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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칼럼] 문학과 연극의 만남, 어떻게 진화할까 [No.113]

글 |이민선 2013-02-28 3,821

지난 1월부터 오는 3월 10일까지 산울림소극장에 ‘소설, 연극으로 읽다’라는 부제하에 다섯 편의 공연이 각각 10여 일간 무대에 오른다. <검은 고양이, 심술궂은 어린 악마, 모렐라>, <라쇼몽>, <변신>, <야간 비행>, <현진건 단편선-새빨간 얼굴>,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모두 고전을 기반으로 한 공연이다. 임수진 극장장은 “시청각적 이미지를 더해, 많은 이들이 어렵고 지루하다고만 생각했던 고전을 좀 더 쉽고 재밌게 보여주고자” 이번 공연을 기획했다. 고전을 희곡으로 각색한 연극이나 단순히 고전을 읽어주는 낭독회가 아닌, 원작에 대한 연출가의 해석이 더해진 낭독 공연을 지향한다. 이 기획에 참여한 극단 여행자의 이대웅 연출은 “두 형식의 만남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소설 속 문장과 무대 언어의 만남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소설 본래의 텍스트를 충실히 살린 공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9년부터 선돌극장은 ‘배우가 읽어주는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낭독 공연을 선보였다. 배우가 낭독과 연기를 겸하며 소설을 읽어줄 때, 간간이 배경음악이나 효과음이 흘러나오고, 무대 뒤 스크린에 관련 이미지가 투사되기도 했다. 지난 1월에는 네 번째 시리즈로, 소설가 박완서의 2주기를 맞아 『해산바가지』와 『촛불 밝힌 식탁』, 『대범한 밥상』 단편소설 세 편의 낭독 공연이 펼쳐졌다. 과거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을 선보인 바 있는 성기웅 연출은 2010년에 소설가 박태원의 소설을 무대화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내놓았다. 연극 무대 위에서 움직이며 연기하는 배우들이 인물들의 대사를 포함한 소설 속 문장을 그대로 발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원작의 문학성을 살린 것은 물론이고 신선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연극적 성취도 이뤄냈다. 이후 소설을 무대화하는 작업들이 차츰 늘어났다. 산울림 소극장에서 2011년 ‘단편소설 극장전’과 2012년 ‘단편소설 입체낭독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낭독과 연극을 결합한 공연들이 소개됐다.

 

창작자들이 희곡이 아닌 소설을 무대화할 때 매력을 느끼는 지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연극을 위해 쓰이지 않은 텍스트를 활용한다는 데 있었다. 다자이 오사무에 이어 현진건의 단편소설을 묶은 공연을 준비 중인 양손프로젝트 대표 양종욱의 말을 빌리자면, 소설을 재료로 해서 “기존에 경험한 것과는 다른 연극 문법을 발견하는 자극을 받으며, 희곡을 무대화하는 것 이상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 레이몬드 카버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 민새롬 연출은 “연극이 소설이 지닌 문학성의 수혜를 받는다”는 점에서도 매력을 느꼈다. 관객의 입장에서 소설은 희곡보다 쉽게 접할 수 있어, 이미 알고 있는 소설을 새롭게 읽는 재미가 있다. 반대로 극장에서 들은 소설을 찾아봄으로써 독서와 관극의 경험이 확장된다. 평소에 좋아했던 문장의 감성이 무대 위에서 어떤 방식으로 치환되는지 기대하며 본다면, 색다른 감동을 느낄 듯하다.

 

창작자와 관객 모두가 바라는 ‘소설 새롭게 읽기’를 위해, 각 공연은 다양한 연출 방식을 택한다. 원작 소설이 지니고 있는 핵심 재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 <라쇼몽>의 경우, 연출가가 원작에서 소리라는 감각에 강한 영감을 받아 라디오 드라마 형식을 취했다. 일부 배우들이 마이크 앞에서 배역을 실감 나게 연기할 때, 다른 배우들은 뒤에서 악기와 도구 등을 이용해 직접 음향 효과를 냈다. 아날로그 방식의 ‘소리 내기’는 디지털 음향 및 음악과 함께 어우러졌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영상을 적극 활용했고, 이는 1930년대 시대상과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효과적이었다. 극단 청년단의 <코끼리>는 한 남자의 모노드라마로 각색됐고, 양손프로젝트의 <개는 맹수다-직소>는 세 배우가 한 인물을 나눠서 또는 동시에 연기하기도 했다. 연극의 표현 방식이 경계를 허물고 날로 다양해지고 있는 가운데, 양손프로젝트의 박지혜 연출은 소설로 공연을 만들 때 “가능한 연출 기법이 더욱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밋밋한 낭독 공연을 예상했던 관객이라면, 우려와는 달리 신선하고 기발한 공연을 보리라 기대해도 좋다는 의미다.

 

창작자들은 아직은 뭐라 규정할 수 없는 낭독 공연이, 원작의 충실한 전달과 완성도 있는 재창조 사이에서 어떤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할지 흥미로운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고민들을 통해 좀 더 진화하리라는 기대로, 차후 활성화 및 가능성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빈 무대를 문학 속 현실로 채우며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에서 “연극의 원형에 닿아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양손프로젝트 손상규)”는 말처럼, 창작자들은 소설이라는 재료를 통해 오히려 연극의 본질로 회귀하는 중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3호 2013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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