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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FACE] <요셉 어메이징> 박영수 [No.123]

글 |나윤정 사진 |배임석 2013-12-12 5,938

변치 않을 약속

 

박영수가 180도 달라졌다. <윤동주, 달을 쏘다>의 윤동주, <쓰릴 미>의 네이슨을 통해 느꼈던 다소 무겁고 짙은 기운은 완연히 털어낸 듯했다. <요셉 어메이징>의 요셉과 <푸른 눈 박연>의 덕구. 그야말로 밝음의 대명사들을 차례로 만나고 난 뒤 그가 환해졌다.

 

 

 

 

긍정과 끈기의 힘
<푸른 눈 박연>이 막을 내린 다음 날 박영수를 만났다. 쉴 틈 없이 이튿날 <요셉 어메이징> 무대에 올라야 함에도 그에겐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인터뷰를 할 땐 동그란 눈에 진심을 담아 연기에 대한 생각들을 찬찬히 풀어내는 진중한 청년이었다가 사진 촬영을 할 땐 문득문득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짓는 해맑은 소년이 되었다. 한 번의 만남에서 이처럼 다양한 색깔을 느낄 수 있다니! 그의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이유를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저는 한 이미지에 국한되고 싶지 않아요. 가능한 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어요.” 그는 사람들에게 ‘저 배우가 과연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란 말을 많이 듣길 바랐다. 그럴수록 자신이 무엇이든 잘 해내는 배우임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맡은 요셉과 덕구도 그랬다. ‘박영수에게 이런 면이 있을까?’ 하는 물음표를 ‘이런 면도 있었네!’란 느낌표로 만들어주지 않았던가.

 

“덕구는 제가 정말 사랑하는 캐릭터예요. 웃음과 밝음밖에 없는 친구죠.” <푸른 눈 박연>의 덕구는 감자만 있으면 그저 싱글벙글인 인물이다. 박영수는 감자를 들고 무대를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덕구의 해맑음을 극대화시켰다.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에요. 하지만 친해지면 엄청난 장난꾸러기죠. 서울예술단 선배님들이 ‘덕구는 딱 너!’라고 했을 정도니깐.”

같은 시기에 연기한 요셉 역시 비슷한 인물이었다. “요셉은 고난이 닥쳐와도 한없이 밝아요.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갈 때도 형들을 원망하기는커녕 자신이 이집트 말을 못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거든요. 안 좋은 생각이란 있을 수 없는 아이로 표현했죠.” 그는 요셉과 닮은 구석이 많았기에 전에 없던 밝은 기운을 뿜어낼 수 있었다. “제가 노래를 참 못했어요. 부산에서 제게 노래를 처음 가르쳤던 선생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죠. 서울 가면 노래 잘하는 친구들이 많을 텐데 과연 네가 주연을 맡을 수 있겠느냐? 그래도 전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남들이 볼 땐 말도 안 되는 긍정처럼 보였겠지만 결국 이루어졌잖아요.”

 

긍정의 힘으로 무대를 향한 꿈을 이룬 박영수. 하지만 그것이 결코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선 고집이 굉장히 강해요.” 그가 배우를 꿈꾸게 된 것은 고3 무렵. 처음엔 TV 속 배우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허황된 꿈이었다. 하지만 그의 열정만큼은 허황되지 않았다. 당시 부산에 개원한 MBC 아카데미에 등록하기 위해 7개월간 수원 공장에서 일을 했다. 그 모습을 본 부모님은 더 이상 배우의 길을 반대하지 않았다.


마침내 4수란 도전 끝에 이뤄낸 서울예대 진학. 범인이라면 자칫 포기했을 법한 시간이지만, 그사이에도 그는 부산에서 쉼 없이 극단 활동을 이어갔다. “극단에서 무대 경험을 많이 했어요. 작가 누나들이 글을 보여주면 즉석에서 연기를 해보고, 관객을 만나기 전까지 계속 수정 작업을 거치고. 창작극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었죠.” 이 경험들은 훗날 그가 창작극을 하는 데 가장 큰 거름이 되었다. 뮤지컬을 꿈꾼 것 또한 이 무렵이었다. “어느 날 <사랑은 비를 타고>의 CD를 듣게 됐어요. 우와, 연기를 이렇게 노래로 하네! 서범석, 남경읍 선생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밤새도록 가사를 옮겨 적었어요. 뮤지컬을 하면 정말 즐거울 것 같았죠.” 대학 생활 또한 그에게 행복한 기억이다. “배움에 굶주려 있었거든요. 4년 동안 현장에서 쌓은 경험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던 시기였어요. 닥치는 대로  읽고 막 어질러 놓은 책을 책장 속에 차곡차곡 정리하는 기분이었죠.”

 

 

 

 

천천히 오래도록
서울예술단은 박영수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늘 제가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어요.” 대학 졸업 후 서울예술단에 입단한 그는 작은 배역부터 차근차근 자신의 입지를 쌓았다. “윤동주란 인물을 만나고, 또 외부 작품을 하게 되면서 서울예술단에 대한 애착이 점점 커지더라고요. 이곳에 있었기에 제가 더 성장할 수 있었죠.”


<윤동주, 달을 쏘다>는 그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게 된 작품. “처음 대본을 읽고 많이 울었어요. 윤동주 시인의 부끄러움, 완벽하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들에 많이 공감했죠.” 지난해 초연 당시 그는 뮤지컬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자신의 한계를 많이 느꼈다. 하지만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두운 법. 그 어둠이 있었기에 그는 올해 더 빛날 수 있었다. 덕분에 다시 만난 윤동주도 좀 더 색다른 느낌이었다. “초연 땐 인물과 저의 아픔이 맞닿아 있는 부분들을 많이 드러냈다면, 재연에선 윤동주 시인을 온전히 바라보려 노력했죠. 전체를 바라볼 수 있게 된 거죠.”

 

이후 그는 <쓰릴 미>의 네이슨에 푹 빠져 살았다. “정말 해보고 싶었던 작품이었죠. 연습 기간이 5주밖에 안 돼 걱정했거든요. 근데 막상 시작해보니 정말 재밌었어요.” 그는 네이슨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네이슨이 반전을 준다고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대신 그가 그런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던 힘을 관객들과 나누려고 했죠. 다시는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그의 네이슨은 유독 우울하고 어두운 느낌을 주었다. “제 메시지를 읽으신 분들은 마지막에 제 네이슨은 곧 생을 마감할 것 같은 모습이라고 말씀하셨죠. <쓰릴 미>를 하면서 저마다의 해석을 내리고, 제게 와 자신의 생각을 전해주는 관객들을 마주할 수 있어서 참 따뜻하고 즐거웠어요.”

무대의 꿈을 이루기 전, 박영수는 서두르지 않았다. 평생 연기를 할 것이기 때문에 그는 급할 것이 없었다. “관객들도 저를 오래 두고 봐주셨으면 해요. 빨리 가까워지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마다의 행복을 위해 살되 그 삶 속에 제가 조그만 행복이 되길 바라요. 오래오래 관객들과 손을 맞잡고 길을 가다가 어느 날 차 한 잔을 마시며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친구가 되고 싶거든요.” 순식간에 타올랐다 사그라지는 흔한 발화와 달리 은은하지만 오래도록 자신만의 불빛을 밝히겠다는 박영수. 그의 진심은 변치 않을 친구처럼 늘 우리 곁에 머무를 것 같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3호 2013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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