악수를 하면서 간단한 대화를 하는 악수회는 이 걸그룹의 기본 노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가장 중요한 이벤트는 역시 얼마 전 4회째로 치러졌던 총선거이다.

 

우스갯말로 일본의 3대 선거 중 하나라고 하는 이 행사는 총선 직전에 발매한 싱글을 구입한 팬이 CD에 들어있는 투표 응모권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에게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 총합으로 1위부터 64위까지 멤버들의 순위를 매기고, 결과에 따라 다음 싱글 곡에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참여할 수 있을지 여부가 결정된다. 멤버들은 선거를 위해서 홍보 포스터와 정견 발표 영상을 찍고, 중간 성적이 속보로 전국에 알려지는데 올해 처음으로 최종 결과가 공중파 TV를 통해 생중계 되었다. 이번 총선 결과 발표 중계의 순간 시청률은 20퍼센트를 넘어섰다.

 

AKB48뿐만 아니라 나고야 지역에서 활동하는 자매 그룹 SKE48, 오사카 지역의 NMB48의 멤버들에게도 모두 피선거권이 있기 때문에 연습생까지 약 243명의 소녀들이 참석하는 대규모의 행사로 부도칸 극장에서 치러졌다. 멤버들의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이 이벤트를 지켜보면서 울고 웃는 어린 소녀들의 모습에 몰입하게 된다.

 

단상에 선 멤버들은 자신을 지지해준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앞으로의 포부를 말하는데 받아든 성적이나 캐릭터에 따라 그 반응도 제각각이다. 당차게 선배들에게 도전하겠다고 말하는 멤버가 있는가 하면, 우느라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멤버도 있고, 자신보다 AKB라는 팀에 대해 더 많이 말하는 멤버도 있는데 그 이야기는 모두 그들이 지금까지 팬들에게 보여준 각각의 스토리에서 이어지는 것이다. 거의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것은 지금 자신이 꿈을 위해 달려가고 있고, 그 꿈을 지지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이다.

 

이들이 부른 히트곡들 중 상당수를 ‘학원물’이라고 분류해도 무리가 아니다. 뮤직비디오에는 급우를 위한 서프라이즈 생일 파티, 싸우고 서먹해진 친구들이 나란히 자전거를 달리면서 마음을 열고 화해한 일, 벚꽃이 흐드러지게 흩어지는 날의 졸업식 등 소녀들의 성장기가 애틋하고 아름답게 윤색돼 담겨 있다.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하드한 스케줄을 소화하는 멤버들은 대중이 기대하는 이미지를 연기하기 위해서 직장 동료에 가까운 팀 메이트들과 함께 가상의 학창 시절을 연기한다. 현실의 여학교와 달리 사랑스러운 아이들만 모여서 자기들끼리 울고 웃는 그 환상적인 공간은 많은 중독자들을 낳았다.

 

좋아하는 멤버에게 좀 더 좋은 기회를 주기 위해 CD를 무리하게 사느라 사채를 끌어 쓴 사람도 있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들릴 만큼 그 아이들의 성장 스토리에 지나치게 심취한 사람들이 생기면서 사회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지만 일단 흐느끼면서 감사 인사를 하는 어리고 예쁜 소녀들을 보면 그런 문제들은 잊게 된다.

 

한국에서도 아이돌들이 10대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삼촌팬, 이모 팬으로 불리는 사회인들에게까지 뜨거운 사랑을 받게 된 지 오래이지만 일본과의 정서 차이는 분명해 보인다. 한국에서는 어쨌든 무대에 서는 사람이라면 프로페셔널로서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과 외모를 보여주어야만 한다. 솔직히 말해서 AKB48의 인기 멤버들 중 몇몇은 외모나 실력으로만 보면 한국에서는 아이돌로 데뷔하기 어렵겠다 싶다. 지하철만 타도 쉽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그야말로 평범한 외모의 멤버부터 모델 느낌이 나는 장신의 미소녀까지 다양한 타입이 있는데 미모 순이 인기도와 일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실력대로 인기 멤버가 정해지는 것도 아니다. 올해 총선에서 깜짝 4위를 한 사시하라 리노의 경우 뭐든지 서툴다는 이미지가 그녀의 가장 중요한 세일즈 포인트였다.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며 에이스로 군림해왔던 마에다 아츠코 역시 노래든 춤이든 연기든 뭣 하나 특출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만인이 인정할 만한 미인도 아니다. 그녀를 ‘부동의 센터’로 군림하게 한 것은 특별할 것 없는 소녀가 최고의 아이돌 스타가 된다는 그 스토리 자체의 매력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연기를 하거나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힘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캐릭터에만 맞다면 못하면 못할수록 좋을 수도 있다. 어설픈 덜렁이 키사라기 미키가 그랬던 것처럼, 부족하고 재능도 없지만 꿈을 위해서 힘껏 달리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라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왜냐면 나 역시도 그렇게 부족하고 특별한 게 없으니까. 나처럼 별 볼 일 없지만 그래도 내 응원에 힘입어서 꿈을 향해 달려가는 아이돌의 환한 미소만 있으면 현실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다는 것이 키사라기 미키의 그 남자들과 AKB48을 사랑하는 팬들의 변이다. 나의 미키짱이 환하게 웃는 것을 보기 위해 1,700장의 CD를 구입하기도 하고, 빚을 지기도 한다. 실제의 연애는 상호적인 것이라 내 마음을 아프게도 하고 안 그래도 버거운 현실을  더 무겁게 하지만 환상 속 소녀라면 내게 그저 힘내세요, 응원해줘서 고마워요, 당신이 있어서 저는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어요 이상의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이쯤 되면 아이돌이 현대인의 비타민인지 아편인지는 모르겠다는 기분이 들지만, 어디에나 극단적인 경우는 있으니까라고 좋게 생각할 수도 있다.

 

다만 그 환상을 만드는 것이 자신의 현실인 소녀들은 괜찮은 걸까 싶다. 모든 면에서 서툰 것이 매력 포인트였던 멤버 사시하라 리노는 총선에서 깜짝 4위를 차지한 후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터진 팬과의 스캔들로 인해 AKB48에서 퇴출되어 아카타 지역 기반의 자매 그룹 AKT48로 이적을 당했다. 일본 연예계를 뒤흔든 이 사건으로 후발 그룹 AKT48에 대한 관심이 올라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애초의 큰 그림을 그리고, 이런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것은 모두 총 프로듀서인 아키모토 야스시라는 기이한 인물의 역할이다. 17세에 라디오 대본에 참여하기 시작한 방송작가이고 미소라 히바리부터 나카시마 미카, 킨키키즈 등의 히트곡을 작사했고 원조 걸그룹인 오냥코 클럽의 프로듀서였던 그는 늘 ‘사람들은 어떤 것을 더 재미있어 할까’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저 당연하면서도 매몰차기 짝이 없는 신조대로 그가 짜놓은 드라마 속에서 소녀들은 열심히 꿈을 향해 달리고, 삼촌들은 소녀들의 꿈이 자라는 것을 보며 울고 웃는다. 이 흐름 중에서 긴 시간이 지난 후에 여전한 가치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진짜’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 이 무거운 인생에는 환상이라는 오아시스가 필요하다지만, 그 오아시스가 사람을 더욱 피폐하게 만드는 신기루인지 아닌지는 언제 알 수 있을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6호 2012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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