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반을 넘긴 지금까지 휴가를 가지 않은 당신을 위해, 휴가 기간에 무엇을 할지 준비해 둔 것이 없는 당신을 위해, 늘 쫓기듯 살다보니 이미 좋다고 알고 있는 것 외의 다른 무엇을 접할 여유가 없는 당신을 위해, 문화계 곳곳에서 저마다의 역할을 하고 있는 서른한 명이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휴가 계획 첫 줄을 공개했다. 뮤지컬 배우, 영화감독, 발레리노, 출판사 대표, 아이돌 스타, 만화가, 방송작가, 라디오 PD, 패션 디자이너, 기자 등 한자리에 이름을 올릴 일이 드문 31인이 권하는 ‘이번 휴가에 경험하면 지금보다 여름이 한 뼘은 행복해질 서른한 가지’.
레코딩이 가능한 케이블 TV 셋톱 박스로 녹화해 둔 <무한도전> 몰아보기- 강명석(10아시아 편집장)
연애 중인 남자가 <무한도전>을 본방으로 보겠다는 건 자살행위다. 노트북의 작은 화면으로 보기에는 요즘 HD로 바뀐 <무한도전>의 화질이 아깝다. IPTV의 VOD 서비스는 그 다음 날에나 서비스된다. 답은 PVR(Personal Video Recording)기능이 가능한 케이블 TV 셋톱 박스다. 요금은 좀 더 비싸지만, 케이블 TV에 신청만 하면 <무한도전>을 리모컨 한 번 눌러 예약 녹화할 수 있다.
삼계탕과 함께 철학책을! - 남경주(뮤지컬 배우)
여름엔 뭐니 뭐니 해도 삼계탕! 닭 한 마리와 찹쌀, 통마늘, 밤, 대추, 인삼 한 뿌리, 황기, 전복 한 개를 준비하고 모든 재료들을 닭 뱃속에 넣어 푹~ 고아서 몸보신도 하고 더위를 쫓는다. 뜨끈뜨끈한 삼계탕을 먹으면서 ‘인간이 배불리 먹는 건 죄악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철학책을 읽는다면 기분이 묘하려나? 하하. 그리고 이건 정말 해보고 싶은 건데,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가서 홀딱 벗고 선탠하기. 상상만으로도 즐겁지 아니한가.
<해리 포터> 완전 정복 - 김혜리(씨네21 기자)
조앤 K.롤링의 7부작 소설에 이어 워너 브러더스의 영화 <해리 포터> 프랜차이즈도 올여름 끝을 보았다. DVD는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1>까지 출시돼 있다. 서사와 이미지의 모든 단서를 손에 넣게 된 지금이 포터학(Potterlogy)을 마스터할 적기다. 소설을 통독하며 관계도를 그리고, DVD를 꼼꼼히 뜯어보며 호그와트 지도를 그리자. 밤샘 영화 파티에 얼린 맥주 한 박스는 필수고, 아이라이너로 이마에 번개무늬 흉터를 그려 흥을 돋우는 센스는 선택이다. 주요 주문을 암기하고 <머글 마법 백과사전> 같은 참고서까지 떼고 나면, 당신은 학식을 쌓는 것은 물론 덤으로 매우 쿨한 이모/삼촌이 될 수 있다. 호그와트 윷놀이, 마법사 카드 따먹기, 주문 퀴즈 등 가지 칠 수 있는 놀이도 무궁무진하다.
방콕NO! 무더위에 맞서 가족들과 여행 가기! - 루나(그룹 f(x) 멤버)
음~ 시원한 수박을 먹으며 기존에 보지 못했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방콕 하는 것도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겠지만, 집에만 있는 것보단 밖으로 나가서 무더위와 맞서는 건 어떨까? 이열치열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어렸을 적 문경에서 살았는데 여름이면 가족들과 문경 쌍용 계곡에 자주 놀러 갔다. 시원한 계곡물에서 신나게 놀다보면 더운 것도 잊었는데, 지금은 정말 소중한 추억이 된 것 같다! 역시 가족들과 시골 냇가나 바다로 놀러 가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드는 것이 즐거운 여름을 보내는 가장 ‘HOT’한 방법인 것 같다.
관심 분야의 책과 함께 잠수! - 장광효 (패션 디자이너)
개인적으로 문화와 관련된 책이나 자료 모으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오래 전부터 인테리어와 건축, 패션 등에 관련된 국내외 서적들을 매달 5~6권씩 정기적으로 구입해 보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건축과 관련된 책을 좋아한다. 그런데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대충 훑어 읽고 그냥 쌓아두는 경우가 많았다. 늘 내년에는 시간을 내야지, 하면서도 못하고 있는데 집에서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 책들(특히 건축과 관련된 책들!)을 집중적으로 탐닉하고 싶다. 반바지 입고 수박 먹어가면서 전화도 절대 받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어제, 오늘의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내일을 꿈꾸는 나만의 여행을 즐기는 것도 꽤 멋지지 않을까. <더뮤지컬> 독자들도 함께하면 좋겠다.
티셔츠에 그림 그리기 - 하현우(밴드 국카스텐 보컬)
음악 말고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랄까? 그런데 누구나 할 수 있다. 의류용 물감하고 붓, 그리고 디자인 없는 면 티면 준비물 끝! 수준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직접 그린, 세상에서 유일한 티셔츠인 데다가, 오천 원짜리 면 티가 유니크한 옷으로 업그레이드 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집중하다보면 시간도 금방가고, 만들고 나면 꽤 뿌듯하다. 가끔 지인들에게 이렇게 만든 티셔츠를 선물로 주곤 한다. 여름이니 특별히 바다 색깔로다가 떡칠한 그림의 티셔츠를 만들어 봐도 되겠다. 과연? 하하하. 그런데 그 옷을 입고 놀러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면 어쩌지? 게다가 휴가가 끝나가고 있다면?
유희열 소품집 <여름날> - 윤성현 (KBS FM <라디오 천국>, <심야식당> PD)
유희열 소품집 <여름날>은 휴가철에 편안하게 감상하기 좋은 음악이다. 어디 안 가고 책을 읽거나 멍 때리고 싶을 때, 어디로 떠난다는 불편함은 감수하기가 부담스럽고 그냥 자기 공간에서 쉬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여름의 풍경과 정서를 담은 컨셉 앨범이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여름날에 어울린다. 특히 이 앨범을 추천하는 이유는 여름이 아름다운 이유를 느끼게 해준다는 점 때문이다. 여름은 모든 것이 에너지가 넘치는 시기이지 않나. 자연도 그렇고 생의 에너지가 가장 정점에 도달해 있는 시기인데,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게 아니라, 그 시기가 그저 찰나이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그 넘치는 에너지에서 오는 아름다움이 지속되지 않고, 곧 가을이 온다는 것을 잠재적으로 알고 있다. 이 앨범에는 그 영원하지 않은 아름다움에 대한 노래가 들어 있고,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여름을 담고 있는 음반이다.
「The Perfect Blues Collection」 박스세트 -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
요즘 블루스를 즐겨 듣는다. 비오는 밤에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더운 날에도 역시 마찬가지. 사막의 모래 먼지를 덮어쓰는 기분이다. 버디 가이와 무디 워터스가 특히 그렇다. 만약 더 많은 블루스가 궁금하다면 이 세트를 추천하겠다. 스물다섯 장의 오리지널 앨범들, 블루스 역사에서 반드시 들어야 할 앨범들을 모아놓은 박스세트다. 비싸겠다고? 수입 앨범 스물다섯 장을 묶은 주제에 71,500원이다. 같은 가격의 자매품으로
10센치 「1.0」 - 최범석 (패션 디자이너)
요즘 재주소년이나 10센치 같은 인디음악에 빠져있다. 빠르게 변해 가는 음악이 아닌 예전 학창시절에 주로 듣던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노래를 하는 이들의 음악은 듣기가 참 편하다.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일과, 감정들을 생생하게 표현했고 소소한 이야기를 참 재밌게 가사로 풀어낸 것 같다. 무작정 해외나 바닷가로 떠나야 진짜 휴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과 함께 여유롭게 그 시간을 즐기고 그 음악을 즐긴다면 그게 진짜 휴가가 아닐까?
사라 바렐리스의 「Kaleidoscope Heart」 - 리사 (가수, 뮤지컬 배우)
지인의 추천을 받아서 구입한 사라 바렐리스(Sara Bareilles)의 정규 2집 「Kaleidoscope Heart」. 어쿠스틱하면서도 트렌디한 느낌이 가미되어 있는 곡들이 색다른 느낌을 준다. 요즘 유행하는 빠른 음악들과는 달리 모든 곡들이 듣기에 편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아서 계속 들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근래 들어 ‘잘 샀다’ 싶은 음반이 거의 없었는데 정말 맘에 드는 음반이다. 개인적으로는 정규 1집 「Little Voice」에 수록된 ‘Gravity’를 가장 좋아하지만, 이 음반을 통해 그녀를 알게 되었으니까…. 시끄러운 거 싫고 슬픈 것도 싫을 때 듣기에 딱! 좋은 무한 반복 감상용 음반이니 꼭 한번 들어보시길.
발란신의 <호두까기 인형>, <장기하와 얼굴들> - 엄재용 (유니버설 발레단 수석 무용수)
<호두까기 인형>은 사실 항상 겨울에 하는 공연이다. 배경도 크리스마스고 공연 중에 눈도 내리고 눈송이 요정들의 춤 같은 장면도 있어서 겨울과 잘 어울린다. 그런데 올여름에는 역발상으로 발란신 버전의 <호두까기 인형>을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다. 더운 여름에 겨울 풍경을 보면서 기분 전환을 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발란신 작품의 안무는 러시아의 클래식 발레와는 스텝부터 정말 다른데, 똑같은 박자에도 훨씬 복잡한 안무가 들어가니까 그 점을 생각하면서 보면 더 재미있을 거다. 아, 그리고 덥고 짜증날 때 들으면 시원해지는 음반으로 장기하와 얼굴들의 두 번째 앨범을 추천한다. ‘그렇고 그런 사이’. 정말 재밌더라.
마크로스 극장판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 - 윤덕원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보컬 겸 기타리스트)
8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이 대체로 그러하듯이 나 역시 마크로스를 <스페이스 간담 브이>로 알게 되었다. 나중에 지상파 방송에서 <로보텍>이라는 이름으로 방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본편의 내용을 본 것은 한참 뒤. 만들어진 지 20년 가까이 지난 작품이지만 이야기나 작화 연출 모두 손색이 없고, 특히 ‘노래’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작품이기에 삽입곡 역시 너무나 좋다. 마지막 하이라이트 부분의 우주 전투 장면이 특히 좋은데, 우주에서 펼쳐지는 시원한 미사일들의 춤과 배경음악의 조합이 아름답다. 적어도 그 순간은 더위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굳이 극장판을 추천하는 이유는 TV 판에 비해 특히나 아름다운 작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름날 밤 시리즈물을 탐독하다 밤을 새우는 일을 방지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다 하겠다.
미야자키 하야오 다시보기 - 박권일 (KBS
<로큰롤 인생> - 강산에 (가수)
로큰롤 인생? 뭐가 로큰롤이란 거지? <로큰롤 인생>은 케이블 TV 채널을 돌리다 제목에 호기심이 생겨 보게 된 영화다. 중창단 ‘영 앤 하트’의 6주간의 공연 준비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인데, 이 중창단의 평균 연령이 80세 정도 된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말을 잘 듣나 안 듣지. 가사 2줄을 외우는 데 6주가 걸리는 할아버지를 비롯해 별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다 등장하는데 공연을 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재미있다. 중간 중간 실린 인터뷰 내용은 눈과 귀를 뜨게 하고. 특히 후반부에 산소호흡기를 단 한 할아버지가 콜드플레이의 ‘Fix You’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핑 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테크닉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소년탐정 김전일>, <명탐정 코난> - 박희정 (만화가)
<소년탐정 김전일>을 더 좋아하지만, 휴가 기간이 짧다면 금방금방 볼 수 있는 <명탐정 코난>을 추천하고 싶다. 틀어놓고 잠깐 딴짓을 하고 있어도 사건의 해결이 다 보인다. 내 경우에는 청소를 할 때 주로 <명탐정 코난>을 틀어놓는데, 최고다. <김전일>은 계속 집중을 해야 하니까 여유가 많을 때 보는 게 나을 듯. 옴니버스 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중간에 끊어도 아쉽지 않다는 것도 추천 이유. 아 참, <김전일>에는 <오페라의 유령>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몇 번 나왔다. 작가가 <오페라의 유령>을 좋아하나 싶을 만큼 잘 알고 있던데. 이 에피소드뿐만 아니라 <김전일> 시리즈는 대체로 음악과 음향을 굉장히 잘 쓴다. <코난>보다는 대상 연령이 높다보니, 새벽에 혼자 보면 진짜 오싹하기도 하다는 것이 주의사항이다.
<번 노티스> - 김형순 (KBS <1대100>, <뮤직뱅크> 구성작가)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영문도 모른 채 퇴출 통지서(Burn Notice)를 받고 비행기에 실려서 고향으로 돌려보내진 첩보원이다. 그동안의 경력, 돈, 신분증까지 모두 빼앗기고 빈털터리로 쫓겨난 남자는 자기가 왜 이렇게 됐는지 알기 위해서, 그리고 고향 마이애미의 힘없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싸워 나간다. 심각한 내용일 것 같지만, 다른 주요 인물들을 보면 주인공과 상극인 엄마, 폭탄 전문가인 애인, 그리고 매일같이 주인공을 반대편에 팔아먹으려고 드는 친구가 있다. 악당들과 한참 싸우고 있는 주인공에게 전화해서 돌아올 때 슈퍼 가서 설탕 사 오라고 시키는 엄마는 줄담배를 피우면서 요리를 하는 괴짜고, 비밀결사 조직 출신인 여자 친구는 주인공이 마음에 안 드는 짓을 하면 저 인간을 폭탄으로 죽여 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한다. 이 황당한 인물 구성으로 매회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에피소드들은 언제 봐도 웃기지만, 마이애미가 배경이니 여름휴가 기간에 좀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자끄 따띠 <윌로 씨의 휴가> - 이명세 (영화감독)
영화를 영화로 찍는 다섯 명의 감독을 알고 있다. 버스트 키튼, 찰리 채플린, 오즈 야스지로, 페데리코 펠리니, 그리고 자끄 따띠! 우리나라엔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서운했는데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자끄 따띠라는 천재를 만나 행복해졌음 하는 바람이다.
마츠모토 히토시 <대일본인> - 김동완 (가수, 배우)
일본식 코미디를 좋아한다면, 그러니까 <멋지다 마사루>나 <괴짜 가족>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 바로 <대일본인>이다. 성인 남자가 전깃줄을 잡으면 기저귀만 찬 거인으로 변해서 괴수를 무찌르는, 다소 어처구니없는 내용의 루저 히어로물이다. 이상하게 웃기기만 한 게 아니라 일본인 시선으로 바라본 미국을 풍자하는 블랙 코미디적인 요소도 있고, 하여간 재미있다. 너무 재미있게 봐서 에릭에게 추천했는데, 에릭하고 둘이서 1년 동안 이 영화 이야기만 한 것 같다(다른 멤버들은 보라고 해도 안 봤을 거다). 그런데 이게 좀 취향을 타는 장르라… 아! 여름에 보기에는 <기쿠지로의 여름>도 좋을 것 같다. 또 시간이 된다면 애니메이션 <갓파 쿠와 여름방학을>이나 <도쿄 매그니튜드 8.0>도 꼭 보길 권한다.
<노트북> - 송창의(탤런트, 뮤지컬배우)
영화 <노트북>을 추천한다. 사랑 이야기를 다룬 수많은 영화들 중에서 최고로 손꼽는 작품이며, 내가 두 번째로 눈물을 흘리며 봤던 작품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꿈꿨던 집을 손수 가꾸고, 치매를 앓고 있는 그녀에게 자신들의 사랑 이야기를 매일같이 들려주는 노아의 마음이 특히 와 닿았던 것 같다. 나도 그들과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몇 번을 보아도 질리지 않는 감동을 주는 작품이니 꼭 한번 보시길. 평생을 두고 사랑했던 노아와 앨리가 함께 최후를 맞는 장면에서는 울어도 좋습니다.
<비포 선라이즈> - 성기웅 (극작가, 연출가)
미국인 남자 대학생 에단 호크가 유럽 여행 중에 소르본느에 다니는 프랑스 여인 줄리 델피를 기차간에서 만나 하룻밤 사랑에 빠져든다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비포 선라이즈>. 유럽 여행과 여행지에서 벌어지는 로맨스라는 두 가지 로망을 한꺼번에 대리 체험하게 해주는 영화 정도로만 기억하겠지만 다시 한번 찬찬히 보길. 대사와 대사의 행간, 화면 구석구석의 디테일에 생각할 거리, 볼거리, 이야깃거리가 많은 대견한 영화다. 물론 9년 후의 이야기를 담은 후속편 <비포 선셋>과 세트로 보자. 둘 중 어느 쪽이 좋으신지? 그 이유는?
스탠리 큐브릭 <샤이닝> - 오수미 (영화 프로듀서)
잭 니콜슨의 광기 어린 표정의 포스터만으로도 올여름을 오싹하게 보낼 수 있을 듯. 명불허전이다. 명배우의 빛나는 연기, 탁월한 심리 묘사, 카메라, 사운드… 모든 감각을 오픈하라! 권고 사항. 늦은 밤, 불 끄고 혼자 보시길.(웃음)
<맘마미아> - 김소현 (뮤지컬 배우)
여름휴가를 떠나지 못한다면 집에서 <맘마미아>를 보는 건 어떨까. 영화의 배경인 그리스의 풍경을 시원하고 멋있게 잘 담아내서 여름 더위를 잊게 하기에 제격일 듯하다. 나 역시도 아직 그리스에 못 가봤지만 이 영화를 통해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뮤지컬로 몇 번이나 봐서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영화는 영화만의 매력이 있더라. 특히 ‘맘마미아’를 부르는 장면, 영화에서 코러스가 등장해서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벼랑 끝에서 부르는 ‘The Winner Takes It All’도 기억에 남고. 명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는 말할 것도 없다.
Yann Arthus-Bertrand의 사진집
법정 스님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 바다 (가수, 뮤지컬 배우)
더운 여름, 집 안의 온도는 바람이나 에어컨이 조절해 주지만 마음의 온도를 낮추기에는 담담하고 소박한 책 한 권이 어떨까 싶다. 그중 추천하고 싶은 것은 어머니가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해 계셨을 무렵, 어딘가 시리고 추웠던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읽어 내려가던 책, 법정 스님의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이제 이 책은 내게 더운 마음의 온도를 내려주는 시원한 한줄기 바람 같다.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마음을 비워내려는 자세가 정신의 온도를 내리고, 문득 삶의 가치를 느끼게 할 때 우리는 매일 마음의 바캉스를 떠날 수 있다. 지금도 하늘에서 어머니가 ‘그 책 재미있니?’ 하고 물으시는 것만 같다.
정민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 - 박은주 (김영사 대표)
책으로 떠나는 북캉스는 언제나 추천할 만한 아이템이다. 맘에 드는 책 한 권 들고 시원한 카페에 앉아 있는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올해는 차 향기 가득한 책을 추천해보고 싶다. 문학을 넘어 우리 문화의 멋과 흥취로 글쓰기의 폭을 넓히고 있는 정민 교수가 조선 시대 차 문화사를 들고 나타났다.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은 성과가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김영사 刊) 속에 녹아들어 있다. ‘다산, 초의, 추사가 빚은 아름다운 차의 시대’란 부제처럼, 이 책은 특히 18세기 이후 조선 시대를 풍미한 차 문화의 흐름을 다채롭고 풍성하게 담아냈다. 차향처럼 은은하고. 정교하게 빚어낸 차 문화의 세계로 빠져보는 휴가를 추천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 - 장유정 (극작가, 연출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리스를 중심으로 유럽에 3년간 체류하며 쓴 글이다. 여행기라기보다는 낯선 곳에서 이방인으로서 살았던 일상을 담은 에세이인데, 하루키 특유의 섬세한 문체가 잘 살아 있어서 그리스에 가지 않고도 그리스에 간 듯했다. 그는 그곳에서 매일 아침 조깅을 했는데, 비일상적인 곳에서 일상적인 행동을 한 데서 그리스의 낯선 풍경 속에서 익숙함이 느껴졌다. 이 책을 제주도에서 읽은 터라 무척 와 닿기도 했고, 과거에 내가 아비뇽에서 조깅을 하며 느꼈던 어색한 편안함도 다시금 느껴졌다.
이병률 『끌림』 - 김지영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여름휴가 때니까 밝아야 할까? 그렇지는 않은 거 같으니까… 저자가 여행을 하면서 쓴 책인데 보통 말하는 여행기는 아니고, 살아가면서 느낀 감정들을 여행하면서 생각하고 곱씹어서 쓴 글이다. 보고 나서 아, 여기 한번 가보고 싶다, 이런 마음이 드는 책이 아니라, 이 분이 여행을 하면서 참 많은 생각들을 하셨다는 걸 알게 해준다. 한 지역이 아니라 전 세계의 여러 곳을 정말 많이 다니면서 찍은 사진도 있다. 그렇지만 그 사진과 함께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이는 게 아니라, 그 당시에 느꼈던 감정들이 담겨 있다. 참 특이하고 좋은데 아무래도 여자 분들이 좀 더 좋아할 거 같은 책이다.
권지예 장편소설 『유혹』 1~3권 - 강미영 (민음사 편집부장)
친구들은 죄다 애인과 여행 계획 짜기에 여념 없는 휴가철이 이번에도 성큼 다가오고야 말았는데! 함께 여행을 떠날 애인도 놀아줄 친구도 없어 착잡하기 그지없는, 하여 방콕을 어떻게 버틸까 막막하기 짝이 없는 모든 솔로들에게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소설을 한 권 추천한다. 그것은 바로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받은 소설가 권지예의 장편소설 『유혹』이다. 끊임없이 유혹하고, 유혹당하는 주인공 오유미의 쿨하고 뜨거운 연애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한국판 「섹스 앤 더 시티」이기도 한 이 소설을 읽으며, 솔로들은 대리 만족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유혹』의 매혹적인 첫 문장. “맛있는 섹스는 있어도, 맛있는 사랑은 없다. 사랑이 허기라면, 섹스는 일종의 음식이다.” 아, 주위에 유혹할 만한 사람 누구 없을까…….
레비-스트로스 『슬픈 열대』 - 김언호 (한길사 대표)
20세기의 위대한 문화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의 탁월한 ‘기행문’이자 현대 문명의 오만을 경고하는 ‘문명비판서’다. 젊은 시절 브라질에 체류하면서 원주민의 삶을 체험한 저자의 지적 자서전이기도 하다. 이 ‘문학서’를 통해 우리는 현대의 고전을 서구 중심의 ‘문명’과 ‘야만’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문명사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모든 삶은 그대로의 가치와 빛깔을 갖고 있으며, 모든 문명은 고유하다. 이 여름에 나는 소설처럼 읽을 수 있는 이 책을 들고 휴가를 떠나려 한다.
김중혁 『미스터 모노레일』 - 조연주 (문학동네 편집부장)
여행은 언제나 ‘어디로’ 떠나는가보다 ‘누구와’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아무리 멋진 곳으로 떠나도 결국은 함께하는 이에 따라 그 여행의 성패가 나누어진다. 함께 여행을 떠날 이는 진지하지 않고, 심각하지 않고, 질척거리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고, 예민하지 않고, 쏘 쿨하면서도 유쾌하고 따뜻하고 배려심 많고, 그렇지만 이런 성격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라고 하면 너무 욕심이 많은가?). 아무튼 『미스터 모노레일』은 그런 소설이다. 바캉스 대신이라면 꼭 집어 들어야 할 책. 게다가 소설 속 게임판 위에서,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유럽 투어라니!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5호 2011년 8월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