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각각의 꿈, 서로 다른 목표.
자신만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성장해 나갈 아홉 명의 뜨거운 청년. 이 아름다운 청춘들의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을 기록했다.
5월의 꽃처럼 만개할 그들을 응원하며.
Moon Sung Il
나만의 특별한 세상으로
이 배우의 다재다능함은 어디까지일까? 최근 들어 문성일의 활약은 그야말로 에너제틱! 지난 1년간의 활동만 들여다봐도 입이 딱 벌어진다. <트레이스 유>, <여신님이 보고 계셔>, <살리에르>, <쓰릴 미>, <바람직한 청소년> 그리고 <모범생들>까지, 남들은 몇 년에 걸쳐 쌓을 이력들을 단숨에 섭렵해 버린 것.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급기야 지난해 9월 그는 김윤경 제작PD와 의기투합해 저스트 컴퍼니(前 극단 드루와)를 꾸렸고, <일단 드루와>, <프랭크쇼> 등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무대를 기획·제작해 공연계에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게다가 섭외부터 시작해 소품과 의상 구입까지, 하나하나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도대체 이런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제가 좀 답답했나 봐요. 데뷔 무렵엔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작품을 재밌게 작업했거든요. 그런데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다들 경쟁 사회처럼 일직선으로만 달려가고… 같은 분야의 사람들끼리 축제처럼 즐길 수 있는 자리도 없잖아요. 우리끼리 재밌게 만들 수 있는 건 없을까? 행복하고 즐거운 만남이 많아졌으면 한 거죠.” 그리하여 문성일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고, 타고난 추진력으로 자신의 특별한 미래를 꾸리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과 똑같은 건 싫었어요. 항상 다르고 싶었죠. 난 달라, 난 나야!” 이러한 성향은 배우에겐 장점이고, 캐릭터의 개성 또한 돋보이게 만든다. 이렇듯 남과 다른 문성일이 지금 꿈꾸고 있는 역할은 다름 아닌, <헤드윅>. “다른 걸 떠나서 한 인간의 이야기잖아요. 그 깊이가 얼마나 될지 궁금해요. 마흔이 다 되어갈 때쯤이면, 연기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시간만큼 삶의 질감이 생겼을 테니까.” 이쯤 되니, 문성일의 어제만큼이나 내일에도 호기심이 생긴다. “재밌게 활동하고 싶어요. 다양한 것들을 시도하면서요. 작품 안에서 살아 숨쉬며, 그 찰나의 순간을 관객들과 공유하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품도 제작하고. 하수구가 막힌 듯 침체된 지금의 공연 시장을 시원하게 펑 뚫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Jeon
Seong Woo
단단함 속에 빛나는 초심
“이 역할로 관객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나의 작품을 만나기 전, 전성우는 이러한 면을 깊이 생각해 본다. 작품이 지닌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 대답이 전성우로 하여금 작품의 매력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그의 이력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의 생각이 좀 더 분명해진다. <스프링 어웨이크닝>, <쓰릴 미>, <블랙메리포핀스>, <여신님이 보고 계셔> 등 작품마다 메시지가 뚜렷하고, 개성이 넘친다. 물론 지금 출연 중인
전성우의 생각들을 듣다 보니, 그가 <헤드윅>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쉽게 헤아려졌다. <헤드윅>이 뿜어내는 강한 에너지와 메시지! “영화 <헤드윅>을 정말 좋아해요.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른데, 그 느낌이 점점 좋아지더라고요. 한 사람의 일대기를 굉장히 강렬하게 이야기하는데, 그 이면에는 무척이나 섬세한 감정과 심리들이 담겨 있어 더 매력적이에요.” 더불어 <헤드윅>은 배우가 쇼맨십으로 무대를 이끌어가야 하는 작품. 전성우는 이런 쇼적인 특성에도 흥미를 느끼며, 지금껏 자신이 보여주지 못한 무대를 펼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간 전성우는 한곳에 정체되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를 시도해 왔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변화들에 배우가 동요될 법도 한데, 그는 늘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보인다는 것. “작품을 몇 개 더 했다고 해서, 연기에 대한 생각이 변하진 않았어요. 오히려 초심을 잃지 말자는 말을 계속 되새기죠. 내가 왜 배우가 되었나, 이 활동을 통해 얻고 싶은 게 뭔가, 사람들에게 뭘 보여주고 싶은가, 그 본질 자체를 잊지 않으려고 해요.” 이러한 초심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표현하고 싶다는 배우 전성우. 그 단단함이 결국은 그의 가장 큰 무기가 되지 않을까? “꿈이라면 죽을 때까지 연기하는 거죠. 신구, 이순재 선생님을 보면 정말 대단하고 멋있어 보여요. 아, 이것이 바로 깊이구나!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 단순히 지금 반짝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그에 맞게 변화하고 또 변화할 수 있는 그런 배우요!”
Lee Jae Kyoon
그의 고유한 템포
지난해 연말 TV 드라마라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이재균에게 제일 궁금했던 질문은, 자신이 연기하는 모습을 본 소감이었다. “어색한 부분은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던 것 같아요.” 숫기 없고 낯가림이 심한 이재균은 의외로 제 자신을 무조건 낮추는 타입이 아니다. 생각해 보면 그는 시작부터 그랬다. “배우라는 호칭은 과분해서 피하고 싶다, 그런 생각 안 해요. 나이가 많든 적든, 연기를 잘하든 못하든, 무대에 선 이상 배우니까. 음, 에드워드 노튼도 배우고, 저도 배우고, 전 배우라서 좋은데.” 자신감이 천진하게 빛나던 신인 배우. 이재균에겐 신인에게 기대하기 힘든 묘한 여유가 있다.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계산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여유 말이다. 그리고 그런 매력은 무대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처음 보는 사람과는 눈을 잘 못 맞추는데, 연기할 땐 상대를 오롯이 바라보게 돼요. 저도 모르게 무언가에 빠져드는 느낌, 그게 정말 좋아요. 진짜 살아 있는 것 같은 기분도 좋고요.” 이재균은 무대에서 주눅 드는 법이 없다.
어떤 계산으로 캐릭터를 고르기보다 대본을 읽고 마음이 가는 걸 해왔다는데, 지난 3년 동안 출연한 열 편 남짓한 작품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하나의 공통분모로 묶인다. 어딘지 조금 모자라거나, 정신적인 혼란을 겪고 있거나, 한마디로 결핍이 있는 캐릭터. “밝고 유쾌한 역할을 해보고 싶다가도 다음 날이면 생각이 또 바뀌어요. 저와 다른 면이 많은 캐릭터에 더 끌리는 것 같아요.” 오늘 이재균이 미리 변신해 볼 캐릭터는 <닥터 지바고>의 ‘지바고’. 이 역할을 고른 이유는 단순하다. “제가 처음 배역을 맡았던 작품이 <닥터 지바고>였는데, 지바고 역할이 좋아 보였어요.” 이재균은 재밌는 게임을 밤 새하고 싶은 것처럼 연기가 재밌어서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그럼 연기할 땐 언제 희열을 느낄까? “늘.” 짧은 대답 뒤에 센 목소리가 따라왔다. “연기할 땐 항상 피가 끓어요.” 2년 전, 이재균을 무대에서 처음 보고 이름을 기억했던 건, 그의 호흡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예상을 묘하게 벗어나는 독특한 템포로 대사를 뱉는 낯선 배우는 눈을 치켜뜨게 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이재균은 젊은 날의 누구를 떠오르게 하지 않는다. 이 젊은 배우를 오래도록 보고 싶은 이유다.
Baek
Hyeong
Hun
흔들리지 않는 믿음
“그땐 희열을 느낄 정신이 없었지만,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건 좀 즐거웠어요. 예전엔 항상 혼자 노래했으니까, 누군가 내 노래를 들어준다는 거, 그게 되게 기뻤죠.” 배우로 무대에 서기까지 가수 지망생으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백형훈은 데뷔 날의 기억에 대해 달콤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고3 때까진 진짜 평범했어요.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는 하는데 성적은 안 나오는 평범한 학생. 하하.” 일찌감치 다른 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친구들이 수능을 준비할 때 기획사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오디션 보고, 떨어지고, 또 오디션 보고, 또 떨어지고. 어쩌다 회사에 들어가도 잘 안 맞아서 나오게 되고. 그렇게 5년을 보내고 나니까 이건 내 길이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그만 포기하고 군대나 가자!’ 하고 있을 때, 누가 저한테 그러는 거예요. 뮤지컬을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새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예대 연기과에 서류를 넣었고,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 뮤지컬 오디션에도 지원했다. 결과는 둘 다 합격. “아직도 신기해요.” 백형훈은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시작이 늦어서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고 말하는 그는 소극장 무대에서 데뷔해 대작의 앙상블을 거친 후 다시 소극장 무대에 섰다. 하지만 전과 달라진 점은, 인기 화제작에 주연으로 캐스팅됐다는 거다. 대표 소극장 공연 <여신님이 보고 계셔>와 <쓰릴 미>는 그가 더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주었음은 물론 연기의 재미를 알게 해줬다. “배우들이 캐릭터에 빠진다고 하는 얘기, 전 안 믿었어요. 에이, 말도 안 돼, 그랬죠. 그래서 <쓰릴 미>를 할 때 솔직히 걱정이 많았어요. 동성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해서요. 그런데 공연하는 동안에 저도 모르게 울컥할 때가 많았어요. 묘한 경험이었죠.” 이제 조금 무대를 즐기게 됐다는 백형훈은 앞으로 에너지가 폭발하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극단의 변화를 보여줄 수 있는 <지킬 앤 하이드>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캐릭터 말이다. 그렇다면 그가 꿈꾸는 최종 무대는 뭘까? “나중에 배우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네가 결국엔 뮤지컬로 끝장을 봤구나’ 하는 얘기를 듣고 싶어요.” 천천히 한 우물만 파고 싶다고 말하는 스물아홉 살의 남자. 다른 건 몰라도 그의 우물은 깊은 곳까지 닿을 것 같다. 지난 몇 번의 만남에서 백형훈이 보여준 모습은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믿음을 줄 만큼 단단했기에.
Yoon So Ho
진심이 쌓아올린 변화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가끔 이 말이 절실히 와 닿을 때가 있는데, 윤소호와의 만남도 그중 하나였다. 이제 겨우 20대의 중턱에 다다른 그야말로 풋풋한 청춘. 아직은 철없음이 수용될 나이임에도 그의 깊이는 또래의 것과 달랐다. 작품의 캐릭터가 아닌 온전히 윤소호로서 전하는 이야기들은 그가 이토록 무대에 대한 애정이 깊은 배우였나, 새삼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사실 그의 지난 시간들을 찬찬히 살펴보아도, 그의 깊이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열아홉 살, 생애 첫 뮤지컬 관람으로 뮤지컬 배우의 꿈을 키우게 된 윤소호. 그로부터 2년 후 꿈을 현실로 이룬 비결은 재능도 운도 아닌 노력의 두드림이었다. 레슨비가 없을 땐 자신의 처지를 고백해 학원 청소를 하며 연기를 배웠고, 수십 번의 오디션에 낙방했을 땐 <쓰릴 미> 지원서에 장문의 포부를 적어 이 작품을 데뷔작으로 만들었다.
꿈을 이룬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아닐까? <번지점프를 하다>, <트레이스 유>, <여신님이 보고 계셔>, <킹키부츠>, 그리고 <베어>에 이르기까지, 그는 “늘 진심을 담아 연기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것이 그의 꿈을 영원히 멈추지 않는 현재진행형으로 만들었다. “모든 작품마다 이전의 역할을 뛰어넘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배우잖아요. 공연마다 어떻게 하면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해요.”
그의 고민은 곧 즐거운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앞으로 그가 이뤄낼 변화들은 무엇일까? “<캣츠>, <레 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 소위 말하는 세계 4대 뮤지컬 중 하나를 꼭 해보고 싶어요. 그중 <레 미제라블>의 마리우스는 지금 제 나이와 잘 어울리는 매력적인 역할 같아요. 언젠가 제가 이 역할을 맡게 된다면, 좀 더 순수함에 집중해서 색깔 있는 마리우스를 만들고 싶어요.”
비단 마리우스뿐 아니라 아직 도전해 보지 못한 무궁무진한 무대들을 기다리고 있는 윤소호. 진심으로 쌓아낼 변화들이 마침내 그의 꿈을 행복하게 완성시키지 않을까? “언젠가 <불후의 명곡>에 강부자 선생님이 출연하신 걸 본 적이 있어요. 그냥 일상적인 모습이었는데도, 배우의 매력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건 단기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잖아요. 저도 시간이 많이 흘러 나이가 들었을 때, 굳이 애쓰지 않아도 깊이와 진정성이 느껴지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게 제 바람이에요.”
Jung Wook Jin
해맑은 미소로 그곳을 향해
문득 누군가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다. 해맑은 미소, 따듯한 심성, 부지런한 노력…. 실제로 만난 정욱진은 이런 장점들을 두루 갖추고 있는 배우였다. 그러니 그의 무대에서 아름다움이 발견된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최근작 <원스>의 안드레이 또한 작지만 빛나는 역할이지 않았던가? “<원스>의 안드레이는 저와 비슷한 점이 참 많았어요. 타지에 나와 살고 있는 것도 그렇고. 꿈을 좇다 좌절했을 때, 부모님을 그리워했을 테고. 저는 이렇게 제 일상과 접점이 있는 작품들이 좋아요.”
물론 그는 <유린타운>의 바비 스트롱처럼 자신과 정반대 쪽에 있는 역할에도 쾌감을 느낀다. “성향 자체가 유들유들하고, 조용조용해요. 평소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마음에 담아두고, 큰 소리를 잘 안 내죠.” 하지만 바비 스트롱은 가슴이 이끄는 대로 소리치는 인물. “바비는 할 말을 딱딱 해요. 그런 면이 재밌어요. 일상에서 못했던 걸 이 역할을 통해 표현하니 배우로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더라고요.(웃음)“ 이렇듯 다양한 작품들을 자신의 색깔로 표현해 내는 것. 이것이 바로 배우 정욱진의 꿈이다.
더욱 개성 뚜렷한 배우가 되고 싶다는 정욱진. 그래서 맡고 싶은 역할을 묻는 질문에도 그는 한참을 고민했다. 특정 작품을 선호하기보다는 주어진 작품에 맞게 자신의 매력을 표출하고 싶다는 나름의 생각 때문이다. 고심 끝에 그가 고른 것은 <맨 오브 라만차>의 돈키호테. 그러고 보니 돈키호테와 그는 꽤 닮은 구석이 많아 보인다. 둘 다 꿈을 잃지 않는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 그런데 정작 그가 이 역할을 마음에 품은 데에는 남다른 이유가 있었다. “돈키호테를 보면 저희 아버지가 떠올라요. 비슷한 면이 굉장히 많거든요. 그래서 돈키호테를 연기하면, 아버지의 삶을 살아볼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아요.” 그러고선 활짝 웃는 정욱진. 이런 순수함이 바로 이 배우의 매력이 아닐까?
Kim
Sung
Cheol
톡톡 튀는 청춘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고 믿는 스무 살에 김성철은 배우를 꿈꿨다. 학창 시절 온갖 축제 무대를 휩쓸었을 것 같은 그에게 배우를 꿈꾼 계기를 묻자 다소 의외의 답변이 돌아온다. “억눌려 있는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게 연기였어요.” 막연히 연기가 하고 싶어서 진학한 한예종 연극원에서 그의 꿈은 ‘배우’에서 ‘뮤지컬 배우’로 더 분명해진다. “노래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서 뮤지컬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크게 안 했어요. 그런데 <명동 로망스>란 학교 워크숍 공연에 참여하면서 생각이 달라졌죠.” 워크숍을 마치고 난 후 뮤지컬 배우 육성 프로그램에 지원했을 정도로 뮤지컬에 열의가 생겼으니, 그가 다른 곳이 아닌 뮤지컬 무대에서 데뷔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김성철의 데뷔작은 불안한 10대들의 성장통을 다룬 <사춘기>. 록 스타가 장래희망인 쾌활한 용만은 장난기 가득한 소년 티가 남아 있는 김성철에게 누가 봐도 어울리는 역이었다. 정작 그 자신은 첫 작품에 대해 이렇게 기억했지만. “욕심에 비해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데뷔 반 년 차, 이제 막 두 번째 무대에 선 김성철이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은 <스프링 어웨이크닝>, <모차르트!>,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기준을 종잡을 수 없는 작품 선택에 김성철이 설명을 덧붙인다. “배우로서 어떤 그림을 그려 나가야 할지 솔직히 모르겠어요. 잘하는 배우가 되려면 자기 자신과 접점이 많은 캐릭터를 맡는 게 좋을 듯한데, 제가 어떤 캐릭터하고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고요.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저 한테 잘 맞는 역할이 주어지겠죠. 어디서든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설 수 있게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지금 제가 할 일인 것 같아요.”
Lim Byung Taek
한 계단씩 차례로
“자유곡 심사 때 제 차례가 돼서 준비해 간 MR을 틀었는데, 갑자기 김범수 씨 목소리가 나오는 거예요. MR이 아니라 AR을 튼 거죠. 하하.” 관객들에게 그를 발견하게 한 <사춘기> 이야기가 나오자, 임병택은 ‘오디션에서 립싱크로 승부를 보려고 했던’ 에피소드를 먼저 꺼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엉뚱한 면이 있다. 어쨌든 그 덕분에 오디션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고, 그게 플러스 요소가 됐을진 알 수 없어도 그는 오디션에 합격했다. 고교 시절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접하고선 뮤지컬 학과에 입학했지만, 으레 뮤지컬 배우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는 임병택. 그 이유는 이랬다. “춤을 못 춘다고 학교에서 하도 많이 혼나니까 풀이 죽어 ‘안 해! 안 해!’ 그랬죠.” 그럼 결국엔 뮤지컬을 하게 된 이유는? “3년 전쯤에 학교에서 단체로 <엘리자벳>을 보러 간 적이 있어요. 귀에 콕 박히는 노래, 시선을 빼앗는 제스처, 파워풀한 에너지…. 무대가 저를 끌어당기는 느낌을 받았다고 할까. 그때 뮤지컬을 정말 하고 싶어졌어요.” 그리고 이듬해 임병택은 동명의 영화를 뮤지컬로 만든 <친구>에서 앙상블로 데뷔했다. “제 고향인 부산에서 하는 공연이라 그랬는지 긴장을 많이 안 했던 것 같아요.” 첫 작품이 비교적 수월했던 것과 달리 두 번째 작품인 청춘 성장담 <사춘기>에서는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 자신은 ‘조화로움의 중요성’을 몸소 깨닫기까지 힘든 시간을 보냈다지만, 하나 다행인 건 그로 인해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게 됐다는 점이다. 지금 임병택은 그의 세 번째 칸을 채우기 위해 열심히 오디션을 보는 중이다. 트랜스젠더 록커의 이야기 <헤드윅> 같은 파격적인 작품에도 호기심이 가지만, 일단 가까운 미래에 해보고 싶은 건 젊은 남자 배우들의 특권과도 같은 작품인 <쓰릴 미>. 그렇다면 그가 꿈꾸는 배우는? “어디 데려다 놓아도 그 안에서 잘 어우러질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함께하는 스태프들이 반겨주는 배우!”
Ju Jin Ha
연기라는 진심
“고 1때 학교에서 워크숍 공연을 하면서 ‘이거 정말 재밌구나’ 생각했어요.” 과학자, 대통령, 탐험가, 가수…. 어렸을 때 장래희망이 수시로 바뀌었다는 주진하가 배우를 꿈꾸게 된 기억을 떠올렸다. 주말마다 기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와 예고 입시 학원을 다녔던 중학교 3학년 때의 기억도 함께. “주위 사람들은 네가 무슨 예고냐고 그랬는데, 전 예고가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어요. 공부에 전혀 소질이 없었거든요. 초등학교 6학년 때 그 사실을 알아버렸죠.” 지나치게 솔직한 답변이 스스로 생각해도 재밌는지 주진하가 웃음을 터뜨린다. 노력이 통한 건지, 재능을 타고난 건지, 어쨌든 그는 주의의 예상을 보기 좋게 깨뜨렸다. 물론 그 자신은 운이 좋았던 거라고 말했는데, 그의 진짜 운은 학교에서 뮤지컬 배우를 희망하는 또래를 잔뜩 만났다는 거다.
고교 시절 ‘첫 작품은 <그리스>로!’라는 나름의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지만, 빨리 무대에 서고 싶다는 바람과 달리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대학 생활에 흥미를 못 느껴서 휴학하고 오디션을 보러 다녔어요. 연극을 한 편 했던 것 말곤 다 결과가 안 좋았죠.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제 실력의 크기는 개미 정도였으려나? 하하.” 계속되는 오디션 낙방에 방황하던 차 기회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언젠가 저 무대에 오를 날을 위해 시험 삼아 본 <김종욱 찾기> 오디션에 덜컥 합격한 것. 학창 시절 잠들기 전에 주로 듣던 노래가 <김종욱 찾기>의 OST였다는 그의 이야기를 떠올려 봤을 때, 합격 소식에 얼마나 기뻤을지 짐작할 수 있다. 2013년 <김종욱 찾기>로 뮤지컬에 데뷔한 주진하는 두 번째 작품 <바람직한 청소년>에서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모범생 정이레를 연기했고, 전보다 많은 박수를 받았다. “커튼콜 박수 소리에 힘이 솟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런 기분은 처음 느꼈죠.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고민도 부쩍 늘어났다. 오래도록 배우 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한 결과 그가 내린 결론은 이거다. “배우로 살아남는 방법은 결국 하나더라고요. 주진하는 연기를 잘해, 이 말을 들으면 돼요.” 잘 맞는 역할로 자신의 길을 쌓아가겠다는 주진하가 해보고 싶은 역할은 <번지점프를 하다>의 고교생 현빈. 무리하게 욕심내지 않겠다는 그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0호 2015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