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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앨리전스> ALLEGIANCE [No.147]

글 | 여지현 (뉴욕 통신원) 사진 | Matthew Murphy 2015-12-19 5,141

동양계 미국인의 미국 이야기



동양계 미국인의 이야기 <앨리전스>의 의미

미국이라는 나라에 다양한 민족과 인종, 그리고 문화가 공존한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미국 문화 속에서 그런 다양한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것도 사실이다. 특히 뮤지컬은 유색 인종보다는 백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백인의 장르로 인식되어 왔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나 <인 더 하이츠> 정도를 제외하곤 브로드웨이에 올려진 뮤지컬 작품 중에 드러내놓고 미국에 정착한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고, 작품 속 이민자 캐릭터들은 정형화된 모습으로 백인의 시각에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브로드웨이에 올라가는 뮤지컬을 만드는 작가들은 물론이고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들 중에 백인이 현저히 많은 게 사실이라는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미국 사회 인종의 다양성이 뮤지컬에 반영되지 않는 것은 인종 문제에 대한 미국의 모순적인 입장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서두가 길었지만, 지난 11월 9일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올린 <앨리전스>는 그런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진주만 습격 이후 미국 정부는 미국 내에 살고 있는 12만 명이 넘는 일본인들을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하고 미국 사막 지역에 급하게 만들어진 열 개의 이주 수용소에 격리시켰다. 이 수용소에 갇히게 된 일본인의 3분의 2 정도가 시민권자였지만, 선택의 여지없이 거의 모두가 수용소에 갇혀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민간 사회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억울한 상황을 겪었다. 그중 하나가 미국에 있는 일본인들 가운데 위험 인물과 비위험 인물을 가리겠다는 명목으로 진행된 ‘충성 서약서’인데, 미국 군인으로서 기꺼이 전쟁에 참전할 의향이 있는지, 그리고 일본 천황이나 그 외의 다른 어떤 나라의 정부나 단체에 대한 충성을 버리고, 미합중국에 조건 없는 충성(Unqualified Allegiance)을 약속하는지 묻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 ‘충성’이 <앨리전스>의 핵심 주제이다. <앨리전스>는 한 개인이 자기 자신,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국가와 그들의 혈통에 대해 갖게 되는 복잡한 관계 속에서 어떤 것을 가장 우선시하는지, 그리고 각 개인들의 그런 결정이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되는지 질문을 던진다.



또 다른 종류의 스타 마케팅

작곡과 작사를 맡은 제이 쿠오, 대본을 맡은 마크 아시토, 그리고 대본 집필을 함께하고 메인 프로듀서로 시작부터 작품을 함께한 로렌조 띠온까지, 사실 <앨리전스>의 스태프들은 브로드웨이에 뮤지컬을 올리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제이 쿠오는 <앨리전스>로 브로드웨이에 처음으로 작품을 올린 중국계 미국인 작곡가 타이틀을 얻었다). 이 작품이 2009년 테이블 리딩을 시작해 2015년 브로드웨이에 올라가는 데 가장 큰 영향력을 준 사람은 크리에이티브 팀보다 조지 타케이라는 일본계 미국인이다.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스타트랙> 시리즈에서 히카루 술루라는 인물을 연기해 많은 사랑을 받았고, 동성애자권리 신장에 앞장서 180만 명의 트위터 팔로워를 자랑하는 나름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다. 작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타케이의 어릴 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앨리전스>가 브로드웨이로 오기까지 그의 사회적 영향력이 주효했다. 또한 타케이를 필두로 한 <앨리전스>의 적극적인 온라인 마케팅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약 45만 달러(한화 5억 2천만 원 상당)에 가까운 자금을 모아 작품의 큰 원동력이 됐다.
물론 마케팅은 작품이 일단 좋고 봐야 한다. <버라이어티>의 리뷰어인 마릴린 스타시오의 말처럼, <앨리전스>의 가장 큰 강점은 무대 위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라기보다 무대 밖의 역사이다. <앨리전스>는 일본인 강제 이주 수용소라는 미국 역사의 어두운 부분과, 그 시대를 버텨 미국인으로서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 다양한 민족적 배경을 가진 동양계 미국인 배우들의 목소리를 통해 동양계 미국인(혹은 유색 인종 미국인)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후 재미 일본인 가정의 멜로드라마

진주만 습격 기념일 행사를 준비하는 아흔 살의 샘 키무라(조지 타케이)의 집에 한 여자가 찾아와서 돌아가신 누나의 유품이라며 봉투를 전해주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샘이 봉투를 건네받으면 그의 기억 저편에 자리 잡고 있던 누나 케이 키무라(레아 살롱가)가 아직 화해의 기회가 남았다는 노래를 부르고 그와 함께 샘이 아주 오랫동안 잊으려고 노력했던 누나와 가족, 그리고 강제 수용소와 관련된 기억을 떠올린다. 진주만 습격이 있기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살았던 그의 가족과, 동네의 일본인 가정들이 추수 맞이 축제를 하는 장면으로 회상 신이 시작되면 먼저 가장 타츠오 키무라(크리스토프렌 노무라)가 등장한다. 그는 이민 1세대로 캘리포니아에서 큰 농장을 경영하며 아들 샘이 변호사가 되길 바라고, 딸 케이는 좋은 남자를 만나 시집을 잘 가길 바라는 전형적인 동양인 아빠다. 미국에서 태어나서 좀 더 미국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자란 샘(어린 샘은 드라마 <글리>로 잘 알려진 텔리 렁이 연기한다)은 아빠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 같은 마음과 그가 가지고 있는 미국인으로서의 자립심, 그리고 자신을 이해하거나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지 않은 아빠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케이는 좀 더 순응적이지만 독립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자 하는 희망을 품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가 과거로 돌아가면 조지 타케이는 그들의 할아버지인 오지짱 혹은 케이토 키무라, 다시 말해 가족의 할아버지 역할로 재등장한다.
소원을 비는 과정과 가족이 서로 짧게 대화하는 장면을 통해 주인공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소개가 끝나면 바로 진주만 공습에 대한 라디오 방송에서 재미일본계시민연합 (Japanese American Citizens League:JACL)의 당시 수석 비서였던 마이크 마사오카(그렉 와타나베)가 재미 일본인의 대변인으로서 미국 정부의 격리 수용 결정에 따르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한다. 그리하여 키무라 가족도 다른 가족들과 함께 와이오밍 하트마운틴 지역에 위치한 수용소로 가게 된다. 케이는 수용소에서 일본어 학원을 운영했다는 이유로 잡혀가신 부모님과 떨어져 수용소에 끌려온 프랭크 스즈키(마이클 리)와 우연히 마주치고, 샘은 수용소의 의무실에서 일하는 백인 간호사 한나 캠벨과 가까워진다. 미국인으로서 그의 충성을 증명하고자 하는 마음에 군대에 자원입대하는 샘, 그리고 샘과 사랑에 빠진 한나, 그에 반해 미국 정부의 이러한 결정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프랭크, 그리고 그와 사랑에 빠진 케이까지, 수용소 안의 인물들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갈등이 깊어지는 것으로 1막이 끝난다. 
2막에서는 각자 다른 결정을 내린 인물들의 삶이 어떻게 펼쳐지고,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복잡해지는지 그려진다. 전쟁터에 가서 헌신적인 행동으로 군과 미디어의 인정을 받는 샘, 그리고 여전히 수용소에 갇혀 미군의 징집을 거부해 결국 감옥에 가는 프랭크, 그런 프랭크를 비롯한 사람들을 도우려고 수용소 내에서 미군의 감시를 피해 세상에 그들의 소식을 알리는 케이와 미국에 대한 충성을 거부해 계속 감옥에 갇혀 있는 타츠오, 그리고 샘과의 약속을 기억하며 수용소에 남아있는 샘의 가족을 돌봐주는 한나까지, 각자의 신념 안에서 그들이 충성을 맹세한 상대에 대한 믿음을 지켜내고자 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한나가 케이와 프랭크를 보호하려다 수용소 보초가 잘못 쏜 총에 맞아 목숨을 잃고, 케이와 프랭크는 전쟁이 끝난 후 수용소에서 풀려나 가정을 이룬다. 그리고 샘은 타츠오가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에 전쟁 영웅이 돼 돌아온다. 다른 군인들은 그들을 반겨주는 집으로 돌아오지만, 샘은 자기와는 전혀 반대의 길을 택한 프랭크를 가족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에게는 그렇게 엄격했으면서도 프랭크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아빠와, 자신의 상황을 알면서 한나의 죽음을 본의 아니게 방조한 누나 케이에게 분노하며 집을 떠난다. 
아빠의 장례식에도 가지 않은 채 연을 끊고 산 지 몇십 년이 흘러 케이가 죽으면서 남긴 유품은 그의 아빠 타츠오가 평생 지니고 있던 군복을 입고 표지 모델을 장식한 타임지였다. 자신의 모습 옆에 아빠가 작게 쓴 “나의 영웅”이라는 글귀를 보고 가족을 등졌던 자신을 용서해 달라며 오열하고, 케이의 장례식에서 자신에게 유품을 전달하러 왔던 케이의 딸을 만나 몇십 년간의 갈등을 풀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멜로드라마라서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앨리전스>는 전쟁이 몰고 온 어려움 속에서 사랑을 지켜내고 오랜 세월 끝에 갈등을 극복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는 전형적인 멜로드라마 구성을 띤다. 오프닝 후 리뷰를 쓴 대다수의 평론가들의 불만도 그 지점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좋지만 뻔한 이야기 전개와 유기적이지 못한 음악, 그리고 일반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가사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특히 작품이 전달하려는 내용은 뮤지컬보다 연극에 더 어울린다든지, 다층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갈등을 풀어놓기에는 작품의 가사도, 내용의 전개도 너무 단순했고 의도만 좋았던 작품이라는 식의 반응이 많았다. 음악적인 측면을 볼 때 제이 쿠오의 음악과 가사는 사실 프랭크 와일드혼이나 로저스 해머스타인의 스타일과 조금 비슷한데,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곡가들 중에서 평론가들이 가장 많이 비판하는 작가가 와일드혼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평론가들의 제이 쿠오에 대한 비판도 어느 정도는 예상되는 부분이었다. 둘 다 음악과 가사에 깊이가 없다는 것과 음악이 내용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듣기에 좋은 팝 같은 음악의 나열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렇지만 또 다른 시각으로 보면 <앨리전스>가 로저스 해머스타인 등이 만들어놓은 공식을 아주 잘 따라간 뮤지컬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뮤지컬 공식에 맞춰서 앙상블이 군무를 추거나 그 공동체의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는 음악이라든가,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부르는 재즈풍의 음악, 주인공들의 내적인 갈등을 유머러스하게 혹은 진지하게 풀어내는 팝, 발라드에 이르기까지, 어떤 관점에서는 음악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뮤지컬이 해야 할 것들을 놓치지 않고 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작품의 멜로드라마적인 요소들은 감정의 증폭제로 작용해서 인물 간의 갈등 구조와 해결점을 더 명확하게 그려내는 데 일조한 부분도 있다. 


배우와 연출, 그리고 역사의 힘

그런 점에서 <앨리전스>의 가장 큰 공로자들은 연출인 스태포드 아리마와 정형화될 수 있었던 인물들에 힘을 실어준 배우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 <알타보이즈>의 오리지널 연출로 참여해 이름을 알렸던 아리마는 뉴욕에서 오프브로드웨이에 올라갔던 <캐리>와 <베어>, 그리고 웨스트엔드에 올려졌던 <랙타임>의 연출로 잘 알려져 있다. 꼼꼼하게 배우와 앙상블을 지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연출인지라 이 작품에서 특히 감정의 증폭을 잘 조절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한국에서 지난 몇 년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벽을 뚫는 남자>, <서편제> 등의 다양한 작품에 출연해 팬을 확보한 마이클 리는 제도적인 부분에 비판적이지만 조금은 독특한 구석이 있는 프랭크 스즈키로 분해 수용소의 생활을 통해 강한 여성으로 성장하는 케이 키무라의 역할을 맡은 레아 살롱가와 잘 어울리는 커플을 만들어냈다. <미스 사이공>의 오리지널 프로덕션에서 킴의 역할로 전 세계적인 스타가 된 레아 살롱가는 그녀의 명성에 걸맞은 음악적 재능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작품의 감정선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인물인 케이를 잘 연기해 주었다. 현재의 나이 든 샘 키무라와 할아버지의 역할을 맡은 조지 타케이는 사실 현재의 샘 키무라보다는 할아버지로서 무대에 서는 시간이 훨씬 긴데, 여러 갈등 상황에서 때로는 지혜로, 때로는 유머로, 일본어와 영어를 적절하게 섞어가며 관객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이 작품이 기반을 두고 있는 미국의 역사이다. 브로드웨이에 오기 전에 올려졌던 샌디에이고 올드 글로브 극장에서는 로비에 이주 수용소와 관련한 자료를 전시해 놓았고, 브로드웨이 공연은 웹사이트를 통해 그와 관련된 사실들을 자세하게 기술해 놓았다. 게다가 늘 백인들의 이야기 위주로 들리는 미국 역사와 뮤지컬이라는 장르에서 동양계 미국인의 역사가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려졌다는 것과, 그리고 이 이야기를 통해 동양계 미국인들이 미국에 정착하게 된 과정과 개인적, 공동체적인 어려움들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백인 위주의 산업 구조에 가려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동양계 미국인 배우, 극작가, 그리고 대중들에게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동양인으로서 미국에 사는 필자의 편향된 시각인지 모르겠지만, 부정적인 리뷰에도 불구하고 잘 만들었다고 얘기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그 지점이다. 언급돼야 하는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들려주었다는 것. 어쩌면 <앨리전스>는 가장 최근의 브로드웨이 히트작 <해밀턴>도, <펀 홈>도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는 데에서 브로드웨이의 역사에 남을 작품일지도 모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7호 2015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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