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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FOCUS] 한 원작에서 나온 세 유령들 [No.140]

글 | 송준호 2015-06-08 5,470

전 세계 뮤지컬계를 뒤흔든  ‘오페라의 유령’이 돌아온다. 

이 캐릭터는 대개 프랑스 작가  가스통 르루의 원작 소설과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로  대표돼 왔다. 

하지만 르루의 원작이  낳은 뮤지컬은 로이드 웨버의  작품뿐만이 아니다. 

비슷한 시기,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다른 버전의  팬텀들은 저마다의 개성과 매력으로  원작을 흥미롭게 재해석하고 있다.



로맨스보다 추리에 방점 찍힌 원작


같은 원작, 다른 버전의 뮤지컬들의 특색을 알기 위해선 먼저 가스통 르루의 원작의 성격을 알 필요가 있다. 일단 르루는 『노란 방의 비밀』이라는 작품 하나로도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긴 추리소설 작가다. 『오페라의 유령』 역시 원래 미스터리물이나 추리물의 성격이 짙었고 이를 다른 장르로 옮긴 초기의 시도들도 대부분 이런 성격을 그대로 이어갔다. 크리스틴과의 로맨스가 부각된 것은 로이드 웨버의 해석 이후 본격화된 것이다. 초기의 해석들이 이런 노선을 따라간 것은 원작의 초점이 철저히 팬텀이라는 인물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팬텀은 소설에서 단 두 번만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이 때문에 파리 오페라 극장의 구성원들에게는 공포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존재다. 소설은 그가 온갖 기괴한 트릭으로 극장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주고 크리스틴을 유혹하는 장면으로 대부분을 채운다. 이처럼 ‘유령스러운’ 존재감에만 집중하고 흉측한 얼굴 때문에 불행한 삶을 살아온 인간으로서의 드라마는 크게 부각되지 않는 까닭에 그는 마지막까지 신비로운 존재로 남는다. 오늘날 익숙해진 크리스틴과의 로맨스는 이런 미스터리적인 요소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는다. 소설은 팬텀의 수수께끼를 풀고 그 정체를 밝혀내기 위한 과정에 몰두한다. 크리스틴은 유령의 미스터리를 푸는 데 도움을 주는 매개 역할에 그친다. 



켄 힐의 <오페라의 유령>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이름이 언급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당연히 1986년 초연된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이다. 하지만 그보다 무려 10년 전에 런던에서 같은 이름으로 먼저 공연된 작품이 있었다. 영국의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켄 힐이 만든 <오페라의 유령>이 그것이다. 1976년 초기 버전은 원작의 분위기를 살려 미스터리와 스릴이 넘치는 공연으로 만들어졌다. 힐은 1984년에 이를 다시 무대에 올리면서 작품 안의 음악들을 모두 클래식 오페라 곡으로 바꿨다. 구노, 오펜바흐, 베르디, 모차르트, 베버, 도니제티의 멜로디에 영어 가사를 적절히 집어넣어 과장된 스타일로 만든 오페레타 성격의 공연이었다. 다소 조악한 구성 때문에 완성도는 낮았지만, 기존 분위기와는 다르게 내용을 철저히 멜로 드라마로 재구성한 점이 주효했다. 추한 얼굴을 가리기 위해 가면을 쓴 ‘오페라의 유령’과 미모의 여가수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각색된 이야기는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이 리바이벌 버전은 로이드 웨버와 캐머런 매킨토시가 관심을 가질 만큼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 성공했다. 로이드 웨버는 <데일리 텔레그래프>에 실린 이 공연의 리뷰를 읽고 자극받아 힐에게 연락해 이 작품을 확장해 미국 무대에 올리는 일을 논의했다. 하지만 몇 달 뒤 매킨토시가 힐에게 새로운 <오페라의 유령>을 단독으로 올리기로 했다고 전하며 콜라보레이션은 무산됐다. 켄 힐의 버전은 계속 공연되어 최근에는 일본과 뉴질랜드, 호주 등에서도 공연을 이어갔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


켄 힐의 뮤지컬에서 영향을 받은 로이드 웨버는 이전까지의 시도들이 원작을 다소 기괴한 공포물로 다뤘던 것과 달리 애절한 로맨스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원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페르시아인이나 라울의 형 같은 캐릭터를 빼고 팬텀과 크리스틴, 라울의 세 주인공에 이야기를 집중시켰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자와 그녀를 사랑하는 괴물 천재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그리고 잘생기고 귀한 신분의 라이벌로 대립쌍을 만든 것이다. 그 결과 새로운 <오페라의 유령>은 정체불명의 유령에게 사로잡히는 크리스틴을 중심으로 각색됐다. 팬텀에 대한 조명의 비중이 줄어든 탓에 ‘에릭’이라는 그의 과거와 비밀을 알 수 있는 부분도 축소됐다. 추리물의 성격이 짙었던 원작에서는 페르시아인의 추리를 통해 세상을 증오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는 팬텀의 과거가 밝혀지지만, 이 작품에서는 크리스틴에 대한 집착과 사랑이 두드러진다. 원작에서 크리스틴은 에릭이 세상과 화해할 수 있는 매개였지만, 여기에서는 팬텀이 사는 존재 의미가 되어버린다. 원작의 팬텀은 크리스틴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지하 창고에 있는 화약을 터트려 사람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할 정도로 증오와 분노로 가득 찬 인물이었다. 즉 원작이 ‘팬텀’이라는 왜곡된 자아에 갇혀 있는 ‘에릭’이라는 인물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뮤지컬에서는 크리스틴이 겪었던 어느 불행한 신사의 이야기로 팬텀이 타자화된다. 



모리 예스톤의 <팬텀>


켄 힐의 리바이벌 버전 <오페라의 유령>이 공연되기 1년 전, <나인>으로 토니상 작품상을 받은 작곡가 모리 예스톤과 극작가 아더 코핏은 연출가 겸 배우인 조프리 홀더로부터 『오페라의 유령』을 뮤지컬로 만들자는 제안을 받는다. 당시엔 공포물로 여겨지던 이 소설을 뮤지컬로 만드는 것에 회의적이었던 예스톤은 이듬해 켄 힐의 공연이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다는 소식에 본격적으로 창작에 나선다. 하지만 1년이 지나는 사이 홀더가 갖고 있던 원작의 저작권이 만료되면서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열렸고, 발빠르게 움직인 로이드 웨버의 작품이 1986년에 먼저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까닭에 제작은 미뤄진다. 이후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을 본 코핏은 <팬텀>과 기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고, 우선 방송사 NBC의 드라마로 넘겨 대중의 반응을 확인한 뒤 1991년 초연을 치르기에 이른다. 


<팬텀>은 원작의 성격과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하다. 내용 자체만으로 보면 로이드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보다 훨씬 각색을 많이 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야기의 초점을 시종일관 팬텀의 과거, 즉 에릭에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원작의 정서를 이어받았다. 팬텀과 크리스틴의 만남과 관계 자체에 주목하는 <오페라의 유령>과 달리, <팬텀>은 크리스틴이 오페라 극장으로 들어오기까지의 과정과 팬텀과의 만남 이후의 사건들이 연대기 순으로 소개된다. 특히 그동안 다른 작품에서 조명받지 못했던 팬텀의 유년 시절이 깊이 있게 다뤄지고 부모와 주변 인물 등 흥미로운 캐릭터와 장면이 추가돼 스토리가 완성됐다. 크리스틴과의 관계도 본격적인 연애 상대보다는 친구나 사제에 가깝다. 다른 작품보다 뿌리 깊은 콤플렉스를 보여주는 팬텀은 이로 인해 더 현실적인 결말로 설득력을 높인다. 초현실적인 분위기의 <오페라의 유령>이 뮤지컬의 환상과 잘 어우러졌다면, <팬텀>은 이런 현실적인 인물 묘사를 통해 상대적으로 웅장하고 공감 가는 드라마를 가능하게 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0호 2015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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