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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칼럼] 홍종우와 포킨의 『향기로운 봄』으로부터 [No.94]

글 |김영주 사진제공 |SM엔터테인먼트 2011-07-20 4,201

중앙 일간지의 1면에서 동방신기와 샤이니가 현지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유럽 팬들의 환호 속에 샤를 드골 공항 청사에 들어서는 사진을 보았다, 건장한 체격의 프랑스 경찰들은 공무를 수행하는 사람 특유의 딱딱한 얼굴이었고 이국의 흥분한 소녀들은 마침내 직접 보게 된 사랑하는 스타들을 위해 플래카드를 한껏 높이 쳐들고 있었다. 그 열기를 즐기듯 미소를 지으며 발걸음을 옮기는 익숙한 얼굴의 아이돌들을 보면서 생각나는 이름이 있었다.

 

 

홍종우라는 사람을 기억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구한말의 정치가라는 구체적인 정보를 추가한 후에도 마찬가지다.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을 암살한 정객이라고 하면 조금 더 인지도가 올라갈까. 그가 조선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 최초의 번역가라고 덧붙여도, 그가 불어로 옮기고 프랑스인들이 처음으로 접한 조선의 문학작품이 무엇인지 아는 이들은 많지 않을 듯하다.
몰락한 양반가의 후손으로 태어난 홍종우는 서른여섯의 늦은 나이에 외무대신 김윤식이 발행한 여권을 가지고 현해탄을 건넜다. 2년 6개월간 아사히신문사의 식자공으로 일하면서 돈을 모으고 불어를 공부한 그의 목적지는 파리, 전근대의 조선인으로서 품을 수 있는 것 이상의 꿈이었지만 부단한 노력으로 그 꿈을 실현시켰다.
일본에 대한 관심이 뜨겁던 화려한 벨 에포크 시대의 파리에서 미지의 아시아 국가 출신 유학생은 곧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당대의 인기 화가이자 작가였던 펠릭스 레가메와 우정을 쌓으면서 후원을 받게 된 홍종우는 상류 사회의 살롱에서 이색적인 손님으로 인기를 모았다. 그는 3년간 파리에 머물면서 언제나 갓과 한복 차림을 고집했고, 기메박물관의 위촉을 받아 동양학 교수 로니와 함께  『춘향전』과 『심청전』을 번역하기도 했다.
유럽에 번역된 최초의 조선 문학 『춘향전』은 『향기로운 봄(Printemps Parfume′)』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고, 이 작품은 1936년 전설적인 안무가 마히일 포킨에 의해 단막 발레 <사랑의 시련(L`Epreuve d`Amour)>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살아생전 이 작품을 보지 못했다.
그가 파리에서 한복 차림을 고집한 이유에 대해서뭐라 딱 잘라 말할 수 있을까 싶다. 물론 일반적으로 조국에 대한 긍지, 꼬장꼬장한 선비의 기개를 말한다. 그런데 당시 프랑스 상류 사회에서 그의 복색은 웃음거리가 아니라, 이국적인 볼거리에 가까웠던 것 같다. 홍종우는 분명 자신의 ‘친구’들이 자기에게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파리에서 철저한 이방인이고, 구경거리였으며, 호기심에 찬 시선을 받는 대상이었다.

 


홍종우가 파리를 떠난 지 100여 년이 지난 후, 르 제니스 드 파리 공연장에서 이틀간 열린 SM타운 콘서트가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기면서 막을 내렸다. 한 연예 기획사 소속인 다섯 팀의 가수들이 해외에 나가서 공연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만한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일견 신기한 일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음악 시장의 차트 1,2위를 한국 가수들이 다투는 것쯤은 뉴스도 되지 못하는 시대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까 그 뜨거운 관심은 단지 ‘해외’라거나 ‘시장 개척’이라는 측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유럽, 그중에서도 프랑스와 그 수도 파리에 대해 우리가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어떤 열망과 닿아 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유럽의 젊은이들이 어눌한 발음으로 동방신기와 소녀시대, 슈퍼주니어와 샤이니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멤버들의 이름을 목청껏 외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낀 것은 그 가수들의 가족이나 팬들만이 아니다. 아이돌을 ‘딴따라’ 무리들 중에서도 최하층 계급 정도로 무시하는 것이 조건반사처럼 익숙한 이들조차 한국의 어린 스타를 사랑하게 된 이국의 젊은이들이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고 한국어를 배운다는 것에 뿌듯해한다. 대체 왜? 사실 답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여전히 우리는 그 세계로부터 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파리는 그런 곳이다. 우리가 관심을 갖고 사랑하는 만큼,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주거나 우리를 인정해주지 않는 도도하고 콧대 높은 여인 같은 도시. 그러니 평소 아이돌이라면 뭉뚱그려서 노래 같지도 않은 노래, 가수도 아닌 가수로 폄하해왔다는 것쯤은 아무래도 좋다. 타자의 시선이 자신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까지 영향을 미치면 이런 분열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하지만 파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바람은 이보다 훨씬 간결하고 솔직하다. 참으로 예스러운 이름을 가지고 있는 동방신기와 소녀시대는, 홍종우와 달리 파리의 관객들을 위해서 전통 복식을 입지 않아도 된다. 그들에게 열광하는 유럽의 청소년들에게 자신들의 스타들은 오리엔탈리즘의 대상이 아니며, 그들이 기대하는 것은 그저 순수하게 감탄하고 직관적으로 ‘멋지다’고 반응할 만한 퍼포먼스다. 일부 혐한 우익들의 바람 섞인 주장과 달리, 유럽에서 K-Pop의 마니아층이 생긴 것은 정부의 국책 사업과는 관계가 없다(안타깝지만, 한류와 관련해서 한국 정부가 보여주는 행보는 잘되는 판이다 싶어서 뒤늦게 한 발을 들여놓고 생색을 내다가 오히려 김을 빼놓을 것 같다는 우울한 전망을 하게 한다).
유럽은 오랜 시간에 걸쳐 수준 높은 문화를 이룩했으나 대중문화에서 역동적으로 동시대적 트렌드를 형성하는 데는 별 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지 오래다. 이 나이 든 대륙의 청소년들이 유튜브를 통해 자신들에게 없는 화려하고 트렌디한 한국의 대중문화를 접하고 열렬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 그곳에서 불고 있는 바람의 핵심이다. SM타운 소속 가수들이 부르는 가장 사랑받는 노래 중 몇몇 곡은 유럽의 작곡가들이 쓴 것이고, 또 몇몇 곡은 유영진, 켄지, 이트라이브 같은 한국의 작곡가들이 썼다. 하지만 르 제니스의 관객들에게 자신들의 스타가 부르는 곡이 어느 국적의 작곡가가 쓴 노래인지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유영진을 비롯한 한국의 작곡가들은 음악적으로 영미권 팝/록의 세례를 받으면서 성장했고, 이는 그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한국인의 감성, 정서, 지역의 음악적 특성과 맞물려 혼종 교배의 창작물을 내놓는 기반이 되었다. 바다 건너의 청자들은 그 교집합 때문에 거부감 없이 K-Pop을 접하고, 자신들과 다른 그 차집합에 매혹된다. 이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오늘날의 문화 교류다.

 


하늘 아래 없던 무엇인가를 우리가 처음으로 만들어내고, 온 세상이 그것이 메이드 바이 코리아임을 칭송해야만 가치 있는 문화 수출인 것은 아니다. 우리의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증명하는 것만큼 세계적인 것이 우리의 것이 되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다. 르 제니스의 관객들이 따라 부르는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는 노르웨이 작곡 팀 ‘디자인 뮤직’이 작곡을 했고 유영진이 작사, 유한진이 편곡에 참여했으며, 오키나와 출신의 리노 나카소네가 안무를 했다. 우리가 듣기 좋고 재미있어 할 만한 어떤 것을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함께 만들고, 그것이 다시 더 넓은 세계에서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한 시대를 사는 동안 공유할 수 있는 기쁨이 더욱 풍부해질 수 있게 하는 것, 이것이 문화의 가치다. 물결이나 바람은 누구의 것이라고 선을 그어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상호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유기적인 생명력을 가진다. K-Pop이 홍콩의 영화 산업처럼 될지, 영국의 로큰롤처럼 될지, 지금으로서는 확인할 수 없다. 한류의 ‘세계 정복’을 꿈꾸며 조바심을 낼 필요도 없고, 진짜 일어나는 일인지 과대 포장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의심에 찬 추궁을 할 필요도 없다. 지금까지 없었던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그 일의 의미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긴 두루마기 차림으로 상투를 튼 머리에 검은 갓을 쓴 홍종우가 파리지앵들의 호기심에 찬 시선을 받으며 소르본느 대학 근처를 걸어가던 시절로부터 고작 100여 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4호 2011년 7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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