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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Mr.BONG ESSAY] <푸르른 날에> 5월 19일 하루 전날 [No.130]

글 |봉태규 그림 | 봉태규 2014-08-06 4,054
봉태규의 공연 에세이





아침에 눈이 떠지면 난 언제나 그렇듯 침대에서 한참을 밍기적거린다. 알람 소리도 어찌나 못 듣는지 일어나기 30분 전부터 5분 단위로 알람을 맞춰놓지만, 그래도 한 번에 깨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게 겨우 침대에서 나와 물 한 잔을 마시고 양치질을 한다. 입 안에 화한 향이 가득 퍼지면 잠에서 서서히 깨어난다. 그러곤 찬물로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른다. 이때 손으로 얼굴을 톡톡 두드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시계를 보니 11시가 조금 지났다(대부분 새벽 2시에서 3시에 잠이 든다). 습관적으로 팟캐스트를 틀고 나서 슬슬 늦은 한 끼를 준비한다. 나는 엄마랑 같이 살지만 언젠가부터 요리에 흥미가 생겨서 몇 가지 기본 반찬을 빼고는 매끼 1인분의 식사를 직접 준비한다. 내가 차리는 밥상(그렇게 대단한 밥상은 아니지만)의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제대로 지은 밥이다. 그래서 혼자 밥을 차릴 땐 밥 짓기에 가장 공을 들인다.

밥을 다 먹고 난 후 운동을 가기 전에 소화를 시킬 겸 한 시간 정도 책을 읽는다. 이땐 주로 에세이를 읽는다. 나는 소설보다 에세이가 좋다. 에세이는 합법적으로 다른 사람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즐거움이 있다고 할까. 그리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그 사람의 말을 듣기 때문에 말하기에 익숙한 나에겐 이것이 무척 묘한 경험으로 다가온다. 

이제 운동을 간다. 운동이라곤 하지만 동네를 걷는 게 전부지만, 나에겐 이 시간이 굉장히 중요하다. 한 시간 정도 빠르게 걷고 나서 “후아-” 하고 저절로 내뱉게 되는 한 숨, 이 한숨이 내가 힘들 때 나에게 주는 유일한 ‘후련함’이었으니까.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간단히 샤워를 하고 나선, 다시 남들 눈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 인터넷을 하거나, 낮잠을 자거나, 멍하게 있거나. 혹시라도 저녁에 약속이 있다면 굉장히 여유 있게 외출 준비를 한다. 촬영이 없을 때는 빈둥대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직업의 특성상(그렇게 여유를 즐기다 무기한 백수로 보내게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직업의 애로 사항이다), 쉬는 동안에는 대체로 이렇게 특별한 일 없는 하루를 보낸다. 나는 이렇게 조용하게 흐르는 나의 하루가 참 좋다. 마음 내키는 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엄청난 권리를 나는 지금 마음껏 누리고 있는 것이다.


1980년 5월 18일 광주, 사람들은 아무런 대가없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1981년 5월 19일 서울, 나는 아무런 대가없이 나의 당연한 하루를 시작한다.

나에게 주어진 당연한 평온한 하루, 오늘도 푸르른 날이다. 참 보기에 좋다. 
 
세상일에 관심 없는 척 하지만, 
자신의 눈을 끄는 건 굳이 나서지 않으면서 
참견하기 좋아하는 그런 남자.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0호 2014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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