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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OMPOSER] 민찬홍, 새로움을 좇으며 완성되는 음악 [No.140]

글 | 나윤정 2015-06-17 5,410

창작뮤지컬 <빨래>가 10년 넘게 꾸준히 사랑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음악의 힘이다. 

민찬홍 작곡가의 곡들은 이 작품의  따뜻한 감성을 다채롭게 표현하며, 무대의 매력을 배가시켜 주었다. 
데뷔작 <빨래>에 이어 <넌 가끔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 딴 생각을 해>, 
<잃어버린 얼굴 1895>로 이어지는 큰 폭의 변화들. 그리고 영화  <슬로우 비디오>와 연극 <두근두근 내 인생>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로의  도전들. 

이러한 작업들이 이뤄낸 민찬홍 작곡가의 음악 세계를 들여다보았다. 



극음악으로의 이끌림
우연한 예술적 체험이 삶을 흔드는 순간이 있다. 민찬홍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열 살 무렵 부모님을 따라 영화 <가면 속의 아리아>를 보고 클래식의 매력에 이끌리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집에 있는 클래식 전집을 하나둘 꺼내듣기 시작했고, 직접 음악회를 찾아다니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런 끌림은 자연스레 그를 음악의 길로 향하게 했다. 그리하여 열네 살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예비학교에서 본격적인 작곡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그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작곡을 시작한 만큼, 좀 더 오랜 시간 다양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에게 음악을 배우는 과정은 재밌고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그만큼 음악이 더 좋아졌고, 취향의 폭도 넓어졌다. 클래식에 대한 관심은 이내 가요로도 이어졌고, 음악뿐 아니라 영화에도 푹 빠져 지냈다. 이런 그가 뮤지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학창 시절 <레 미제라블> 내한 공연을 관람하면서다. 한창 영화에 꽂혀 살던 그에게 공연 역시 무척 매력적인 장르였다. 서사가 있는 예술 장르를 좋아했던 그는 점차 극음악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한예종 음악원 입학 후 교내 연극원 학생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하나씩 실현됐다. 

“음악의 힘은 대단해요. 추상적인 것을 표현해내니까. 그런데 제 성향상 그것만으론 충족이 안 됐어요. 그 당시 오랫동안 음악만 배운 상태이다보니 좀 답답했나봐요. 좀 더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극음악의 매력을 느끼게 됐죠.”



쉽고 친근하게 <빨래>
민찬홍은 한예종 재학 시절 교내 뮤지컬 공연에 참여하며, 연극원 학생들과 하나둘 친분을 쌓아갔다. 그 당시 인연을 맺은 이들이 바로 지금 공연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장유정, 오미영, 추민주 연출 등이다. 그중 추민주 연출과의 인연을 빼놓을 수 없다. <빨래>를 시작으로 연극 <수박>, <칼자국>, 최신작 <두근두근 내인생>까지, 민찬홍은 그간 추민주 연출과 콤비를 이루며 다양한 작업을 함께 해왔다. 그의 음악은 추민주 연출의 소박하고 따뜻한 이야기와 합이 잘 맞았다. 그 시작은 2003년 추민주 연출이 자신의 졸업 작품의 작곡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하면서부터다. 그 작품이 바로 민찬홍의 뮤지컬 데뷔작이자 2005년 초연 이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빨래>였다. 몽골 출신의 이주노동자 솔롱고와 비정규직 서점 직원 나영의 힘겹지만 따뜻한 서울살이. 민찬홍의 음악은 이 특별한 이야기를 친근하고 편안하게 감싸 안았다. 좀 더 많은 관객들이 즐기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하는 작곡가의 바람이 보다 대중적인 음악 스타일로 표출된 것이다. 빠르고 힘 있는 느낌의 ‘서울살이 몇 핸가요?’를 시작으로, 몽골 민요 느낌의 경쾌한 곡 ‘내 이름은 솔롱고입니다’, 록과 트로트를 가미한 ‘책 속에 길이 있네’ 등 각 노래의 장르와 성격이 다채로운 것이 곡들의 특징이다. 첫 작품인 만큼 기존의 뮤지컬 문법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구현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리고 이러한 설정이 작품에 음악적 재미를 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였어요. 대본을 읽은 뒤 떠오른 키워드는 두 가지였어요. ‘이 작품의 음악은 듣기 쉬워야 한다.’ 그리고 ‘관객에게 쉽게 다가가려면 대중적이어야 한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 대중 음악 스타일을 많이 사용했어요. 이야기의 정서가 굉장히 일상적이고 소박했기 때문에, 특히 80년대 대중 음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죠.”



즐거움의 시도 <넌 가끔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 딴 생각을 해>
국내 최초 포엠컬(Poemcal) 뮤지컬이란 독특한 컨셉을 내세운 <넌 가끔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 딴 생각을 해>는 인기 작가 원태연의 시를 바탕으로 만든 뮤지컬. 한때 연인이었던 두 남녀가 재회해 옛 추억을 끄집어내는 로맨틱 코미디물로, 2010년 창작팩토리 뮤지컬우수작품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돼 2011년 초연한 작품이다. 파파프로덕션의 제의를 받아 이 작품에 참여하게 된 민찬홍은 마침 밝은 작품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이 작품의 음악에는 로맨틱 코미디 특유의 밝은 감성이 듬뿍 담겨 있다. <빨래>가 대중적인 음악 스타일을 표방했다면, <넌 가끔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 딴 생각을 해>의 음악 스타일은 클래식에 가까웠다. 이 작품을 통해 민찬홍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전공을 발휘하게 된다. 그가 좀 더 잘 쓸 수 있는 스타일의 음악이었기 때문에, 전작에서 해보지 못한 새로운 시도들도 더해졌다. 여주인공의 솔로곡인 ‘서글픈 바람’에서 바흐의 평균율을 오마주하거나 드라마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4중창 ‘왜’에서 변박을 심하게 사용하는 방식 등이 그런 것이다. 이렇듯 뮤지컬 넘버의 전형적인 틀을 깨는 작업이 작품 곳곳에서 이루어졌고, 이러한 시도들은 작품의 특별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했다. 

“음악으로 표현하기 가장 좋은 감정은 바로 ‘사랑’이에요. 그래서 ‘로맨스’는 작곡할 때 가장 유리한 장르에요. 그만큼 이 작품이 지닌 성격 자체가 창작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어요. 곡을 만들 때도 작품의 분위기가 그대로 반영되더라고요. 따뜻하고 즐거운 작품이다 보니 작업 과정도 정말 재밌었어요. 제가 좀 더 잘 쓸 수 있는 스타일을 지향하면서, 평소 해보고 싶었던 시도들을 더할 수 있었죠.”



스타일리시한 변화 <잃어버린 얼굴 1895>
2013년 서울예술단이 초연한 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는 민찬홍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한층 확장시킨 작품이다. <잃어버린 얼굴 1895>는 명성황후가 을미사변 때 죽지 않았다는 가정을 전제로, 역사적으로 검증된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는 명성황후의 사연을 극적으로 재해석한 미스터리 팩션물. 이 작품은 감각적인 무대에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해 단순히 명성황후의 일대기를 다룬 기존의 역사물과 차별화를 이뤘는데, 여기에 민찬홍의 음악 또한 큰 몫을 했다. 이지나 연출의 제안으로 이 작품에 참여하게 된 민찬홍은 기존 역사물의 틀을 깨는 작업에 집중하며, 보다 스타일리시하고 현대적인 느낌의 음악을 무대에 입혔다. 덕분에 이 작품에서 그는 작곡가로서 큰 폭의 변화를 보여줄 수 있었다. <잃어버린 얼굴 1895>는  장성희 작가의 드라마가 지닌 묵직한 무게감을 담아내기 위해 기본적으로 클래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스타일은 변화무쌍하다. 클래식에 현대음악의 느낌을 교차시키거나 굿, 판소리 등의 전통음악을 결합하는 등 다채로운 시도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대원환국’의 경우 명성황후, 흥선대원군, 고종의 갈등을 심화시키기 위해 여섯 파트가 각기 다른 멜로디로 부르는 육성 대위법을 사용했고, ‘임오군란’에서는 마디별로 끊임없이 변박을 구성하며 불협화음을 표현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러한 장치들을 통해, 쉽고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은 아니지만 그만큼 독특한 색깔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의 방향은 ‘역사물이란 틀에 갇히지 않고 스타일리시한 음악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그 시대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로 기존 자료들은 참고하지 않았어요. 그보다 음악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중요했죠.”


새로움의 추구가 낳은 신선함
민찬홍 작곡가는 그간 상반된 성격의 작품들을 번갈아 작업하며, 새로운 시도들에 한층 재미를 느끼게 됐다. 그런 만큼 그는 한 곳에 정체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경험을 함께 이어가는 중이다. 지난해 10월 개봉한 영화 <슬로우 비디오>의 음악 작업 또한 그중 하나. 이는 그의 첫 장편 영화 작업이었는데, 무엇보다 일반적인 영화 음악의 전형에서 벗어나 뚜렷한 테마를 만드는 데 힘을 쏟았다. 그 결과, 보다 신선한 음악이 완성됐다는 평을 받을 수 있었다. 지난 3월 개막한 연극 <두근두근 내 인생>도 그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한 작품. 조로증에 걸린 열일곱 살 소년 아름이의 속마음을 랩으로 표현한 것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는 문학을 무대로 옮기는 과정에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더하기 위해 좀 더 다채로운 음악을 활용했다고 한다. 이중 힙합의 차용은 작곡가가 <쇼 미 더 머니>와 <언프리티 랩스타>를 열심히 본 결과물. 이렇듯 비단 TV 프로그램뿐 아니라 영화, 소설 등 그가 평소 보고 들은 다양한 예술적 경험들이 언제나 그의 음악에 좋은 자양분이 되고 있다. 앞으로 민찬홍 작곡가의 꿈은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해나가는 것. 특정한 장르에 치우치기보다는 무언가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는 것에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새로움을 향해 가며 오랫동안 재밌게 창작 활동을 하는 것. 이것이 지금 민찬홍 작곡가의 가장 큰 바람이다. 

“예술 작품을 보는 순간 전해지는 설렘이 있어요.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죠. 극장에서 제 작품을 보는 순간, 그 떨림이 열 배, 스무 배 커져요. 이 일을 할 때가 가장 기쁘고 행복해요. 새로움이 있다면 무엇이든 재밌어요. 그러니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면서 계속 행복을 느끼고 싶어요. 뭔가에 한정되지 않고, 계속 새로운 시도를 했으면 해요. 오랫동안 즐겁게 작업하면서 제 스펙트럼을 확장해나가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0호 2015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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