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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ODD NOTES] 개화기와 신문물 [No.143]

글 | 송준호 2015-09-01 5,277

최근 문화계의 시선은 다시 개화기를 향하고 있다. 스크린에서는 얼마 전 개봉한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을 필두로 <동주>, <아가씨>, <덕혜옹주> 등이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뮤지컬은 더 많다. <사의 찬미>를 시작으로 <아리랑>,  <명성황후>, <한 여름 밤을 꿈>, <잃어버린 얼굴 1895>가  잇따라 무대에 오른다. 

이처럼 장르를 불문하고  창작자들이 계속해서 관심을 보이는  개화기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대한제국 전후 등장한 신문물                                          

주변 열강들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이전투구를 벌이던 조선 말은 정치·사회·문화 변혁으로 기존의 사회 관습 전체가 흔들리던 시기였다. 이처럼 권력과 제도와 민심이 충돌하는 과도기는 일찍부터 창작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명성황후는 이 시기의 인물 중 그동안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아이템이다. 뮤지컬 <명성황후>로 시작해 드라마에서 인기 정점을 찍은 명성황후는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유약한 고종을 대신해 위기의 조선을 지켜내려 했던 새로운 민족 영웅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런 시선은 정치에만 국한되는 한계가 있었다. 이 시기가 혼란스러웠던 다른 이유는 근대 문물의 유입으로 사람들의 생활상이 급변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새로운 대중문화의 등장이다. 갑오경장 이후 문호 개방이 확대되면서 일본과 중국을 통해 영화와 서커스, 음반 등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각국 대사들과 만난 명성황후가 입식 의자에 앉아 처음 맛보는 초콜릿과 와인의 맛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모습을 연출한다. 사진은 그보다 앞선 1885년에 일본인이 개업한 사진관을 통해 일반에 알려졌다. 1890년대 들어서는 이용자도 늘어났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적대감이나 두려움을 나타내곤 했다. ‘사진을 박으면 그 사람의 영혼이 빠져나간다’라는 소문도 있었는데, 바로 이런 당시의 분위기를 모티프로 하고 있는 작품이 <잃어버린 얼굴 1895>다. 신문물에 호의적이면서도 사진 찍기는 꺼려했다는 명성황후의 기록은 기존의 영웅 서사가 아니라 소년 휘를 중심으로 한 민중사와 중첩되며, 조선의 말로는 더 비장하게 그려진다.




신문물을 즐겼던 것은 고종 역시 마찬가지다. 사진은 물론,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커피를 마시고 애호가가 됐던 고종의 취향은 그동안 김탁환의 소설 『노서아 가비』와 이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 <가비>에서 새롭게 재구성됐다. ‘노서아 가비’는 ‘러시아 커피’를 당대의 언어로 표기한 것으로, 이 작품들은 역관 김홍륙이 평소 커피를 즐겨 마셨던 고종을 암살하기 위해 커피잔에 독약을 넣었던 일화를 배경으로 한다. 을미사변 이후 일본의 압박을 피해 잠시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고종은 이때 처음 커피를 접했는데, 실제로 이 아관파천 당시 고종의 수라와 커피 수발을 들던 사람이 독일 출신의 러시아 통역사인 ‘손탁’이었다. 이후 그녀는 고종의 신임을 얻어 그로부터 황실 소유의 가옥과 토지를 하사받았는데, 이를 서구풍으로 개조한 것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호텔인 ‘손탁호텔’이다. 최근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에서 리딩 공연으로 선보인 <손탁호텔>은 바로 이 역사적 인물인 손탁과 손탁호텔이라는 공간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을미사변과 아관파천, 대한제국 선포와 을사늑약까지 조선 근대사의 중심부에 있었던 손탁은 이 작품에서 미스터리한 비밀을 지닌 캐릭터로 기능하고 있다. 또 이 작품은 고종 암살 사건의 아이디어를 활용해 극 중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장치로 커피를 사용하기도 한다.  



모던한 사회로의 본격적인 발걸음                                           

개화기의 신문물 중 가장 새로운 매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영화다. 1890년대 ‘활동사진’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영화는 1900년대 가장 주목받는 매체로 발돋움했다. 한국 최초의 영화는 세계 최초의 영화가 그 개념에 따라 달라지듯이 다소 견해가 엇갈린다. 통상적으로는 1919년 <의리적 구투>가 거론되지만, 이는 연쇄극의 형태였기 때문에 이론의 여지가 많다. 연쇄극은 무대에서는 표현하기 어려운 장면을 미리 촬영한 동영상으로 대신하는 연극을 가리킨다. 1923년 상영된 극영화 <월하의 맹서>를 최초로 꼽는 시각도 있지만, 일제의 관제 계몽 영화라는 점 때문에 합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 같은 해 상영된 <국경>, <춘향전> 역시 제작진과 배우가 일본인이라는 결격 사유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듬해 상영된 <장화홍련전>은 국내 인력과 자본으로 제작된 최초의 영화라는 의미가 있다. 단성사 사주인 박승필이 자신 소유의 촬영부를 신설해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달 개막을 앞둔 뮤지컬 <한 여름 밤을 꿈>은 바로 이 영화를 소재로 한 뮤지컬이다. 이 작품은 한여름 밤 숲 속 귀신과 인간의 사랑 이야기를 바탕으로 고종의 은혼식에서 상영할 <장화홍련전>의 촬영 중 해프닝을 그린다. 모던 보이와 서양식 클럽 등 당시 종로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한편 ‘새로운 여성’이 발견된 것도 이즈음이다. 근대 이전까지 여성은 인격적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자신의 이름 대신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로 불렸다. 1909년 민적법이 시행되면서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갖게 된 여성은 점차 사회적 실천에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모했다. 특히 고등교육을 받고 해외 유학을 거친 새로운 지식층이 그런 시대의 흐름을 주도했다. 뾰족구두, 양장, 양산, 모자, 안경 같은 아이템은 신여성의 상징이 됐다. 무엇보다 신여성이 하나의 계층으로 새롭게 등장했음을 보여주는 것은 단발이었다. 이들은 사회에 대한 저항의 일환으로 머리털을 잘랐다. ‘모던’도 ‘모단(毛斷)’으로 통할 만큼 단발은 새로운 풍조를 상징하는 현상이 됐다. 




이들 신여성의 등장 배경에는 기독교 선교사들이나 계몽 운동가들이 주도한 여성 교육 운동이 있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서 신여성론이 꽃피기 시작했다. 특히 1920년 전후 동경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나혜석과 윤심덕 등은 활발한 사회 활동을 통해 신여성의 상징적인 존재로 부각됐다. 특히 윤심덕의 모던한 모습은 뮤지컬 <사의 찬미>에서도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여전히 구태의 관습이 사람들의 인식을 지배하던 시대에서 진정한 신여성에 대한 윤심덕의 갈망은 ‘사의 찬미’의 염세적인 노랫말에 담겨 있다. 그러나 1930년대 이후 신여성을 대체한 ‘모던 걸’은 소비문화의 주체로 전락했다. 계몽적 지식인으로서의 신여성은 백화점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나 대중문화에 집착하는 속물로 바뀌어갔다. 


아직도 많은 창작물들이 이러한 개화기에 관심을 두고 있다.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일제의 잔재로부터 개화기의 정서를 되살리는 시도도 있다. 총독부의 ‘조선인 웃음 검열’을 다룬 <명랑경성>은 ‘명랑’이라는 단어에 대한 고찰의 결과다. 근대화가 시작된 도시지만 수탈과 저항의 도시이기도 한 경성의 이중성을 담아내며 실재했던 ‘도시 명랑화 정책’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처럼 개화기에서 발굴할 소재는 여전히 무궁무진하다. 우리 역사의 비극적 시기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문물의 유입으로 사회가 급변했던 시기라는 점에서 개화기는 극적 상황을 표현하기에 유용하다. 현재와도 통하는 코드가 많은 만큼 앞으로도 이 시기에 대한 창작자들의 관심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3호 2015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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