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뮤지컬&컬처 | [프리뷰] <필로우맨> <오타루의 여인들> <휴먼코메디> [No.107]

글 |이민선 2012-08-27 4,613

작가는 작품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필로우맨>

 

작가를 동경하는 사람으로서, 작가가 쓴 결과물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물론이고, 작가와 그의 작품과의 관계, 즉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쓰게 되는지 보여주는 작품은 더욱 흥미롭다. 그런 작품들을 보다보면 작가가 자전적인 사연을 작품에 담아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결과인 것 같으면서도, 그런 자기 고백적인 작품을 쓰는 건 상상력 부족처럼 보이기도 한다. <필로우맨>의 주요 줄거리는 어린이 살해 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는 것이지만, 용의자로 붙잡혀온 작가와 그의 작품 내용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어떤 이야기를 썼으며, 왜 썼는가, 그리고 그 이야기는 독자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 작가로서 고민해볼 많은 질문들이 내재돼 있는데, 그렇다면 마틴 맥도너는 <필로우맨>을 왜 썼을지, 질문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작품이다.

 

 

경찰 취조실, 어린이 살해 사건의 용의자로 작가 카투리안과 그의 형 마이클이 잡혀와 있다. 카투리안이 쓴 이야기와 같은 방식으로 아이들이 살해됐기 때문이다. 형 마이클은 어릴 적 부모님으로부터 학대를 받아 일반인보다 지능이 부족하다. 이런 부모의 만행을 알게 된 카투리안은 학대하는 부모 아래에서 자살하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다수 썼다. 작가의 경험, 즉 현실이 이야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가 쓴 이야기대로 아동 살해 사건이 일어났으니, 그 이야기는 다시 현실이 되었다. 이번 공연의 연출을 맡은 변정주는 이 작품을 통해 “현실과 이야기의 관계, 과연 그 둘을 구분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와 이야기를 듣는 독자의 위치 또한 유동적이다. 분명 작가는 글을 쓰고 독자들은 그것을 읽지만, 독자들의 경험이 곧 작가의 소재가 되니 독자들이 이야기를 만든 진짜 작가라고 볼 수도 있으니까.

 

<필로우맨>에서는 ‘필로우맨’을 포함하여 카투리안이 쓴 일곱 개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그 이야기들은 살인 사건에 영향을 미친 잔혹 동화로 등장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스토리텔링’ 기법을 보여주는 기능도 하고 있다. 일반적인 기승전결식 전개를 거부한 이야기, 한 이야기가 또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 작가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 등 각각의 작품은 ‘스토리텔링’에 대한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다. 게다가 형사들이 고문하고 취조하는 일 또한 스토리텔링 방식과 비슷하다. 조각난 단서를 끼워 맞춰서 매끄럽게 완성된 한 편의 사건 진술서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말이다. 이만하면 <필로우맨>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 지침서라고 할 만도 하다. 1막 2장과 2막 2장에서 카투리안이 쓴 이야기가 무대 위에서 재연되는데, 연기가 아닌 내레이션의 형식을 취한다. 그 순간 배우는 카투리안이 아닌 작가로서 관객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역시 ‘스토리텔링’에 포인트를 둔 연출이다.

 

극 중에서 카투리안이 말하듯이 “작가의 첫 번째 의무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아니 작가의 유일한 의무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이야기가 만들어진 후에 그것을 분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그러니 마틴 맥도너가 쓴 <필로우맨>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는 것 또한 작가 입장에서는 독자들이 알아서 잘 노는 걸로 보일 테지. <필로우맨>은 2003년에 영국에서 초연했고, 국내에서는 2007년에 첫선을 보인 바 있다. 국내 초연은 유명 배우 최민식의 출연 덕인지 넓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됐다. 소극장 Space 111에서 열리는 이번 공연은 무대를 향한 집중력이 좀 더 높아질 듯하다. 김준원과 손종학, 이현철, 조운, 네 배우가 두 형제와 두 형사를 연기한다.

 

|   사진제공  노네임씨어터컴퍼니   8월 11일 ~ 9월 15일 / 두산아트센터 Space 111

 

 

절망적인 끝은 다시 희망찬 시작으로 <오타루의 여인들>

70년의 전통을 지닌 일본 극단 분카자가 자국에서 2008년에 첫선을 보인 연극 <오타루의 여인들>을 가지고 한국에 온다. <오타루의 여인들>의 배경은 일본의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지만, 드라마의 정서는 시대와 국가를 넘어 공감할 수 있다. 에도 시대에서 메이지 유신으로 넘어간 후인 1800년대 말, 아야노를 중심으로 여덟 명의 등장인물들이 혈연보단 의리로 가족처럼 모여살고 있다. 이들은 4년 전 도쿄에서 살다가 홋카이도 서부의 도시 오타루로 이주해왔다. 자본주의가 성립되고 근대화가 추진되던 메이지 유신하에서 고위직을 맡고 있던 벳쇼를 따라 그의 첩인 아야노, 아야노의 일꾼 오세키와 긴지 등이 함께 신천지라 알려진 오타루에 둥지를 튼 것이다. 이 시기의 오타루는 러시아와 교역을 위해 부두가 건립되고 철도가 개통되면서, 삿포로와 하코다테 등지와 함께 홋카이도 개척 사업의 결과로 급속도로 성장을 이루고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던 때였다. 하지만 아야노 일행은 조금 다른 꿈을 품고 이곳에 온다. 아야노와 오세키는 상처 입은 과거를 잊고 새 출발을 하기 위해 미지의 땅으로 향하는 결심을 감행하고, 다른 일행들은 오랫동안 모셔온 주인마님과 어머니를 지키고자 먼 길을 따라 나섰다.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반찬 가게를 운영하고 인력거꾼으로서 생계를 유지해 나간다. 그들이 개척하고자 했던 것은 척박하고 추운 땅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이었다. 하지만 개발 이익을 노린 땅 장사꾼들의 행패로 결국 힘들여 일군 가게를 잃는다. 그들은 또 다른 곳을 찾아 떠나야 했지만,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희망과 생명력만은 잃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고 사회가 급변할 때마다 그에 휘둘려 삶의 변화를 강요당하는 소시민들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다. 청어 냄새 가득한 오타루 항에서 끝을 새로운 시작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의지하는 또 다른 것은 일본 민담에 나오는 ‘테케렛츠노파’라는 주문이다. 주문이 거대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나약한 인간들에게 희망을 품게 한다.

|   사진제공  공연문화산업연구소   8월 11일 ~ 12일 /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 대극장

 

 

10주년을 맞은 착한 코미디 <휴먼코메디>

뜨거운 더위를 웃음으로 날려버릴 다섯 편의 코미디 연극이 ‘대학로 코미디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공연된다. 그중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휴먼코메디>는 10년째 사랑받고 있는, 한국 코미디 연극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이다. 사다리움직임연구소는 기승전결에 초점을 맞춰 스토리를 전달하기보다는 움직임의 언어를 통해 드라마를 좀 더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창작 집단이다. <휴먼코메디>는 ‘가족’과 ‘냉면’, ‘추적’이라 이름 붙여진 세 편을 묶어 옴니버스 형식으로 보여주는데, 각각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표현 방식이 기발하고 코믹하다. 최근 미디어에서 유행하는 말장난이나 가학적인 설정에서 오는 웃음이 아니라 리드미컬한 움직임과 표정 연기 등으로 좀 더 근본적인 유머를 선사해 오히려 더 신선하다. 광대 하면 떠오르는 빨간 코를 달고 나오는 배우들의 이미지도 정통 코미디의 맛을 더한다.
‘가족’에서는 아들이 뱃사람이 되어 떠나기 전, 아들을 붙잡아 두려는 가족들의 고군분투가 웃음과 눈물을 자아낸다. 말은 아끼고 배우들의 유연한 움직임과 호흡으로 무대를 채우며, 애틋한 상황을 표현하는데도 웃음이 터지게 만든다. ‘냉면’ 편에서는 라이브 노래와 함께 마임 연기를 맛볼 수 있다. 이때 들린 ‘맛 좋은 냉면이 여기 있소, 값 싸고 달콤한 냉면이요. 냉면 국물, 더 주시오. 아이구나 맛 좋다’는 후렴구가 내내 귀에 맴돌며, 귀가 시 배경음악으로 무한 반복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 ‘추적’ 편에서는 퀵체인지의 진수를 감상할 수 있다. 최근 몇몇 작품에서 벽을 사이에 두고 한 배우가 두 사람으로 변신을 거듭하는 장면을 어렵잖게 볼 수 있었는데, 그 설정의 원조는 <휴먼코메디>이다. 여섯 명의 배우가 모텔 주인과 경찰, 기자 등 열네 역을 맡아, 모텔에서 일어난 사건을 속도감 있게 전달한다. 한 인물이 재빠르게 다른 인물로 변신하는 놀라움에 입이 벌어지고, 절묘한 타이밍에 치고 빠지는 연기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넋을 놓은 채 바라보았던 ‘추적’ 편의 비밀은 공연의 마지막에 관객 서비스로 공개한다. 닷새간 관객을 만나는 <휴먼코메디> 10주년 기념 공연에는 10년 전 초연 멤버들이 참여해 눈길을 끈다. 올해로 2회를 맞는 ‘대학로 코미디 페스티벌’에서는 <휴먼코메디> 외에도 <위선자 따르뛰프>, <시라노>, <에어로빅 보이즈>, <유쾌한 하녀 마리사>를 볼 수 있다.

|   사진제공  한국공연예술센터   8월 29일 ~ 9월 2일 /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7호 2012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