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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아이 캔트 싱! 더 엑스팩터 뮤지컬(I CAN’T SING! THE X FACTOR MUSICAL)> [No.129]

글 |조연경(런던 통신원) 사진 |Tristram Kenton 2014-07-13 4,031
시원하게 터지는 폭소, 제 점수는요 

I CAN’T SING! THE X FACTOR MUSICAL



오디션 열풍, 무대로 이어지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텔레비전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를 등에 업은 뮤지컬이 탄생했다. 그동안 오디션을 소재로 삼은 뮤지컬은 더러 있었지만 특정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특정 인물을 소재로 삼은 작품은 처음이다. 뮤지컬 <아이 캔트 싱!>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 격인 영국의 <더 엑스팩터>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 작품은 특별한 무언가가 있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같은 스타를 발굴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더 엑스팩터>와 <브리튼스 갓 탤런트>의 제작자이자 출연자들에게 독설을 서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프로듀서 사이먼 코웰이 직접 작품 제작에 뛰어들었다. 코웰의 사이코 엔터테인먼트와 스테이지 엔터테인먼트가 손을 잡고 공동 제작한 것이다. 코미디언 해리 힐이 극본을 썼고 뮤지컬 작곡 경험이 있는 스티브 브라운이 작곡한 이 작품은 약 1년의 비교적 짧은 제작 기간을 거쳐 2014년 봄, 런던 웨스트엔드의 대극장, 런던 팔라디움 극장에서 개막했다.



뻔한 스토리를 비틀어 정면 돌파하는 코미디

오디션 프로그램을 소재로 한 뮤지컬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주인공. 우연한 기회에 오디션에 참가해 미처 몰랐던 실력을 발휘하고, 화려하게 성공하는 이야기. 이 작품도 그런 예측을 벗어나진 않는다. 몇 년 전부터 각종 오디션이 유행하면서 관객이자 시청자인 우리는 역경을 딛고 일어선 출연자들의 리얼 성공 스토리를 자주 접해왔다. 참가자의 어려운 사연을 강조해 성공을 더욱 부각시키는 오디션의 공식은 이제 식상할 정도로 많이 봤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것에 아랑곳 않고 오히려 전형적인 스토리를 대담하게 밀어붙인다. 심지어 “우리의 주인공은 과연 오디션에 참가할 수 있을까요?”와 같은 대사를 뻔뻔하게 내뱉는 해설자까지 있다. 대신 이 작품이 내세우는 무기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소소한 웃음이다. 이 작품은 거대하고 화려한 대극장 뮤지컬이지만 말장난이나 당황스런 소품을 이용한 코미디에 온 힘을 집중한다. <스팸어랏>이 아더 왕과 원탁의 기사들이 성배를 찾는 뻔한 여정을 기막힌 말장난과 황당한 상황들을 통해 폭소 극으로 바꾸어 놓았듯이, <아이 캔트 싱!>도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반복하며 쉴 새 없이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한다.

주인공 소녀 셰니스는 전력이 불안정한 캠핑카에서 병든 할아버지와 발로우라는 개와 함께 산다. 차에 치여 죽은 짐승을 주워와 끼니를 해결할 정도로 가난하지만 항상 밝고, 우주에 대한 꿈을 품은 소녀. 할아버지는 양철 나무꾼의 가슴받이처럼 생긴 인공 폐를 달고도 늘 진취적인 이야기로 셰니스를 북돋아준다. 셰니스의 개 발로우는 사람들과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해하면서도 언제나 셰니스의 곁을 지키며 보살펴준다. 셰니스는 우연히 우쿨렐레와 환경에 관심이 많은 맥스를 만난다. 어느 날, 셰니스가 나간 사이 그녀의 집에 놀러 온 맥스는 할아버지에게 자신이 참가할 <더 엑스팩터>의 오디션에 대한 얘기를 해주고 셰니스도 참가하면 좋겠다고 조언한 후 전력 시설을 손보고 돌아가는데, 그 후 정전이 되면서 할아버지가 사망하고 만다. 할아버지 장례비도 없어 엄마의 반지까지 저당 잡힌 셰니스는 암울한 현실에 좌절하다가 우연히 <더 엑스팩터> 오디션 장소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맥스와 재회한다. 셰니스는 노래를 못한다는 내용의 노래로 완벽한 고음을 선보이지만, 정작 심사위원들 앞에선 입 안에 파리가 들어가 노래를 못해 불합격하게 되고, 다행히 맥스가 미리 찍어둔 동영상 덕분에 합격한다. 셰니스와 맥스는 서로 호감을 키워가고, 최종 4인에 선정되어 생방송 무대를 준비한다. 소박한 우쿨렐레 연주를 추구하는 맥스는 아이돌 댄스와 패션을 강요하는 사이먼 코웰과 음악적으로 충돌한다.

한편,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위해 셰니스와 맥스의 사이를 방해하려는 사이먼과 조디의 음모에 셰니스는 맥스를 오해한다. 함께 최종 4인에 들었던 참가자들이 황당한 이유로 탈락하면서 맥스와 셰니스가 결승 무대에 오르게 되는데, 맥스의 진심을 담은 노래 덕분에 셰니스의 오해가 풀리며 사랑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셰니스는 결국 모든 어려움을 딛고 우승을 하게 된다. 공연 내내 예상치 못한 황당한 반전과 어이없는 우연들이 계속 반복되면서 객석의 편안한 웃음을 이끌어내 유쾌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이를테면 온몸에 하늘색 천을 휘감은 바람 역의 배우가 할아버지가 쥐고 있던 오디션 신청서를 들고 무대 끝에서 끝까지, 와이어 연기를 선보이다가 셰니스를 ‘우연히’ 오디션장으로 인도한다. 최종 4인에 들었던 또 다른 참가자, ‘알타보이즈(Alterboyz)’는 초록색 옷을 입고 신나게 아일랜드풍의 무대를 선보이지만 결국 아일랜드 사람이 아니라는 게 밝혀지면서 탈락하게 된다.

1막의 셰니스의 사연과 프로그램을 제작한 사이먼의 이야기는 오디션에 참가하려는 사람들의 열정에 힘입어 빠르게 진행되지만, <더 엑스팩터>의 생방송 무대에 집중하는 2막은 긴장감을 이어가지 못해 상대적으로 아쉽다. 그런 상황에서 셰니스의 개, 발로우 역의 배우 사이먼 립킨이 재기 넘치는 애드리브로 1막에 이어 2막까지 객석 분위기를 살려준다. 퍼펫이라고 하기엔 어설픈 솜 인형을 들고도 <애비뉴 Q>에 출연했던 경력을 십분 활용해 캐릭터에 생기를 불어넣는데, 퍼펫으로 유명한 연극 <워 호스>에 빗대어 구시렁거리고, 평론가들이 이 작품은 롱런할 거라고 했다며 자학하는 등 작품 외적인 면을 끌어들인 한마디, 한마디는 작품이 늘어지는 포인트마다 확실한 웃음을 이끌어낸다. 어이없는 상황과 패러디가 이어져도 관객의 웃음이 터지지 않을 상황을 대비해 심어놓은 결정적인 카드, 말 많은 개 발로우는 이 작품의 일등 공신이나 다름없다. 



패러디로 재현한 <더 엑스팩터>

실제 <더 엑스팩터>의 중심인물인 사이먼 코웰 등 심사위원에 대한 풍자와 패러디도 이 작품의 막강한 웃음 유발 요소다. 실제 인물과 닮은 배우가 각 인물의 특징적인 말투나 몸짓, 표정을 정확하게 잡아내고, 과장되게 표현해서 <더 엑스팩터>를 뮤지컬 무대에 고스란히 재현했다. 그러면서도 시종일관 코믹한 면을 놓치지 않는다. 과장된 말투와 몸짓으로 오디션 참가자들과 인터뷰를 하던 진행자 리암 오디어리가 갑자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난 모르는 사람들과 껴안는 게 좋아”라며 자신만의 무대를 꾸미기도 하고 사이먼 코웰이 괜히 멋진 탭댄스 무대를 선보이기도 한다. 우스꽝스러운 오디션 참가자들을 패러디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노래를 못해도 자신 있게 내지르는 참가자나, 황당한 복장으로 나타나서 실없는 이야기를 하는 참가자까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보던 괴짜들보다 더 황당한 캐릭터들을 등장시켰다.

특히 이 작품은 사이먼 코웰을 다방면으로 영리하게 활용한다. 작품이 시작될 때부터, 수십 년 전 어린 사이먼 코웰을 통해 마치 탄생 설화처럼 <더 엑스팩터>를 소개한다. 맑은 미성으로 노래하며 거대한 무대에 오른 꼬마는 종일 텔레비전을 보며 하루를 보내고, 텔레비전을 그만 보라는 엄마에게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설파하다가, 불현듯 <더 엑스팩터>라는 프로그램의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성인이 된 사이먼 코웰은 <더 엑스팩터>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기초로 한 <더 엑스팩터> 뮤지컬의 세계에 마치 신처럼 강림한다. 오디션에 참가해 인생을 바꾸어 보려는 출연자들이 “사이먼, 제발!”을 연호하면 사이먼 코웰은 특유의 정장과 선글라스 차림으로 미소를 지으며 공중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본다. 하지만 이 작품은 사이먼 코웰을 신처럼 떠받들기만 하는 게 아니다. 이내 그를 희화화하고 깎아내리며 풍자한다. 잘난 척하는 표정과 자세부터 최근의 가십에 이르기까지 거침없이 ‘사이먼 코웰’이라는 아이콘을 활용해 관객을 웃긴다. 출연자에겐 관심이 없고 프로그램의 성공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사실 왜곡도 서슴지 않는 악덕 제작자. 자신이 멋있어 보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자기애 충만한 심사위원. 사이먼 코웰을 닮은 배우 나이젤 하먼은 가상의 <더 엑스팩터> 속의 ‘사이먼 코웰’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대극장 무대에 오른 TV

화려한 대형 세트를 배경으로 무수한 배우가 등장하는 이 작품은 확실히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넓은 무대뿐만 아니라 무대 위까지 삼차원 공간을 와이어나 크레인을 이용해 알차게 활용해 더 웅장한 느낌을 만들었다. 소품을 활용해 수십 명의 출연자들이 피라미드 형태로 늘어서서 합창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연출하거나, 출연자들이 계단과 그네를 이용해 거대한 엑스 자 형태로 정렬되는 모습은 스펙터클했다. 맥스와 셰니스가 휴대전화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호감을 키워가는 노래 ‘벌써 네가 보고 싶어(Missing You Already)’가 나오는 장면에선 무대 양옆의 벽에 메시지를 하나씩 영상으로 비췄다. <더 엑스팩터>의 생방송 무대가 진행되는 2막은 대기실 세 개를 나란히 붙여 놓은 원형 세트가 무대를 가득 채웠다. 세트가 회전하면 빠르게 장면이 전환되어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했고, 그 세트를 양옆으로 활짝 열어 큰 무대 공간에서 군무를 보여주기도 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꽃인 생방송 무대는 방송에 나오는 것처럼 화려하게 제작되어 실제 오디션 생방송 무대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텔레비전 오디션 프로그램이 몇 년째 계속 사랑받는 이유는 누군가가 진심을 다해 부른 음악의 힘이 우리 가슴을 울리기 때문일 것이다. 이 뮤지컬에도 그런 순간이 존재한다. 여주인공 셰니스 역의 신디아 에리보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고음을 뽑아내며 작품의 메인 넘버, ‘나는 노래를 못해!(I Can't Sing!)’를 부른다. 소울이 느껴지는 노래 한 곡이 시종일관 웃음에 집중하던 작품 전체에 긴장과 감동을 불어넣었다. 그런가 하면 맥스 역의 앨런 모리세이가 우쿨렐레 반주에 맞춰 셰니스를 위해 부르는 소박한 노래 ‘너를 위해 쓴 노래(A Song I Wrote for You)’는 진심이 느껴져 더욱 사랑스럽고 따뜻하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등장할 법한 가요풍의 음악과 대극장에 어울리는 합창곡 등 다양한 장르의 넘버가 작품을 풍성하게 만들어줬다.
그러나 소소한 웃음을 연타로 뽑아내며 감동보다 웃음에 집중한 코미디 뮤지컬이 대극장 무대를 차지하는 건 시기상조였던 걸까? 텔레비전에서 무료로 볼 수 있는 코미디 작품에 아직 관객들이 지갑을 열 준비가 안 되어 있었는지, <아이 캔트 싱!>은 공연 전부터 지하철 광고와 방송 홍보에 대대적으로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객석의 반을 비운 채 공연하는 날이 적지 않았다. 결국 2주 후에 폐막한다는 갑작스러운 소식이 전해졌고, <아이 캔트 싱!>은 프리뷰 기간을 제외하고 정식으로 공연을 개막한 후 단 6주 만에 극장을 비워주게 됐다.

<아이 캔트 싱!>은 사이먼 코웰의 자전적인 이야기, 오디션 출연자들의 각종 사연, 셰니스의 성공담, <더 엑스팩터> 프로그램의 패러디 등 다양한 내용을 전부 건드리고 한꺼번에 담느라 이야기가 산만하게 진행됐고, 어이없는 상황들이 이어지면서 결말이 황당하게 끝나긴 했다. 그런데도 공연을 보는 그 순간만큼은 관객이 웃을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한 작품이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거대한 객석을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나 보다. 프리뷰 기간에 기술적인 문제로 일정이 연기되거나 공연이 중단되는 잡음이 있긴 했지만 본 공연이 올라간 후에는 평단의 반응도 호의적이었다. 유명 인사인 사이먼 코웰이 직접 제작에 참여한 대형 뮤지컬 코미디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도 상당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 캔트 싱!>은 연초부터 거장의 이름값에도 불구하고 줄줄이 조기 폐막의 길을 걸었던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스티븐 워드(Stephen Ward)>나 팀 라이스의 <지상에서 영원으로(From Here to Eternity)> 같은 대형 뮤지컬의 뒤를 따르게 됐다. 단순한 스토리에 별다른 갈등 구조도 없지만 끊임없이 웃음을 추구해 관객들을 즐겁게 한 코미디. 영화나 책을 원작으로 하지 않은 뮤지컬 신작이라 더욱 기대가 컸는데 결국 웨스트엔드의 벽을 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당연히 오래도록 공연될 것이라 생각하고 느긋하게 관람할 예정이었던 작품이 갑자기 폐막 발표를 하는 바람에 놀라서 극장으로 달려갔다. 장기 공연 예정이던 작품의 폐막 발표에 배우들의 사기가 저하되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배우들은 오히려 그 상황을 이용해서 또 다른 웃음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여전히 객석은 드문드문 비어 있었지만 관객들도 배우들의 마음에 화답해 더욱 아낌없는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마지막 공연을 앞둔 주에는 객석이 만석이 된 날도 있었다고 한다. <아이 캔트 싱!>이 이대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디션을 통해 스타가 된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 역경을 딛고 일어서서 더 탄탄한 코미디 작품으로 발전해  이내 당당히 런던으로 귀환하기를 기대해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9호 2014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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