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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어셔들: 프론트 오브 하우스 뮤지컬> USHERS: THE FRONT OF HOUSE MUSICAL [No.146]

글 | 조연경 (런던통신원) 사진 | John Hunter 2015-12-13 5,079

작지만 강한 반짝임

무대 뒤를 백스테이지라고 한다면, 무대 앞의 객석과 로비는 ‘프론트오브하우스’라고 한다. 하우스 어셔는 공연장에서 관객들의 티켓을 확인하고 자리를 안내해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영국의 공연장에서 그들은 프로그램과 기념품은 물론, 맥주나 와인 같은 간단한 마실 거리, 그리고 아이스크림도 판매한다. 늘 웃으며 깍듯하게 관객들을 맞이하고,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여 편안하게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돕고, 공연이 끝난 후에 나가는 길까지 안전하게 책임지는 어셔들. 공연장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인데 배우와 관객 사이에 존재하며 주목받는 일이 좀처럼 없다. 이렇듯 늘 무대 밖에서 수고하는 그들을 무대 위로 올린 뮤지컬이 있다. <어셔들: 프론트오브하우스 뮤지컬>(이하 <어셔들>)은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를 객석 사이를 누비는 프론트오브하우스 팀에 비춘다. 2013년 런던에서 워크숍 형태로 초연되었고, 이듬해 차링크로스 시어터에서 정식으로 막을 올린 이 작품은 2015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참가작으로 후한 평가를 받았고, 올가을에 다시 런던으로 돌아왔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아메리칸 이디엇>이 공연되고 있는 아트 시어터에서 교차 공연 형식으로 번갈아 공연되는 <어셔들>은 웨스트엔드 한복판에서 밝은 얼굴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아메리칸 이디엇> 공연이 끝나면 약 30분간 무대를 정돈한 후 바로 <어셔들>의 공연이 이어진다. 극장을 통째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다른 공연이 자리를 비워주고 나면 공연을 올리는 외부적인 상황까지 이 작품과 잘 어울린다.



뮤지컬 종합 선물 세트

이 작품의 배경은 가상의 공연,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히트곡으로 구성한 주크박스 뮤지컬 의 첫 공연을 앞둔 런던 웨스트엔드의 한 극장이다. 어셔로 처음 출근한 루시는 다른 동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배우 지망생 루시는 빈 극장에 처음 들어선 설렘을 감추지 못하지만, 공연을 앞두고 분주한 어셔들 사이에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고 있다. 말끝마다 매출 상승을 강조하는 매니저 로빈이 폭풍처럼 잔소리를 몰아치기 때문이다. 한편, 개리는 오늘이 마지막 근무라고 발표하고, 그런 개리를 보는 벤은 심기가 불편해 보인다. 루시는 스티븐을 처음 본 순간부터 눈이 맞은 것 같지만 그가 어쩐지 게이인 것만 같고, 로지는 공연 뒤풀이 장소에 숨어 들어가 주연 배우인 마이클 볼을 몰래 찍어올 생각에 부풀어 있다. 
루시를 비롯해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 각각의 매력을 뽐내는 이 작품은 마치 뮤지컬 종합 선물 세트 같다. 장면이 전환될 때는 풍자가 살아있는 짧은 패러디 영상이 상영되어 스탠딩 코미디 형식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하고, 로지는 솔로곡에서 반전의 섹시 댄스를 보여준다. 넘버의 가사들은 현실을 반영한 패러디가 섞여 있어 관객들이 웃을 수 있게 했다. 이렇게 기본적으로는 코미디 뮤지컬이지만, <어셔들>은 어셔 유니폼과 명찰 뒤에 숨겨진 그들의 진짜 속내와 꿈을 보여주며 관객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그리고 구제 불능일 것 같은 악독한 매니저의 협박에 맞서는 통쾌한 복수의 반전과 그 사이에 양념처럼 버무려진 뮤지컬 패러디까지, <어셔들>은 지루할 새 없이 꽉 들어 차 있는 알찬 작품이다. 어디서 본 것 같은 클리셰와 패러디를 절묘하게 섞어 코믹하게 엮었다. 물론 로맨스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첫눈에 마음이 통했지만, 서로 오해가 쌓여 어색하게 지내다가 결국 오해를 풀고 잘되는 루시와 스티븐. 그리고 오래 만났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을 세심하게 헤아리지 못해서 갈등 상황에 놓이게 된 개리와 벤. 두 커플은 아웅다웅하면서도 결국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된다. 
뮤지컬 마니아들에겐 최소 10년 이상씩 공연된 유명 뮤지컬에 대한 공감의 정서가 있다. 그래서 코믹한 뮤지컬에 흔하게 등장하는 것이 유명 뮤지컬의 패러디 장면이다. 로지가 섹시 댄스를 출 때 뮤지컬 <시카고>의 ‘록시(Roxie)’ 도입부를 연상시키는 음악이 나오면, <시카고>의 록시와 전혀 다른 이미지의 로지가 대비되면서 반전 효과를 불러온다. 커튼콜 때 전 배우가 탭댄스를 추는 장면은 <빌리 엘리어트>의 피날레 장면을 연상시킨다. 탭댄스를 추는 걸 그냥 봐도 우습긴 하지만, 패러디라는 것을 알고, 머릿속에 원래 장면을 떠올리며 보면 당연히 더 우습다. 그렇게 <어셔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관객들을 즐겁게 하면서, 동시에 진정성도 놓지 않으려 애썼다. 단순히 웃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관람 후 작품을 음미할 수 있게 깊이를 담아낸 흔적이 보인다. 



당신이 몰랐던 어셔의 참모습

공연장에서 항상 웃으며 관객들을 맞이하는 하우스 어셔들. 하지만 과연 그들은 진짜 행복할까? <어셔들>은 우리와 똑같이 인간적인 어셔들의 모습을 조명한다. 공연 직전까지 객석 사이를 돌아다니며 관객들을 안내하고, 무대는 잘 보이는지 웃으며 확인해 주던 ‘어셔들’은 그대로 무대 위에 올라가서 ‘웰컴(Welcome)’이라는 곡으로 공연의 문을 연다. “안녕하세요? 자리 안내해 드릴까요? 화장실은 저쪽이에요. 객석 안에는 플라스틱 잔만 반입 가능합니다.” 공연장에 가면 익숙하게 듣는 대사들에 박장대소하던 관객들이 이윽고 숙연해지는 것은 이 대목에 이르렀을 때다. “나는 이 일이 정말 좋지만, 때로는 무대 위에 서 있는 스타가 나였으면 해.” 공연 산업이 활성화되어 있는 영국에서 스타가 되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다는 것, 그래서 공연장에서 일하는 어셔들은 꿈을 잠시 미뤄둔,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저 웃기는 코미디 뮤지컬인 듯했던 작품에 진정성을 실어준다. 
작품에 나오는 어셔들은 대부분 배우 지망생이다. 첫 출근한 루시는 초기의 설렘을 보여준다. 배우가 되기 위해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공연장에 발을 디뎠고, 어셔는 잠깐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어셔가 하는 일 하나하나를 신기해한다. 루시는 처음 해보는 일에 당황하지만, 그래도 들뜬 마음으로 즐겁게 일을 배워 나가면서, 자신이 무대에 설 그날을 희망차게 그려본다. 스티븐의 경우 어느 정도 어셔의 일상에 젖어 있긴 하지만 아직 배우를 향한 열정을 놓지 않은 상태다. 어셔로 일하는 틈틈이 자신이 무대에 선 모습이 어떨지 상상하면서 역할이 주어지기만 한다면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다짐하며, 혼자 여러 뮤지컬을 패러디한 솔로 넘버를 소화해 낸다. 패러디 장면들은 웃기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이루지 못한, 서툰 꿈을 응원하게 한다. 어떻게 보면 스티븐이 루시의 1년 뒤 미래 모습이다. 반면 어셔로 일한 지 2년이 넘은 벤과 개리는 그보다 한 단계 더 나간다. 벤은 어셔의 일상에만 젖어 있는 자신의 모습에 신물이 난 상태다. 배우로서의 꿈은 불투명하고, 때때로 투어 공연에 참여하긴 하지만 결국 공연이 끝나면 다시 어셔가 되어 극장에 돌아오는 현실이 지긋지긋하다. 자신을 막 대하던 여배우가 이젠 주인공이 되어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니 더욱 현실이 힘들다. 더군다나 인생을 함께할 파트너라고 생각했던 개리가 자신과 상의도 없이 오스트리아로 가겠다는 결정을 내리자 벤은 마음을 굳게 먹는다. 지금까지 할 만큼 했고, 이제는 배우의 꿈을 놓고 지긋지긋한 어셔 일도 그만둘 때라고 생각한다. 



반면 개리는 이미 배우의 꿈을 포기하고 어셔로 성공하기 위해 진로를 튼 상태다. 그래서 하우스 매니저로서 더 나은 기회를 잡기 위해 오스트리아로 가려고 한다. 배우가 꿈이었지만, 배우보다 매니저에 더 소질이 있는 것 같다며 타협 아닌 타협을 한 것이다. 한편 오페라 가수가 꿈이었던 로빈은 현재 어셔들을 담당하는 매니저가 되어 있다. 관객들이 극장에서 돈을 얼마나 쓰고 가는지에 집착하고, 개막일에 유명 제작자가 앉은 박스석에서 최고급 와인을 함께 마시며 승진 기회를 노리는 것에 관심을 둔다. 이 작품은 ‘임시’라고 생각했던 어셔라는 직업이 배우라는 ‘진짜 꿈'을 어떻게 잠식해 들어가는지 여러 어셔들을 통해 단계별로 보여주고 있다. 

<어셔들>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단한 영웅이나 위대한 사람들이 아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눈여겨보지 않고 지나치기 쉬운 평범한 이들이다. 우리는 유니폼 입은 직원들을 자세히 알려고 하기보다, 서비스만 제공받고 지나치는 일이 더 많다. 하지만 <어셔들>에서는 유니폼에 가려 보이지 않던 그들의 참모습을 조명하고, 사연을 자세히 파고든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들의 인생에서는 가장 중요할지 모를 전환점에 서 있는 어셔들. 공연을 준비하면서 숨겨져 있던 갈등이 점차 드러나고, 결국 개리와 로빈에게 지친 벤이 1막 중간에 사라지는 사건이 벌어진다. 
인터미션 때 제작자에게 잘 보이려던 계획이 벤 때문에 물거품이 되자, 매니저의 분노는 벤의 파트너인 개리에게 향한다. 개리는 매니저에게 폭행을 당하고, 그것을 목격한 로지까지 협박을 당하지만, 약점을 쥐고 있는 매니저에게 대항할 용기를 내기가 어렵다. 물론 코믹한 뮤지컬인 만큼, 결국 알고 보니 루시가 제작자의 딸이었다는 황당한 설정으로 매니저에게 통쾌한 복수의 반전을 선보이지만, 그 전까지 차곡차곡 쌓아올린 긴장감은 여느 유명 뮤지컬 못지않다. 벤은 “어셔가 꿈인 사람은 없어”라고 단호하게 말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자신이 꿈꾸는 일의 괴리가 클 때 좌절하기 쉬운 것은 사실이다. 이 작품에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고 불투명한 상황에서 어떻게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 약간의 팁을 주며 작은 위로를 건넨다. 



성공하는 프린지 공연의 비결

프린지 페스티벌에서는 관객들이 짧은 기간에 수많은 공연을 보기 때문에, 그들의 눈을 사로잡기 위한 강렬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페스티벌에 수많은 공연이 올라오지만, 음악과 이야기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뮤지컬 작품은 적은 편에 속하고, 그중에서도 페스티벌 이후에 공연을 이어가는 작품은 더더욱 적다. <어셔들>의 경우 런던 웨스트엔드의 소극장에서 먼저 공연한 뒤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했고, 현재는 러닝타임 80분의 정식 공연을 성황리에 선보이고 있다. 또한 여러 도시에서 다른 프로덕션이 <어셔들> 공연을 이어갈 수 있도록 라이선스 계약을 제안하고 있다. 웃음이든 감동이든 패러디든, 무엇을 원하는 관객이라도 만족하고 갈 수 있게끔 극을 종합적으로 구성한 <어셔들>은 ‘어셔’라는 소재를 무대 위로 올린 것부터 참신하게 느껴진다.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소재에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평범하지만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입힌 것이 <어셔들>이 프린지 페스티벌을 넘어 공연을 이어갈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그리고 거기에 매력을 더하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코믹한 장면에서는 패러디를 통한 가벼운 느낌을 주면서도, 진지할 때는 확실하게 분위기를 잡아준다. 벤의 ‘(It's Time to) Let Go (이제 놓아야 할 때)’는 지금껏 해온 일을 그만두고, 품었던 꿈을 포기하려는 벤의 심정을 잘 대변해주고, 감동과 카타르시스로 극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그리고 루시의 솔로 넘버, ‘Dreams & Ice Creams (꿈과 아이스크림)’는 반대로 지금은 어셔로 한 발 디뎠지만, 앞으로 배우로 승승장구할 미래를 그리는 설렘과 한편으로는 초라한 현실에 밀려드는 불안을 표현한다.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심플한 피아노 반주라서 떨리는 목소리에 진심이 더욱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프린지 공연에서 예산은 많은 것을 결정한다. 소박한 의상, 단순하거나 거의 없다시피 한 무대 디자인, 악기 연주를 최소화하고 배우 목소리에 집중하는 넘버들은 제작비 절감과 빨리 무대를 설치했다가 공연 후 빨리 철수해야 하는 프린지 공연의 특성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어마어마한 물량을 투입해 화려하게 꾸민 전형적인 브로드웨이 대극장 뮤지컬보다, 조금 부족해 보일지라도 소박한 소극장 작품에 끌릴 때가 있다. 조금 더 공감하고, 위로받고 싶을 때 현실에 닿아 있는 소박한 작품을 찾게 된다. <어셔들> 역시 그런 프린지 뮤지컬의 계보를 잇고 있다. <어셔들>은 뮤지컬의 성공 잣대라 할 수 있는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의 상업 극장과는 거리가 먼 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 전형적인 축제 뮤지컬 <쇼스타퍼스!>가 웨스트엔드 대극장에 입성해 오픈 런 공연을 이어가고 있으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대극장이 아닌 소극장 공연임에도 <어셔들>을 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는 관객들도 많다. 유명 작곡가나 작가의 이름을 등에 업지 않고도, 영화를 원작으로 하지 않고도, 주크박스 뮤지컬이 아님에도 <어셔들>은 어느 정도의 궤도에 올라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소재, 이야기, 음악으로만 승부하는 작은 뮤지컬. 이런 작품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6호 2015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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