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뮤지컬&컬처 | [프리뷰] 한 예술가의 시대와 세계 - 류이치 사카모토 내한공연&자서전『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No.88]

글 |김영주 사진제공 |빈체로 2011-01-05 4,707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 대부분 그 단면을 안다는 것에 불과하지만, 류이치 사카모토는 그중에서도 극단적인 경우가 아닌가 싶다. 엔리오 모리코네를 제외하면 한국인들에게 가장 유명한 영화음악작곡가이지만, 그가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와 <마지막 황제> 외에 어떤 작품의 음악을 작곡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실 그는 영화음악작곡가로만 기억하는 것이 실례일 만큼 다방면에서 활동해온 아티스트인데 말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류이치 사카모토의 영화 음악 데뷔작인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와 두 번째 작품이자 아카데미상 수상작인 <마지막 황제> 모두 처음에는 배우로만 출연 제의를 받았다는 것이다. 두 작품에서 그는 데이비드 보위와 격렬한 애증을 주고받는 일본군 장교 요노이 역과 제국주의의 상징 같은 아마카스 마사히코 역으로 독특한 아우라를 보여주었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부터 ‘세계의 사카모토 류이치’라고 불릴 만큼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인정받아왔고, 실제 동시대 아시아의 어떤 뮤지션보다 국제적인 영향력과 경쟁력을 가진 아티스트로 명성을 얻었다. 그런 그의 진면모를 알 수 있는 기회가 한꺼번에 찾아왔다.
우선 10년 만의 내한 공연이 성사되었다. 유럽과 북미, 일본을 아우르는 투어 일정 중에 아티스트의 요청으로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서울에서 진행되는 이 공연에서 그는 최근작 의 수록곡을 중심으로 연주할 예정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와 <마지막 황제>밖에 모르는 관객이라고 해서 긴장할 필요는 없다. 는 그 두 작품의 테마곡을 비롯해서 류이치 사카모토의 대표작들을 피아노 솔로곡으로 재해석한 연주 앨범이다. 반면 공연의 또 다른 축이 될 는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류이치 사카모토의 현대 음악가로서의 성과를 맛볼 수 있는 음악들이 주를 이룬다.


공연에서는 두 대의 피아노가 무대에 놓이지만 연주자는 류이치 사카모토 혼자다. 그가 자기 앞의 피아노를 직접 연주하면 다른 한 대의 피아노는 그에 맞춰 미리 프로그래밍된 연주를 들려준다. 무대에 선 사람은 류이치 사카모토 한 사람이지만, 관객이 듣는 것은 두 사람의 류이치 사카모토의 듀엣인 셈이다. 음악뿐만 아니라 현대 미술에도 조예가 깊은 그가 자신의 음악을 최대한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공수해 오는 영상 장비와 음향 장비가 4t에 이른다고 하니 여러모로 기대할 만한 공연이다.
만약 안타깝게도 10년 만의 내한 공연을 볼 수 없다면 얼마 전 번역 출간된 그의 자서전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를 통해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 것이다. 큰맘 먹고 공연 티켓을 구입한 열혈 팬에게도 당연히 권할 만한 책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구술을 정리한 이 자서전은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까지 시종일관 뜨거운 에너지와 능청스러운 재기발랄함을 잃지 않는다. 이제 곧 환갑을 바라보는 세계적 거장의 자서전이라기보다는, 무라카미 류의 성장 소설을 보는 듯하다(류이치 사카모토와 무라카미 류는 실제로 동갑내기 친구다). 특히 학창 시절과 청년기에 대한 회상은 1960~1970년대 일본 사회까지 뒤흔들었던 전 세계적인 진보의 물결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생생하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10대 때 이미 손꼽히는 명문고인 신주쿠 고등학교 교내에서 학교 해체를 외치며 선동 연설을 하고 교사들과의 협의를 통해 교칙을 완전히 뜯어고칠 만큼 행동파였다. 하지만 그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빨간 헬멧이 더 멋있다’는 이유로 공산주의자 동맹의 상징인 빨간 헬멧을 쓰고 거리에서 싸웠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사카모토 군이 바리케이드로 봉쇄된 학교 안에서 헬멧을 쓰고 드뷔시를 연주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남아있지만 사실 자기는 기억도 나지 않고 설혹 진짜 그랬다고 쳐도 그냥 인기를 좀 얻어 보려는 수작이었을 거라고 말하는 식이다.


자서전을 통해 알게 되는 류이치 사카모토는 고뇌하는 예술가라기보다는 삶과 예술을 뜨겁게 사랑하고 호기심과 도전 의식으로 가득한 ‘영원한 청년’에 가깝다. 그는 뛰어난 예술 작품과 재능 있는 사람들을 열렬히 사랑하고, 자신을 자극하는 새로운 질문에 몰두한다. ‘교수’라는 애정 어린 별명이 붙을 만큼 지적 호기심이 왕성하고 이론적으로 해박하면서, 몸으로 부딪치는 일에도 주저함이 없는 이 매력적인 인물을 단 두 편의 영화 음악만으로 기억하는 것은 아까운 일이다. 사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든 천재적인 인물은 의외로 많다. 하지만 자신의 시대, 자신이 속한 세계와 이만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도전하는 이는 흔치 않다. 그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아우르는 음악과 이야기가 한꺼번에 한국 팬들을 찾아온 것은 여러모로 좋은 기회일 것이다.

 

 

류이치 사카모토 내한공연 Playing the Piano 2011  1월 9일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 02)599-5743
자서전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류이치 사카모토 지음 / 양윤옥 옮김 / 홍시 커뮤니케이션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8호 2011년 1월 게재기사입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