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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원더.랜드> [No.149]

글 |조연경(런던통신원) 사진 | Brinkhoff / Moegenburg 2016-03-07 6,637

자아를 찾아 가상의 세계로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출간된 지 15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해 맨체스터 인터내셔널 페스티벌(Manchester International Festival)과 영국 국립극장(Royal National Theatre), 프랑스 샤틀레 극장이 공동으로 제작한 뮤지컬 <원더.랜드>(wonder.land)가 공개됐다. 이 작품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착안하여 모이라 부피니가 대본과 가사를, 영국 록 밴드 ‘블러(Blur)’의 보컬 데이먼 알반이 작곡을 맡았고, 국립극장의 예술감독인 루퍼스 노리스가 연출을 담당했다. 2015년 7월에 맨체스터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서 첫선을 보인 이 작품은 현재 런던 국립극장의 올리비에 극장에서 공연 중이며 이후 파리에서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시작됐지만 <원더.랜드>는 앨리스의 이야기가 아닌 영국의 흔한 청소년, ‘앨리’의 이야기이며, 어른의 시선으로 디지털 세대인 청소년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그린 가족극이다.




현대 사회의 토끼굴

뮤지컬 <원더.랜드>의 주인공 앨리는 평범한 학생이다. 그래서 학생이면 누구나 할 법한 고민들로 밤을 지새운다. 앨리의 엄마는 젖먹이 동생을 돌보느라 앨리에게 신경 써줄 여유가 없다. 아빠는 엄마와 불화로 집을 나갔고 사실상 별거 중이다.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장 보는 데 따라나선 앨리는 마트에서 우연히 만난 아빠와 엄마가 동네가 떠나가라 싸우는 통에 복잡한 기분만 든다. 더군다나 싸움의 원인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 답답하다. 앨리는 자신이 아빠의 도박 중독 사실을 엄마에게 털어놓지 않았다면 둘이 지금처럼 싸우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마트에서 벌어진 일로 아빠는 결국 경찰서에 임시 구금되고 만다. ‘매드 해터’처럼 행색이 남루하고 언행이 독창적인 아빠는 현실 세계에서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 경우가 잦다. 앨리는 가족 대신 스마트폰 메신저를 통해 친구들에게 위로받으려 하지만 동급생들은 앨리를 놀리고 괴롭힌다. 따돌림은 현실에서도 이어진다. 앨리는 교실의 패권을 잡고 있는 아이들에게 수시로 시달린다. 앨리가 기댈 수 있는 건 결국 사이버 세상뿐이다.


이 작품의 제목 <원더.랜드>는 ‘원더 닷 랜드’로 발음된다. 우리 식으로 하자면 ‘원더 점 랜드(wonder.land)’로 이는 인터넷의 게임 세계를 가리킨다. 앨리는 자신의 스마트폰에서 우연히 이 게임을 발견한다. 제작진에 따르면 더는 ‘토끼 굴’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스마트폰을 ‘토끼 굴’로 상정했다고 한다. ‘체셔 캣’을 연상시키는 자주색 고양이 얼굴의 인도에 따라 앨리는 토끼 굴, 즉 스마트폰 속 세상으로 떨어진다. 앨리는 게임의 진행자가 설명하는 대로 게임에 접속해서 아바타를 만든다. 다른 이용자들에게 위해를 가하지만 않는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게임의 세계. 현실의 자기 자신이 싫은 앨리는 자신과 반대되는 외모인 금발에 푸른 원피스를 입은 아바타 ‘앨리스’를 탄생시킨다. 물론, <원더.랜드>의 주인공들은 눈치채지 못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앨리스와 꼭 닮은 모습이다. 앨리는 곧 아바타 앨리스를 자기 자신과 같은 존재로 여기면서 게임 세계에 빠져든다. 첫 번째 퀘스트는 ‘하얀 토끼를 쫓아가는 것’. 앨리는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게임에 푹 빠진다. 자신에게 신경 써주지 않는 엄마, 자신을 따돌리고 괴롭히는 동급생들이 있는 학교와 달리 게임 속에서는 뭐든지 할 수 있고, 주목을 끌며 친구도 만들 수 있다. ‘트위들디’와 ‘트위들덤’, ‘도도새’ 등의 친구들은 ‘앨리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모두 ‘앨리스’를 좋아한다. 이 친구들과 각자 현실 세계에서 겪는 어려움을 털어놓으면서 위로를 주고받는 동안, 앨리의 일상은 점차 가상공간에 잠식되어 간다.




앨리스 vs 앨리스

청소년의 세상에서 그들과 대척점에 서 있는 숙적은 당연히 무서운 선생님이다. <원더.랜드>도 극 후반 주요 갈등의 중심에 교장이 있다. 교장은 학교를 독재자처럼 지배하는 ‘붉은 여왕’이며 비합리적으로 아이들을 괴롭히는 교사의 전형이다. 교장은 항상 스마트폰만 보는 앨리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폰을 압수한다. 여기까지는 다른 작품에서도 흔히 보던 설정 같지만 <원더.랜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교장은 앨리의 폰과 게임 ‘원더.랜드’가 잠금 되어 있지 않은 걸 보고 앨리의 아바타 ‘앨리스’를 이용해 플레이를 이어간다. 공교롭게 교장의 이름도 ‘앨리스’다. 교장은 곧 아바타 ‘앨리스’를 자신과 동일시하고, 현실을 외면한 채 게임에 푹 빠져든다. 교장의 플레이에 ‘앨리스’는 붉은 기운으로 물들어간다. 게임 속 친구들을 근거 없이 비난하고 괴롭히면서 게임 세계 안에서 독재자로 군림하며, 급기야 큰 검을 들고 다니며 위협한다.


앨리는 PC방에 가서 게임에 접속하려고 하다가 교장이 자신의 아바타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으며, 게임 속 다른 유저들을 괴롭히는 바람에 아바타가 삭제 위기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앨리는 교장을 막기 위해 친구 루크의 도움을 받아 학교 담장을 넘어 교장실에 무단 침입을 시도하고, 결국 몸싸움 끝에 스마트폰을 되찾지만 이미 오염되어버린 앨리의 아바타 앨리스는 스스로 삭제의 길을 택한다. 그리고 교장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법을 어기게 된 현실의 앨리는 교장이 협박하는 장면을 녹화한 루크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고, 자신을 도우러 온 엄마 아빠와 함께 화목한 가정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작품 속의 모든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어 버리는 단순함은 조금 아쉽다. 현실의 문제는 작품 속에서처럼 아무 일 없었던 듯이 행복하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경찰서에 구금되어 있던 앨리의 아빠가 아무 문제 없이 가족의 곁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면 이 작품이 가족 엔터테인먼트를 추구하다가 정작 가족이라는 복잡한 문제를 너무 가볍게 취급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원더.랜드’와 ‘원더랜드’

<원더.랜드>는 평범한 청소년의 이야기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이미지를 덧씌운 형태를 하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하지만, 결국 작품의 캐릭터들은 시각적 효과를 불러오는 이미지로서 소비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원더.랜드>의 캐릭터는 굳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캐릭터여야 할 당위와 설득력이 부족하다. 앨리의 아바타는 소설 속 ‘앨리스’와 성격이 같지 않고, ‘매드 해터’를 연상하게 하는 앨리의 아빠도 캐릭터의 속성이 다르다. <원더.랜드>의 모든 캐릭터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반영하는 것도 아니다. 앨리의 엄마나 앨리를 도와주는 친구 루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어떤 캐릭터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앨리스’, ‘캐터필러’, ‘트위들디’, ‘트위들덤’, ‘도도새’, ‘험프티’, ‘하얀 토끼’ 등의 캐릭터는 가상의 게임 공간 속 인물이나 아바타로 표현되었지만, ‘매드 해터’와 ‘붉은 여왕’은 현실의 인물인 앨리의 아빠와 교장으로 각각 치환되었다. 결국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디자인을 빌려와서 기발한 시각적 효과를 노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두 세계관 사이의 연결이 헐겁다. 앨리를 괴롭히는 여학생들의 이름은 왜 ‘다이나’, ‘매리앤’, ‘키티’로 했는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극 후반에는 아바타 ‘앨리스’가 ‘붉은 여왕’의 영향을 받아 못된 ‘붉은 앨리스’로 변해 버린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원더랜드’를 작품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걸까. 모든 게 뒤죽박죽인 앨리스의 세상처럼 <원더.랜드>의 세계도 맥락을 상실한 채 정신없이 표류한다.




철 지난 사이버 세상

수시로 변화하는 색색의 게임 화면은 <원더.랜드>의 무대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하지만 그 게임 화면은 ‘슈퍼 마리오’나 ‘스트리트 파이터’에서 크게 발전하지 않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아바타는 3D로 구현되었지만, ‘사이버 가수 아담’이나 프리챌의 ‘아바타’, 싸이월드의 ‘미니미’와 비슷해 보인다. 사실 ‘아바타’라는 것 자체가 2000년대 초반부터 유행하던 개념이고 하다못해 영화 <아바타>도 6년 전 작품인 걸 보면 또 다른 나인 ‘아바타’를 내세운 게임이라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원더.랜드>는 청소년들에게 익숙한 사이버 세계와 디지털 문화로 청소년 문제를 그려서 공감을 얻으려고 하지만, 이미 철 지난 개념이 가득한 세계가 과연 공감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얀 토끼를 쫓아가면서 다른 유저들과 농담을 주고받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다인 단순한 게임에 현실을 잊을 만큼 빠져드는 청소년들을 어른들의 시선으로 그렸기 때문인지 현실의 자신이 싫어서 그냥 가상 세계로 도피해 버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허상으로 유혹하는 가상공간을 암담한 현실과 대비시키는 것이 아니라 게임 세계의 순기능을 더 강조했다면 청소년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똑 부러진 소녀였지만 우연히 원더랜드의 무논리적 세계로 떨어져서 허우적대다가 결국 자신감을 얻어 돌아온다. 반면 <원더.랜드>의 앨리는 현실의 나를 대신할 가상의 나를 만들었다가, 아바타를 뺏겨서 학교에 무단 침입하는 강수를 둔다. 교장이 ‘원더.랜드’에서 얻은 것은 실직과 벌금, 수치밖에 없다. 앨리는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관심과 위로를 구하기 위해 게임의 세계에 빠졌다가 현실에서 일련의 사건을 겪은 후에 화목해진 가정으로 돌아온다. 가상과 현실을 오가는 앨리와 교장 간의 전투가 작품 후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지만, 가상 세계에서 칼을 휘두르며 다른 캐릭터들을 위협하는 ‘붉은 앨리스’와 현실에서 교장과 폰을 놓고 다투는 앨리의 고군분투는 흥미진진하다고 말하기에는 박진감이 부족했다.




앨리스의 활약

<원더.랜드>의 작곡은 영국 록 밴드 ‘블러’의 보컬 데이먼 알반이 맡았다. <몽키: 저니 투 더 웨스트>(Monkey: Journey to the West)와 <닥터 디>(Dr.Dee)에 이어 그가 세 번째로 맡은 뮤지컬 <원더.랜드>는 디지털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덕션답게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많은 편이지만, 전반적으로 넘버들이 귀에 감기지 않고 흘러 지나간다. 작품이 지루하게 전개되지는 않았지만, 대표적인 킬러 넘버가 없다는 점은 아쉽다. 그나마 게임을 소개하는 ‘www.wonder.land’가 강한 인상을 남겼지만, 그건 넘버를 부르는 게임 진행자, 할 파울러(Hal Fowler)의 역할이 컸다. 그는 넘치는 에너지로 무대를 오가면서 ‘원더.랜드’에 대한 호기심을 전해준 일등 공신이었다. 비디오 게임이 펼쳐지는 화면을 배경으로 공중을 뛰어다닌 앨리스의 활약도 뛰어났다. 와이어에 매달려 상하좌우를 오간 앨리스가 무대를 더 넓혀 주었고, 가상 세계를 무대 위에 불러온 듯한 효과를 주었다. 이야기와 백 퍼센트 부합하지는 않지만 ‘앨리스’의 상징들이 <원더.랜드>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부인하긴 어렵다. 무대를 뛰어다니는 하얀 토끼, 화려한 색의 캐터필러, 독특한 소재의 옷을 입은 트위들디와 트위들덤 등은 <원더.랜드>를 평범하지 않은 작품으로 올려놓는 데 톡톡히 기여한다. 연극 <워 호스>를 탄생시킨 디자이너 레이 스미스는 무대 위에 거대한 게임 화면을 보여주면서 현실 속 배우의 움직임과 가상 세계 속 아바타의 움직임을 동시에 구현했다. 그리고 게임 화면은 화려한 색으로 표현한 반면 현실의 무대는 흑백으로 암울하게 표현해서 대비를 주었다. 이런 무대장치가 현란한 게임 세계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는 앨리의 모습을 더 강조해서 보여준다.


<원더.랜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다가가고, 가족들이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려고 했다. 독특한 디자인의 의상과 무대, 화려한 조명, 익숙한 캐릭터들의 변용을 통해 모자람 없는 한 상을 차려냈다. 사이버 공간과 현실의 대비를 통해 현대 사회의 ‘이상한 나라’를 찾아 재해석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여도 군데군데 헐겁게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와 메타포가 작품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고 <원더.랜드>만의 매력을 깎아내리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잘 만든 아바타도 결국 내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앨리’와 ‘앨리스’가 가까워지려고 노력할수록 위화감과 어색함이 들었던 게 문제였을까. 어른의 시선으로 그린 청소년의 이야기가 결국 통하지 못한 걸까. 국립극장에서 오랜만에 내놓은 뮤지컬 작품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이 남았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9호 2016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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