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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힙합 뮤지컬의 가능성 - 지금, 왜 힙합의 시대인가 [No.144]

글 | 김봉현 대중음악비평가 2015-09-30 3,652



동시대 청년 문화의 상징

최근 몇 년은 ‘한국 힙합’에 의미 있는 해로 기록될 것이다. 많은 일이 일어났고 여러 성과가 있었다. 물론 영광의 순간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느 때보다 격렬한 논쟁도 있었고 그것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동시에 분명한 것이 있다. 힙합이 그 어떤 음악 장르보다 ‘뜨거웠다’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홍대 앞 공연, 대학 축제, 기업 행사, 클럽 파티 등은 늘 래퍼들로 도배가 됐다. 리쌍이나 다이나믹 듀오처럼 대중에게 이미 널리 알려진 그룹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는 언더그라운드 래퍼들도 포함된다. <쇼 미 더 머니>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아니, 시시비비나 호불호를 떠나 <쇼 미 더 머니>야말로 힙합 열풍을 만든 장본인이다. <쇼 미 더 머니>가 힙합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그 고유한 멋이나 매력을 제대로 드러내고 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다만 매스미디어의 위력을 통해 힙합의 존재를 더욱 널리 알렸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현재의 힙합 열풍에는 분명 유행의 성격도 섞여 있다. 유행은 돌고 돌며, 이것은 저것으로 끊임없이 대체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최근 힙합 공연을 만드는 기획자나 공연에 오는 관객 모두가 충성스러운 힙합 팬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 힙합의 강세는 유행을 넘어 ‘힙합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힙합은 지금의 젊은 세대를 가장 강력하게 반영하는 음악이다. 부모님으로 대변되는 세대와는 많이 다른 세대 말이다. 부모 세대는 ‘판검사’가 되는 것이 곧 인생의 성공이었고, 먼 미래에 잘 살기 위해 기꺼이 현재를 희생했으며,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여야 한다고 배웠다. 반면 지금의 젊은 세대는 다르다. 각자의 꿈도 무척 다양해졌고, 보장받지 못할 미래보다는 현재의 삶을 즐기려고 하며, 자기가 할 말은 확실히 하고 싶어한다. 힙합은 그런 젊은 세대에게 “한 번뿐인 인생, 현재를 즐기며 너의 꿈을 좇으라”라고 말하고, “너를 싫어하는 자들에게는 가운뎃손가락을 내밀라”라고 권유한다. 또 힙합이야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근사한 리듬에 맞춰 털어놓는, 가장 진실하고 고백적인 음악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래퍼들이 무대 위에서 “내가 최고, 너는 가짜”라고 외칠 때 움찔하거나 위축된다면, 당신은 힙합을 잘 모르거나 제대로 즐기고 있지 못한 것이다. 래퍼들은 관객을 가리켜 가짜라고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래퍼들이 원하는 목표는 관객이 자신의 메시지에 감정이입하는 것, 즉 관객 모두가 스스로를 최고라고 여기게 하는 것이다.


또 래퍼들이 “밑바닥에서 내 힘으로 정상의 자리까지 왔다”라고 웅변할 때 젊은 세대는 거기서 그 어떤 음악보다 거대한 에너지를 흡수하며 삶의 전의를 다진다. ‘일리네어 레코드’의 성공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 가능하다. 래퍼 도끼가 자신의 ‘5억 원 수입’을 인스타그램에 인증하고 롤스로이스를 구입한 후 ‘롤스로이스를 타는 한국 최초의 래퍼’라고 자신을 소개할 때, 누군가는 윤리의 관점에서 ‘잘난 척’이나 ‘허세’ 같은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즉 어릴 적엔 컨테이너 박스에서 살 정도로 가난했지만 꿈을 꺾지 않았고, 많은 연예 기획사의 제의를 거절하고 자신의 레이블을 설립해 독립적으로 활동해 왔으며, TV쇼에 나가 ‘쓸데없는 짓’ 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힙합 음악으로 수많은 시간을 버텨낸 끝에 얻어낸 성공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같은 레이블에 속한 래퍼 빈지노의 가사도 비슷한 맥락에서 접근할 수 있다. “난 아무거나 말하고 마는 가요 틈에 끼고 싶지 않아 몇 번이고 말했듯, 난 지킬 거야 내 영역을, / 잠시 떠들썩한 유행이 되는 것보다 어떤 류의 유형이 되는 게 Much Important.” 다시 말해 이들이 성공을 뽐낼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 전부 이루어냈기 때문이고, 또 모두가 안 될 거라고 말한 길을 택한 끝에 ‘타협한 이들’보다 결국 더 큰 성공을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로 성공해 부와 명예를 얻는 삶’. 이것은 모든 젊은이의 꿈이다. 일리네어 레코드는 성공하는 방법이 다 비슷비슷한 한국 음악 산업 시스템 속에서 쉽게 음악적 타협을 했던 래퍼들과는 달리 ‘힙합’ 그 자체를 고집하면서 꿈도 실현할 수 있음을 증명했고, 동시에 힙합이 다른 어떤 음악보다 거대한 긍정의 에너지를 품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힙합은 앞으로도 한동안 젊은 세대의 ‘삶의 사운드트랙’으로 남게 될 것이다.



누구나 영웅이 되는 순간

얼마 전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힙합 음악이 정신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기사였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정신의학과 신경과학자들이 힙합 음악을 분석한 결과, ‘역경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한다’라는 래퍼들 특유의 메시지와 말하는 것처럼 자기 감정을 표출하는 랩의 특성이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내용이었다. 힙합이 지닌 긍정적인 태도와 역동적인 에너지를 젊은 세대 또는 청소년과 연결하는 작업을 지속해 오고 있는 나로서는 그다지 놀랍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무척 반가운 기사였음은 분명했다.

나는 격주 일요일마다 힙합 그룹 가리온과 함께 <모두의 마이크>라는 행사를 주최하며 이런 힙합의 위력을 몸소 실감하고 있다. 이 행사는 말 그대로 랩을 하고 싶은 사람이면 누구나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자리다. 그리고 행사를 주최하며 힙합이야말로 ‘루저’를 ‘영웅’으로 만드는 음악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노파심에 말하면, ‘루저’라는 표현은 무대에 오르는 신인 래퍼들 자신이 하는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왕따’, ‘찌질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그들이 무대 위에서 어리숙하거나 쭈뼛쭈뼛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적어도 그들은 무대 위에서만큼은 세상 제일가는 영웅이 된다. “그래 난 공부도 못하고 학교에선 찌질이. 하지만 여기서 이렇게 랩을 하고 있지. 난 내가 부끄럽지 않아. 나보다 랩 잘하는 사람? 솔직히 없지.” 이러한 가사와 무대 위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젊은 세대가 힙합에 열광하는 이유를 발견한다.
물론 이 글은 완벽하지 않다. 힙합이 왜 지금의 가장 핫한 음악인지에 대해서는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접근과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힙합을 문화와 예술이 아니라 윤리와 도덕으로만 접근하며 오해와 편견을 지니고 있는 이에게는 조심스럽게 이 글을 권하고 싶다. 당신의 친구, 당신의 자녀, 당신의 애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테니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4호 2015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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