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추노>, <검사 프린세스>를 통해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남자의 전형을 보여준 한정수와 지난 해 <한여름밤의 꿈>으로 연극 데뷔 무대를 치른 김효진이 국내 초연되는 샘 셰퍼드의 <풀 포 러브>를 통해 변신을 꾀한다. <풀 포 러브>는 애증의 굴레에 갇혀 15년이라는 세월 동안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을 되풀이하는 두 남녀의 지독한 사랑을 그린 다. 남매라는 사실을 모른 채 사랑에 빠졌다가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겪게 되는 가족의 불행이 두 사람이 함께한 기나긴 여정의 시작이자 끝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새로운 행복을 찾아 4천 킬로미터를 달려온 에디와,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그를 떠나려는 메이. 사랑과 증오, 우정과 질투 사이를 넘나드는 이들의 격렬한 갈등이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요즘 밤 12시 넘어서까지 연습한다죠? 연출님 말씀으로는 이번 주말 즈음부터는 런 스루 갈 수 있을 것 같다 하시더라고요.
한정수: 아무래도 그건 연출님의 계획 또는 소망 같은데요.(웃음)
김효진 : 거기에 부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는 있는데….
<한여름밤의 꿈>에서의 ‘효효(효진이 효과)’는 이번에도 나오는 건가요.
김효진 : 그때는 선배님들과 작업을 하느라 급한 마음에 혼자라도 열심히 했던 건데, 지금은 다들 정말 열심히 하고 있어요.
한정수: 쉬엄쉬엄하지 다들 정말 열심히 해서 짜증나요.(웃음) 제가 볼 땐 효진이랑 정화랑 동혁이가 연습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저랑 건형이는 좀 ‘날라리과’이고. 근데 건형이가 좀 웃기더라고요. 연습 안 하는 척하면서 많이 하더라고. 에디 모놀로그 신에서도 그렇게 엄살을 부리더니 대사를 거의 다 외워온 것 봐. 나는 ‘진짜’ 안 외웠거든요. 영악한 것들…. 이렇게 만날 속아요. 연출님한테도 혼자만 혼나고. 연습할 땐 얼마나 웃긴지 알아요? 내가 에디를 연습할 때면 메이들이 서로 연습을 미뤄. 나랑 안 하려고. 너무들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쿨한 남자니까 괜찮지만 다른 남자들은 상처받아.
김효진 : 아니 그게 아니라, 오빠는 약속되지 않은 의외의 상황들을 만드니까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잖아. 또 오빠는 너무 웃겨. 할 때마다 대사를 조금씩 다르게 하고, 미는 장면에서는 넘어질 정도로 확 밀어버리고.
한정수: 아니, 웃긴데 왜 싫어해? 몸으로 느껴야 감정이 확 오는 거야. 다행히 애들이 내 ‘막연기’에 훈련이 되어 있어서 이제는 각자 알아서들 잘 맞춰줘요.
아쉽게도 공연 초반에는 무대에 같이 서지 않는다면서요? 두 분이 같이 작업하는 게 이번이 처음인가요?
김효진 : 네, 처음이에요. 아직 스케줄이 다 나오지 않아서 정확하진 않지만 오빠랑 공연 같이하는 날이 아마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도 연습은 계속 같이하고 있어요.
한정수: 나랑 공연하기 싫은 건 아니고?(웃음) 초반에는 정화랑 공연을 많이 하지만 다들 스케줄이 있으니까 나중에는 바뀌지 않겠어요. 그리고 효진이는 기억 못하고 있지만 10년 전에 ‘원 샷 018’ 광고 같이 찍은 적 있어요. (김효진 : 그랬어? 나는 기억이 안 나.) 네가 하이틴 스타였을 때니까. 권투하는 컨셉이었는데, 제가 효진이 주먹에 맞는 권투 선수였어요.(웃음)
제작발표회에서 효진 씨는 어렵게 출연을 결정했다고 했고, 정수 씨는 ‘에디가 내 얘기 같다’고 했잖아요.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느낌이 어땠어요?
김효진: 내 성격이나 삶과는 전혀 달라서 처음 읽었을 때는 별로 와 닿지는 않았어요. 계속 읽다보니 두 사람 사이에 농축된 세월의 흔적, 상처들이 느껴져서 가슴이 아려오더라고요. 작품이 워낙 세고 격앙되어 있긴 하지만 메이라는 인물을 잘 표현하면 독특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사랑이라는 건 누구한테나 제일 중요한 것이니까.
한정수: 난 내가 아는 작품인 줄 알았어요. 3~4년 전에 친구한테 책을 선물 받았는데 그게 샘 셰퍼드 작품이었거든요. 물론 다른 작품이긴 하지만 처음부터 익숙했어요. 에디라는 인물이 나와 닮은 구석이 많아서 그런지 처음부터 그의 행동이 쉽게 이해됐어요. 에디가 좀 단순하거든요. 전형적인 남자이고. 연출님이 말씀하셨지만 에디와 메이는 하나였다가 분리된 남자와 여자 같아요. 같이 있으면 떨어지려 하고 떨어져 있으면 같이 있으려고 하는. (김효진 : 게다가 이복남매에 가족사까지 얽혀 있고.) 그건 그냥 장치일 뿐이라고 생각해 나는. 이복남매가 아니었더라도 그들은 똑같이 사랑하고 또 싸웠을 거야. 이해가 안 되는 건 인물보다는 연기적인 부분이야. 나는 진지하게 대사를 치고 싶은데 연출님은 툭툭툭 치고 나가라고 하시니까 어쩔 수 없을 것 같기는 해. 내 방식대로 하면 러닝타임이 3시간도 넘게 나올 테니까.
김효진 : 그렇지. 내 호흡만 느끼면서 진행할 수 없다는 게 좀 어려워요. 또 오랜 시간 동안 만나면서 사랑이든 미움이든 쌓인 감정이 굉장히 많을 텐데, 그걸 찾아가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우리가 치열하게 연기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실제 연인처럼 안 보일 때가 많아서 배우들끼리 좀 더 깊이 있는 관계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대본 서두에 ‘이 연극은 단숨에 거침없이 공연된다’라고 쓰여 있던데 실제로 얼마나 거침없을지 궁금하네요. 에디와 메이의 사랑은 애증에 더 가깝잖아요. 실제 효진 씨의 연애와 너무 달라서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김효진: 그렇죠. 실제로 남자 친구를 너무 힘들어할 정도로 미워해본 적이 없어요. (유)지태 오빠와 에디는 완전 반대거든요. 굉장히 자상한 편이어서 제가 투정을 부려도 다 받아주는 스타일이에요.
한정수: 그래? 난 내가 잘못해도 먼저 화를 내는 스타일인데. 최고의 수비는 공격이거든.
김효진: 여자들은 그러면 화가 날 텐데. 그래서 싸움으로 확대되는 거야. 지태 오빠는 싸움으로 가지 않게 대처를 참 잘해.
한정수: 효진이는 나 같은 스타일 완전히 싫어하겠다. 나는 나쁜 남자니까.
김효진 : 에이, 그러면서 자상하잖아. 재밌는 건 오빠가 에디들 중에 제일 쩔쩔맨다는 거야. 평소에는 안 그러면서도 메이가 화내면 오빠가 제일 많이 매달리더라. 다른 사람들은 그냥 무뚝뚝하게 반응하는데 오빠는 풀이 죽어서 연기를 해.
한정수: 섬세한 남자잖아.(웃음) 생각 못했던 부분인데 진짜 왜 그러지? 내가 마음으론 잘해주고 싶어도 표현을 잘 못하는 편이긴 해.
그럼 에디처럼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4천 킬로미터를 달려가는 일은 하지 않겠어요.
한정수: 가기는 가요. 보고 싶으면 어디든 달려가서 잠깐이라도 보고 와요. 지방에 사는 친구를 보러 새벽에 말도 없이 찾아간 적도 있는 걸요.
김효진: 연습할 때 연출 선생님이나 남자 배우들은 자기 경험을 대입해가면서 인물 분석을 하곤 해요.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작품이라 그런가 봐요. 정수 오빠의 7년 연애사도 꽤 많이 들었어요.
한정수: 에디와 메이처럼 몸싸움도 많이 하고 헤어지기도 많이 헤어졌거든요. 한 150번 정도? 결국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서 결혼했는데 메이보다 훨씬 더 악랄하고 잔혹한 친구였어요.(웃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줘서 그런지 미련은 안 남더라고요. 아, 그 친구 덕분에 상사병이라는 것도 걸려봤어요. 한 이틀 앓아누웠는데 진짜 아팠던 기억이 나요. 효진이 너도 이제 안 보고 싶다고 시험 삼아 얘기해봐. 남자 친구가 아프면 진짜 사랑하는 거고 안 아프면….
김효진: 오빤 그런 얘기 들은 척도 안 해. 서로를 믿으니까. 100퍼센트 믿을 수 있는 사람이야.
배우들의 성향이 달라서 각자가 연기하는 에디와 메이의 느낌들도 차이 날 것 같아요.
김효진: 특히 에디들이 많이 다른 것 같아요. 건형 오빠는 스탠다드한 것 같아요. 딱 중간 정도 느낌. 무대 경험이 많으니까 움직임이 많이 자연스러워요. 무대도 넓게 쓰는 편이고. 동혁 오빠는 굉장히 차분한 성격이에요. 축구를 볼 때도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정수 오빠에 비해 상당히 조용한데 에디의 모습에도 그대로 드러나요. 그러면서도 굉장히 터프하고 강하죠. 정수 오빠는 연출님 말씀대로 에디와 제일 가까운 것 같아요. 깊게 생각하지 않고 말을 툭툭 내뱉는 모습이 오빠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고요. 특히 4막에서 마틴과의 대화에서는 정말 얄미운데 그게 귀엽게 보일 때도 있어요.
한정수: 귀엽다고? 내가? 나는 제일 남자답지.
김효진: 의외로 오빠가 화를 못 내더라고요. 소리도 잘 안 지르는 것 같고.
한정수: 많이 참는 편이긴 해. 화내면 안 되지 이 나이에. 너희가 못 느껴서 그렇지 너희 둘도 상당히 달라. (김효진 : 우리가? 난 잘 모르겠는데?) 연기하다보면 살짝살짝 보이는 미묘한 차이가 참 재밌어. 효진이는 너무 여성스러운 데 반해 정화는 조금 터프한 편이거든요.
김효진: 근데 그게 메이랑 너무 잘 어울려요. 전 많이 차분한 편이어서 메이가 무척 힘들었거든요. 하지만 내가 아닌 모습을 만들려다보면 연기가 부자연스러워질 것 같아서 그냥 제 안에서 최대한 찾으려고 노력 중이에요.
한정수: 난 섬세한 메이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효진 씨를 제외한 에디와 메이 역의 배우들이 모두 연극 무대가 처음이죠? 부담이 크겠어요. 긴 호흡을 유지하는 훈련도 쉽지 않을 텐데 상대 배우에 따라 자신의 연기 호흡을 조절해야 하잖아요.
김효진: 그게 정말 중요하더라고요 연극은. 이번에 조금 알았어요. 에너지를 크게 갖는다고 갖는데도 무대 밖에서는 잘 안 보일 때가 많더라고요. 작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어떻게 반응해야 무대 위에서 효과적으로 보이는지 계속 훈련하고 있어요.
한정수: 주로 정화와 연습하는데 어제는 효진이라서 평소보다 좀 세게 했어요. 여성스럽고 차분하기 때문에 그래야 할 것 같더라고요. 그랬더니 효진이의 리액션도 평소보다 세게 나와서 재밌었어요. 눈이 뒤집혀서 나한테 ‘이 XX야’ 하는데 살짝 기분 나쁘면서도 좋더라고. 에너지가 확 느껴져서. 정화는 먼저 강하게 하려는 스타일이라서 제가 받아주는 편이고요. 사실 초반에는 스트레스를 하도 많이 받아서 성질나고 짜증도 많이 났어요.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지 아예 몰랐거든요. 그냥 내 방식대로 자연스럽게 한다고 했는데 반응이 시큰둥하더라고요. ‘커트’에 익숙해있던 제 호흡이 문제였던 거죠. 그래서 한 일주일 정도 연습 끝날 때까지 호흡을 안고 가는 것만 신경 쓰고 목소리도 두 톤이나 높였는데 다들 ‘너 왜 그러냐’며 이상하게 보더라고요. 호흡을 가지고 그 안에서 감정을 변화시키는 연기가 정말 어려워요. 나는 굉장히 다르게 했다고 생각하지만 연출님이 보시기에는 큰 차이가 없으니까.
그러다 연습하기 싫어지는 거 아닌가요.(웃음)
한정수: 그럴 때가 있긴 하지만(웃음) 이번 작품 하면서 느끼는 게, 다른 장르보다 연극이 나한테 무척 잘 맞는 것 같아요. 벽에 부딪히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천재 연극 배우인 줄 알았잖아.(웃음) 연습하면서 잠시 우울하긴 했지만 한 단계 한 단계 배우면서 즐기게 되요. 편하고 재밌어서 앞으로도 계속 연극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늘 연습하러 오면서도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기대가 되어서 얼마나 두근거렸다고요.
김효진: 점점 재미를 느끼고 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왜 진작 연극을 하지 않았을까 싶을 때도 있고. 무대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있지만 그걸 극복해야 내가 성장할 수 있으니까.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 편이고 또 혼자 안으로 삭히는 편이긴 하지만, 몸으로 부딪히고 연구하면서 스스로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의 희열도 있고. 이래서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고들 하나 봐요.
작품 안에서 늘 변신을 꾀하고 새로운 작업에 도전하는 것이 배우의 일이지만,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폭력적이기까지 한 극 중 인물들은 두 분이 이전 작품들에서 보여줬던 이미지와는 상당히 차이가 있잖아요. 게다가 한정수 씨는 <추노>와 <검사 프린세스>를 통해 ‘바른 사나이’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 터라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한정수: 그렇죠. 굉장히 믿음직스럽고 신뢰 가고 ‘저 사람한테 얘기하면 무덤까지 가져가겠다’ 싶은 인물들을 제가 연기했죠. 이미지에 대한 걱정보다는 변신하고 싶지 않았어요.(웃음) 지금 이미지로 한 10년을 가져가고 싶거든요. (김효진 : 너무 딱딱하지 않아?) 난 그게 좋아. 남자답고 믿음직스럽잖아. 그리고 그런 이미지가 광고도 많이 들어오거든.(모두 웃음) 하지만 전 인기가 안개나 구름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어느 순간 사라지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니까요. 지금 잠깐 알려지긴 했지만 언제 잊혀질지 모르는 게 우리네 인생이잖아요.
김효진: 그래서 지금 오빠의 도전이 더 대단한 것 같아.
한정수: 연기를 늦게 시작한 탓에 저도 처음에는 마음이 급했어요. 그때 나이가 서른 즈음이었으니까 꽤 늦었죠. 근데 서두르니까 오히려 더 안 되더라고요. 지름길을 찾는 것보다는 정석대로 가는 게 쉽게 무너지지 않고 더 빨리 갈 수 있다는 걸 5년 정도 지난 후에야 깨달았어요. 지름길이라는 건 갑자기 없어질 수도 있고 중간에 가시밭길이 생길 수도 있더라고요. 배우들 중에 급하게 서두르다가 망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거든요. 전 그러지 않으려고요.
서두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면 두 분이 닮은 것 같아요.
김효진: 전 어릴 때 집중을 많이 받아서 일도 많이 하고 바쁘게도 살아보고, 알려져서 불편함도 많이 겪어봤잖아요. 그때는 연기의 즐거움을 몰랐던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서 내 시간도 갖고 학교에서 공부도 하면서 나만의 길과 나만의 속도가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어요. 영화를 좋아하게 되면서 배우로서 열정도 많이 생겼고요. 뜬구름처럼 앞서가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나를 만들어가는 시간을 갖다보니 연기가 더 좋아졌어요. 다른 누군가가 되어 카메라 앞에 서 있을 수 있다는 게 참 멋진 직업 같아요. 그냥 그저 그런 배우는 되고 싶지 않아서 지금은 내공을 쌓는 중이고요.
한정수: 부럽다. 나는 연기가 재밌긴 하지만 ‘지금’ 제일 재밌는 것일 뿐 앞으로 얼마든지 더 재밌는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나이를 더 먹으면 분명히 다른 일에 관심이 생길 것 같아요.
정수 씨는 어릴 때부터 짧게 경험한 일들이 참 많잖아요. 전공도 세 번이나 바꿨고. 그런데 지난 십여 년 동안은 연기만 하고 있어서 이제야 정말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은 것일까 싶더라고요.
김효진: 전공을 그렇게 많이 바꿨어?
한정수: 오빠랑 연습하면서 못 느꼈어? 굉장히 박학다식하다는 거?(웃음) 어릴 때 전교 1등 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는데 아버지가 축구를 하라고 해서 중학교 때까지 축구부 활동을 했잖아.(한정수의 아버지는 1954년 우리나라 최초로 월드컵에 출전했던 故 한창화 선수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공부를 등한시하다가 체대 시험 떨어지고 결국 시각디자인과에 갔어. 다음이 경제학과.
김효진: 어울린다. 평소에 장난치는 거 좋아하면서도 진지할 때는 또 파고드는 면이 있잖아. 박식한지는 모르겠지만.(웃음)
한정수: 생각해보면 지금 제 의식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경제학과 재학 시절이 아닌가 싶어요. 막스가 가장 큰 영향을 줬고, 체 게바라, 모택동, 프로이드, 사르트르, 까뮈… 그런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았지만 또 중간에 그만두고 결국 서울예대에서 영화를 전공했죠. 그전에 8개월 정도 대학로의 작은 극단에서 연기를 배웠는데, 작품의 주인공이던 형이 문구점에서 구입한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거예요. 공연 끝나면 매일 술 마시면서 우울한 얘기만 하고. 그래서 학교에서 제대로 연기 공부를 해보자고 서울예대를 간 거예요. 그때 다시는 대학로에 안 돌아오겠다고 결심했었는데.(웃음) 아, 대학로 오기 전에는 밴드 활동도 했어요. 록 밴드 하다가 아이돌 힙합 댄스 그룹 활동까지 했죠. (김효진: 오빠가 춤을 췄다고?) 연습할 때 못 봤어? 다른 애들이랑 섬세한 디테일에 차이가 나잖아.(웃음) 연기를 계속 하는 건 음… 성공을 못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아마 데뷔 2~3년 만에 유명해졌다면 금방 싫증났을걸요? 하지만 이렇게 10년여나 걸릴 줄이야.
에디와 메이의 긴 모놀로그가 이어진 후에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한 시선을 고정하는 장면이 꽤 인상적이었어요. 마치 15년 전의 에디와 메이가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을 때와 오버랩되는 것 같더라고요.
한정수: 연출님도 그렇게 의도하셨고, 우리도 그렇게 느꼈어요. 겉으로는 많이 성장했지만 두 사람의 마음 안에는 처음 만났을 때의 순수함이 그대로 있거든요. 그 위로 세월의 흔적이 쌓인 것이지 결코 사라진 것은 아닌 거죠. 이전까지는 계속 싸우고 난리를 치지만 결국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뭐 그런 느낌이 아닐까요.
김효진: 아직 정리가 다 되지 않아서 계속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에요.(시간을 확인하며) 연습 시작할 시간이 다 됐네요. 오빠, 빨리 연습하러 가자.
한정수: 인터뷰가 아직 다 안 끝났잖아. 더 얘기할 수 있어요. 내가 책임질게.
김효진: 연습하기 싫은 거 아냐?
한정수: 연습은 정말 정말 하고 싶어. 근데 몸이 좀 힘들 뿐이야. (모두 웃음)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있나요.
한정수: 효진이의 메이는 대본이나 원작을 보면서 예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섬세하고 아름다울 것 같아요. (김효진 : 나도.) 내가 아름답다고? 그렇긴 하지. 섬세하고 지적이고 잘생기기까지 한 에디라고 늘 강조하잖아.(웃음)
김효진: 아니, 오빠만의 에디가 기대된다고!
한정수: 아, <풀 포 러브>를 꼭 코믹으로 만들고 싶은 저만의 작은 욕심도 있어요. 그래서 첫 공연이 너무 기다려져요. 제가 어떻게 할지 다른 배우들도 다 궁금해 하고 있어요.
7월 7일~9월 12일 / SM아트홀 / 02) 764-8760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2호 2010년 7월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