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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존 앤 젠> JON & JENN [No.139]

글 | 박천휴 사진제공 | Carol Rosegg 2015-04-29 4,605

작고 커다란 감동  

브로드웨이의 연초는 한 해 중 가장 조용한 시기이다. 특히 올해는 지난가을 시즌에 오픈한 신작 가운데 이렇다 할 화제작도 별로 없었고, 봄 시즌에 공연이 예정돼 있는 큰 규모의 작품들이 대부분 3월 중순이 지나서 하나둘 개막할 예정이다. 그래서 이달에는 오프브로드웨이 공연이나, 흔히 ‘다운타운 시어터’라고 불리는 작고 실험적인 공연으로 시선을 돌려봤다. 



<존 앤 젠>의 특색 있는 창작자들

브로드웨이의 극장들이 모여 있는 타임스퀘어 부근에서 고작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시어터 로(Theater Row)는 대여섯 개의 유서 깊은 오프브로드웨와 오프오프브로드웨이 극장들이 자리 잡은 작은 구역이다. 이곳에 위치한 극장들은 규모는 작지만, 스티븐 손드하임의 <어쌔신>이나 윌리엄 핀의 <팔세토>처럼 20세기 미국 뮤지컬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뮤지컬이나 퓰리처상을 받은 연극이 시작된 곳이어서 현재 주목받는 젊은 작가들이 앞다퉈  작품을 올리려고 한다. 브로드웨이의 작품들이 큰 규모와 화려함을 앞세워 관객들을 현혹한다면, 시어터 로를 비롯한 오프브로드웨이 공연들은 뉴욕 공연 예술계가 꿋꿋하게 이어 나가려 하는 다양성과 진지함을 모토로 한다.

현재 시어터 로에서 공연 중인 <존 앤 젠>은 1995년에 오프브로드웨이에 올라간 초연의 리바이벌 버전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친근한 정서와 따뜻한 감동을 전한다. <존 앤 젠>의 등장인물은 총 세 명(심지어 그중 두 인물을 한 배우가 연기한다). 밴드 역시 피아노 한 대와 첼로 한 대, 단 두 개의 악기로 구성돼 있다. 이처럼 규모는 작지만, 주인공이 유년기와 청년기를 거쳐 중년이 될 때까지의 시간을 좇는 스케일 큰 작품이기도 하다. 작곡가 앤드루 리파는 아직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지 않았지만, 브로드웨이 뮤지컬 <아담스 패밀리> 등을 작곡했으며 오랫동안 꾸준히 창작 활동을 해왔다. 앤드루 리파와 함께 <존 앤 젠>의 대본을 쓴 작가 톰 그린월드는 현재 브로드웨이 공연을 홍보하는 광고 회사의 대표로 재직 중인 색다른 경력의 소유자다. <존 앤 젠>의 크리에이티브 팀 명단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이름은 편곡으로 참여한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이다.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은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와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등으로 유명한 토니어워즈에서 음악상을 받은 작곡가다. 제작 연도를 감안해 보면, 그 당시 무척 젊었던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이 <퍼레이드>로 토니상을 받기 전에 편곡자로만 작품에 참여한 것으로 짐작되는데, 브로드웨이의 작곡가들은 유명해지기 전에 이처럼 편곡 등의 일로 경력을 쌓는다. 앤드루 리파가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만큼의 유명한 작곡가는 아니지만, 그 역시 20년 넘게 꾸준히 크고 작은 작품을 써오며 뉴욕과 런던 공연계에서 실력을 쌓아왔다. <존 앤 젠>은 앤드루 리파의 준수한 스코어와 실력을 인정받은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의 아름다운 피아노와 첼로 편곡까지 들을 수 있는 공연이다.



뻔하지만 진부하지 않은 이야기

<존 앤 젠>의 1막은 1950년대를 배경으로 어린아이 젠이 자신보다 다섯 살 어린 남동생 존에게 노래를 불러주며 시작된다. 물론 이 작은 이인극에서 따로 아역 배우가 등장할 일은 없고, 남녀 주인공인 케이트 볼드윈과 코너 라이언이 역할에 맞춰 꼬마(심지어 갓난아기)를 연기한다. 잠든 남동생을 바라보며 세상에 온 걸 환영한다며 노래하는 꼬마 젠. 노래가 진행됨에 따라 관객들은 존과 젠이 사이좋은 남매로 점점 커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1950년대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가부장적이며 조금 폭력적이기까지 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남매. 동생 존은 유달리 씩씩하고 늘 자신을 돌봐주는 누나 젠에게 의지한다. 젠은 존보다 겨우 다섯 살 많지만, 동생이 산타 할아버지의 정체를 눈치 채지 못하도록 애틋한 거짓말을 지어내고, 존에게 손찌검한 아버지에게 맞서는 의젓한 누나다. 키 큰 성인 배우들이 꼬마를 연기하는 게 처음엔 조금 낯설게 느껴지지만, 사이좋은 어린 남매의 모습을 그려내는 음악과 가사 때문에 공연을 보면서 어느새 슬며시 미소를 짓게 된다.


영화 <보이후드>처럼 <존 앤 젠>은 1막에서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기를 맞기까지 커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상의 에피소드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방법으로 성장 과정을 보여주고, 그에 따라 그들의 감정과 관계 역시 변해감을 꽤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그걸 설득력 있게 보여주려다 보니 배우들이 짊어진 부담이 크다. 케이트 볼드윈과 코너 라이언은 둘만이 암호를 공유하는 아지트에서 함께 노는 사이좋은 어린아이들을 천진난만하게 연기하다가도, 다음 노래에 이르러서는 사춘기가 되어 남학생과 데이트를 하는 예민한 소녀와 이런 누나를 한심하게 보는 소년을 설득력 있게 연기한다. 너무 과장되게 코믹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사실적이거나 진지한 느낌이 아닌 적당히 힘을 뺀 능청스러운 연기가 인상적이다. 배우들의 좋은 앙상블과 앤드루 리파의 따뜻한 선율은 이 귀여운 남매의 이야기가 별다른 사건 없이 진행돼도 극에 집중하게 한다. 관객 모두가 존과 젠만큼 사이좋은 유년 시절을 보내지 않았더라도, 슬그머니 누나나 동생을 떠올리게 하며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내밀하고 따뜻한 감동은 브로드웨이의 대작들과는 또 다른 가치를 보여준다.


1막의 후반부에 이르면, 아버지에게 늘 반항하던 젠이 결국 대학교 진학을 위해 뉴욕으로 떠나면서 남매는 처음으로 떨어져 있게 된다. 항상 누나에게 의지해 온 동생 존은 누나의 빈자리에 무척 서운해하면서도 그 또래의 소년들이 늘 그렇듯 환경에 점점 적응하며 커간다. 한편 젠은 집을 떠나 뉴욕에서 누리게 된 자유와 대학 생활의 즐거움에 푹 젖어 점차 동생에게 소홀하게 된다. 이야기가 이 지점에 다다르면, 이 작품은 베트남 전쟁과 파시즘, 히피, 비틀스 같은 1960년대 미국의 주요한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무척이나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끌어온다. 젠은 뉴욕에서 만난 히피 성향의 친구들과 대마초를 피우며 평화주의를 논하고 기성세대를 비난한다. 그 사이 가부장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성격의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은 존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결국 해군에 자원 입대하기로 한다. 존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몇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누나 젠을 무척이나 반가워한다. 하지만 어느새 이 남매 사이에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벽이 생겼다. 존의 입대에 반대하는 젠과, 결혼 후 캐나다로 이사 가기로 결심한 젠에게 무척 화가 난 존은 가치관의 차이와 서운한 마음이 뒤엉켜 결국 크게 싸우고 만다. 그리고 1막의 후반부에 다다르면 베트남전에 참전한 존이 전사했다는 게 알려지고 젠은 동생을 잃은 슬픔과 후회를 슬프게 노래한다.

<존 앤 젠>은 이렇듯 노골적인 신파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애틋할 정도로 귀엽고 사이좋은 어린 남매가 어른이 되면서 점점 소원해졌다가 결국 화해할 기회도 없이 사고로 죽게 되는 동생과 그걸 가슴 아파하며 후회하는 누나 이야기는, 때때로 우직하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그리고 그에 맞춰 부드럽게 일렁이듯 끊임없이 이어지는 피아노와 첼로의 선율 역시 내내 멜랑콜리한 톤을 유지한다. 그렇지만 다행히 이 작품은 지나친 신파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 견제한다. 우선 앞서 언급한 배우들의 연기가 그렇다. 너무 과하게 귀엽게 보이도록 애쓰거나 너무 슬프게 울부짖지 않는, 어느 정도 절제된 연기가 눈에 띈다. 노래 또한 적절한 정도에서 감정을 조율하려 연신 애쓰는 느낌이다. 소극장이라는 규모에 맞게 단순하면서도 매우 추상적으로 표현된 세트나 조명 역시 전체적으로 담담한 분위기이며,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건조하게 짜인 스테이징은 지나친 감정의 과잉이 되지 않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독특한 컨셉이 빚어내는 매력

1막에서 어린 남매가 이십 대 초반이 될 때까지의 모습을 연기한 배우들은, 2막에 이르러 또 한 번 독특한 컨셉 안에서 인물들을 연기하게 된다. 2막이 시작하면 관객들은 이혼하고 홀로 아들을 키우는 엄마 젠이 죽은 동생의 이름을 붙인 아들 존을 과잉보호하며 단둘이 사는 모습을 보게 된다. 1막에서 동생 존을 연기한 배우 코너 라이언이 젠의 아들 역할을 맡아 다시 한 번 갓난아기부터 십 대 후반까지 연기하게 된다. 이 기발하고 독특한 컨셉은 배우들에게 연기 욕심을 자극할 만하다. 코너 라이언은 다시 아이와 소년을 연기하면서도 어쨌거나 1막의 존과는 다른 성격을 지닌 존을 보여줘야 하고, 케이트 볼드윈은 동생의 죽음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젠의 모습으로 중년이 될 때까지의 세월을 커버해야 한다. 엄마 젠과 아들 존은, 1막의 누나 젠과 동생 존만큼이나 애틋한 사이지만, 동생의 죽음이 가져다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인 젠과 그런 엄마의 지나친 간섭과 보호가 마냥 귀찮은 아들 존의 관계는 또 다른 식의 갈등을 빚는다. 


<존 앤 젠>의 이야기가 지닌 가장 큰 장점은 이 두 인물의 갈등과 감정을 결코 평면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나와 동생, 엄마와 아들, 그 어느 하나의 관점도 두루뭉술하게 지나치지 않고, 깊이 고민하고 표현하려 노력한 흔적이 대사와 노랫말에서 엿보인다. 이를테면, 죽은 동생에게 느끼는 죄책감으로 인해 아들을 과잉보호하는 엄마 젠과 이런 엄마 때문에 점점 더 삐딱하게 구는 아들 존의 관계를 마치 텔레비전의 가족 상담 토크쇼처럼 서로를 인터뷰하는 장면으로 연출한 부분이 그렇다. 


긴 세월 동안 등장인물을 따라가며 그들이 자라나고 무언가를 깨닫는 모습을 담는 성장담은 영화와 TV 등의 영상 매체에서 무척이나 흔한 형식이지만, 120분 남짓한 시간 동안, 그것도 가깝게 마주 앉은 관객 앞에서 하는 소극장 공연에서 이런 이야기를 그려내는 것은 창작자로서도, 배우로서도 무척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존 앤 젠>은 이런 어려움을 독특하고 실험적인 컨셉과 따뜻하고 감성적인 음악으로 풀어내는 작품이다. 이 작은 소극장 공연은 좁은 진폭의 미세한 감정까지 전달하려 한다는 점에서 브로드웨이의 여느 큰 공연들보다 더 커다란 야심을 가진 듯 느껴진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9호 2015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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