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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ULTURE IN MUSICAL] 뻔하지만 생기 넘치는 학원물의 매력 [No.137]

글 |송준호 2015-03-04 6,138

어느 날 학교에 전학생이 등장한다.  학내 세력은 전학생과 가벼운 기 싸움을  벌이지만, 그는 천재적인 재능으로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학교에 새로운  분위기를 가져온다. 

이 과정에서 패자는 없다.  모두가 화합하여 난관을 극복하고,  웃으며 피날레를 맞는다. 

너무나 순수해서  예측가능한 이 이야기는 학원물의  대표적 전형 중 하나다.  일본 소설을 토대로  만든 창작뮤지컬 <런웨이 비트> 역시  이런 관습 위에서 재창조된 작품이다. 

학원물은 그 상투성에도 불구하고 왜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을까. 



현실의 소재를 다루는 방식의 차이


학원물은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장르지만, 학업, 진로, 친구, 사랑, 가정사를 폭넓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내용 면에서 의외로 폭이 넓다. 게다가 형식적으로도 코미디, 뮤지컬, 로맨스, 판타지, 미스터리, 스릴러, 스포츠 등으로 외연을 확장시켜 왔다. 이를 감안하면 전 세계적인 히트작 <해리포터> 시리즈나 <트와일라잇> 1편도 판타지가 가미된 학원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학원물이 다소 현실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춰온 것과 달리, 서구의 학원물은 이처럼 유연한 방식으로 재미를 추구한다. 미국에서는 <하이스쿨 뮤지컬>의 성공 이후 <글리>로 이어지는 로맨틱 뮤지컬 학원물이 인기를 끌었다. <스킨스>로 대표되는 영국의 학원물은 술, 마약, 섹스, 폭력 등 다소 어둡고 자극적인 소재가 많다. 청소년을 단순히 어린 미성년자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점이 특징이다.  


이에 반해 일본은 만화나 소설 등의 원작을 드라마화한 경우가 많아서, 학원물의 틀 안에서도 다양한 소재와 하위 장르를 자랑한다. 한국의 학원 드라마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원조 학원물’이라고 할 수 있는 <고쿠센>과 는 열혈 교사가 등장해 문제 학급을 탈바꿈시킨다는 내용이다. 이는 국내 대표적인 학원물 시리즈인 <학교>나 <아이 엠 샘> 같은 드라마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부분이다. 또 코믹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코미디물과 연애담을 다루는 로맨스물 등이 일본 학원물에서 주로 나타나는 양식들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만화를 연상시키듯 과장된 연출 방식이다. <런웨이 비트>에서도 이런 모습이 잘 나타나는데, 주인공의 멋진 모습이나 부각시킬 인물의 등장 신을 슬로 비디오로 처리하거나 강렬한 효과음을 넣어 시선을 주목하게 하는 연출은 확실히 일본 학원물만의 특징이다. 


해외 학원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점은 등장인물이 현실의 한계와 난관 앞에서 좌절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낸다는 것이다. 국내 학원물도 똑같이 학교 생활과 가족 관계, 친구와 이성 문제의 범주에서 소재를 찾지만, 이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현저히 다르다. 가령 입시 스트레스나 왕따, 학원 폭력 문제는 한국과 일본이 공통적으로 가진 문제지만, 전개  방식에 있어서 한국의 학원물은 다소 진지한 ‘정면 돌파형’ 드라마만을 고수한다. 이처럼 청소년기의 순수성이 현실에서도 픽션의 세계에서도 보호받지 못할 때, 어른들의 사회를 흉내 내는 변종 학원물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도 한다. 몇 해 전 인기를 끌었던 <상속자들>은 당시에 제대로 된 학원물이 없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꿈을 향한 도전기로 업그레이드


외국과 달리 현실의 학교 문제나 이성 문제에만 국한해 이야기를 꾸미는 학원물은 사회적 의미는 있을지언정 오락적 만족감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드림 하이>나 <왓츠 업> 같은 예술고나 대학 뮤지컬 학과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다. 특히 두 번의 시즌으로 방영된 <드림 하이>는 도식적이지 않은 드라마 구조와 캐릭터로 기존 학원물의 틀을 깨는 데 성공했다. 기린예고에 입학한 ‘루저’ 학생들이 최고의 가수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이 드라마는 학생들의 목표를 단순히 대학 진학에 두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한 도전에 맞추는 발상의 전환으로 눈길을 끌었다. 학생들 각각의 특별한 재능과 이를 통한 노력의 과정은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전개 방식을 가져올 수 있다. 특히 예술 전공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학원물은 자연스럽게 장르별 예술 시연을 통한 볼거리도 제공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렇듯 일상적인 소재라도 접근 방식을 달리하면 한층 매력적인 학원물로 탈바꿈할 수 있다. 특히 그 시대의 문화 코드나 트렌드를 반영하면 새로운 느낌의 학원물도 가능하다. 기안84의 동명 웹툰을 스크린으로 옮긴 코믹 학원물 <패션왕>이 그렇다. 반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빵 셔틀’ 우기명이 패션에 눈을 떠가면서 ‘간지남’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병맛’ 코드를 가미해 기존 학원물의 계몽적인 성격을 말끔히 벗어던졌다. 한낱 잉여인간에 불과했던 우기명이 숨겨진 패션의 재능을 통해 성장해가는 이야기는 기존 학원물의 구태의연한 계몽주의보다 동년배들의 감성을 효과적으로 자극할 수 있었다. 




이처럼 새로운 학원물의 출현은 어느 정도 실험적 형식을 통한 접근이 수반될 때 가능해진다. 춤과 노래와 서사가 버무려진 뮤지컬에서 이는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런웨이 비트>의 중심 스토리는 이미 그런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천재적인 재능과 매력의 소유자인 주인공이 정체됐던 학교에 새 바람을 일으킨다. 주인공 비트는 패션 디자인이라는 자신의 재능을 무기로 학교 분위기 쇄신에 나선다. 저마다의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걸 모른 채로 살아가던 학생들은 비트가 당긴 활력의 도화선에 자극돼 점차 꿈을 향해 노력하기 시작한다. 만화나 소설, 영화에서라면 다소 진부한 설정이겠지만, 뮤지컬이라면 이런 요소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다. <드림 하이>에서는 그 원동력이 춤과 노래였다면, <런웨이 비트>에서는 거기에 패션이 더해진다. 여타의 학원 뮤지컬이 드라마에서처럼 성적이나 가족, 이성 문제만을 정직하게 파헤쳤다면, 이 작품은 좀 더 우정과 꿈의 실현에 초점을 맞춘다. 왕따를 꽃미남으로 변신시켜 친구들과 어울리게 하는 것도 패션의 힘이다. 뿐만 아니라 폐교의 위기에 처한 학교를 구해내는 것도, 어른들의 세계에서 친구를 구해내는 것도 모두 이들 ‘패션 어벤저스’ 덕분이다. 즉 <런웨이 비트>는 리얼리즘 드라마라기보다 일종의 판타지적 성격이 있는 이야기다. 이번에 재각색된 창작뮤지컬에서 이 패션의 마법을 어떻게 표현할지가 기대되는 부분이다.  


이렇듯 학원물도 시대에 따라 내용과 스타일에서 진화를 거듭한다. 그럼에도 학생들의 갈등과 화해, 우정과 사랑의 기본 서사는 어쩔 수 없이 반복된다. 그래서 학원물에서는 예정된 결말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매 순간을 기대하게 하는 과정의 묘사가 중요하다. 그건 어쩌면 ‘청춘’이라는 이름에 깃든 태생적인 에너지에 달렸을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7호 2015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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