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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At the End] 뮤지컬, 아세요? [No.92]

글 |김영주 2011-05-31 3,601

내가 가진 취향으로 나를 어필하는 시대가 왔다. 내가 어떤 작가를 좋아하고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커피를 선호하고 어떤 곳을 즐겨 찾는가 하는 것이 내 성향과 수준을 증명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시대가 왔다’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언제는 안 그랬을까. 물론 언제나 그랬다. 비싼 밥 먹고 비싼 옷 입는 사람들이 비싼 돈을 들여 향유하는 접근성이 낮은 문화가 대체로 고급문화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하지만 대중 일반이 문화적인 ‘취향’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봉건 시대에는 푸른 피를 타고난 분들이 붉은 주단이 깔린 극장의 박스석을 채웠고, 대혁명 이후에는 부르주아 계급이 그 자리의 주인이 되었다. 그 다음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 우리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무한 복제가 가능한 영화와 대중음악의 폭발적인 성장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은 20세기를 지나, 만인을 향해 자신을 전시할 수 있는 웹상의 공간 하나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21세기가 왔다. 사람들은 깨진 거울의 조각을 맞추듯,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에 정서적으로 반응하는지를 기준으로 자신과 소통할 수 있는 동류를 찾아낸다.
21세기에 가장 사랑받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 등장하는 아티스트와 작품들이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 살펴보라. 레오시 야나첵이 살았던 시대에 그의 음악을 들어볼 수 있는 아시아인은 극소수의 선택받은 이들이었겠지만, 21세기에는 『1Q84』를 읽은 한국인 100만 명 중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사람이면 누구나 그의 신포니에타를 음원으로 소장할 수 있다.

 


대중이 자연스럽게 문화적인 취향을 가지고, 그 취향을 통해 자신을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 새로운 시대에 뮤지컬은 무엇일까. 누군가가 뮤지컬을 좋아한다거나, 싫어한다고 할 때, 나는 그 뮤지컬의 범위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혼란스럽다. 음악이 중심이 된 무대극이라는 전통적인 분류만 놓고 봐도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손드하임 사이를 가로질러 흐르는 강은 너무 크고 깊다. 범위를 더 넓혀서, 대학로 소극장의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과 수잔 스트로만에게 토니 상 ‘뮤지컬’ 부문 연출상을 안겨준 ‘댄스 플레이’ 사이에는 무슨 공통점이 있는지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뮤지컬을 다룬 월간지를 만들고 있지만, 이 장르에 대해서 확고하게 말할 수 있는 것들은 적다. 내가 알 수 없으니 이 장르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이따금 TV를 틀어놓고 있다 보면,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뮤지컬이 언급되는 것을 볼 때가 있다.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이 고스란히 반영되었을 것 같아서 유심히 보면 대체로 일관된 이미지가 읽힌다. 비싸고, 화려하고, 고급스럽고, 여자들이 좋아하는, 말하자면 하늘색 티파니 박스에 들어가 있는 선물처럼 특별한 날 데이트 분위기를 띄우는 핫 아이템같은 뮤지컬 티켓. 아, CF에서 하얀 블라우스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교실을 봤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든다. 물론 국내에서 대극장 뮤지컬이 성공을 거두기 위한 진정한 흥행 코드는 빅토리아풍 드레스와 가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반쯤 진심으로 하고 있으니 저 이미지의 기원이 뭔지는 알겠지만.
관객들은 뮤지컬에서 무엇을 원하나. 뮤지컬을 좋아한다면, 그 취향이 자신의 어떤 성향과 연결된다고 생각할까. 아마 질문을 받은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답변이 나올 것이다. 가장 대중적인 극예술이면서 가장 값비싼 티켓 값을 자랑하고, 가장 짧은 역사를 가졌으면서 가장 보수적이고, 그러면서도 무엇이든 갖다 붙일 수 있는 이 종잡을 수 없는 장르는 정말로 극예술의 용광로처럼 보인다. 뮤지컬이라는 장르와 작품, 그리고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쓰고 나누는 이야기들이 그 용광로 속에서 의미를 찾는 데 소용이 있기를 바란다. 정답이나 해답은 아니더라도, 아주 많은 다른 대답들을 들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2호 2011년 5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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