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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힙합 뮤지컬의 가능성 - 뮤지컬 속 랩 넘버 [No.144]

글 | 안세영 2015-09-30 5,448

힙합 뮤지컬 <인 더 하이츠>(2008)와 <해밀턴>(2015)이 브로드웨이에서  히트를 치기 전에도 뮤지컬에 랩이 활용된 사례는 심심치 않게 있었다. 
물론 전체 넘버에서 한두 곡에 불과하긴 했지만, 랩의 형식이 각 작품의 특성과  맞닿는 부분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국내외 뮤지컬 속 랩 넘버를 해당 작품이 초연한 순서대로 정리해 봤다. 


Rock Island (1965)

랩이라는 장르가 등장하기 전에도 가수가 노래 대신 시나 문구를 리듬감 있게 읊는 음악적 형식은 존재했다. 흔히 이를 ‘스포큰 워드(Spoken Word)’라고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57년 초연한 뮤지컬 <뮤직맨>의 오프닝 넘버 ‘Rock Island’다. 작품의 주인공은 시골 아이들에게 고적대를 만들도록 권한 뒤 악기를 팔아치우는 사기꾼 외판원. ‘Rock Island’는 기차 안에서 외판원들이 주인공에 관해 떠들며 부르는 노래다. 작사·작곡을 담당한 매러디스 윌슨(Meredith Willson)은 실제 외판원이 물건을 파는 말투에 착안하여 여럿이서 속사포처럼 주고받는 넘버를 만들었다. 여기에 기차의 진동을 표현하는 몸짓과 칙칙폭폭 소리가 맞물려 리듬감을 더한다. 2014년 토니 어워즈에서는 래퍼 LL Cool J와  T.I가 이 곡을 완벽한 랩으로 재해석해 부르기도 했다.  



Enterprise (1978)

<러너웨이스>는 다양한 인종과 민족으로 구성된 거리의 아이들이 각자의 가출 사연을 이야기하는 뮤지컬이다. ‘Enterprise’는 그중 흑인 여자아이가 부도덕한 사회를 비꼬는 노래이다. <러너웨이스>는 초연된 1978년 음반을 발매했는데, 이는 최초의 음반화 된 랩으로 인정받는 팻백 밴드(Fatback Band)의 ‘King Tim III’와 슈거 힐 갱(Sugar Hill Gang)의 ‘Rappers Delight’가 발매된 1979년보다도 일 년이나 앞선 시기다. 때문에 이 곡을 랩으로 봐야 하는지 단순한 스포큰 워드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Prologue (1987)

뮤지컬의 예술적 혁신을 이끈 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도 일찌감치 랩 넘버를 내놓았다. 여러 전래 동화를 패러디한 뮤지컬 <인투 더 우즈>의 오프닝 넘버에서 마녀가 부르는 노래가 그것. 마녀는 자신의 채소밭을 엉망으로 만든 빵집 주인의 아버지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데, 이때 마녀가 구사하는 빠른 랩은 다혈질이면서 영민한 그녀의 캐릭터를 반영한다. 손드하임은 그의 저서 『Look, I Made A Hat』 서문에서 랩 넘버를 작곡한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즉흥적이고 리드미컬한 흐름 그리고 언어 유희성이라는 두 측면에서 볼 때, 현대의 모든 팝 음악 형식 가운데 가장 전통적인 뮤지컬에 가까운 것은 랩이다. 얼핏 보면 랩은 자연스런 캐릭터 표현이 되는 환경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다루는 <인 더 하이츠>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쇼에 맞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랩은 특정한 경우에만 쓰일 필요가 없다. <뮤직맨>의 놀라운 오프닝 넘버가 이를 증명했으며, 나를 포함한 더 많은 작곡가가 이 점을 알아차렸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랩이 널리 유행한 뒤에야 그러한 작업을 시도했다. 나는 <인투 더 우즈>의 오프닝 넘버 속 마녀의 악절에서 랩을 모방했다. 하지만 이 기법의 다른 적절한 활용 방안은 찾지 못했다.” 



Der Anmacher (1986)
<지하철 1호선> 싸구려 (1994)

지하철을 배경으로 한 독일 뮤지컬 은 지나가던 남자가 여자 주인공에게 치근덕거리는 장면에서 랩을 사용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번안한 <지하철 1호선>은 이 장면을 잡상인의 랩으로 탈바꿈시켰다. 이에 대해 김민기 연출은 “한국의 지하철은 세계 어느 나라와도 달리 유독 잡상인 문화가 발달해 있다. 이러한 한국만의 특징을 살리고자 랩의 내용을 바꾸었다. 형식적으로도 상인이 손님을 끌기 위해 외치는 ‘골라, 골라’와 같은 말이 랩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과장되게 고무장갑의 장점을 나열하는 잡상인의 랩은 코믹하면서도 친숙한 느낌을 준다. 



Today 4 U / La Vie Boheme (1996)

록 뮤지컬 <렌트>는 젊고 가난한 뉴욕 예술가들의 꿈과 사랑,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마약, 동성애, 에이즈 등 현실적이고 파격적인 소재를 다뤄 동시대 젊은 관객층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작품에는 록 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활용되는데, 그중 흑인 드래그퀸 엔젤이 부르는 ‘Today 4 U’는 드럼 비트가 어우러진 흥겨운 랩이다. 재개발 추진 세력에 맞서 가난한 보헤미안의 삶을 찬양하는 노래 ‘La Vie Boheme’에서도 뒷골목 삶을 나타내는 온갖 직설적인 표현이 빠른 랩으로 처리된다.



Wonderland (2000)

<베어> 역시 마약, 자살, 동성애 등 파격적인 소재로 주목받은 록 뮤지컬이다. 이 작품은 가톨릭계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10대 학생들의 사랑과 정체성 고민을 가감 없이 그렸다. ‘Wonderland’는 학생들이 광란의 파티를 준비하며 부르는 곡으로, 여기서 남학생 루카스가 다른 아이들에게 마약을 소개하는 랩을 한다. 파티와 마약은 본래 힙합의 단골 소재지만, 여기서는 랩의 내용이 마약으로 인해 벌어질 이후의 비극을 경고하는 역할도 한다. 



Cop Song (2001)

블랙코미디 뮤지컬 <유린타운>의 배경은 물 부족으로 시민들이 돈을 내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가상의 도시. 다소 황당한 설정이지만 이를 통해 권력 남용, 물질만능주의 등의 사회 문제를 풍자한다. 랩 넘버인 ‘Cop Song’은 힙합 문화를 교묘하게 비튼 곡이다. ‘Cop Song’은 화장실 독점 기업과 결탁한 부패한 경찰들이 돈을 내지 않고 볼일을 봤다가 유린타운으로 끌려간 자들을 조롱하는 넘버다. 역사적으로 랩의 과격한 표현은 권력이 하층민에게 가한 폭력을 다시 돌려주기 위해 쓰였지만, 여기서는 그 폭력이 도로 하층민을 향한다는 데 아이러니가 있다.



<형제는 용감했다> 축시 춘배 (2008)

창작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는 종갓집 두 형제가 부친상을 치르며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작품이다. 신구 세대의 갈등과 화합을 다룬 이 작품에서 장소영 작곡가는 두 세대의 화합을 음악으로 표현할 방법을 고민했다. ‘축시(丑時) 춘배’는 이러한 음악적 컨셉이 잘 반영된 곡이다. 죽은 이춘배의 고지식한 성격을 설명하는 노래 ‘축시 춘배’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신세대다운 음악, 랩으로 이루어져 있다. 심지어 이 랩을 구사하는 인물은 집안에서 가장 나이 든 어른. 지팡이를 진 채 알아듣지 못할 말만 웅얼거리던 노인은 이 장면에서 돌연 능수능란한 랩과 비보잉을 선보인다. 장소영 작곡가는 이 랩에 해금, 가야금 같은 국악기를 더해, 전통적인 음악과 현대적인 음악의 조화까지 꾀했다.



Rum Tum Tugger (2014)

<캣츠>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수고양이 ‘럼 텀 터거’는 작년 12월 개막한 웨스트엔드 리바이벌 공연에서 래퍼로 변신했다. 연출가 트래버 넌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T.S. 엘리엇(<캣츠>의 원작이 된 우화시집의 저자)이 그린 비딱하고 제멋대로인 고양이 럼 텀 터거는 어느 세대에서나 불쑥 나타나는 반항아를 상징한다. 1980년대 초, 앤드루가 그를 엘비스 풍의 로큰롤러로 표현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사이 유행하는 음악이 몰라보게 바뀐 만큼, 럼 텀 터거 또한 요즘 시대에 맞는 반항아로 재탄생했다.” 로커에서 래퍼가 된 럼 텀 터거는 이제 헐렁한 배기 바지와 운동화, 모자, 타투, 체인으로 멋을 내고, 바지춤에 손을 꽂은 채 거들먹거린다. 한편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이번 편곡 작업을 통해 원작 시 ‘럼 텀 터거’의 운율이 랩에 딱 맞는다는 점을 발견했다며 “T.S. 엘리엇이야말로 랩의 발명자일지 모른다”고 상찬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4호 2015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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