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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클래식 리뷰]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지젤> 내한공연 [No.107]

글 |김영주 사진제공 |더에이치엔터테인먼트 2012-08-06 3,491

새 별이 떠오르고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 프로그램 <호두까기 인형>을 제외하면 <백조의 호수>와 함께 가장 자주 무대에 올라가는 작품이 <지젤>이다. 발레 초심자들이 집중해서 감상하기에 좋은 아름답고 환상적인 분위기의 작품으로, 김연아의 프로그램 음악으로 쓰이면서 대중적인 관심도가 올라가기도 했다. 이 작품은 원래 한국 관객들이 좋아하는 드라마틱한 스토리 덕분에 흥행 면에서도 늘 성적이 좋았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발레단, 가장 뛰어난 솔리스트를 거느리고, 가장 다양한 레퍼토리를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는 단체가 어디냐는 질문에 적어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이하 ABT)의 <지젤> 내한 공연과 관련해서 가장 화제가 되는 것이 어쩌다가 ‘흥행 참패’가 되었는가임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하지만 어리석은 기획사가 40만 원짜리 티켓을 내놓은 탓에 객석의 1/3이 비었어도 컴퍼니의 클래스는 변하지 않았고 작품의 가치 역시 달라지지 않았으니 이 좋은 공연을 더 많은 관객들이 볼 수 없었다는 사실에 대한 안타까움은 이쯤 해두련다.

 

최근 2년 사이에 기억할 만한 <지젤>만 해도 마린스키 발레단의 내한 공연, 파리 오페라 발레단 버전으로 수석 무용수와 연출가까지 모셔온 국립발레단의 공연, 그리고 ABT의 이번 공연까지 보았으니 발레 왕국 러시아, <지젤>의 본거지 프랑스, 신흥 강호 미국의 <지젤>을 모두 본 셈이다. 일단 러시아의 <지젤>은 차가울 만큼 정확했다. 특히 윌리들이 숲에서 힐라리온을 살해하는 장면은 마린스키 군무수들의 저력이 제대로 드러났다. 하늘하늘 나풀거리는 흰 로맨틱 튀튀를 입은 요정 같은 여인들의 몸짓과 음악만으로도 호러 영화를 방불케 하는 섬뜩한 공격성을 느끼게 했다. 발레로 첫걸음을 뗀 순간부터 바가노바 스쿨에서 함께 호흡을 맞춰 온 댄서들로 이뤄진 마린스키의 특성대로 칼같이 떨어지는 일사불란한 몸짓에서 만들어지는 에너지는 파리 오페라 발레단 버전의 우아하고 세련된 서정성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반면 ABT의 <지젤>에는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미국적인 유머와 직설적이고 현실적인 드라마가 있다. 러시아와 프랑스 식 <지젤>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신선하거나 낯설 것이다. 그 미국식 드라마를 완성하는 것은 알브레히트 역의 코리 스턴스였다. 눈이 번쩍 뜨이는 기교는 없지만 안정적이고 충실한 스타일에 젊은 파워가 느껴지는 그는 직선적으로 와 닿는 감정 표현으로 작품의 결말을 꿈에서 깨어난 후 보게 되는 현실의 공간으로 돌려놓았다.

 

 

지젤 역을 맡은 서희는 ABT에서 프리시펄 댄서로 승급한 직후에 가진 내한 공연에서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과제를 너끈하게 해치웠다. 스물다섯의 어린 나이에 ABT 역사상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수석 무용수라는 자리에 오를 만한 저력이 무엇이었는지, 컴퍼니가 그녀에게 어떤 것을 기대하는지 충분히 알게 해준 공연이었다.

 

세계 발레 드림 팀의 명성을 안겨주었던 알렉산드라 페리, 니나 아나니아시빌리가 차례로 은퇴를 했고 이제 줄리 켄트와의 작별을 서서히 준비해야 하는 ABT로서 그만한 존재감과 스타성을 가진 프리마 발레리나를 발굴하는 것은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였을 것이다. 서희는 이상적인 신체 조건과 마린스키 스타일로 연마해온 기본기를 더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독특한 존재감으로 작품에 색다른 정조를 창조했다. 1막에서 그녀를 과보호하는 어머니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소녀라기보다는 출생의 비밀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은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드라마 퀸의 오버 액션이 없는 광란의 지젤 장면에서 모던한 심리극을 보는 것 같은 표현도 인상적이었지만 서희가 제대로 빛난 것은 역시 2막에서부터였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 낭만 발레의 목적이라면 서희는 그에 100퍼센트 부합하는 댄서였다. 목에서 어깨, 등으로 흐르는 감정 표현, 리프트 상태에서 손끝에서 발끝까지 이어지는 이상적인 라인, 새의 날개처럼 부드럽고 가볍게 움직이는 발등의 아름다움은 보는 이들을 다른 세계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최근 ABT에서 낭만 발레와 모던 발레, 클래식 발레에 두루 기용되고 있는 그녀의 다음 내한이 기대된다. 이제부터는 진짜 별의 행로가 시작된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7호 2012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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