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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프리뷰] 2013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초현실주의와 사실주의의 공존 [No.121]

글 |송준호 사진제공 |한국공연예술센터 2013-11-06 4,523

지난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포스터는 머리가 감각적으로 쭈뼛 선 두 사람의 이미지를 담았다. ‘당신의 두뇌가 두근두근 뛴다!’라는 홍보 문구처럼 관객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해보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공연장을 찾은 일반 관객의 수는 기대보다 많지 않았다. 그동안 축제가 주로 무거운 사실주의 작품을 다뤄온 데다, ‘안티 힐링’이라는 반응까지 등장할 정도로 지적 탐구에만 치중한 초청작들의 경향 탓에 관객을 끌어들이는 데 실패한 것이다.


10월 2일부터 26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에서 펼쳐지는 올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작품성을 갖추면서도 대중적인 접근이 용이한 테마로 재정비했다. ‘초현실 VS 리얼리티’라고 정해진 올해 행사의 주제에서는 이 같은 주최 측의 고민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총 7개국 21단체의 19개 작품 중 아홉 편의 해외 초청작에는 초현실주의적 경향의 작품들이 배치된 가운데, 국내 초청작 10작품은 실존적 이슈로 작가 세계를 펼치고 있는 국내 예술가들을 조명한다.

 

거장의 진수가 담긴 작품들

 

가장 큰 관심을 모으는 작품은 단연 개·폐막작이다.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빅토르 혹은 권좌의 아이들(Victor ou les enfants au pouvoir)>은 잔혹극의 창시자 앙토냉 아르토가 1929년 알프레드 자리 극단을 이끌고 샹젤리제 극장에서 초연했던 작품을 리바이벌한 부조리극이다. 지난해 초연 당시 빅토르 역의 토마 뒤랑의 신들린 연기와 무대미술가 이브 콜레의 차갑지만 아름다운 무대로 격찬을 받은 바 있다. 창작 후 80여 년이 지났음에도 가족과 교육, 사회에 대한 작품의 시각이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이목을 집중시킨다.


폐막작인 벨기에 울티마 베즈(Ultima Vez) 무용단의 <육체가 기억하지 않는 것(What the Body Does Not Remember)>은 세계 현대무용을 이끄는 안무가 중 한 명인 빔 반데키부스의 데뷔작이다. 작곡가 티어리 드 메이, 피터 베르미어쉬와의 공동 작업으로 ‘춤과 음악의 잔인한 대결’로도 불린 이 작품은 1987년 당시 세계 무용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육체의 한계에 도전하는 듯한 폭발적인 움직임이 인상적인 이 작품은 이번에 2013년 버전으로 새롭게 재안무되어 무용단의 아시아 투어 일정에서 처음으로 공개돼 기대감을 자아낸다.  

한편 아시아를 대표하는 거장 스즈키 타다시와 그가 이끄는 일본 ‘도가 스즈키 컴퍼니’의 <리어왕(King Lear)>도 한국을 찾는다. 스즈키 타다시는 독자적인 배우 훈련법인 ‘스즈키 메소드’를 창안해 전 세계 연극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1984년 초연된 이 작품은 한일 합작 버전(2개 국어 버전)으로 새롭게 제작됐고, 한국과 일본 배우들이 함께 공연한다.

 

공연예술의 첨단과 만나다

미국 뉴욕의 멀티미디어 연극 단체 The Builders Association의 최신작 <손택: 다시 태어나다(SONTAG: Reborn)>는 미국 현대 연극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20세기 지성의 아이콘인 수전 손택의 동명 자서전을 그의 아들인 데이빗 리프가 각색한 장르 융합형 공연이다. 극단 ‘파이브 레즈비언 브라더즈’의 리더인 모 안젤로스가 무대 위 20대 손택과 영상 속 연로한 손택을 절묘하게 연기하는데, 특히 무대 위 배우와 영상 속 배우의 상호작용이 인상적이다.


제롬 벨, 보리스 샤르마츠, 크리스티앙 리조와 함께 프랑스 최고의 안무가 4인방 중 하나로 꼽히는 라시드 우람단은 <스푸마토(Sfumato)>로 무대에 오른다. 춤과 문학, 여행에서 얻은 영감을 안무화해온 우람단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대표적인 회화기법 ‘스푸마토’를 모티프로, 몸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독특한 표현 방식을 보여준다. 8분간 무대 위로 쏟아지는 폭우와 엄청난 회전력을 뽐내는 무용수들의 테크닉이 압도적인 스펙타클을 만든다.

창의력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으로는 <푄의 오후(L’apres-midi d’un Foehn)>와 <소용돌이(Vortex)>를 주목할 만하다. 일상적인 재료들에 독특한 발상을 가미해 새로운 퍼포먼스로 발전시켜온 피아 메나르 안무의 두 작품은 바람을 주제로 만든 시리즈다. 비닐봉투, 코트, 우산 같은 오브제들은 4.5m의 트랙 안에서 회전하는 바람에 실려 예측불가능한 움직임으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100석의 객석으로 둘러싸인 원형 무대에서 공연된다.

 

고전과 인간 실존에 관한 새로운 고찰

 

국내 초청작 중에는 『숙영낭자전』과 『심청전』, 그리스 비극 『메데아』 등 고전을 재해석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2013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호평을 받은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연극 <숙영낭자전을 읽다>는 규방 여인들의 한밤중의 수다를 극화한 작품이다. 이혜경&이즈음 무용단이 만든 무용 <꼭두질>은 『심청전』 중 뺑덕어멈이 재산을 탕진하는 부분만 따로 떼어 재구성했다. 김현탁 연출의 <메디아 온 미디어>는 미디어라는 매체를 활용해 메데아의 모습을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이 섹션에서 두드러지는 또 하나의 특징은 몸을 매개로 한 인간 실존에 대한 탐색이다. 젊은 여성 안무가의 대표 주자인 윤푸름과 차진엽은 정체성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 작품 <존재의 전이>와 장르 융합형 공연 로 독특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해외파인 장수미와 허성임이 함께 만든 역시 사춘기 시절 친구 사이에서 빚어지는 신체적 불안과 혼란을 흥미로운 몸짓으로 옮겼다.  

이밖에 대지진과 쓰나미를 모티프로 한국과 중국, 일본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는 <축/언>은 해외 초청작 섹션에 있지만 초현실주의와 사실주의의 중간에 있는 작품이다. 2011년에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현실의 우리에게 들이닥친 초현실적인 재앙의 후유증을 어떻게 공유하고 미래에 대처할 것인지 담담하게 묻는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1호 2013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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