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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10년 전 영화를 보다 [No.80]

글 |김영주 2010-06-01 4,714

덤핑 판매하는 DVD를 한꺼번에 사들이다보면 몇 년이 지나도록 열어보지도 않게 되는 것도 있다. 며칠 전, 영화 속에서 맷 데이먼이 조심스럽게 부르던 ‘마이 퍼니 밸런타인’이 생각나지 않았다면 <리플리> DVD의 비닐 포장이 뜯겨지기까지 몇 년이 더 필요했을지 모르겠다.
지금은 없어진 신촌 녹색극장에서 10년 전 봄에 보았던 영화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Talented Mr. Ripley』를 원작으로 얼마 전 타계한 안소니 밍겔라 감독이 만들었다.
크지 않은 TV 화면으로 10년 만에 <리플리>를 다시 보면서 몇 번이고 감탄했다. 계급 간의 선망과 혐오가 작은 불꽃을 일으킬 때, 마술처럼 교묘한 위장을 본능적으로 해내는 ‘재주 많은 리플리 씨’가 속일 수 없는 자기 자신 앞에서 무너질 듯 휘청거릴 때, 타인에 대한 애틋한 연정과 통렬한 증오가 팔락거리는 손수건의 앞면과 뒷면처럼 순식간에 자리를 바꾸는 장면을 볼 때마다 역시 좋은 영화라며 만족스럽게 입맛을 다실 수 있었다.
아카데미 의상상 수상자인 앤 로스가 특별히 심혈을 기울인 듯한, 은근히 화려한 돌체비타룩은 이탈리아의 풍광과 어우러져서 아름다운 배우들의 욕망을 더 선명하게 부각시켜주었다. 지금 봐도 쟁쟁한 남자 배우들이 포진한 작품인데, 작은 역으로 출연한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이 몇 년 후 그들 중 가장 먼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보자니 그것도 재미있었다. 

전에는 알아보지 못했던 것들과 달리 보이는 것들이 영화 속에 도드라져 있었다. 맷 데이먼과 주드 로, 기네스 팰트로와 케이트 블란쳇의 싱그러운 젊음이 빛나는 순간들이 특히 그랬다. 인생의 다음 장으로 건너 서기 직전, 이제 서서히 몸 밖으로 흘러나가기 시작할 청춘이 흐드러지게 피어오른 그 시기가 10년 전 영화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영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이기도 하지만, 영화 밖에서 계속 살아가는 배우들의 한 시기를 봉인해 두는 마법이기도 하다. 영상은 사진이나 문서, 레코드보다 다양한 정보를 담을 수 있다. 모래 속으로 스며드는 물처럼 지나가고 나면 그뿐인 삶 - 그런 일, 그런 때가 있었다는 흔적만을 겨우 조금 남길 수 있는 우리의 삶에서 한때를 기록할 수 있는 가장 진보한 수단인 것이다. 그리하여 영화에는 지금은 세상에 남아있지 않은 사람, 지금은 저렇게 아름답지 않은 사람, 지금은 저만큼 가능성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의 지금과 달랐던 한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격세지감이 바깥에서 영화를 바라보고 있는 이들의 맨살까지 와 닿는 것이다.
스크린 속에 담긴 사람에게도, 극장에서 그 비친 영상 속 세상에 몰입했던 사람에게도 시간은 흐른다. 그 시간이 꼭 10년째 되고 나서 다시 돌려본 영화는 감정의 원소들이 뒤섞인 뾰족한 무엇에 찔린 듯한 통증을 남겼다. 아마도 어떤 영화이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0호 2010년 5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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