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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레 미제라블> 전나영 [No.148]

글 |송준호 사진 |고용훈 헤어 | 한송 메이크업 | 이창은 (Brand M) 2016-02-03 7,293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전나영이 국내에 소개된 것이 올해가 처음은 아니다. 그녀는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던 몇 년 전 국내 언론을 통해 ‘<미스 사이공>과 <레 미제라블>에 캐스팅된 한국계 배우’로 알려진 바 있다. 하지만 ‘교포 배우’라는 편견을 비웃듯, 전나영은 한국 무대에서 정확한 발음과 강인한 어머니상으로 관객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그녀에게 한국은 어떤 의미일까. 아직 보여줄 것이 많은, 젊은 아티스트 전나영이 사는 방식을 들어보았다.





아티스트를 향한 길, 뮤지컬 배우

우리말 발음이 기대 이상으로 좋아요. 해외에서 태어나 자라다 보면 한국어를 배워도 서툴 수밖에 없는데, 어릴 때부터 우리말 교육을 엄격하게 받았나봐요?
부모님과 외조부모님 덕분이에요. 집 안에서는 한국말만 쓰게 하셨거든요. 열다섯 살까지 주말마다 한글학교도 다녔어요.


어릴 때부터 한국을 여러 번 여행했지만 장기간 거주는 처음이잖아요. 한국 생활 어때요?
좀 힘들어요. 물론 좋은 점들도 많아요. 특히 테크놀로지는 놀라움과 감동 자체죠. 하지만 정신문화는 빠른 경제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가 운동이나 몸을 쓰는 걸 좋아해서 한번은 선무도 총본산인 골굴사에 간 적이 있는데, 일상에서는 그런 정서를 접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런 것에 관심이 부족하다는 걸 느껴요.


그런 건강한 매력이 배우 전나영의 트레이드마크인데, 하얗고 가냘픈 여성상을 선호하는 한국에서는 이질적으로 비칠 것 같기도 해요.
처음엔 그런 시선이 신기했는데 나중엔 힘들더라고요. 여기 와서 ‘외국인들이 좋아할 외모’라는 말을 진짜 자주 들었어요. 쌍꺼풀 수술을 한 얼굴보다 내가 더 한국적인 외모인데 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다들 왜 그렇게 외모에 대한 자부심이 없는지 아쉬워요. 태생적인 특징을 살리고 건강을 유지하면 그 자체로 얼마나 아름다운데요.


예술 학교에서 연기나 노래가 아니라 연출과 극작을 전공했어요. 그래서인지 연기 못지않게 극작이나 창작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고요.
작품을 만들 때 창의적 사고를 조절하는 능력을 갖고 싶었어요. 그냥 배우로만 활동하면 힘이 들고 그것만으로는 열정이 생기지 않거든요. 그래서 작품을 고를 때도 제가 믿거나 힘을 주고 싶은 부분이 있는 작품을 선택해요. 그래서 <레 미제라블>을 참 좋아해요. (웃음)





그러다가 노래와 연기의 재능을 발견한 순간이 있겠죠?
다 어릴 때였어요. 노래는 두 살, 피아노는 네 살, 연기는 열 살부터 했고, 뭔가를 창작하고 싶은 건 열한 살 때 작곡을 하면서부터였어요. 그때도 뮤지컬은 아예 생각을 안 했고 연출과를 다니다가 우연히 접하게 됐죠. 


그런데 그냥 재능이 있는 것과 배우로 무대에 오르는 건 아예 다른 이야기잖아요.
그래서 열아홉 살에 했던 첫 뮤지컬 <하이스쿨 뮤지컬>(켈시 역)이 너무 힘들었어요. 처음에는 한 방향으로 진로가 좁혀지는 게 싫어서 여러 번 거절했거든요. 그러다가 내가 너무 꿈같은 상상만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지금 무대를 밟으면서 땀 흘려 일하는 게 뭔지 겪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1년만 하기로 했던 거예요. 그걸 하면서 많이 배웠죠.


그때도 일종의 경험이지 뮤지컬 배우를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군요. 그래도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하는 게 재밌고 자신한테 맞다고 느낀 순간도 있겠죠?
그건 예전부터 종종 있었지만, 꿈꿔 온 건 이것보다 더 큰 거라서….


도대체 뭘 꿈꾼 거예요? (웃음)
사실 비요크(Bjork) 같은 아티스트를 정말 존경해서 그런 방향으로 가고 싶었어요. 쉬운 음악 말고 인간 내면의 소리를 음악으로 만들어서, 언어가 아닌 것으로 대화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어요. 하지만 꿈도 살면서 계속 바뀌어요. 지금도 배우나 뮤지션이라는 특정 직업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본인 생각과는 다르게 이렇게 각국의 큰 무대에서 배우로 주목을 받고 있네요.
그게 정말 신기해요. 그리고 제가 언어를 다양하게 할 수 있다는 것(전나영은 영어와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로 소통이 가능하다)에 감사해요. 전에 다큐멘터리에서 본 건데, 언어를 다양하게 쓰면 생각도 달라지고 더 풍부해진다고 해요. 한국말로 생각하면 영어와는 완전히 다르게 생각하거든요. 또 이런저런 다른 문화들을 겪으면서 얻는 게 많아요. 한국 사람들의 정도 느끼고, 영국 사람들의 프로페셔널리즘도 접하고, 네덜란드 사람들의 직설적이고 무뚝뚝한 태도도 만나면 참 재밌어요.


처음엔 판틴이 아니라 에포닌으로 오디션을 봤다죠?
제일 처음은 코제트였어요. 적역이 아니어서 바로 떨어졌는데, 에포닌으로 다시 시험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어요. 지금 영국에서 에포닌 역을 하는 캐리 호프 플레처(Carrie Hope Fletcher)와 마지막 오디션까지 가게 됐는데, 캐머런 매킨토시가 갑자기 ‘아이 드림드 어 드림(I Dreamed a Dream)’을 불러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판틴이 됐죠. (웃음)



어땠어요? 생각지도 못했던 판틴이었는데.
이 역을 맡고 나니까 이해가 됐어요. 에포닌도 다른 배우가 하는 걸 보니 납득이 가고요. 제 목소리로는 에포닌을 잘할 수는 있겠지만, 제 안의 애절하고 뭔지 모를 한 같은 느낌은 확실히 에포닌보다는 더 성숙한 느낌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이번에 공연을 보면서 전나영의 에포닌도 궁금해지더라요. 나중에 기회가 있을까요?
(단호하게) 없어요. 하고 싶지만 매킨토시가 기회를 안 줄 거예요. 레아 살롱가처럼 에포닌에서 판틴이 되는 건 가능하지만 반대는 어렵죠.


이렇게 당당한 나영 씨도 긴장을 해요?
너무 많이 떨려서 종종 힘들 때도 있어요. 그런데 그건 배우의 삶인 것 같아요. 영국이나 여기나 둘 다 긴장되지만, 떨리는 이유는 달라요. 웨스트엔드에서는 오로지 공연에만 집중하는 환경이어서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어요. 지금은 일주일에 네 번만 하니까 쉬는 동안 연구해서 그 역을 더 깊이 있게 해석해야 하는 책임이 있죠. 어떤 장소라서 잘해야겠다는 게 아니라, ‘내가 여기서 이걸 왜 하고 싶었지’라는 초심을 잊지 않으려고 해요.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뭔가요?
배우는 연기, 노래, 표정 등 평가 기준이 많잖아요. 하지만 전 그걸 떠나서 ‘나만의 판틴’, ‘내가 이야기하려는 것이 뭔가’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어요. 특히 이번엔 판틴의 모성애가 특별하게 다가와요. 저는 실제로 엄마가 아니어서 그냥 엄마의 사랑을 따라하고 있을 뿐이지만, 자식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세상 모든 엄마들의 사랑은 정말 놀랍고 감동적이에요. 이런 걸 더 담아낸다는 점에서는 웨스트엔드보다 이번 공연이 훨씬 깊이가 있죠.


한국 공연에서만 추가한 디테일도 있겠네요.
‘마이크’라는 영국 연출이 왔을 때 한 말이 있어요. “Don’t act, just be, because this show is about how fxxking tough life is.” 굳이 연기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이 힘든 인생을 그대로 보여주라는 거죠. 그 말처럼 정말 삶의 피곤함을 보여주려고 해요.




판틴의 세상과 닮은 한국
사실 지금 같은 시대에 <레 미제라블>을 공연한다는 건 배우로서 큰 의미일 듯해요.
정말 특별하고 감사하죠. 특히 여기 한국에서 한다는 게요. 파리 테러가 있던 11월 14일에 광화문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거든요. 대구 공연을 할 때인데, 마침 쉬는 날이어서 극장에 갔어요. 공연을 보면서 이 작품은 만들어진 지 3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이 시대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의 현실과 무섭게 닮았잖아요.


바리케이드를 친 민중이 붉은 깃발을 흔들고 결국 공권력에 쓰러지는 것까지 닮았죠.
맞아요. 요즘 드는 생각이 저는 살기 편한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거예요. 학교에서 책으로만 접했던 것들이 지금 이곳에서는 실제로 벌어지고 있고, 아직 바꿔야 할 게 많다는 걸 깨달아요. <레 미제라블>은 Revolution(혁명)에 대한 이야기지만, 한국이나 이 세상에는 Evolution(발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작품으로 이곳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건 배우이자 한 인간으로서 감사한 일이죠. 판틴을 더 열정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고요.


한국인과 서구인의 경계에 선 위치여서 그런 문제점들이 더 잘 보일 수 있겠어요.
외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처음엔 그냥 웃겼거든요. 그러다가 이게 계속 유지된다는 걸 알면 슬픔을 넘어 화가 나요. 창피하지만, 제가 이곳의 문화나 역사적 배경을 잘 몰라서 구체적인 의견을 낼 수는 없어요. 하지만 다들 불만을 갖고 있는데 이런 상황을 왜 유지하는지 궁금해요. 이 작품을 하고 있는 한 이런 생각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런 반응을 보면 외국에서 태어나도 피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네 살 때 한국에서 <서편제>를 보고 판소리에 ‘꽂힌’ 이유도 그래서인 듯하고요.
저도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 쑥 들어오는 게 있어요. 예를 들어서 심청가 중 ‘파도가 우루루루루’ ‘북을 두리둥두리둥’ 같은 소리들을 들으면 언어가 왜 생겼는지, 언어가 어떻게 음악이 됐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야말로 피가 땡겨서인 것 같아요. 내 조상의 조상에서 내려오는 그 무언가가 작용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지금 장 발장으로 출연하는 양준모 배우가 뮤지컬 <서편제>에 출연했던 거 알죠?
처음엔 몰랐어요. 나중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유튜브로 차지연 배우가 하는 노래와 연기를 접했는데 정말 좋았어요. 굉장히 훌륭해요.


우리도 ‘한국적’이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그걸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려워요. 나영 씨도 이 말을 많이 생각해 봤을 것 같은데, 어떤 뜻이라고 생각해요?
뭐랄까, ‘화산(Volcano)’? 터지기 직전의 무언가가 안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거죠. 그런데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요. 저도 그런 열정은 똑같은 것 같아요. 다만 저는 억누르지 않고 그때그때 발산하는 게 다르지만. (웃음)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더 살펴보고 싶어요. 그 화산이 어떻게 발전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
행복이나 건강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일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농업에서도 자연 그대로 재배하는 친환경적인 농법이 있잖아요. 조화롭고 건강하게 살고 싶고, 이 세상이 그런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배우는 그다음이에요.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해진다고 해서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가 중요해요. 그래서 그걸 스스로 계속 묻고 있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8호 2016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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