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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ULTURE INTERVIEW] 가수 임헌일 [No.138]

글 |배경희 사진 |김호근 2015-03-27 5,718

브레멘과 정원영 밴드, 메이트를 거쳐 온전히 자신의 이름으로 새로운 곳을 향해 발을 내딛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임헌일.
작은 극장에 홀로 서서 관객과 만나는 솔로 콘서트 <독백>으로 7일 동안의 축제를 끝낸 다음날 그를 만났다.





공연이 끝난 어제는 뭐 했어요?
집에서 멍하게 있었어요. 공연하는 동안 감정 소모가 커서 어젠 아무것도 안 하고 싶더라고요. 물론 공연하는 건 정말 좋았어요. 저는 사람들이 저를 좋아할 거란 기대를 잘 안 해요. 그래서 매번 티켓 오픈 때마다 너무너무 떨려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으니까, 좋았죠. 끝나는 게 아쉽고.

일곱 번의 공연 중 스스로 만족한 공연은 몇 번이나 돼요?
한 삼 일 정도? 나머지 날들은 사고가 조금씩 있었어요. 특히 다섯째 날은 그날따라 너무 긴장돼서 물을 계속 마셨더니 중간에 화장실을 가는 해프닝이…. (웃음) 사실 초반부터 화장실에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차마 진지한 노래에서 분위기를 깰 순 없고, 신 나는 곡 순서가 될 때까지 참았다가 용기 내서 말했죠.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고. 하하.

제가 마침 그날 그 자리에 있었는데, 진짜 용기 내서 말하는 게 눈에 보였어요. 하하. 그런 순간들이 관객에겐 더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거예요.
제발 잊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웃음)


그런데 왜 그렇게 긴장했어요? 지금까지 공연은 셀 수 없이 많이 했을 테고, 솔로 공연이 처음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혼자 공연하는 걸 재작년 투어에서 처음 시도해 봤어요. 그때 제프 버클리 카페 라이브 앨범에 빠져 있었거든요. 제프 버클리가 진짜 작은 카페에서 앰프 하나 놓고 자유롭게 공연한 걸 레코딩한 건데, 1, 2, 3번 트랙은 노래, 4, 5번 트랙은 독백, 6번 트랙은 노래, 앨범이 이런 식이에요. 그걸 듣는데, 아, 정말 좋았어요. 물론 제프 버클리가 노래도 잘하고 연주도 잘해서 좋은 거겠지만, 나도 아무런 장치 없이 소극장에서 혼자 공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한 게 재작년 투어 공연이에요. 첫날 공연 초반에 연주를 살짝 삐끗했는데, 밴드 공연이 아니니까 도와줄 사람이 없잖아요. 긴장해서 손도 굳고, 가사도 틀리고, 공연을 심하게 망쳤죠. 그때의 기억 때문에 이번에도 망치면 트라우마로 남을까봐 공연이 끝나는 날까지 긴장이 안 풀렸어요.


혼자 기타 치면서 하는 공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임헌일 공연은 무대 위에 기타랑 베이스, 드럼하고 건반까지 있었죠. 악기만 보면 밴드 공연인 줄 알겠던데요? 

프로페셔널하게 할 수 있는 건 기타밖에 없어요. 관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배우긴 했는데, 다른 악기는 어디 가서 명함 내밀 수준이 안 돼요. 요즘엔 여러 악기를 잘 다룰 줄 아는 친구들이 정말 많아서, 이런저런 거 할 줄 안다고 말하는 거 자체가 사실 부끄럽죠. 그런데 저 혼자 하는 제 공연이니까 ‘나 이런 것도 조금 해요’ 하고 보여주고 싶었어요. 좀, 돌잔치 같은 느낌으로. (웃음) 공연을 잘하고 싶은 마음에 그랬던 거기도 하고요.


기타 말고 다른 악기들은 다 언제 배웠어요?
원래 기타보다 베이스를 더 먼저 쳤어요. 베이스를 맨 처음에 배웠고, 그다음에 드럼을 배웠죠. 마지막에 배운 게 기타였는데, 기타가 제일 멋있더라고요. (웃음) 세 개 다 어렸을 때 교회에서 배운 거고. 피아노는 예대 실용음악과에 들어가서 늦게 시작했는데, 이번에 공연하면서 다음 공연을 위해 좀 더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매회 다른 미발표 곡을 부른 건 관객을 위한 일종의 이벤트였던 건가요? 제가 간 날은 제목을 아직 못 정했다고 한 제목 없는 노래를 불렀는데, 그 곡 정말 좋았어요.
와, 정말요? 그 노래는 이번에 공연하면서 가사를 붙인 거예요. 무심코 제 데모를 듣다가 괜찮아서 3회 공연 끝내고 3일 쉬는 동안 가사를 써봐야지 했는데, 딱 한 번에 이야기가 만들어졌어요. 이거 공연에서 불러야겠다고 생각했죠. 나머지 곡은 예전에 써놨던 거예요. 여섯 곡 다 좋아하는 노래인데, 이런저런 이유로 계속 앨범에 못 실었어요. 이러다 영영 사람들한테 못 들려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공연에서 발표한 다음에 이걸로 앨범을 만들자고 내지른 거죠. (웃음)

평소에 틈틈이 곡을 쓴다면 그건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기 위해서인가요, 아니면 그냥 쓰고 싶어서인가요?
가이드 음악처럼 가사 없는 데모를 만들어서 차 안에서 듣는 거, 전 그렇게 음악 듣는 게 좋아요. 여기선 기타 사운드를 넣고, 여기는 드럼 사운드를 넣고, 가사는 이렇게 쓰면 좋을 것 같고, 어떤 가수가 부르면 좋을 것 같고. 노래로 혼자 이런저런 상상하는 걸 좋아해서 계속 곡을 쓰다 보니, 그게 습관이 돼서 거의 매일 곡을 써요. 일기 쓰듯이.

공연 중에 라이브에서 잘 안 부르게 되는 노래가 있다고 얘기했잖아요. 어떤 노래가 그래요?
이번 공연에서 ‘설명하려 하지 않겠어’, ‘하루’, ‘그리워’ 세 곡을 연달아 불렀는데, 그런 노래들이 그래요. 타이틀 곡 같은 대표적인 노래가 부르기 힘들죠. 예를 들어, 좋아하는 옷을 자주 입다보면 금세 싫증나고, 이게 나한테 왜 특별했는지 잊게 되잖아요. 그런 거랑 비슷해요. 너무 많이 들었거나 또 너무 많이 불러서 익숙한 노래일수록 감정을 담기가 쉽지 않아요. 저는 음악이 어떤 면에서는 사진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진에 그걸 찍었던 순간이 남아있는 것처럼 노래도 곡을 썼을 때의 감정을 담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곡을 썼을 때의 감정이 떠오르지 않으면 부르는 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에 공연하면서 옛날 노래도 지금 부르는 그 시점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되는 기분이 들었어요. 앞으로 공연을 더 해야 하는 이유를 하나 더 발견하게 된 것 같아요.


이번 공연으로 생각이 달라진 게 또 있을까요?
예전엔 공연을 망친 것 같으면 주위에서 아무리 위로해 줘도 괜찮지 않았어요. 반대로 나는 좋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별 뜻 없이 “오늘은 이게 좀 아쉽던데?” 하면 와르르 무너지고. 내가 잘하는 건 생각 안 하고, 내가 뭘 못하는지, 거기에만 집착했어요.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제 자신을 계속 다른 사람과 비교했던 것 같아요. 가깝게는 주위 동료들, 멀게는 해외 아티스트들. 그런데 노력으로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삼십 대가 되고서 조금씩 받아들이게 됐어요. 그러니까 제 자신을 보게 되더라고요. 남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음악이 뭔지 고민하고, 그걸 멋있게 하자고 스스로 격려했는데, 공연을 하고 나서 좀 더 자신감이 생겼어요. 마음이 편해졌죠.

뭐가 계속 남과 나를 비교하게 했는데요?
이건 너무 뻔한 얘기인데, 노래를 좀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보컬리스트가 있어요?
제프 버클리요. (웃음) 제가 제프 버클리처럼 하길 바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고. 그냥, 긴장 좀 덜하고 조금만 더 편하게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집에서 부를 때처럼.

집에서 노래 연습도 해요? 많이?
연습은 정말 많이 하죠. 목 관리도 열심히 하는 편이에요. 공연 앞두고는 목에 해가 되는 일은 절대로 안 해요. 감기 걸릴까봐 밤에 목도리 두르고 자고 그러죠.





스스로를 그렇게 예민하게 몰아붙이면서 음악을 계속하는 이유는 뭘까요?
언젠가 공연이 끝나고 편지를 받은 적이 있어요. 자기가 너무 힘들었을 때 밤새 울면서 ‘사랑이 되어가길’을 들었는데, 그 노래로 다시 힘을 내게 됐다는 그런 내용이었어요. ‘사랑이 되어가길’은 제가 되게 아끼는 곡인데,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정말 좋더라고요. 사실 어렸을 때는 음악이 위로가 된다는 생각을 못 했거든요. 그냥 음악 하는 게 좋았어요. 재밌고. 그런데 요즘 같이 음악 하기 힘든 시대에 힘듦을 견디면서 음악을 하는 이유가, 그저 재밌어서라면 뭐랄까, 좀 부족하잖아요. 재미있는 일과 의미 있는 일은 완전히 다른 거니까. 누군가 제 노래를 듣고 힘든 마음이 조금이나마 괜찮아진다면 그건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이 저한테는 위로가 되죠. 나 쓸모없진 않구나 하는 생각에 기쁘고.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임헌일’을 열심히 검색해 본다고 했던 게, 다 관객들의 피드백을 얻기 위해서였군요.
네, 스스로 좀 더 힘을 내려고 진짜 빠짐없이 다 찾아봐요. (웃음) 옛날엔 제 이름을 제가 검색해 본다는 걸 들키는 게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그게 왜 부끄러운 거지 싶더라고요. 그게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의 대화라는 생각도 

들어요.

앨범 발매나 공연이나, 활동 계획이 정해진 게 있어요?
우선, 이번 콘서트에서 공개한 노래로 소품집을 만들 거고, 조만간 거친 블루스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프로젝트 앨범 작업을 시작할 거예요. 몇몇 곡은 작업을 끝내서 아마 올해 안에 발표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공연은 5월에 하는 뷰티풀 민트 라이프에 참여하는 게 정해졌고, 가을엔 제 독백 공연을 다시 할 거예요. 공연을 어떻게 할지 요즘 계속 고민 중이에요. 진짜 록킹한 공연을 해볼까 싶기도 하고, 아직 잘 모르겠어요.

완전히 록킹한 공연이면 임헌일의 파격적인 모습을 보게 되는 걸까요?
글쎄요. 친형이 이번 공연을 보러 왔는데, 제가 센 노래를 ‘으아아’ 하고 부르다가 노래가 끝나면 90도로 공손하게 인사하니까 너무 이상하더래요. 차라리 말도 반말로 하든가, 아니면 노래를 차분하게 하든가, 둘 중 하나만 하래요. 근데 그게 그냥 저라는 사람인 것 같아요. (웃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8호 2015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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