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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셜록홈즈2 - 블러디 게임> 뚜렷해진 장르의 재미, 흐릿해진 셜록의 매력 [No.127]

글 |정수연(한양대 연극영화과 겸임교수) 사진제공 |설앤컴퍼니 2014-05-07 3,740
홈즈, 스릴러의 주인공? 
솔직히 말하면, 창작뮤지컬 <셜록홈즈>가 삼부작을 예고했을 때 사실 심드렁했더랬다. 1편의 완성도에 충분히 박수를 보냈으면서도 살인마 잭, 루팡과의 대결에는 영 기대가 안 생기는 거다. 너무 만화스럽지 않나? 주인공이란 주인공은 죄다 모아놓은 할리우드 영화의 상상력과 비슷한 대중문화적 소재주의로 보였더랬다. 게다가 살인마 잭의 연쇄살인은 셜록홈즈의 명쾌한 지적 게임과는 잘 맞지도 않아 보인다. 연쇄살인범이 주인공으로 등장할 때 장르는 추리물이라기보다는 스릴러에 가까워진다. 추리는 과거에 벌어진 사건을 추적하는 것이지만 스릴러는 보이지 않는 공포가 스멀스멀 현재진행형으로 관객의 목을 쥐어오는 장르이다. 이 장르의 공포가 현재진행형인 까닭은 사건을 바라보는 범인의 시선이 모든 것 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범인은 ‘자신을 보고 있는 자’를 보고 있다. 사건을 해결하려는 사람의 행동뿐만 아니라 생각까지 읽고 있는 거다. 살인은 계속될 뿐 아니라 심지어 예고된다. ‘나 잡아봐라.’ 범죄자와 해결자의 시선의 싸움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이 누군가. 셜록 홈즈 아닌가. 머리 싸움으로 치자면 홈즈를 따라갈 인물은 어디에도 없다. 모든 것을 수집하고 모든 것을 관찰하고 모든 것을 머릿속에 정리해놓음으로써 눈앞에 보이는 평범한 꼬투리를 하나도 빠짐없이 유력한 단서로 만들어버리는 불세출의 탐정. 홈즈의 추리는 연역적 추리와 귀납적 해석의 교과서이다. 홈즈에게 사건이란 자신의 지식을 맘껏 발휘하는 최고의 즐거움인 셈이다. “재미있어!” 이것이 셜록 홈즈가 미궁을 접하는 태도의 처음이자 끝이다. 악을 소탕한다거나 정의를 구현한다는 둥의 명목은 필요하지도 않다. 영웅에게 요구되는 윤리적 사명감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잘남을 맘껏 부려대는 괴팍한 탐정의 지적 게임이야말로 보는 이들을 열광시키는 원재료일 터. 

그런데 절대 악의 존재를 통해 도덕적 윤리의식을 슬며시 들이미는 스릴러의 문법에 따르자면 이런 인물도 자칫 정의의 사도 ‘따위’로 ‘전락’하기 쉬운 법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연쇄살인범과 불세출의 탐정 셜록 홈즈가 벌이는 맞대결이라는 설정은 그만큼 조화와 균형을 맞추기가 어려운 조합이다. ‘블러디’가 살인마 잭의 세계라면, ‘게임’은 홈즈의 것이 되어야 한다. ‘게임’은 전체를 조망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태도이기 때문. 하지만 스릴러라는 장르의 특성상 시선의 주도권은 연쇄살인마에게 있다. 홈즈는 단서를 보고 있고 살인마는 그런 홈즈를 보고 있다. 그렇다면 길은 하나다. 스릴러의 틀 안에 들어간 셜록 홈즈의 지적 게임이, 살인마의 시선이 향하지 못하는 곳에서 여전히 빛날 때 ‘블러디 게임’은 성립될 수 있다.

다시 확인된 창작의 역량
그런데 말이다. 이런저런 거 다 떠나서, <셜록홈즈2>의 제작진만큼 장르의 특성을 잘 알고 또한 잘 살리는 창작팀이 있을까? 멜로가 됐든 로맨틱 코미디가 됐든 추리가 됐든, 자기네들의 이야기가 담기는 틀의 공식에 충실하면서 무리없이 줄거리를 잇는 능력은 창작뮤지컬 동네에서 의외로 찾아보기 힘들다. 코믹함은 유치해지기 십상이고 감동은 감상에 그치기 일쑤이며 사랑은 느닷없이 등장하곤 한다. 그에 비할 때 <셜록홈즈2>가 만들어낸 ‘장르다움’은 단연 군계일학이니, 1편이 추리물로서의 완성도를 보여줬다면 2편은 스릴러물답게 인물을 설정하고 사건을 엮는다. 막이 열리자마자 왓슨의 노래를 통해 드러나는 연쇄살인의 현장을 보라. 적잖이 잔혹하고 끔찍하다. 이러한 살인의 배후에는 각각 인물들의 참혹한 과거가 숨겨져 있다. 인신매매, 사이비 종교, 아동학대 등 연쇄살인이라는 결과를 가져오는 원죄들이 그들의 삶을 추적하는 가운데 하나씩 밝혀지는 거다. 잠시 딴생각이라도 했다가는 이야기를 놓칠 수밖에 없도록 사람들과 사연들은 촘촘히 얽혀있다. 홈즈와 관객이 ‘같은 선상에 있으려면’, 가사를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 아이고. 관객이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인 셈이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어두운 극의 분위기를 이끄는 힘이 단지 이야기에만 있는 건 아니다. 왓슨의 첫 대사처럼 ‘미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이 세상’의 어두움은 무대나 음악을 통해 더욱 강조된다. 무대와 음악이 어두움을 강조하는 방식은 각각 다르다. 일례로 무대는 사실적인 느낌에 초점을 맞춘다. 음습한 런던의 뒷골목에서부터 살인이 일어난 곳곳의 은밀한 장소에 이르기까지 마치 고전적인 원근법을 적용한 것 같은 무대는 관객의 시선을 사건으로 집중시키는 물리적 조건이 된다. 이에 비해 음악은 어두운 격정을 강렬하게 표현한다. 이 작품의 음악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이야기와 결을 같이 한다고나 할까. 음악의 감정 폭발이 귀를 잠시도 쉬게 하지 않아 언뜻 과잉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 작품의 음악은 이야기를 향한 초점에서 이탈하지 않는다. 몇 가락의 선율이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로 남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이 이야기와 인물을 떠오르게 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음악은 마치 영화음악 같다. 관객의 뇌리에 선율을 남기지 않는, 이야기에 잘 녹아드는 음악. 중간중간의 암전이 몰입을 방해하기는커녕 이야기의 속도나 청각의 긴장을 늦추기 위해 반가울 정도였으니 아무래도 이 작품은 말랑한 뮤지컬보다는 긴장감 있는 스릴러에 정체성을 둔 듯하다.

살인이 일어난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진실로 시간을 되짚어 올라가 추리 과정을 보여주는 연출의 역량은 돋보인다. 다시 돌아온 살인마 잭이 저지른 첫 번째 살인을 마주하는 홈즈의 추리 장면은 그 좋은 예이다. 자칫 설명적이기 쉬운 추리 과정을 재현을 통해 그리고 영상을 통해 보여주는 장면 연출은 공연이 시공간을 어떻게 압축하며 넘나들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만약 이런 식의 연출 언어가 없었다면 사건은 시간의 흐름을 직선으로 따랐을 것이고, 과거를 거스르는 방식으로 지나치게 친절한 설명에 의존하는 평면적인 드라마가 됐을 수도 있다. 



강한 장르성의 명과 암
<셜록홈즈2>의 장르적 성격은 강하면서도 명확하다. 어떻게 보면 이런 강한 장르다운 면모 때문에 1편과 비슷한 범인 설정의 룰(범인은 언제나, 쌍둥이이거나 분신이거나, 짝패를 이루고 있다!)이 반복처럼 보이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2편에서 범인은 너무 뻔한 ‘직업’을 갖고 있다. 사건의 관찰자와 당사자를 잇는 연결고리에 큰 무리수가 없다 해도 그런 설정은, 아무리 반전의 장치를 넣는다 해도, 사실 하나도 새로울 게 없다. 오죽하면 미국 추리클럽 작가들이 지키는 규칙 중에 이런 게 있을까. “탐정, 혹은 공식적인 조사관 중 하나가 범죄자로 밝혀져서는 안 된다. 이건 뻔한 속임수다.” 하지만 이런 건 여기에서 큰 방해가 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이것이니, 이 작품의 강한 장르성과 가장 크게 부딪히는 것은 바로 셜록 홈즈이다. 연쇄살인마를 잡느라 사건에 뛰어들어 여기저기 휘젓고 돌아다니는 홈즈는 그냥 여느 탐정과 다르지 않다. 예의 관찰자적인 사색은 찾아보기 힘드니 그가 바로 ‘셜록 홈즈’여야 하는 이유는 사라진 셈이다. 무엇보다 관객은 홈즈의 시선과 ‘같은 선상에서’ 사건을 보고 싶은데, 이 작품에서는 관객이 진실을 알게 되는 타이밍이 홈즈보다 앞선다. 이 순간부터 사건을 바라보는 전지적 시점은 셜록 홈즈에게서 관객으로 자리를 바꾼다. 시선의 주도권을 놓친 순간부터 셜록 홈즈는 그저 평범한 주인공 중 하나에 불과해진다. 그러고 나니 홈즈가 예전 같지 않다. 홈즈의 광기가 멋진 이유는 사건의 실마리를 미친 듯 풀어가는 그만의 집중력 때문이건만, 연쇄살인마의 ‘농간’에 정신줄 놓는 홈즈의 패닉이란. 이유를 막론하고 그냥 보기 싫다. 너무 똑똑해져버린 왓슨은 조력자라기보다는 이제 거의 투톱 급이고, 범인의 과거를 파헤치는 홈즈의 마지막 추리는 거의 심리상담사에 가까우니, 얄미우리만치 냉정한 홈즈가 아니라 따뜻하고 인간미 있는 홈즈를 만들어낸 것에 만족할 수도 있겠다. 그나마 홈즈가 여전히 독특한 캐릭터임을 설득한 힘은 배우 김도현에게 있다. 그 많은 대사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능력이나 행동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면모는 관객을 극에 몰입하도록 돕는다. 이제 루팡과의 조우를 기대해도 되겠다. 지금처럼 어떤 장르를 선택해도 좋겠지만 셜록 홈즈가 더욱 ‘셜록 홈즈’다워지기를 바라는 것만큼은 양보하기 어렵다. 이 연작의 제목은 <셜록홈즈>, 바로 이거니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7호 2014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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