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인터뷰 | [INTERVIEW] 현대무용가 차진엽 [No.139]

글 | 송준호 사진 | 김수홍 2015-05-04 7,102

‘진짜 나’를 찾아가는 시간


<페이크 다이아몬드> 공연이 열리는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여느 현대무용 공연과 달리 일반 관객들의 모습이 유독 눈에 많이 띈다. 일반인 팬덤이 형성된 발레와 달리, 주로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현대무용 공연장의 모습을 돌이켜볼 때 이는 이례적인 일이다. 그녀는 정부와 평단이 수여하는 온갖 젊은 예술가상을 휩쓴 실력파이지만, 인터넷이나 매거진에서는 패션 아이콘처럼 소비되곤 한다. 이런 대중적 인기의 이유는 뭘까. 그녀에게 직접 들어봤다.



차진엽이 세상과 소통하는 법

현대무용가가, 그것도 여성 무용가가 이렇게 대중의 사랑을 받기가 쉽지 않은데 이유가 뭘까요. 물론 <댄싱9> 심사위원 출연의 영향이 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니까요.
일단 최근에 대중에게 알려진 건 [댄싱9]을 통해서겠죠. 현대무용은 발레와는 태생 자체가 다른 춤이라 대중에 다가가기가 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발레는 21세기에 들어선 이후 스타들이 계속 배출되면서 일반 관객들의 관람률이 굉장히 높아졌지만, 현대무용은 이제야 조금씩 그런 흐름이 생기고 있는 것 듯해요. 게다가 현대무용은 철학적이고 인문학적 사유가 전제된 춤으로 발전하고 있어서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고요. 저 같은 경우는 지난 10여 년간 무수히 많은 작품을 하면서 제 작업에 꾸준히 충실해왔던 게 지금에 와서 인정을 받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현대무용도 발레처럼 스타를 배출해야 일반 관객들이 극장을 찾아 관객층이 넓어진다는 의견도 있던데요.
제가 어릴 때 교육받은 건 예술가가 TV에 나가 자신을 알리는 게 예술가답지 않다는 거여서 그동안은 그런 걸 꺼리고 거절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별것도 아닌데. 요즘은 무용계 어른들도 인식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몇 년 전부터는 ‘현대무용도 스타가 나와야 하는데…’라는 말씀도 많이 하시고. 그런데 정작 누군가 그렇게 되려고 하면 싫어하죠. (웃음) 지금은 <댄싱9>이라는, 자기 PR을 할 수 있는 장이 생겼잖아요. TV에서 보고 춤에 관심을 생겼다면서 찾아오거나 SNS로 메시지를 보내며 작품에 대해 묻는 분들이 있는데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더라구요. 그래도 전 제 작품을 열심히 하면서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작년에 <로튼 애플> 공연이 끝나고 짧게 관객과의 대화를 했죠? 그런데 다른 무용가들과는 다르게 굉장히 달변이더라고요. 일반 관객도 알기 쉽게 말하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그렇죠. ‘쉽게’가 중요하죠. (웃음) 어릴 때는 말을 너무 못했고, 하는 것도 싫었어요. 남 앞에서 춤추는 건 떨리지 않는데 말하는 건 다르더라고요. 제가 바뀌게 된 건 국내에 ‘탄츠테아터’가 소개되면서인 것 같아요. 한예종 다닐 때 교수님이 탄츠테아터를 학생들에게 엄청나게 시키셨는데, 너무 어려워서 수업 전날부터 떨리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차 안이나 집에서 혼자 말하는 걸 연습하고 연기하는 거였는데, 그러면서 저 자신을 바꾸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글 쓰는 분들이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좋은 글은 쉽다’고. 이제까지 해왔던 작품도 비슷한 것 같아요. 어차피 다 뻔한 주제, 뻔한 이야기니까 철학적으로 어렵게 만들 게 아니라 대놓고 얘기하면 되잖아요. 제가 그렇게 직선적으로 얘기하니까 의외로 속이 시원하다, 통쾌하다, 하는 반응도 있어요.

그런 마인드가 최근 선보였던 <로튼 애플>이나 <페이크 다이아몬드> 같은 작품에서 잘 드러나고 있는 것 같아요. 은유나 상징이 보이는데 모두 쉽고 잘 읽히는 것들이죠. 대중과의 ‘연결고리’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걸 안무할 때 염두에 두는지?
그러진 않아요. 그냥 하고 싶은 걸 하고, 결과적으로 공감이 되면 좋죠. 방향성은 자연스레 생기는 거지, 대중을 의식하는 건 아니거든요. 물론 소재 면에서 관객을 감안하긴 하죠. 창작을 하는 사람들의 모순이 뭐냐면, 관객의 입맛에 맞춰서 작품을 만들면 안 된다고 하는 거예요. 그럴 거면 집에서 혼자 만들어서 자기 혼자 보면 되잖아요. 어쨌든 이건 티켓을 산 관객들에게 보여줄 거잖아요. 그럼 어느 정도 그들을 염두에 둬야 하는 건 당연한 거예요.

<페이크 다이아몬드>에서 가슴과 엉덩이에 과도하게 ‘뽕’을 넣은 여자의 모습이 그런 거겠죠. 누가 봐도 메시지가 명확하니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냥 그게 다였어요. (웃음) 저는 굳이 그걸 어렵게 감춰서 무슨 상징을 나타내고 할 생각조차도 안 하는 것 같아요.

공연장이나 다른 장르의 예술을 활용하는 것도 인상적이에요. <로튼 애플>과 <페이크 다이아몬드> 모두 설치미술과 인터액티브 같은 컨템퍼러리 아트의 요소들을 보여주더라고요.
그건 제가 ‘Collective A’라는 단체를 만들고 나서 마음가짐을 확실하게 한 부분이에요. 전에 제 이름으로 활동할 때와는 달리 ‘Collective A’의 예술감독으로서는 방향성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작품 하나보다 이 단체의 성향이 우선인 거죠. 옷을 매일 다르게 입을 수는 있지만 그 사람만의 스타일은 있는 것처럼요. 그게 뭘까 생각해 봤더니, 저는 굉장히 산만하고 여러 가지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더라고요. 같이 작업했던 분들이 “너는 굉장히 산만한 댄서야”라고 농담을 하는데 그게 맞거든요. (웃음) 그래서 이 단체의 이름을 지을 때도 ‘댄스 컴퍼니’나 ‘무용단’을 안 쓰고 ‘Collective A’라고 한 거예요.

한마디로 춤뿐만 아니라 ‘다’ 하겠다는 뜻이군요. (웃음)
‘Collective’는 그냥 ‘집단’이고 ‘A’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쓴 거예요. 또 ‘모든 종류의 예술(All kinds of Art)’도 될 수 있고. 그런 식으로 충동적으로 이름을 짓긴 했지만 관심 있는 다른 예술들도 다 담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늘 해왔던 그런 무용 형식으로 제한을 두고 싶진 않았어요. 그래서 2012년 ‘Collective A’ 창단 공연 <로튼 애플> 때 ‘문화역서울 284’에서 장소-특정적 공연을 선보였어요. 지금은 이런 공연들이 종종 이뤄지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그런 형식의 공연이 없었거든요. 로비를 전시 공간으로 꾸미고 미디어 아트와 설치미술 등 기존 무용의 세트 역할만 했던 것들을 별개의 완성된 작품으로 동등하게 이 작품에 들였던 거죠.

아예 객석을 없애고 관객이 돌아다니면서 무용수들과 접촉하면서 보는 게 흥미로웠죠.
관객이 극장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작품 안으로 들어오기를 바랐어요. 관객 자신이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하게 하고 싶었죠. 전 공연을 가만히 앉아서 보는 게 정말 싫었어요. 솔직히 우리가 공연을 열 작품 봐도 좋은 건 겨우 한두 편이잖아요. (웃음) 게다가 관람자 입장에서는 공연을 그냥 바라봐야 하니까 수동적이고 재미가 없죠. 그래서 정말 ‘같이 즐기자’라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작품이에요.

정말 춤이라는 장르는 무용수 본인을 제외하면 수동적인 감상밖에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지금도 공연 도중에 옆을 보면 조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공연 중에도, 공연 사이에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고민을 많이 해요. 외국에서는 극장 로비에서 공연 전이나 후에 와인도 마시고, 공연이 끝나면 댄서나 안무자가 로비에서 대화도 나누고 술 한잔 사주면서 ‘오늘 좋았다’ 하는 문화가 있거든요. 근데 한국에서는 저도 다른 공연 보러 갈 때 마음이 무거울 때가 많아요. 관람도 힘들고 공연이 끝나면 아무것도 없으니 아쉬운 거죠. 그래서 저번 <페이크 다이아몬드> 때 자비를 털어서 로비에 와인을 비치해 놓기도 했죠. 돈이 들어도 그런 건 해야 될 거 같아서요.


예술, 새로움에 대한 생각들

기존에 없던 그런 새로운 시도들이 관심을 끄는 듯해요. ‘새로움’이라는 건 예술의 성격과도 무관하지 않긴 하지만, 그래도 늘 새로움을 좇다 보면 압박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압박도 있겠지만 ‘그냥 굳이 뭘 그래야 되나’ 싶은 생각도 있어요. 예술은 왜 매일 새로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지. 새로움 자체가 좋은 것도 아니고, 예술가들이 하는 것도 결국 ‘무’에서 ‘유’를 창출해 내는 건 아니잖아요. ‘발명’이 아니라 ‘발견’을 하는 거죠. 남들이 못 본 걸 보면서 그걸 다른 시각으로 표현하고 의문을 이어가는 것. ‘왜 이건 이렇게 생겨야 하고 이건 이런 색깔을 띠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과 발상이 새로운 시각을 만드는 거겠죠.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굳이 새로움에 연연할 필요가 있나’, ‘그냥 내가 원래 잘하던 걸 더 잘하면 되지’ 하는 결론이 나오더라고요. 사실 그것만으로도 새로울 수 있거든요. 전화기도 새로운 게 나올수록 원래의 기능을 자꾸 잃어가잖아요. 통화보다 딴짓을 더 많이 하고요. 본 기능이 사라지고 점점 다른 무언가가 되는 거죠. 결국 오리지널리티가 훼손되고요.

<페이크 다이아몬드>에서 바로 그런 사람들의 욕망과 허영, 진짜와 가짜에 대한 질문을 던졌는데, ‘진짜’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사실 저도 제가 진짠지, 내가 하는 게 정말 내 건지 잘 몰라요. 언젠가 제가 쉰 살이 되고 예순 살이 되어서 피나 바우시처럼 명확한 색깔을 갖게 된다면 진짜 내 모습이 뭔지 알 수 있겠죠. 지금 제가 하는 일이 그걸 찾는 과정인 것 같아요. 사실 예술은 되게 뻔한 말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하잖아요. 그걸 계속 보여주기보다는 자신을 계속 들여다보니까 이제는 좀 즐기게 됐어요. 30대 초반까지는 이런 일을 하는 게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지금은 더 힘들고 바빠졌어도 재밌어요. 작품 활동은 남한테 보이고 평가받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살면서 꼭 해야 되는 일인 것 같아요.

작년 말에 자전적 개인전 <춤, 그녀… 미치다>를 했잖아요. 거기서 ‘미치다’란 표현이 약간 중의적인데, 돌이켜 보면 무엇에 미치려고 했나요?
여러 가지인 것 같아요. 미쳐서 한 건 아닌데, 지나고 나서 보니까 미치지 않고 한 가지를 어떻게 30년 동안 해요. 흔히 쓰는 ‘미치다’보다는 뭔가 하나에 굉장히 집중을 하면 ‘미쳤다’고 하는데, 다른 생각 안 하고 춤에만 집중해 온 자체만으로도 그런 ‘미쳤다’란 말을 할 수가 있을 듯해요. 그건 제 개인의 측면이고, 작품으로 말하면 이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 같다는 거예요. 연습실이나 무대를 벗어나면 별의별 일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무대는 가장 미치지 않는 곳일 수도 있고, 저 자신에게 제일 미칠 수 있는 곳이기도 해요. 아까 ‘진짜’가 뭐냐고 물으셨는데 이제 보니 전 무대에 있을 때가 진짜인 것 같네요. (웃음)

일관되게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가 있나요? 그동안의 작품을 보면 여성의 사회적 성 역할에 관심이 많아 보이던데요.
그게 제일 중요하죠. 사실 대부분 그 맥락에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제가 여성이기 때문에도 그렇고요. 여성 무용가가 남성 무용가에 비해 부각되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어요. 또 이건 무용계만의 문제는 아니죠. 예전에 영화계에서도 그런 문제가 있었고 전반적으로 미술가, 음악가, 심지어 요즘 인기 있는 셰프나 디자이너까지 남자들의 성공 비율이 훨씬 더 많아요. 문제가 뭘까. 결국 이건 사회에서의 성별 역할 문제더라고요. 그래서 유학 때나 대학원 논문 쓸 때도 여성 심리 쪽으로 관심을 갖고 작품을 하기도 했어요.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본인 작품에서도 여러 역할을 동시에 맡으면서 하잖아요. 또 다른 장르 예술가들과도 협업을 많이 해오셨죠.
그런 게 딱히 ‘도전’ 같은 게 아니라 저한테는 자연스러운 거예요. 그냥 ‘재밌겠네? 하자~’ 이런 거죠. 전 뭔가 결정할 때 깊이 생각 안 하고 쉽게 하거든요. (웃음) 하고 싶으면 그냥 해요. 상대방과 수다를 떨다가 ‘뭐 좀 해볼까, 할래?’ 하고 제안을 받아 하는 경우도 많아요.

굉장히 오랫동안 춤을 춰 왔는데 돌이켜 봤을 때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
얻은 건 되게 많고 잃은 건 잘 모르겠어요. 제가 별로 미련을 두는 성격이 아니라서요. 금방 잊어버려요. 왜냐하면 우리가 살면서 한 가지 뭔가 결정을 할 때 그 나머지에 대해 항상 미련을 두잖아요. 근데 저는 어쨌든 뭔가 결정을 하면 다른 하나는 아예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단순해서 그래요. (웃음) 100% 잊는다기보다는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니까.

최근 몇 년간 또래 무용가들의 활약으로 현대무용의 인식이 조금씩 변하고 있는 듯해요. 문제는 다음이겠죠. 더 많은 사람들이 춤을 공유하기 위해선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할까요.
그건 우리의 문화 수준 문제예요. 외국에서는 관객들 중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은데 그건 그들이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해오던 생활이라 그래요. 우리는 극장 문화가 다르니까 무용가들이 뭔가를 억지로 한다고 해도 외국처럼 자연스럽게 찾아올지는 모르겠어요. 그렇게 되려면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릴 거예요. 무용가로서는 좀 더 오픈된 자세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제 경우처럼 그냥 하고 싶은 걸 했는데 대중들이 좋아할 때는, 그들과 제 관심사가 공감대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거든요. 무용가들도 TV나 인터넷으로 요즘 트렌드나 사회 이슈를 파악해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나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제 작품이 대중적으로 보이는 것도 그런 부분이 작품에서 드러나니까 그런 거겠죠. 무용가들이 ‘예술’에만 갇혀 있지 말고 눈과 마음을 열면 자연스럽게 그런 작품들이 나오지 않을까 해요. 또 그런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서 사람들이 계속해서 극장을 찾게 하는 게 저희 역할이겠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9호 2015년 4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