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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INTERVIEW] 연극은 만남이다 - <화선, 김홍도> 손진책 연출 [No.94]

글 |박병성 사진 |심주호 2011-07-20 4,089

극단 미추에서 마당놀이를 30년간 만들어 서민들의 사랑을 받았고, 연극 <열하일기만보>, <벽 속의 요정>과 <소녀와 죽음> 등 정극 연출에도 정평이 난 연출가 손진책은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중용을 지키면서도 늘 새로움을 지지해서 후배 연극인들에게 정신적인 귀감이 되고 있다. 올해 법인화된 국립극단의 예술감독으로 취임하여 행정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는 그가 바쁜 와중에도 국립극장 국가 브랜드 작품인 <화선, 김홍도>의 연출을 맡았다.

 

 

국립극단이 법인화되면서 예술감독으로 취임했다. 행정가 역할과 예술가로의 역할을 병행하고 있는데, 업무적인 괴리를 느끼지는 않는가?
각오했던 일이다. 그것을 잘 알고 있어서 사양했던 것이다. 국립극단이 새롭게 시작하니까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야 하는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다. 3년 재임 동안 연출을 적게 하고 프레임과 시스템 만드는 데 주력해서 2대 예술감독부터는 예술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몫이라고 생각하고 결심했다. 예술감독을 하면서 <3월의 눈>을 연출해보니까 시간이 부족하더라. <화선, 김홍도>는 국립극단 가기 전에 이미 약속을 했던 작품이라 하는 것이다.


<화선, 김홍도>는 국립극장 국가 브랜드 공연으로 제작되는 것이다. 김홍도를 소재로 삼은 이유는?
오래 전부터 김홍도를 무대에 올려보려고 생각해왔다. 김홍도는 가장 한국적인 화가의 대표성을 가진 인물이다. 김홍도 이전까지만 해도 그림이 관념적이었고 당시 이상적인 그림이 중국 문인들의 이미지를 관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김홍도에 와서 진경산수가 완성되었다. 진경산수는 화풍의 변화라기보다는 중국 중심의 정신적인 탈피랄까 그런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겸제 정선에서 비롯되긴 했지만 김홍도가 선봉이었고 당시 문인들은 풍속화를 잘 그리지 않았는데 그는 서민들의 삶을 담은 풍속화를 그렸다. 한국 사람 얼굴을 한 달마도를 그리고 한복을 입혔다. 한국화의 시발점을 만든 인물이다. 김홍도의 풍속 화첩에 나오는 인물들이 한국의 DNA를 가진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림 속에 있는 사람들을 살려내고 싶었다.


김홍도의 그림을 통해 한국적인 어떤 것을 느끼게 하고 싶었나?
관객들이 다양하게 자기 취향대로 섭취해야 하는 문제이지, 내가 만든 작품을 이런 시각으로 보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화선 김홍도이지만 위인으로서의 전기를 극화하지는 않는다. 그럼 너무 진부한 것이 될 수도 있고. ‘화선 김홍도’라기보다는 ‘화선 김홍도를 찾아서’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손수재와 김동지라는 인물이 그림 속의 김홍도를 찾아 나서서 김홍도의 그림과 만난다. 작품과 현실, 여기와 저기 경계 넘나들기,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하듯이 삶의 유한성과 예술의 무한성의 경계 넘나들기가 얘기되었으면 한다.


화선 김홍도가 가장 한국적인 화가였고 그래서 그를 소재로 했기 때문에 가무악극 양식을 선택한 것인가?
춤과 노래, 극이 일체가 된 가무극 양식은 동양 연극이 그랬고 우리 원형적인 연극 형태다. 내가 지금까지 한 것은 우리 연극 만들기였고, 민족 연극을 회복하려는 작업이었다. 내 작품에 노래와 춤이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것도 그러한 이유인데 국가 브랜드라고 해서 한국적 뮤지컬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가무극을 했다기보다는 내 작업의 연장선이다.


한국적 음악극이라고 하면 의식적으로 기존 극 방식에서 벗어나려는 느낌을 받는다.
그것도 필요하다. 의식적으로 자기 나름의 정체성을 가지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 흐르는 대로 따라 가는 것은 쉽다. 물을 거슬러 가는 것은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지금 글로벌 시대에 왜 한국적인 것을 주장하느냐고 하는데 그것은 한국적인 것을 요만큼도 걱정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하는 말이다. 한국적인 것에 현대적인 것을 접목시킨 것이냐, 현대적인 것에 한국적인 것을 접목시킨 것은 전혀 다르다. 어느 것을 메인으로 삼느냐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없다. 사람들이 다 한국적인 것을 했다면 난 현대극을 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했던 프로시니엄의 액자 무대가 절대적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크리에이티브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그 반대로 할 수도 있고. 그런 반성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고, 그런 실험이 씨앗이 되어 공연이 발전해가는 것이다. 그런 게 없으면 현상 유지만 있을 뿐이다. 그것은 현상 유지가 아니라 후퇴이다. 시행착오가 될망정 누군가는 해야 하고, 하고 있어야 한다. 실험의 성과는 성공만 아니라 실패도 성과이다. 은연중 알게 모르게 그런 것이 다 쌓여온 것이다. 어느 것 하나도 쓸데없는 공연이 없다. 그것이 은연중에 다 축적이 되어서 오늘날 공연 문화가 꽃피고 더 발전되어 온 것이다.


김홍도는 중국 사상에 얽매이지 않고 서민들의 삶을 담아냈다. 이번 작품은 김홍도의 그림 속에 있는 조선 서민의 삶에 포커스가 맞춰졌다. 지금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은 무엇인가?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쫓아가다가 옛날 생활을 보게 하는 것이지, 그 사람의 생활을 설명하고 싶진 않았다. 김홍도는 허무주의자이면서도 낭만주의자였다. 임금의 어진을 그린다는 것은 최고의 화가로 지목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벼슬도 주고, 수많은 사람들이 김홍도의 그림을 사고 싶어했을 정도로 최고의 전성기가 있었다. 그러나 말년에 화원에서 후배들과 그림을 그리면서 나중에는 자식의 월사금도 못 줄 정도로 가난한 생활을 한다. 정확하게 죽은 연도도 모른다. 김홍도의 「추성부도」가 절필작이라고 하는데 그 작품에는 말년의 쓸쓸함이 느껴진다. 이 그림은 그의 풍속화와 대비된다. 풍속화에서는 민중들이 밝고 건강한 모습인데 김홍도가 풍속화를 그린 이유는 민중들의 삶을 자기 가슴으로 보듬었기 때문이다. 양난 이후에 국토가 굉장히 피폐해지면서 서민들의 삶이 어려웠다. 그것을 다 알지만 한 달에서 29일이 어렵더라도 하루가 밝으면 김홍도는 그 밝은 하루를 그린 것이다. 그의 풍속화는 김홍도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서민상이고 민중상인 것이다. 김홍도가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찾아 정지시켜서 그림으로 남겨두어도 현실은 그럴 수 없었다. 삶에 대한 회한이랄까. 이런 이유로 「추성부도」에 들어가는 설정을 했다. 김홍도의 그림을 통해서 삶의 양면을 봤으면 좋겠다.

 


무대 위에서 김홍도의 그림이 재현된다. 기술적인 뒷받침이 필요한 작품이다. 
매직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일단 여건이 되지 않는다. 겹겹의 영상을 써서 그림이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도 있는데 어떻게 보면 그렇게 해야 맞는 작품이지만 우리 전체 제작비가 그런 작품 한 장면 만드는 것도 안 된다. 그렇게 승부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동양 연극의 특징인 연극적 약속을 충분히 활용하고 싶다.


<3월의 눈>도 그랬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특별한 극적 갈등이 느껴지지 않는다. 
연극은 기승전결이 있고 갈등이 중요하다고 배운다. ‘결전승기’나 ‘기승결’이라고 연극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꼭 그런 구조를 따라야 하나. 갈등 구조가 연극에서 중요한 것이라고 배웠지만 갈등이 없어도 연극이 된다. 역행을 한번 시도해 보자는 것이다. 어느 면에서는 우리의 연극형일 수도 있고 공식화된 틀을 벗어나 보자는 데 의미가 있다. 갈등 없이도 관객들이 즐겁게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갈등의 부재, 느슨한 내러티브였어도 <3월의 눈>은 사라져가는 것의 안타까운 정서가 작품을 이끌어갔다. <화선, 김홍도>를 이끌어가는 힘은 무엇인가?
<3월의 눈>이 사라짐에 대한 얘기지만 순환 구조를 이야기하려 했다. 황혼도 저쪽에서 보면 떠오르는 해인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이 다 제행무상이다. <화선, 김홍도>에서는 우리가 말만 듣고 화첩에서 봤던 김홍도를 만났으면 좋겠다. 손수재나 김동지가 만났듯이 관객들이 단원을 만났으면 좋겠다.


김홍도가 등장하기보다는 그를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비친 김홍도를 보여준다. 
김홍도가 꼬마 아이로 등장하긴 한다. 김홍도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현실의 경계를 넘어섰을 때 어떤 모습일까. 그게 다 없어지면 사람이 순수해지고 평화스러워진다. 그런 김홍도라면 어린아이일 수 있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맑은 김홍도를 통해 그의 삶을 객관화시켜보고 싶었다.


국립극단 예술감독으로서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좀 성급한 면이 있지만 지금까지의 성과와 과제를 이야기해 달라.
이제 한 시즌을 했는데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가장 급선무는 국립극단의 전용홀을 갖는 것이다. 국립극단을 레퍼토리 시스템으로 운영하려고 하는데 전용홀이 없으면 곤란하다. 또 하나는 국립극단의 크레딧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국립극단의 작품을 보러 가면 ‘좋은 연극’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양질의 작품을 발굴해야 한다. 국립극단이 옛날처럼 그들만의 잔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국립극단은 말 그대로 국립이고 국민의 세금으로 만드는데 우리 한국 연극계를 위해서 보탬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교육이나 출판 작업도 필요하다. 국립극단 60년 역사 동안 남는 것이 없다. 국립극단의 작업을 일거수일투족 다 기록하고 리허설 북을 만들어 과정 전체가 한 권의 책으로 나오게 할 생각이다. 연극 계간지도 만들 것이다. 8월에 창간호가 나온다. 할 일은 많은데 예산 안에서 해야 하니 답답할 때가 많다.

 


관객들마다 추구하는 좋은 연극이 다를 것이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좋은 연극은 무엇인가.
좋은 연극이라는 것은 관객들과 진솔하게 소통이 되는 연극이다. 돈만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공감할 수 있는 연극이 좋은 연극이다. 마음과 마음이 부딪치는 연극. 기술적인 것이나 스펙터클로서 무언가를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가슴과 가슴으로 소통할 수 있는 연극이 좋은 연극이라 생각한다.


정극도 간간이 하고 마당놀이도 연출하신다. 차이가 있나?
번역극은 많이 안 했다. 번역극이기 때문에 안 한 것이 아니고 난 내가 갖지 않은 것을 못한다. <죽음과 소녀> 같은 작품은 번역극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보편적인 이야기로 생각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다. 마당극이나 그런 장르의 개념이 별로 없다. 공연이라는 것은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가 중요하지 뮤지컬적으로 만나고 정극적으로 만나고 그런 것이 아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4호 2011년 7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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