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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전통을 넘어 일상 안으로 - 캘리그라퍼 강병인 [No.79]

글 |김유리 사진 |박인철 2010-04-26 5,329

언제부터인가 점점 첨단화되어 가는 사회의 한편에서 다양한 변화의 시도를 통해 생각의 전환과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는 문화가 함께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중 2000년 대 초반부터 하나의 새로운 영역으로 자리 잡은 캘리그라피. 특히 한글 글꼴의 아름다움을 알리고자 좀 더 유연하고,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감성을 드러내며 그간 ‘참이슬’, ‘산사춘’, ‘아침햇살’,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대왕세종> 등 서민들의 일상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는 영묵(永墨) 강병인 선생. 그의 손글씨 작품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묵향이 진하게 배어있는 작업실을 찾았다.

 

깔끔하고 단아한 홈페이지와 ‘캘리그라피연구소’를 보고 현대적인 디자인 사무실을 상상했었는데 서예 작업실이군요.
네, 너무 거창한 이름을 붙였나요.(웃음) 서예 작업실입니다. 공방이라 보시면 됩니다. 여기서 글씨를 배우는 친구들과 실질적으로 연구를 하기도 합니다.


캘리그라피라는 용어가 알려진 건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떤 것인가요.
‘캘리그라피’란 말 자체는 굉장히 오래되었습니다. 원래 서양에서의 개념은 글씨를 아름답고 장식적으로 쓰는 것입니다. 동양의 서예를 영어로 하면 캘리그라피라고 하죠. 동양에서는 서예가 두 가지 개념으로 발전을 해왔습니다. 하나는 기록적인 측면이고, 또 하나는 예술의 개념이죠. 기록의 문자로 출발하여 예술로 발전을 했지요. 국내에서 캘리그라피라는 용어는 순수 예술의 개념과 상업적인 개념으로 나눠서 생각해야 합니다. 서예는 순수 예술적 가치를 두는 것이고, 상업적으로는 제품이나 드라마, 영화, 뮤지컬의 타이틀 로고로 사용하는 의미로 쓰고 있지요.


국내에서 캘리그라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언제쯤인가요.
약 10년 전부터입니다. 그 이전에는 전문적인 캘리그라퍼가 없었고, 광고 회사의 글씨 잘 쓰는 사람이 돈을 받지 않고 자기 글씨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죠. 2000년대 초반에 저하고 필묵, 두 회사가 전문적으로 돈을 받고 글씨를 쓰는 것을 처음 본격적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요즘에는 캘리그라피가 감성을 대변하는 글씨체로 각광을 받고 있는데요.
캘리그라피는 말 그대로 글씨를 아름답게 쓰는 것입니다. 제품, 드라마, 책의 내용 등을 글꼴에 고스란히 아름답게 담는 것이고 쓰임에 따라 글꼴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기존의 활자가 가지고 있지 못한 감성, 제품의 특징 등을 잘 담아서 메시지 전달이 빠르고, 기존의 활자보다는 재미있고 독창적이지요. 예를 들면, 기존의 활자는 다른 의미를 가진 ‘눈’을 똑같은 서체로 써놓으면 변별력이 떨어지는데, 캘리그라피는 쓰는 순간부터 각자 독창성을 확보하게 된다는 점에서 각광을 받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 그간 ‘한글은 단순해서 못생겼다, 어려워서 못생겼다’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캘리그라피를 통해 그 편견과 선입견 속에 갇혀 있던 한글 글꼴의 아름다움, 새로움을 찾아내었죠.

 

지난 11월에 출간하신 『글꽃 하나 피었네』를 읽었습니다. 한글과 그에 대한 단상으로 이루어졌던 구성도 독특했지만, 한글은 소리 글자라 생김새가 밋밋하다는 선입견과 달리 글자 하나하나가 상형자라 할 만큼 문자의 의미와 역동적인 에너지가 느껴졌어요. 호랑이가 포효하는 느낌의 ‘어흥’, 땅에서 새싹이 올라오는 ‘봄’ 등 한글이 상형문자처럼 보이더군요.
한글은 사실 적극적인 상형문자라고 할 수는 없지요. 한글은 소리가 나올 때 목안의 모습을 본떠 만든 소리 문자고, 한자는 뜻 문자니까요. 하지만 저는 ‘의미적 상형성’을 이야기합니다. ‘봄’을 예로 들면, 글자 자체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문자 고유의 기능이 있지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봄’이란 글자에서 새싹이 돋아서 꽃이 핀다는 의미가 전달되지는 않죠. 기존의 서예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옛날부터 쓰던 서체로 썼을 뿐, 꽃이 피는 모습을 ‘봄’이라는 글꼴에 담아내 보자는 생각은 많지 않았죠. 이런 캘리그라피를 통해서 한글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글꼴에 자연스럽게 표현해 내는 것, 저는 이것을 ‘한글의 의미적 상형성’이라고 부릅니다.

 


한글과 서체 작업에 대한 철학이 남다르신 것 같습니다.   
우리말은 자연, 사람과 굉장히 닮아있습니다. 세종대왕은 일반 백성들이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가장 간단한 가로획, 세로획, 이응, 사선 이 네 가지로만 글자를 만들었지요. ㄱ, ㅁ, ㅂ 등의 구조가 가로획, 세로획밖에 없다는 것은 압축시켜 만들었다는 거죠. 그건 ‘쉽게 쓰라’는 의미였어요. 그런데 그게 너무 단순하다, 멋이 없다고 하기도 합니다. ‘꿈, 꽃’이라는 글자는 우리가 늘 쓰던 서체대로 직선적으로만 보면, 왠지 꿈이나 꽃이 느껴지지 않죠. 그런데 조금만 변형을 가하면 ‘쌍기역’이 들어있어서 움직임도 있고, 상상력을 자극할 여지가 있어요. 사실 꿈은 몽롱한 것도 있고, 그 의미 자체가 참 여러 가지인데, 그 느낌을 생각하면서 글씨를 쓰면 정말 꿈꾸고 있는 것처럼, 꽃이 피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게 가능하거든요. 그동안 시도를 안했을 뿐이에요.
한글은 초성, 중성, 종성으로 나눠져 있잖아요. 한자에도 없는 삼분법인데, 이게 동양의 철학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초성(初聲)은 땅 위에 있는 모든 생물을 말하는 거죠, 중성(中聲)은 사람, 종성(終聲)은 땅입니다. 땅과 하늘을 받쳐주는 건 사람이다. 천, 인, 지죠. 그런 원리들로 만든 거에요. 예를 들면, 초성은 생물, 나비, 꽃, 지상 위에 있는 모든 생물, 종성은 땅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고요. 제 책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한글은 초성이 다시 종성이 되잖아요. 꽃이 봄에 펴서, 여름,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되면 지죠. 져서 땅으로 스며들죠. 이것이 영양분이 되어서 다시 또 봄이 되면 꽃이 됩니다. 결국 초성이 종성이 되고, 종성이 다시 초성으로 오는 것입니다. 음양오행의 원리죠. 그래서 한글은 음양오행의 원리, 그리고 인간과의 조화를 담아낸 문자이며 우리의 철학이 담긴 글자입니다.   

         

어떻게 붓을 잡게 되셨고, 상업 캘리그라피 시장으로 진출하시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초등학교 때 서예를 시작한 후 붓은 계속 놓지 않았고, 글씨 쓰는 걸 아주 좋아했어요. 추사 김정희 선생님이 저의 정신적인 스승님이지요. 기본적으로 조선시대 학자들은 한 획 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서예를 제대로 배우고 늘 글씨를 쓰니까 당연히 잘 쓸 수밖에요. 그중에서도 추사 김정희 선생님은 탁월한 한문 서예가였죠. 클수록 이분은 내가 닮고 싶다고 닮을 수 있는 분도 아니고, 뛰어넘고 싶다고 뛰어넘을 수 있는 분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자연히 한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한글로 추사 선생님과 같은 글씨를 남기는 게 저의 꿈이었지요. 그게 중학교 때였고, 영원히 먹과 함께 살겠다는 뜻으로 스스로 ‘영묵(永墨)’이란 호를 지었습니다. 후에 디자인 회사, 광고 대행사에서 일할 때에도 그런 꿈들을 계속 놓지 않고, 글씨를 꾸준히 썼거든요. 그래서 광고에 제 손글씨가 사용되기도 했어요. 그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디자인과 서예가 만나면 뭔가 새로운 글꼴을 만들어 낼 수 있겠다.’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기본적으로 두 가지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한글이 그렇게 멋이 없는 문자가 아닌데 왜 매번 똑같은 한글만을 봐야 할까, 한글을 더 멋있게 표현해보자.’ 또 하나는 ‘디자인과 접목을 하면 이게 직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였지요. 그러던 중, 일본으로 여행을 갔는데 길거리, 식당, 사케집 등의 로고가 대부분 손글씨나 붓글씨로 되어 있었던 거예요. 처음엔 그저 흥미롭게만 생각하다가, 두세 번 가보니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책, 길거리 사인, 간판, 광고 포스터 등 다양하게 퍼져나가더라고요. 그때 느꼈죠, 여기는 이게 산업화가 되어있구나. 그때가 90년대 초에서 후반. 그래서 계속 준비를 했죠. 

 

국내에는 그런 분위기가 없었나요.
거의 없었지요. 전업 작가는 아니었지만, 유일하게 월급을 받으며 KBS 드라마 타이틀을 쓰시는 분은 계셨어요. 제가 98년도에 계속 그분께 찾아가 도움을 구하기도 했었어요. 그렇게 꾸준히 준비를 해서 2002년도엔가 홈페이지를 만들어 캘리그라피 쪽에 뛰어 들었죠. 처음에는 굉장히 어려웠어요. 누가 돈을 주고 글씨를 사려고 했겠어요. 일본에는 ‘커머셜 캘리그라피’라는 용어가 따로 있을 정도로 독자적 영역이 구축되어 있는 데 반해, 국내에선 캘리그라피라는 이름 자체도 생소했어요. 당시엔 ‘서예와 디자인’이라고 이야기했죠. 나만의 일을 하면서 선배의 디자인 회사에서 일을 해야만 했어요.

 

최근 한글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 기회가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상봉 디자이너의 한글 연작이랄지, 다양한 손글씨 상품들이 대중의 일상 속에 스며든 거 같습니다. 덕분에 한글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할 기회가 많아졌고, 또 많이 공감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캘리그라피를 처음 할 때는 이렇게까지 붐이 일어날지는 몰랐어요. 어떤 디자인 교수는 잠깐 유행했다가 금방 사라질 것이란 이야기도 하셨어요. 하지만 아닐 거 같아요.

 

이 작업이 사람 냄새, 환경친화적인 느낌, 서예적인 느낌 때문인지 굉장히 예스러운 작업을 많이 해온 것 같은데요.
처음 제가 추구했던 것은 전통을 깨어버리자는 거였어요. 전통을 무시하자는 게 아니라 전통을 깨고 나가야 한다는 의미였어요. 사실 전통은 누군가 깨어 놓으면 세월이 지나 또 어느 순간 전통이 되어 버리죠. 또 누군가 와서 그것을 깨고, 또 깨고. 하지만 새롭게 구축되어 가는 전통의 기본 정신들과 지향점은 변하지 않겠죠. 그 속에 갇혀 있지 않고, 개선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죠. 캘리그라피는 기존의 전통 서예를 깨고 나온 것이라 봐도 과언은 아니에요. 제일 중요한 것은 더 현대적인 디자인 서예(저는 ‘디자인’을 꼭 붙이는데)를 추구하려고 한다는 점이예요. 시대에 맞게 글꼴을 만들어서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는 생각이죠. 그렇지만 전통 서예와 디자인 서예, 두 가지가 함께 가는 건 괜찮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전통적인 멋, 하나는 현대적인 멋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홈페이지 포트폴리오란을 보면 선생님의 작업이 꽤 우리의 일상적인 부분까지 파고든 것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소금, 주류부터 시작해서 다양하게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더군요. 그중 흥미로웠던 것이 공연 포스터였어요. (그는 <조지 윈스턴>, <나윤선+울프바케니우스>, <나쁜 자석>, <대장금>, <바람의 나라>, <뮤직 인 마이 하트> 등의 포스터 작업에 참여했다.) 그 외에 영화제, 디자인, 전시 쪽도 많이 하셨는데, 공연에 대한 느낌은 어떻게 얻으시나요?
작업을 기획사나 디자인 회사에서 의뢰하기 때문에, 공연 같은 경우 기획자나 감독을 만나긴 어렵습니다. 대부분 기획서를 보면서 내용을 이해하려고 하죠. 내용의 이해 없이는 좋은 글씨가 나올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디자이너의 디자인 방향을 충분히 공유하면서 작업해요. 주어진 작업 기간이 10일이라면, 7일은 생각하는 시간이고 3일이 작업하는 시간입니다. 주로 컨셉을 이해하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작업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공연의 내용은 딱 드러나는데, 제목이 어렵다면 쓰기가 어려워지죠. 상대적으로 멋을 부릴 수 있는 제목이면 조금 더 쉬워지는데, 제목을 구성하는 글자들이 받침이 없다던지, 같은 모음의 연속인 제목인 경우는 멋을 부리기 어려워요. 전체적인 조화와 균형을 통해서 공연의 특징들을 글꼴에 담아내야 하는데, 타이틀과 글꼴이 딱 들어맞으면 작업이 쉬워지는데, 안 맞으면 정말 고민이 되지요. 예를 들어, ‘충무로국제영화제’의 경우 ‘충무로’라는 지명 자체는 익숙한데, 글꼴은 굉장히 어려운 편이고, 충무공 이순신의 탄생지는 영화와 아무 관련이 없는 의미를 담고 있죠. 현대의 충무로는 영화와 관련이 있는데, 말로 들어가면 충무공 이순신의 탄생지라는 거. 이런 경우엔 두 가지 중에서 더 우선하는 가치를 선택해야 하는 거죠. 이러한 것들을 고민하게 되고, 늘 그런 싸움을 합니다.  

  

작업 기간에 보통 몇 번 정도 쓰시나요. 드라마 <대왕세종>의 경우는 약 300번 정도 썼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정말 자진해서 많이 썼습니다. 어떤 경우엔 다시 쓰길 요청받아서 쓰기도 하지만, 사실 제가 맘에 안 들면 붓을 놓지 못하죠. 캘리그라퍼로서 상업적인 걸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클라이언트죠.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글꼴도 있을 것이고, 디자이너가 원하는 글꼴도 있죠. 그래서 그걸 먼저 작업을 해놓고, 나만의 작업을 하나 더 해봅니다. 예를 들어, <나쁜 자석>하면 ‘강병인이 해석한 나쁜 자석’이 나와야 하거든요. 제가 맘에 드는 게 하나 나와야 해요.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기 전 구상하실 때 참고하는 것이 있나요.
제가 쓰려고 하는 상품, 드라마, 공연 등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고요, 그러기 위해서 감성을 잘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캘리그라피는 감성적이다 혹은 감성 커뮤니케이션이다’ 라고들 이야기하는데, 감성을 잘 드러내기 위해서는 캘리그라퍼가 평소에 공부를 참 많이 해야 해요. 책도 많이 읽어야 하고, 지식을 쌓고 붓을 잘 다루는 기술도 발전시켜야죠. 서예는 기술로만 되는 것이 아니지만 디자인은 어느 정도 기술을 필요로 하지요. 두 가지를 해야 하기 때문에 감성과 기술을 키우는 일에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해요. 공부를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강병인이란 작가의 생명력이 달려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이 작업하셨던 공연 포스터 중에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으셨나요?
늘 불만이지만(웃음) <조지 윈스턴> 공연의 글씨는 초창기에 써서 제 눈엔 조금 모자라 보이지만, 포스터를 참 잘 만드셔서 오래도록 기억이 나더군요. 글씨는 좀 못 썼어요. (웃음)

 

홈페이지나 책에 쓰신 단상들을 보면 자신의 글씨를 보고, 책을 읽는 사람들과 더 많은 소통을 하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초창기에 단상을 올려놓았던 것은 작품을 일방적으로 내놓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한글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서였어요. 이 글씨 안에 무엇이 담겨 있고,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했는지 이야기 나누고 싶었어요. 그걸 통해 미약하나마 사람들이 한글에 대해 이해하려고 하고, 교감할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사실 작품을 말로 설명하는 건 아닌데, 상업적인 것을 하면서는 내가 작품 하나하나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홈페이지에 들어오는 사람과 교감, 소통하고 싶었던 거죠. 아까 말씀드린 대로 작품은 작품으로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요즘엔 내가 이걸 구구절절이 설명해야 할까, 그럼 은유적으로 해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책을 내시게 된 건 어떤 이유인가요.
그동안 제가 생각하고 있던 한글이 지닌 여러 의미를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책으로 내놓음으로써 1차적으로 내 생각을 정리해보자는 게 가장 컸어요. 그러면서 한글의 시각적, 형태적, 서예적, 디자인적 아름다움과 의미로 풀어놨을 때의 아름다움, 초서처럼 흘려놨을 때의 아름다움을 책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죠.

 


앞으로 캘리그라피는 어떤 방향으로 갈까요. 선생님의 지향점은 무엇입니까.
현재 캘리그라피가 지나치게 많이 쓰이는 것에 대한 우려는 있어요. 지나치게 많이 쓰여서 희소가치가 떨어지기도 하고 좋지 않은 글씨가 많이 쓰여도 가치가 떨어지거든요. 결국 먼저 시작했던 사람들이 좋은 글씨(작품)를 보여줘야 이 분야도 지속되고 살아남는 거잖아요. 저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해요. 상업적인 분야에서 좋은 작품을 내놓음으로써 한글의 가치도 올라가고, 캘리그라피의 가치도 올라갈 수 있도록 노력을 더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에요.
캘리그라피의 미래는 아주 밝다고 봅니다. 지금의 과열은 일시적인 현상이고, 이 분야는 무궁무진하게 발전할 구석이 많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지리산 송이버섯 로고를 써야 하는데, 타이포로만 표현하기에 이제는 뭔가 부족하다는 걸 인식하게 되었달까요. 우리의 토양, 땅, 흙, 동양의 정신 등에 대한 표현이 활자로만 안 되기 때문에 앞으로 캘리그라퍼들이 할 일이 많을 거에요. 이를 통해 한글이 좀 더 생활 속으로 파고들도록 더 많이 노력해야겠어요. 저에게 주어진 과제는 ‘더 공부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글씨란 무엇입니까.
캘리그라퍼라는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봤을 땐 기본적으로 조형성을 가져야 합니다. 거기에 자연과 인간의 삶을 드러내는 해학성이 담겨야 해요. 디자인적으로 목적성을 잘 드러내는 글꼴이어야겠죠. 일반적인 입장으로는 자기 마음을 잘 담아내는 글씨가 좋은 글씨란 생각입니다.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의 의미를 잘 담아 쓴다면 그게 좋은 글씨가 아닐까요.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79호 2010년 4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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