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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ULTURE IN MUSICAL] 뮤지컬 패러디의 세계 [No.138]

글 | 나윤정 2015-04-10 5,385

발견의 재미 
 
<레 밀리터리블>, <미생물>, <떡국열차>,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레 미제라블>, <미생>,
<설국열차>, 유명한 원작을 희화화한 패러디물이라는 것이다.  갈수록 빡빡해져 가는 현실, 웃음이 고픈 이 시대에  패러디만큼 빵 터지는 소재가 있을까?  이에 질세라 최근 개막한 <난쟁이들> 또한 우리가  잘 아는 동화를 비틀며 패러디 대열에 합류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유에서 새로운 유를 창조하는 패러디의 매력,  그 재기발랄함이 뮤지컬에서는 어떤 활약을 하고 있을까?



작은 설정, 큰 효과

어린이 프로그램의 고전 <세서미 스트리트>, 그 귀여운 인형들이 성인이 된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런 발칙한 발상은 독특한 뮤지컬의 탄생을 이끌었다. 이름하야 19금 퍼펫 뮤지컬 <애비뉴 Q>다. <세서미 스트리트>는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래 제작된 어린이 프로그램으로 전세계적으로 폭넓은 시청자 층을 보유하고 있다. <애비뉴 Q>의 제작가 로버트 로페즈와 제프 막스도 <세서미 스트리트>를 보고 자란 세대였기에 이 작품을 패러디한 뮤지컬을 만드는 데 뜻을 모았다. 결과는 대성공. 친숙한 인형들의 발칙한 반란은 <세서미 스트리트> 세대들의 공감을 이끌어냈고, <위키드>를 제치고 2004년 토니상 최고작품상, 극본상, 음악상을 휩쓸었다. 


동시대 관객들은 익숙한 작품이 기발한 발상으로 패러디되었을 때 즉각적인 리액션을 보인다. 그만큼 작은 설정으로 큰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패러디는 작품에 재미를 더하는 데 효율적으로 사용된다. 패러디는 ‘다른 노래에 병행하는 노래’란 뜻의 그리스어 ‘파로데이아(parodeia)’에서 유래한 말로, 원작이나 특정 대상을 비틀어 풍자하는 문학 기법을 지칭한다. 단순히 웃기기 위해 이뤄지는 패러디도 있지만, 대부분의 패러디는 새로운 메시지를 창조하는 데 그 목적을 둔다. 어원에서 알 수 있듯 패러디는 꽤 전통이 있는 문화지만, 본격적으론 매체의 발달과 함께 대중적으로 봇물을 이루게 되었다. 국내의 경우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부터 여러 매체를 통해 패러디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 여파는 무대로도 이어져, 뮤지컬에서도 패러디가 다양한 양상을 보이며 관객들을 즐겁게 만든다. 



우리끼리 통하는 유명 뮤지컬 패러디


패러디가 제 역할을 충분히 하기 위해서는 전제되어야 할 조건이 있다. 패러디 기법을 사용할 작가뿐 아니라 그것을 수용할 관객이 그 원작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뮤지컬 관객들은 어느 정도 뮤지컬에 대한 관심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뮤지컬에서 특화되는 패러디가 생기기 마련이다. 바로 같은 장르 내 유명 작품을 패러디하는 것이다. 특정 뮤지컬의 한 장면은 일반 대중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뮤지컬 관객들에게는 확 와 닿는 유머 코드로 변하게 된다. 


패러디된 장면 자체도 웃음을 주지만, 내가 알고 있던 그 장면을 다른 무대에서 발견하는 재미도 크다. 그런 즐거움을 가장 많이 준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지킬 앤 하이드>의 ‘컨프론테이션’일 것이다. 주인공이 지킬과 하이드를 오가며 두 인격의 대결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톡식 히어로>, <구텐버그>, <날아라, 박씨!>, <막돼먹은 영애씨>, <스팸어랏>, <이블 데드> 등 다양한 무대에서 변주되며 즐거움을 선사했다. 원작에서 워낙 강렬했던 장면인 만큼, 그 특징을 더 과장되게 표현할수록 재미는 배가되었다.


뮤지컬 마니아를 공략해, 다수 작품을 차용한 한층 업그레이드된 패러디를 선보인 공연도 있다. <구텐버그>에는 뮤지컬 마니아들이 한껏 즐길 수 있는 패러디가 가득하다. 뮤지컬 작가와 작곡가가 브로드웨이 진출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인 만큼, 유명 뮤지컬뿐 아니라 브로드웨이 뮤지컬 흥행 공식에 대한 풍자 등 뮤지컬계 전반에 대한 패러디를 시도했다. 특히 국내 공연에서는 원작엔 없는 특별 패러디 장면을 더하기도 했다. 슐리머 마을의 이발소 장면에서 <지킬 앤 하이드>와 <스위니 토드> 캐릭터를 패러디한 것. 해당 작품의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국내 상황을 반영한 결과다. 패러디는 관객들의 성향과 철저히 맞아떨어졌을 때 시너지 효과를 내므로, 이러한 맞춤형 패러디가 더욱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웃기려고 작정하고 만든 <스팸어랏>은 패러디도 작정하고 활용했다. 그야말로 패러디의 총체다. <맨 오브 라만차>,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 <캣츠> 등 10여 편의 인기 뮤지컬을 망라해 코미디의 소재로 활용하였다. <맨 오브 라만차>에서는 돈키호테가 여관 주인에게 기사 작위를 받는 장면을 끌어와 아서왕과 갤러해드의 조금 모자란 매력을 부각시키고, <오페라의 유령>에서는 팬텀과 크리스틴이 배를 타며 노래 부르는 장면을 차용해 전형적인 사랑의 아리아를 풍자했다. 여기서 패러디가 단순한 모방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발견되는데, 바로 단순히 원작을 흉내 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패러디는 원작과는 또 다른 의미를 생산해내는 역할까지 아우른다. 원작을 풍자하거나 그것을 통해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아무리 사소한 패러디일지라도 그 배경에는 패러디 대상에 대한 창작자의 철저한 분석이 선행되어 있다. 



동화를 비튼 기발한 시도


바야흐로 원 소스 멀티 유즈 시대. 패러디도 꼭 동일 장르에만 국한될 필요는 없다. 다른 장르로 눈을 돌려 패러디 대상을 물색하는 뮤지컬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특히 동화는 뮤지컬의 환상성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아 패러디 소재로 잘 활용된다. 


창작뮤지컬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는 전래 동화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의 이야기를 가져오면서, 평강 공주의 시녀 연이를 새로운 캐릭터로 창조해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위키드>의 경우엔 『오즈의 마법사』의 이전 이야기를 상상해 초록 마녀 엘파바란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난쟁이들>에서는 『백설공주』에 등장했던 일곱 난쟁이 중 하나가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른다. 이런 설정은 기존에 알고 있던 동화를 전혀 다른 시각에서 접근함으로써, 친숙함 속에 낯섦을 발견하는 재미를 준다. 조신한 줄만 알았던 백설공주가 난쟁이와 재회해 자신의 성욕을 채우게 되는 순간은 패러디 작품이 아니었다면 상상도 못할 이야기다. 여기서 패러디는 동화가 심어준 왜곡된 환상을 깨뜨리며 현실 세계를 풍자하는 기능까지 아우른다.

 
신선한 소재를 찾으려는 노력은 다양한 작품을 섞는 시도로도 이어진다. 『신데렐라』, 『인어공주』, 『백설공주』를 확 뒤집은 <난쟁이들>. 이 작품에서는 공주계의 대표 주자들의 화려한 변신이 이어진다. 원작에선 착하고 예뻤지만, 이 작품에서는 한없이 본능에 충실한 공주들이 되었다. <숲 속으로>는 『신데렐라』, 『잭과 콩나무』, 『빨간 망토』를 재해석해 환상적인 무대를 구현하였다. 여러 동화가 뒤섞이며 모든 것이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 듯하지만, 그 이후의 상황까지 현실적으로 보여주며 동화 속 주인공들이 성숙해지는 모습까지 담아낸다. 이러한 과정은 어른들에게 현실적인 교훈을 전해주고 있어 의미가 있다. 


동화의 주 독자층은 어린이지만, 동화를 패러디한 작품들의 주 대상은 어린이에서부터 동심을 잃어버린 어른들까지 아우른다. 어른이 되어서는 책 한 권 읽을 여유도 없다고 아우성치지만,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동화에 푹 빠진 경험이 있다. 그러니 어른들에게도 동화 패러디는 쉽게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 과정에서 패러디는 어린 시절 동심을 깨우는 역할뿐 아니라 현 시점에서 깨달아야 할 덕목들까지 일러주며, 새로운 발견으로 이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8호 2015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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