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76 연출가 기국서, 연극이라는 소명
국내 공연계에 <관객모독>이라는 걸출한 작품을 탄생시킨 극단 76이 어느덧 40주년을 맞았다. 1976년 창단 공연 <탕자 돌아오다>로 출발한 극단 76은 격변의 시대에 당대의 정치 사회적 상황을 담은 실험적 작품들로 뚜렷한 발자취를 남겨온 집단이다. 극단 76은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상임 연출가이자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기국서 연출의 신작 <리어의 역>을 시작으로, 극단 76이 배출한 박근형 연출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김낙형 연출의 <붉은 매미>를 차례로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극단 76의 40주년 기념 축제가 시작되기 하루 전, 여전히 연극에 대한 뜨거움을 품고 있는 기국서를 만났다.
극단 76이 걸어온 길
극단 40주년 기념 공연 개막을 하루 앞두고 계신데 어떠세요? 만감이 교차할 것 같은데요.
오늘 아침에 딱 느껴진 감정은 벅차단 거였어요. 그런데 그 벅찬 감정이 마냥 좋진 않고, 무게처럼 느껴져요. 공연이라는 건 무대 위에서 굴러가면서 살아나는 거니까 앞으로 어떻게 완성되어 갈지 기대하고 있어요.
외부의 평가와는 별개로, 선생님은 극단 76의 지난 40년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미안한 얘기지만, 나는 회고를 잘 안 해요. 이따금 밥 먹다 과거에 창피한 일을 저질렀던 게 문득 생각나서 숟가락을 딱 놓게 되는 그런 경우는 있지만, 일부러 지난 일을 돌이켜 보진 않아요. 그렇다고 현재와 미래만 보고 사는 건가 하면, 그것도 아니고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우리 작품 <관객모독>에 나오는 대사, ‘과거는 죽은 것, 묻혀 있는 거다’ 이게 제 생각이에요. 이미 지나간 시간은 그걸로 끝인데, 회고를 뭣 하러 하나 싶죠. 물론 질문에 원하는 답을 말해 줄 순 있지만, 그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아니잖아요.
보통 극단 76의 대표작으로 <관객모독>과 <햄릿> 시리즈를 꼽는데, 선생님이 소중히 생각하는, 언젠가 다시 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으세요?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를 쓴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마리 콜테스 좋아해서 그 작품을 다시 해보고 싶어요. 콜테스 작품을 보면 한 인물이 관념적인 대사를 두세 페이지씩 쫙 읊는데, 난 이상하게 그런 게 좋아요. 예를 들어 미친 사람이 밑도 끝도 없이 혼자 몇 십 분씩 마구 얘기하는 그런 스타일의 작품을 좋아해요.
‘가난과 저항의 미학’, ‘무정부주의적 집단’, ‘반문화적 집단’과 같은 극단 76에 붙은 여러 수식어 가운데 어떤 표현이 가장 마음에 드세요?
극단 76은 정확히 따지면 제가 창단한 게 아니에요. 동생(영화배우 기주봉)이 창단 멤버고 나는 극단이 생긴 지 1년쯤 뒤에 들어갔어요. 당시 76에 들어간 이유는 1976년에 만들었다고 극단 76이라고 단순하게 이름을 지은 게 마음에 들어서였어요. 널널해 보이잖아요. (웃음) 예를 들어, 극단 실험은 왠지 실험적인 것만 할 것 같잖아요. 어떤 프레임 안에 갇히는 걸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극단 76이 특정 슬로건을 내세우고 활동해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70년대 창단 당시 실험적인 작품을 많이 했고, 이후 80년 군부 독재 시절엔 아무래도 저항적인 색을 띠는 작품을 할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연극에 쏟은 삶
40주년 기념작으로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서 캐릭터를 가져와 40년 간 리어왕을 연기한 노배우의 이야기를 만드신 이유는 무엇인지요.
일생을 연기해 온 노배우의 정신세계는 어떠할까, 그게 궁금했어요. 내 주변에도 오랜 기간 배우를 한 사람들이 많은데, 한 분야에 깊이 몰두해 살아온, 쉽게 말해 대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세계관은 아무래도 좀 다를 것 같아요. 그리고 작품의 중요한 설정 중 하나는, 주인공이 죽음을 앞두고 있는 치매 걸린 노배우라는 점이에요. 젊은 사람들에게 죽음은 추상적인 주제이지만, 보통 육십이 넘으면 죽음은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오거든요. 이따금 나머지 생에 대해 사색하게 되죠. 죽음을 앞두고 있는 한줌의 인생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런 걸 그려보고 싶었어요.
극단의 어려운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작품 속 대사를 미뤄 봤을 때 40년 동안 극단을 꾸려오는 게 쉽지 않았을 거라 짐작되는데, 힘든 상황에도 계속 극단을 계속하게 한 동력은 뭐였나요?
지금껏 할 수 있었던 이유야 단순해요. 좋았으니까 했죠. 중독 증세처럼 공연에 대한 상상이 떠오르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작품을 보면서 자극받고, 사회적인 이슈가 생기면 그걸 극으로 만들고 싶고. 나는 그냥 한마디로 연극쟁이인 거예요. 모든 생각이 다 연극으로 수렴되니까. 그런데 제 주변 연극하는 사람들한테 물어봐도, 어떤 심오한 뜻보다도 그냥 좋아서 한대요. 연극 말고 다른 거는 재미가 없거든. 뭐, 움직일 때마다 돈이 생기는 일이 있다고 하면 그게 더 재미있을지 몰라도. (웃음) 한창 젊었을 때는 국제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싶다는 야망도 컸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나. 뭔가를 하면서 자꾸 한계에 부딪치면 스스로 마음을 접게 되잖아요. 근데 연극은 포기가 안 됐어요. 배우들의 연기에 중점을 두고 연출을 하는 편이라, 연극을 계속해 온 이유 가운데는 훌륭한 배우들을 보는 즐거움도 있었어요. 연극에 대해 여전히 가지고 있는 욕망은, 내가 아직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면 좋은 작품을 만들어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스스로 감동하고 싶단 거예요. 그리고 지금껏 극단을 할 수 있었던 건, 서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만나 같이 어울리다 보니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거죠. 제가 혼자 극단을 이끈 게 아니고 같이 해온 거죠. 연극 자체가 혼자 할 수 없는 거잖아요.
배우는 작품을 완성하는 존재이긴 하지만, 선생님의 방금 말씀에선 배우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느껴져요.
맞아요, 관객으로서도 내가 배우를 정말로 좋아하는구나 싶을 때가 있어요. 사실 예전엔 훌륭한 배우가 드물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배우가 참 많아요.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가. (웃음) 보통 매 순간 위대한 연기를 기대하지만, 솔직히 그럴 순 없어요. 훌륭한 배우는 열 번에 한 번 위대한 연기를 하죠. 그 한 번의 위대한 연기를 목격하는 순간 희열을 느껴요.
<리어의 역> 공연 중에 “옛날이 그립긴 해, 너덜너덜한 무대 장치, 그땐 그게 빤히 가짜라고 해도 관객들이 좋아했어”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특별히 그리운 시절이 있으세요?
특별한 얘기는 아닌데, 대학 시절에 학교 소극장에서 공연하던 때 기억이 많이 나요. 그땐 어렸으니까 공연 준비를 하면서 팀원들끼리 맨날 극장에서 먹고 자고 그랬거든요. 시멘트 냄새, 곰팡이 냄새 나는 극장이 뭐가 좋다고 거기서 뒹굴며 놀았던 게 그렇게 기억에 남아요. 누구나 열정적이었던 젊은 날에 한 강렬한 경험은 쉽게 잊지 못하죠.
3년 전쯤 극단 76의 대표 공연인 <햄릿> 시리즈의 최신작 <햄릿6-삼양동 국화 옆에서>를 공연하면서 관객들이 더 이상 풍자에 재미를 느끼지 않는 것 같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혹여 그때 씁쓸함을 느끼시진 않으셨어요? 뭔가 다른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아니요, 씁쓸해 할 필요는 없죠. 자기 생애 좌절은 자기 자신한테 나오는 거지, 사회가 주는 게 아니잖아요. 관객들이 이래서는 안 되는 데 큰일 났다, 이런 생각은 안 하죠. 그게 다 시대의 흐름이니까. 관객들의 성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죠. 지금 관객들의 성향을 인정하면 되지만, 나도 그에 맞게 바꾸는 게 잘 안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 클래식 음악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대중음악을 할 순 없잖아요. 그거랑 비슷한 거라고 생각해요.
연극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말은 거창하지만,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온 극단인 만큼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게 있으세요?
세월호 이야기로 작업을 해보고 싶은데. 사실 엄두가 안 나요. 한 편의 연극이 되려면 무대 위에 고발적 이야기를 단순히 펼쳐놓는 게 아니라, 미학적인 완성도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 작업이 엄두가 안 나는 거죠. 또 강렬한 이야기일수록 극으로 만들기가 힘들어서 세월호 이야기는 분명 쉬운 작업은 아닐 거예요. 하지만 정치적 프레임을 거두고 봐도 세월호는 우리 사회에 무시무시한 사회적인 통증을 남긴 사건이니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2호 2016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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