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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백 마디 말을 대신하는 가사 [No.151]

2016-04-21 11,441

국내 뮤지컬에서 극이나 노래는 흔히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가사의 중요성은 종종 간과되곤 한다. 하지만 좋은 뮤지컬 곡은 멜로디로만 존재하지 않으며 가사가 매끄럽게 붙으면서 비로소 완성된다. 뮤지컬 가사의 실제와 한국적 현실에 대해 관계자들을 모시고 자유 좌담을 벌였다. 좌담에는 이지혜 작곡가, 최종윤 한예종 음악극창작과 교수, 한정석 작가가 참여했으며, 본지의 박병성 편집장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한국 뮤지컬 작사가의 현실
박병성  국내 뮤지컬 시장에 전문 작사가는 거의 없다. 브로드웨이에서는 극작가보다 작사가를 더 대우하는 편인데, 우리는 대본 작가가 작사까지 하는 경우가 많다.
한정석  일단 작사가와 작가에게 따로 페이를 제공할 만한 프로덕션이 많지 않다.
이지혜  가요계에서는 작사가의 위상이 크다. 뮤지컬계가 창작자를 대하는 위상이 전체적으로 그렇다. 글로 쓰는 것이기 때문에 작가가 그냥 쓰면 된다는 마음이 크다. 한국 뮤지컬 시장이 성숙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박병성  창작뮤지컬의 작사 부문에서 부족한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정석  작가도 극작법을 배운다. 처음 시작하는 친구들이 대본과 극은 익숙한데 가사는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작곡가가 알아서 맞춰 주겠지’라는 생각으로 뛰어드는 것도 많다. 나도 그랬다.
최종윤  시로 아름다운 글과 음악을 만났을 때 아름다운 글은 다르다. 말이다 보니까 처음 접근하기가 쉬워 가사를 시도하는데, 글로만 봤을 때는 괜찮지만 음악과 만나면 잘 어울리지 않게 된다.

이지혜  문학적으로만 접근하는 게 문제가 될 수 있다. 노래의 반을 차지하는 것이 가사다. 그렇기 때문에 가사는 문학적인 것 못지않게 음악적인 것을 신경 써야 한다. 가요는 멜로디가 먼저 나오고 이후에 가사를 붙인다. 그런데 뮤지컬은 그 반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음악보다는 문학적인 선택 및 드라마 전달을 우선에 두고 쓰는 경우가 많다.


박병성  음악적 구조, 즉 송 폼(Song Form)을 염두에 두고 써야 한다는 말인가.
이지혜  송 폼에 대해서 알고 작업하시는 분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형식을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노래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다르다고 본다.
한정석  계획이라는 것에 폼(Form)뿐 아니라 끝맺음이나 후크, 단어, 어미 처리, 캐릭터의 성격 등 다양한 구성 요소들이 있다. 모든 것을 고려해야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박병성  외국 뮤지컬 노래를 들어보면 외국어를 잘 모르지만 핵심적인 단어가 잘 들려서 곡의 의도가 더 잘 파악될 때가 있다. 정확히 들려야 하는 단어를 음악적으로 돋보이게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정석  합이 잘 맞은 거다. 작사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단어를 작곡가가 잘 들리는 곳에 배치를 했거나 음악을 잘 표현한 것이다.



우리말의 특성과 가사
박병성  우리말을 가사로 쓸 때 특성이나, 불편한 점이 있나.
최종윤  서양 음악과 영어 음악이 맞물려 발전하면서, 영어에서 강조하고 싶은 말은 서양의 음악으로 표현할 때 더 자연스럽다. 우리나라는 그러한 효과를 얻으려면 구조적으로 더 노력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이지혜  예를 들어서 영어에서는 명사가 뒤에 붙는데 우리말은 어미 처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한정석  개인적으로는 어미 처리가 가장 힘들다. ‘-다. -네. -죠’ 등 어미를 잘 골라야 하는데 애먹을 때가 많다. 우리말에서 색이나 모양을 표현하는 단어가 다양해서, 음절 수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것은 장점이다.
박병성  언어는 예쁜데 가사로 쓰기 적당치 않은 발음도 있는 것 같다.
한정석  받침이 있어서 힘들다. 특히 음악이 퍼지거나 크게 확장되는 부분에서 받침이 있는 단어는 소리가 멈춘다는 의견을 종종 들었다.
박병성  한국적인 언어에서 운율을 만들어내기 쉽지가 않다.


이지혜  내 경우 처음으로 번역을 하고 개사 작업을 한 작품이 <아이 러브 유>(2004)였다. 그 작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처음으로 라임 문제에 직면했다. 사실 나는 한국어 가사에서 라임을 꼭 살려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한국의 보편적 대중의 귀는 라임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최종윤  확실히 뜻을 이해할 수 있고 한국어와 어울리는 라임은 살려주고 싶다. 그러나 우리말 자체에서 라임을 살리는 경우 언어적인 묘미를 느껴본 적이 없다. 때문에 작곡가로서는 중요하게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라임은 미국적이다. 우리나라에서 강세가 붙는 단어 선택이나 문법을 맞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정석  우리나라는 라임을 맞추면 코믹스러운 느낌을 많이 준다. 캐릭터가 맞는다면 고려하기도 한다. 라임을 통해 음악이 반복되면서 감정이 쌓이는 것도 재미있다.

이지혜  우리말과 영어가 다른 점 중 하나는 받침이다. 받침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큰 문제다. 언어에서 올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다름이 있다. 우리말은 정말 어렵다. 또 작업 경험이 늘어나면서 표현이나 언어 선택에서 자기 모방을 하게 되는 일도 있다. 그러지 않고 싶은데 쉽지 않다.?
한정석  나도 입에 밴 단어들이 있다. 좋은 가사를 지향하는 부분은 쉬우면서도 새로운 표현을 찾는 거라고 생각한다.



작사 역시 협업이 중요
최종윤  개인적인 경험이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나와 일했던 대부분의 작가들은 먼저 초안을 준다. 초안에 정확한 폼(Form)이 있을 때는 많지 않다. 나는 정확한 이미지와 키워드를 요구하는 편이다. 그래야만 작곡을 시작할 수 있다. 이후 작사가가 가사의 빈 부분을 채워준 것을 토대로 음악을 먼저 완성한 다음에 다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최종 정리한다. 멜로디에 어떤 가사를 붙이는 것은 결국 작사가가 한 셈이라, 마지막까지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이 작곡가로선 아쉬운 부분이다. 협업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다.
이지혜   작가와 작곡가가 의견을 나누고 함께 같은 음성으로 노래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어렵다. 협업 작업 경험이 많지 않으면 그 중요성을 모를 수 있다.
최종윤  그건 작가도 그렇고 작곡가도 마찬가지다. ‘내 글 고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작가들도 많이 봤다. 작곡가도 처음 시작할 경우 작가가 주는 가사를 모두 살리지 못하면 실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양쪽이 인정하면 훨씬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것이다.
이지혜  한정석 작가와 이선영 작곡가의 작업을 옆에서 보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정석  죽어라 싸운다.(웃음)
이지혜  최종윤 작곡가는 싸우지 않는다고 하지만 싸우는 과정이 어떻게 보면 필수다.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양보를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작업이다. 이 과정을 겪지 못하면 작업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마치 한 번도 연애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만화로 연애를 배우는 것과 같다. 실제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하는 것은 무수한 싸움의 과정이다.
한정석  나와 이선영 작곡가는 대여섯 번 정도 의견을 나눈다. 많으면 열두 번까지도 한다.


박병성  멜로디가 단조롭고 뻔한 진행을 한다고 생각한 작품이 있었다. 작곡가의 문제도 있겠지만, 곡에 담고 있는 가사의 양이 너무 많아서 가까스로 그것을 소화해 내고 있더라.
이지혜  왜 곡이 그렇게 나왔는지는 작업 당사자들만 알 것이다. 작곡가가 그것을 원했을 수도 있고 작가가 원했을 수도 있다. 작업 과정의 내막은 남들은 알 수 없으니까.
한정석  내가 보기엔 둘이 안 친하고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 거다.
이지혜  마지막을 완성하는 사람이 결정권을 가진다. 나는 (작사와 작곡을 함께해서)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으니까 혼자서 매일 싸우고 있다. 미국에서 작사가에게 가사를 받을 때에는 항상 마지막 결정권을 가지고 싸웠다.


박병성  작곡가가 작사를 했을 때와 작가가 작사까지 했을 때 구체적으로 어떤 장단점이 있을까.
한정석  상식적으로는 작곡가와 작사가가 같다면 음악적인 완성도가 높을 것 같고, 작가와 작사가가 같다면 드라마와 유기성이 맞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지혜  결국은 합이 중요한 게 아닐까. 좋은 노래들이 항상 완벽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적처럼 작곡, 작사, 극이 딱 맞아떨어졌을 때 설사 다른 부분이 허술하더라도 그거면 된다.



뮤지컬 가사에서 비유와 구체성
박병성  글은 굉장히 논리를 요구한다. 하지만 가사에서는 그러한 논리로 꽉 채워져 있을 때 오히려 답답하고 비워놓은 것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때가 있다.
이지혜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채워졌기 때문에 말이 비워진 거다. 좋은 뮤지컬 대본은 거의 대부분 읽으면 재미가 없다. 대본은 설계도다. 구조는 있어야겠지만 대본에 음악이나 무대, 조명 등의 자세한 부분은 없다.
박병성  특히나 뮤지컬 가사는 대중가요보다 훨씬 입체적인 느낌을 받는다. 
한정석  작업할 때 크게 감정을 많이 담는 노래와 극을 많이 담는 노래로 나눈다. 감정을  담는 노래는 멜로디를 더 중요하게 본다. 또 극을 담는 노래는 정보를 전달하되 반복을 통해 조건을 맞춘다.
최종윤  그게 좋은 접근법 중 하나다. 정확하게 기능을 가진 노래를 만들어야 하니까. 감정을 강조할 것인지, 극을 진행시킬 것인지의 질문에서 답을 가지고 가야 한다. 아니면 애매한 곡이 나오고 또는 추상적이거나 설명적인 곡이 된다. 자신만의 체크리스트를 활용해야 한다.


박병성  특히 감정을 전달하는 노래에서 해당 캐릭터가 쓰지 않을 것 같은 비유적이거나 문학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노래들이 있다. 캐릭터와 노래가 따로 노는 가사는 나쁜 건가.
최종윤  뮤지컬에서는 나쁘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겉으로 드러내는 노래와 내면의 노래를 분리한다는 해석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노래 가사는 무조건 고상하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은 곡 기능으로서 진정성과 신뢰를 떨어뜨린다. 그 사람이 쓰지 않을 만한 단어를 늘어놓아서 부르면 멋있는 발라드 가수밖에 되지 않는다.
한정석  겉으로는 거칠지만 내면에 그런 정서가 있는 캐릭터여도 끄집어내기 위해 드라마적인 장치가 없다면 캐릭터가 쓰지 않을 것 같은 가사의 노래는 와 닿지 않는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잘 반영되어야 한다.


이지혜  가사는 이해하기도 쉽고 듣기도 아름다워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꼭 모든 단어를 속속들이 이해시키지 않더라도 핵심적인 부분을 강조하며 큰 뜻을 잘 전달하는 가사를 쓰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물론 굉장히 어렵다). 가사라고 너무 쉬운 단어를 쓰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캐릭터들이 다 평준화되지 않나.
박병성 가사에 적당한 비유와 은유가 들어갔을 때 아름다워진다. 문학적이고 아름다운데 정확한 내용은 모르는 노래도 있다. 비유와 상징도 좋지만 구체적인 가사를 써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구체적인 가사를 쓰는 것이 어떤 것일까.
최종윤  언어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표현해서 쓰더라도 음악과 가사가 만나면 전혀 달라진다. 때문에 내용이 이해, 전달되게끔 써야 한다. 결국 뮤지컬에서 가장 좋은 비유와 상징은 100% 이해될 수 있는 뮤지컬 가사다.
한정석  비유와 상징을 쓰는 이유는 하고자 하는 말의 전달을 높이기 위해서다. 의도를 정확하게 점검해야 이것이 소모되지 않는다. 특히 정서적인 곡에서 적절하게 쓰면 확실히 좋은 곡처럼 느껴진다.
이지혜  웬만큼 그 노래를 잘 알고 그 노래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 어떻게 발전됐다는 걸 모르면 가사를 쓸 수 없다. 음악적인 전개랑 가사의 전개가 맞지 않는 경우 음악과 가사의 이야기가 따로 흐른다. 음악을 먼저 쓰면 음표가 많이 없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에 많은 드라마를 욱여넣을 수가 없다. 



음악과 가사, 작업 순서
박병성 가사가 먼저 완성되고 음악과 맞추며 수정하듯 가사를 쓰면서 음악을 바꾸기도 하지 않나.
최종윤  그렇기도 하지만 ‘누가 첫 단추를 끼웠느냐’에서 오는 힘도 있다.
한정석  이선영 작곡가와 함께 작업할 때 음악을 먼저 쓸 때는 정서 강화를 위해 발라드를 쓰기 위해서다. 가사가 먼저 완성됐지만 (노래나 극의) 순서나 구성이 바뀔 경우 음악을 먼저 쓰고 가사를 채운다.
이지혜  서글프게도 내 경우는 혼자 작업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작사와 작곡을 동시에 하는 편이기 때문에(노래와 가사가 같이 나온다) 음악 작업을 먼저 진행하는 것을 거의 못한다. 하여간 가사 잘 쓰는 건 너무나 어렵다. 백 마디 말로 전하지 못하는 것을 짧은 멜로디로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도 쉽지 않다.
최종윤  가사와 음악이 만나면 넘치는 것이 생기는데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또 협업자가 하는 이야기를 경청할 줄도 알아야 한다.
박병성  후크를 잘 쓰는 것이 중요하지만 가장 어렵다고 하더라.
한정석  ‘Let It Go’는 노래의 제목이자 후크이다. 후크를 노래의 목표와 맞추면 통일감이 있다. 그린 식으로도 멜로디도 컨셉과 노래의 목표를 생각해야 한다.


박병성  뮤지컬 작사를 잘하기 위한 방법을 알려준다면?
최종윤  음악이 가지고 있는 방향을 캐치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궁극적으로 좋은 노래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지혜  많이 듣고 보고 분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작사는 누가 고쳐줄 수도 없고 논술 시험처럼 체크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다. 좋은 취향이 없으면 좋은 것을 만들 수도 없다. 그러고는 모방 훈련이 중요하다. 좋은 곡들의 가사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그 비슷한 것을 써보는 훈련.
박병성  한정적 작가는 작사를 어떻게 공부했나?
한정석  좋아하는 노래들은 왜 좋은지 파악하려고 한다. 가요를 주로 많이 들었다. 그때는 공부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좋아하는 곡 위주로 고민해 봤다. 한때 프롬프트 알바를 했다. 콘서트에 사용할 가사를 몇 십 개 옮겨서 콘서트 내내 띄워주는 거다. 콘서트 따라 다니며 가사를 되게 많이 봤다.


박병성  뮤지컬에서 좋은 작사는 무엇인가?
이지혜  문학적/음악적인 아름다움을 갖추면서 드라마상 효율적인 가사. 시나 가요의 가사는 사람들이 여러 번 반복 감상을 하면서 의미를 찾아내지만 뮤지컬 가사는 그렇지 않다. 한 번만 듣는 관객도 배려해야 한다. 그래서 뮤지컬 가사에 쉽고 구체적인 표현이 많은 것이다.
한정석  뮤지컬 노래는 극 안에 속하는 곡이다. 정보 전달을 하며 극을 단순히 진행하는 것뿐 아니라 극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1호 2016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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