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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인터뷰 | [앳디엔드] 광장의 빛을 찾아서 [No.98]

글 |김영주 2011-12-12 27,779


<더뮤지컬>의 장수 코너로 살아남은 꼭지 중에 ‘페이버릿’이 있다. 뮤지컬계 종사자 여섯 명에게 매달 다른 토픽으로 좋아하는 것에 대해 코멘트를 받는다. 이런 생각을 다 하는구나 싶게 엉뚱한 이야기가 나와도 재미있고 아, 그래 맞아! 하고 공감하는 이야기가 나와도 반갑다. 대단한 의미가 담겨있지는 않지만 맛있는 비스킷 같은 코너라고 생각한다. 두루두루 답변을 받고 있지만 워낙 오래된 코너다 보니 단골손님으로 나오는 이들도 있는데 내가 직접 통화를 해본 적은 없지만 김재범, 정상훈의 답변은 언제나 기대 이상의 즐거움을 준다. 이 자리를 빌려 생뚱맞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


11월 호 페이버릿의 토픽은 뮤지컬을 보면서 ‘그곳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장소가 어디냐는 것이었다. 이달의 기발한 코멘트로는 ‘이런 이야기 이상한가요?’라고 기자에게 재차 확인하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남겨주었다는 정상윤의 ‘<쓰릴 미> 사건 현장 탐사’를 꼽겠다. 정 배우님, 이상하지 않습니다. 약간 신기하기는 했지만서도.
사실 스크린에 비친 이국적인 풍경을 보면서 ‘저기 가고 싶다’고 소근거리는 사람만큼 뮤지컬을 보면서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지는 않다. 영화 속에 담긴 아름다운 풍경은 관객들에게 사진처럼 와 닿지만, 뮤지컬 속의 특정 공간은 표현주의적인 미술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 실제로 있는 어느 공간을 형상화할 때 있는 그대로 재현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페라의 유령>처럼 이야기가 일어나는 공간과 극이 진행되고 있는 무대의 공간이 상당 부분 겹치는 작품조차도 온전히 사실적일 수는 없다. <맘마미아>에서 볼 수 있는 이국적인 캘린더 사진 속 풍경 같은 하얀 벽과 푸른 배경의 무대조차 실제 그대로라기보다는 관객들이 고즈넉한 지중해 연안 작은 섬의 정서와 분위기를 연상시킬 수 있도록 디자인하고 제작한 무대이다. 그런데 사실 관객들은 배우가 완벽하게 세팅된 모델 하우스나 이질적일 만큼 생생한 컬러감이 돋보이는 LED 속 풍경을 배경으로 연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관객은 실제 그대로의 것을 보기 위해 객석에 앉아있는 것이 아니다. 관객들은 작가의 시선과 의도를 거쳐서 눈앞에서 새롭게 그려진 세상의 어느 곳을 보고, 그를 통해 감각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실제로 존재하는 곳을 직접 보았을 때와는 또 다른 체험을 하기 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뮤지컬을 보면서 ‘그곳에 가고 싶다’고 느낀다면 그건 사진엽서 속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탄식처럼 ‘여기 직접 한번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바람이라고 생각한다. <광장의 빛>에서 지적 능력이 일곱 살에서 멈춰버린 미국인 아가씨와 그녀를 그저 아리따운 외국 소녀라고만 생각하는 순진한 이탈리아 청년이 시뇨리아 광장의 긴 회랑을 걸으며 수줍게 대화할 때, 저 광장이 있는 피렌체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면 그것은 단지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냐 지방의 유서 깊은 도시 피렌체에 가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광장의 빛>이라는 이야기의 일부가 되어 그들이 느끼는 교감을 공유하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점점 더 쉽게, 더 리얼한 가상의 것들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손에 잡히지 않지만 눈에는 보이고 귀에도 들리는 그 현란하게 빛나는 것들에게서 잠시 스스로를 떼어놓고 싶은 사람들에게 뮤지컬은 휴식이 될 수 있다. 흔히들 뮤지컬이 가장 달콤한 환상을 파는 무대극이라고 하지만, 이 환상은 당신의 상상력과 공감능력을 통해서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8호 2011년 1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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