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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ULTURE IN MUSICAL] 보이지 않는 인물의 존재감 [No.141]

글 | 송준호 2015-07-17 4,174

무대 위 다른 인물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주인공의 주변을  맴돌며  그의 운명을 좌우하는 독특한 캐릭터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메피스토펠레스다. 그는 파우스트의 심상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지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인물일 수도 있다. 
최근 몇 년간 뮤지컬에서 꾸준히 나타나고 있는 이 캐릭터들은  이런 경계의 모호함 사이에서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이들은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설정이지만, 동시에 스토리의 반전을 담은 장치 역할도  해내고 있다. 

*이 글은 스포일러성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안의 또 다른 그


이런 인물들을 언급할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캐릭터가 <모차르트!>의 아마데와 <엘리자벳>의 토드다. 두 인물은 각각 ‘자기 안의 또 다른 자신’과 ‘초현실적인 존재’로 기능한다. 하지만 주인공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데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모차르트는 역사상 손에 꼽힐 만한 천재성으로 유독 많은 창작과 변주를 낳고 있는 인물이다. 뛰어난 재능에 비해 불안정했던 환경과 부족한 인복 탓에 그의 삶은 늘 불안과 초조의 나날들로 그려지곤 한다. 이런 사실로부터 <모차르트!>에서는 그를 볼프강과 아마데라는 두 개의 인격으로 나누어 표현한다. 현실 세계를 사는 것이 ‘볼프강’이라면 그의 곁을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따라다니는 것이 ‘아마데’다. 여기서 아마데는 천재성을 상징한다는 설정인데, <모차르트!>는 볼프강이 주변 인물들에게 평생 착취당하는 이유를 그 천재성이라는 운명의 굴레로 그리고 있다. 볼프강은 마지막까지 자유를 갈구하지만, 그를 죽음으로 내모는 것은 결국 자신의 천재성(아마데)이다. 별로 존재감 없던 아마데가 볼프강을 찌르는 마지막 장면은 천재성이 행운이 아니라 불운일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게 한다. 

살리에리와 모차르트의 관계는 이런 캐릭터가 활용되기에 안성맞춤이다. 살리에리도 음악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이었지만, 오늘날 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질투에 사로잡힌 범재’나 ‘2인자’에 가깝다. <살리에르>는 이런 모차르트에 대한 살리에리의 질투심을 형상화해 ‘젤라스’라는 인물을 탄생시켰다. 그런데 젤라스는 살리에리의 내면에서 만들어진 인물임에도 극 중에서는 독립된 인물처럼 행동한다. 마치 살리에리를 잘못된 길로 유혹하는 메피스토펠레스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무대에서 젤라스의 비중이 점점 커지다 보니 나중에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와 대비되기보다 젤라스와 싸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추리소설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의 실종 사건을 다룬 <아가사>는 ‘로이’라는 인물을 창조해 아가사의 삶을 흥미롭게 재구성한다. 로이는 아가사의 살의와 욕망, 공포심이 투사된 내면의 자아. 하지만 전반부에선 친절한 신사로 등장하고 이후로도 대화가 잘 통하는 매력남으로 행동한다. 로이는 대부분의 등장 신에서 아가사와는 별개의 인물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그 정체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언뜻 다중 인격 캐릭터에 딱 들어맞는 설정이지만, 자신의 정체가 탄로난 후에는 아가사를 악의 길로 유혹하려는 악마처럼 그려진다. 일정 부분 젤라스와 닮았지만, 분열된 대상의 성별이 다르고 공격성을 띤다는 점에서 영화 <싸이코>의 노먼 베이츠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내면의 다른 존재’와 ‘악마’의 모호한 경계에 있는 캐릭터 중엔 <더 데빌>의 X도 있다. 이 작품은 『파우스트』에 기대어 만들어졌지만, 여기서 X는 파우스트 안에 있는 존재로 성격이 다소 바뀌었다. 실재하지 않는 인물이라고 하기에 무대에서 X의 존재감은 굉장히 강하다. 더욱이 파우스트의 연인인 그레첸도 X를 보기 때문에 그가 실존하는 악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파우스트의 내면 상태에 따라 X는 흰 옷을 입은 신이나 검은 옷의 악마로 번갈아 표현된다. 이는 X가 그 이름 그대로 파우스트의 ‘변수’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실존하는 악 또는 죽음의 강림


1926년, 극작가 김우진과 소프라노 윤심덕의 드라마틱한 행방불명은 1세기 가까이 지난 후에도 창작자들에게 여전한 영감을 주고 있다. 두 사람의 일화는 익히 잘 알려져 있어서 여기에 파고들 해석의 여지는 극히 제한돼 있다. <사의 찬미>는 윤심덕과 김우진 사이에 가상의 인물 ‘사내’를 만들어 이야기에 미스터리를 더한다. 사내는 극의 마지막까지 그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 미스터리한 인물. 희곡의 결말을 밝게 바꾸려는 김우진을 종용해 죽음으로 유도하는 그는 두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초월적 존재이거나 암울한 시대상의 은유로 볼 수 있다.  


관객의 눈에만 보이는 존재의 대표격은 역시 죽음의 신이라는 캐릭터다. 특히 이들은 주인공의 비극적 운명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존재여서 무대에 빈번하게 등장하곤 한다. <로미오 앤 줄리엣>은 원작에 없는 ‘죽음의 여신’을 등장시켜 두 남녀의 비극을 부각시킨다. 사실 원작부터가 죽음이 전 캐릭터와 드라마를 지배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뮤지컬에서 죽음의 여신은 티볼트와 머큐시오의 결투 장면에서 그들에게 다가가 죽음의 숨결을 불어넣으며 파국의 전조를 알리기 시작한다.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십분 발휘하는 죽음의 여신은 매력적인 독무로 이 죽음의 레이스를 낭만적으로 표현한다. 잠든 줄리엣을 보며 좌절한 로미오는 독약 대신 죽음의 여신과 키스하며 생을 마감하고, 얼마 후 깨어난 줄리엣도 그녀에게 받은 칼로 목숨을 끊는다. 




이런 낭만주의적 성격의 사신은 <엘리자벳>의 토드에서 절정에 이른다. 자유를 갈구했지만 끝내 불행했던 황후의 삶에서 작가는 죽음의 아우라를 느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토드’라는 존재. 타이틀롤인 엘리자벳보다 더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토드는 단지 황후의 예정된 죽음이 아니라 연인의 역할까지 맡아 ‘죽음=자유=사랑’이라는 도식으로 극단적인 낭만주의를 정당화한다. 죽음을 의인화하는 기법은 서구 문학에서 익숙한 것이지만 그것을 가상의 연인으로 설정하는 시도는 참신한 것이었다. 또 죽음이라는 존재가 온통 주름진 늙은이의 모습이 아니라 극 중 토드와 같은 매력적인 청년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도 엘리자벳의 소녀적 취향을 감안한 결과라 캐릭터와 드라마의 부합도는 자연스레 높아지게 된다.  


이에 반해 <데스노트>의 사신 류크는 전혀 다른 성격의 죽음이다. 낭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냉소적인 사신이 재미로 떨어뜨린 한 권의 노트로부터 모든 비극이 시작된다. 그는 노트를 만진 사람에게만 모습을 드러내지만, 일단 노트를 사용하면 여생의 시간이 줄기 때문에 극 중 인물이 그를 ‘본다’는 것은 곧 생명 단축의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인간들이 노트의 비밀을 알고자 이를 무릅쓰고 그 결과 죽음의 파티가 벌어진다. 이때 사신은 뒤에서 이 광경을 재밌다는 듯 지켜본다. <데스노트>의 사신이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으스스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이처럼 인간의 감정을 배제한 특유의 냉소성 때문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1호 2015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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